국내정치

안철수, 문재인과 결별한 진짜 이유

Shawn Chase 2015. 12. 17. 17:24

내세우며 새 활로 모색
문재인은 ‘안철수, 낡은 진보 청산론’을
새누리당이 새정치 규정한 프레임으로 비판

어느 한쪽만 옳다고 일도양단하기 힘들지만
둘 다 ‘새정치를 진보정당’ 규정 이해안돼
기득권세력이 ‘기득권 대 야당’ 정치구도를
‘보수 대 진보’몰고 간 노림수에 말려든 것

안철수 탈당은 2012년 문재인 밀었던 무당파층
새정치 지지 철회했거나 철회할 거란 사실이다

문재인 새정치민주연합 대표가 13일 새벽 안철수 의원의 탈당을 만류하기 위해 서울 노원구 상계동 자택을 찾았으나 안 의원이 만남을 거부하자 차량에 앉아 굳은 표정을 짓고 있다. 뉴시스
문재인 새정치민주연합 대표가 13일 새벽 안철수 의원의 탈당을 만류하기 위해 서울 노원구 상계동 자택을 찾았으나 안 의원이 만남을 거부하자 차량에 앉아 굳은 표정을 짓고 있다. 뉴시스

내용을 보면 충분히 짐작하시겠지만 이 회견은 안철수 의원이 자신의 생각을 오랫동안 정리해서 작심을 하고 한 발언입니다. 그런데 이에 대한 문재인 대표의 답변이 10월19일치 <경향신문> 인터뷰를 통해서 나왔습니다.

“‘낡은 진보’라는 말이 상당히 마음에 걸린다. 낡은 행태가 있고 그것을 청산하자는 것이 본뜻이라면 100% 공감한다. 진보는 역사가 변하고 시대가 발전하면서 스스로 발전해나가는 것이다. 멈춰 있다면 진보가 아니다. (그런 점에서) 낡은 진보란 일종의 형용모순이다. 진보는 분배와 복지, 성장과 안보에서도 새 비전을 내세우는 진보다. 낡은 진보라는 것은 새누리당과 보수언론에서 우리 당을 규정짓는 프레임이다.”

“또 하나는 ‘김대중·노무현을 극복하자’는 말이다. 극복해야 한다는 것은 100% 맞다. 당연한 말을 왜 하는가에 의문이 있다. 역대 정부 잘못에는 아무 말 하지 않으면서 왜 그나마 훌륭한 두 정부를 극복하라고 하는가. 폄훼, 부정적 인식이 담겨 있다. 내가 노무현이 아닌데도 끊임없이 나한테 ‘노무현을 극복하라’는 것은 ‘노무현은 잘못했다. 너는 극복 못했지. 넌 그래서 안된다’는 프레임이다. 우리에게 부족한 건 김대중·노무현 정부에 대한 자부심이다. 안 전 대표의 본뜻과 무관하게 상대 프레임에 이용될 수 있음을 꼭 강조하고 싶다.”

여기서 ‘새누리당과 보수언론에서 우리 당을 규정짓는 프레임’이라는 표현이 문제였습니다. 안철수 의원은 새누리당이라는 말에 왜 이렇게 민감할까요. 이유가 있습니다. 안철수 의원은 2012년 문재인 대표와 야권의 대선후보를 놓고 경쟁을 할 당시 ‘무임승차론’에 시달린 적이 있습니다. ‘우리가 독재정권과 싸울 때 안철수 너는 호의호식했다’는 문재인 대표 지지자들의 비판을 받은 것입니다.

저도 2013년 5월 칼럼에서 문재인 안철수 박원순 세 사람을 평가하면서 각각 문재인은 권력의지 부족, 안철수는 무임승차, 박원순은 대중성 부족이 약점이라고 지적한 일이 있습니다. 안철수 의원 본인도 무임승차론에 대해 “나도 이제 정치인이기 때문에 그런 비판에 익숙해져야 한다”고 자신의 약점을 인정한 일이 있습니다.

그랬던 안철수 의원이 3년 뒤인 2015년 정치적 화두로 ‘낡은 진보 청산’을 전면에 들고 나온 것입니다. 안철수 의원의 낡은 진보 청산론은 무임승차론에 대한 대대적 반격인 셈입니다. 과거에 민주화 운동을 하지 않았던 사람들, 과거에 정치에 관심이 없던 사람들을 야당 지지로 끌어들여야 정권교체가 가능하고, 그런 사람들을 대표하는 정치인이 바로 안철수 자신이라는 논리입니다. ‘낡은 진보 청산’은 안철수 의원의 새로운 정치적 활로였던 것입니다.

‘합리적 개혁 대 기득권 수구’의 새로운 정치구도를 짜야 한다는 안철수 의원의 논리, 자신은 과거 민주화 운동에 동참하지 않았기 때문에 오히려 정치적 확장성이 있다는 안철수 의원의 논리는 상당히 타당성이 있습니다.

그런데 ‘낡은 진보 청산’이라는 표현, 어디서 들어본 것 같지 않습니까? 노무현 전 대통령이 2002년 대통령 선거에서 들고 나온 구호가 ‘낡은 정치 청산’이었습니다. 노무현 후보는 전국을 돌며 “낡은 정치를 청산하고 완전히 새로운 정치로 만들어 내겠다”고 약속했습니다. ‘낡은 정치 청산’은 과거의 3김 정치, 지역에 기반한 패권주의에 대한 비판이었습니다. 젊은 유권자들을 중심으로 노무현 전 대통령의 이런 주장을 전폭적으로 받아들습니다. ‘낡은 정치 청산’ 프레임이 노무현 대통령을 탄생시킨 것입니다.

세상은 돌고 도는 것이라고 했던가요. 13년 뒤 안철수 의원이 ‘낡은 진보 청산’으로 자신과 자신의 비서실장 출신 당대표를 비판할 것이라고 노무현 전 대통령이 상상이나 했을까요?

아무튼 낡은 진보 청산을 해야 정권교체가 가능하다는 안철수 의원의 주장과, 낡은 진보 청산은 새누리당과 보수 언론의 프레임이라는 문재인 대표의 주장은 어느 쪽이 더 맞는 말일까요. 저는 둘 다 맞는 주장이라고 생각합니다.

안철수 의원이 기존 야당세력의 단독집권은 불가능했고 연합정치를 통해서만 집권이 가능했다고 본 관찰은 옳은 것입니다. 역사가 증언하고 있는 사실입니다.

그러나 낡은 진보 청산이 새누리당과 보수 언론의 프레임이라는 문재인 대표의 말도 옳은 것입니다. 12월15일치 <조선일보>에 실린 류근일 칼럼의 제목은 ‘낡은 진보 청산해야 한다’였습니다.

“그렇다면 이런 친노 패권주의, 이런 ‘철밥통’ 노조, 이런 꽉 막힌 운동권엔 어떻게 대처해야 하나? 이 물음에 그제 새정치민주연합을 떠난 안철수 의원은 ‘낡은 진보를 청산해야 한다’고 말해 왔다. ‘안철수 스타일’에 대해선 ‘늘 간만 보고 다닌다’는 비판이 있어 왔다. 박원순-문재인-친노(親盧)-486운동권 앞에선 그는 너무나 어설펐고 순진했다. 그에겐 콘텐츠가 없다는 평도 있다. 그러나 ‘낡은 진보’로는 안 된다고 한 그 부분만은 만시지탄(晩時之歎)은 있으나 이제야 뭘 좀 깨친 것 같은 표현이었다.”

“오늘의 야권과 과격파 쪽에서 부는 흙바람은 결국 그들의 세계관-역사관-정치경제학의 ‘낡은 틀’ 때문이다. ‘야당을 어찌할 것인가?’ ‘노동계를 어찌할 것인가?’ ‘진보를 어찌할 것인가?’는 따라서, 그들의 ‘낡은 진보’를 대치할 ‘합리적 진보’ 그래서 보편적 상식과 정서에 맞는 야당을 새로 짜는 것일 수밖에 없다.”

“지금까지 봐온 바로는 ‘낡은 진보’와는 쌍방향 소통이 거의 불가능하다. 그들이 안철수, 김한길, 조경태, 황주홍, 유성엽, 박준영의 말을 귓등으로라도 들을 것 같은가? 어림도 없다. 그들 ‘낡은 진보’는 ‘합리적 진보’를 개량주의라고 매도하던 극렬파였다. 시대가 바뀌었어도 그들의 생각은 지엽적으로는 좀 달라졌을지 몰라도 근본적으로는 전혀 바뀌지 않았다.”

류근일 칼럼의 내용이 옳고 그름을 떠나서 안철수 의원의 낡은 진보 청산론과 이 칼럼의 논지가 일치하고 있는 것은 사실입니다. 새누리당과 보수언론은 대한민국 기득권 연합의 구성원입니다. 따라서 안철수 의원의 ‘낡은 진보 청산’이 새누리당과 보수언론의 프레임이라는 문재인 대표의 반격에는 일리가 있습니다.

문재인 대표와 안철수 의원의 논쟁을 어느 한쪽이 전적으로 옳고 어느 한쪽은 전적으로 그른 주장이라고 일도양단하기 어렵다고 저는 생각합니다.

한 가지 이해하기 힘든 부분은 안철수 의원이나 문재인 대표가 새정치민주연합을 진보세력이나 진보정당이라고 규정하고 논쟁을 벌이고 있다는 점입니다. 새정치민주연합은 진보세력이 아닙니다. 진보정당도 아닙니다. 과거에 우리나라에는 혁신세력과 진보정당이 있었습니다. 지금도 진보정당이 있습니다. 정의당입니다. 그리고 헌법재판소에 의해 해산당한 통합진보당이 진보정당이었습니다.

새정치민주연합은 그냥 야당입니다. 이념 노선을 굳이 따지자면 중도보수에 가깝다고 저는 생각합니다. 새정치민주연합의 경제 정책이나 안보 정책 어디를 봐도 진보정당이라고 할 수 없습니다.

저는 현재의 야당을 자꾸 진보세력이나 진보정당, 또는 좌파라고 부르는 것은 우리 사회 기득권 세력의 음모적 시각과 관련이 있다고 생각합니다. 현재 집권하고 있는 세력은 보수가 아니라 그냥 기득권 세력입니다. 보수의 핵심 가치는 법치와 도덕성, 노블레스 오블리주입니다. 그런데 지금 집권세력과 주변에서는 그런 가치를 찾아보기 어렵습니다. 기득권 세력이 ‘기득권 대 야당’의 정치 구도를 ‘보수 대 진보’의 대결로 환치시켜 자신들에게 유리한 구도로 몰아가고 있는 것입니다.

노무현 전 대통령은 보수와 진보의 가치에 대해 깊이 성찰했던 사람입니다. 퇴임 이후 <진보의 미래>라는 책도 썼습니다. 저는 노무현 전 대통령의 학구적 성찰은 높이 평가하지만 우리나라 정치세력을 보수와 진보로 분류한 그의 시도는 큰 잘못이었다고 생각합니다.

문재인 대표와 안철수 의원의 논쟁을 야당 정치인들과 야당 지지세력의 역사와 연결시켜 생각해볼 필요도 있다고 봅니다.

김대중 노무현 전 대통령
김대중 노무현 전 대통령

지금 새정치민주연합은 1987년 김대중 총재가 창당한 평화민주당에 정치적 뿌리를 두고 있습니다. 김영삼 총재의 통일민주당이 1990년 3당합당으로 여당에 흡수됐기 때문입니다.

평화민주당 당원들 중에는 호남 사람들이 많았습니다. 김대중 전 대통령은 1988년과 1992년, 1995년까지 여러 차례 재야인사들을 영입했습니다. 그리고 2000년에 새천년민주당을 창당하면서 학생운동권 출신의 이른바 386세대를 수혈하기 시작했습니다. 디제이를 ‘존경’하는 호남 사람들과 자유분방한 운동권 출신들은 기질이 많이 달랐지만 마찰을 일으키지는 않았습니다. 디제이의 카리스마 때문이었을 것입니다.

그랬던 새천년민주당에 새로운 유권자층이 대거 유입된 것은 2002년 노무현 대통령이 후보가 되면서부터였습니다. 호남이나 재야인사들에 비해 노무현 지지자들은 매우 젊은 계층이었습니다. 1980년대에 대학을 다닌 사람들이 많았습니다. 학생운동과 노동운동을 했던 사람들이 당직자와 국회 보좌진으로 대거 밀려들었습니다. 이들은 호남 사람들과 사이가 좋지 않았습니다. ‘난닝구 빽바지 논쟁’이 벌어졌습니다. 결국 열린우리당과 민주당으로 분열했다가 다시 합쳐지는 우여곡절을 겪었습니다.

2012년 대통령 선거를 거치며 야당에는 또다시 새로운 세력의 유입이 이뤄졌습니다. 기존 정치에 대해 혐오감을 갖고 있던 무당파층이 ‘안철수 현상’을 타고 문재인 후보를 지지하고 나선 것입니다. 문재인 대표가 2012년에 받은 1469만표에는 과거 무당파층이었던 유권자들도 꽤 포함되어 있다고 저는 생각합니다.

이번 안철수 의원의 탈당 사태는 문재인-안철수 두 정치인의 결별이라는 측면도 있지만 이처럼 2012년에 ‘문재인 지지’로 모아졌던 야당 지지 유권자 계층의 결별을 의미할 수도 있습니다. 과거 무당파층이 새정치민주연합과 문재인 대표에 대한 지지를 이미 철회했거나 앞으로 철회할 가능성이 있다는 얘깁니다.

문재인 안철수 두 사람이 야당의 이런 역사적 맥락까지 고민을 했다면 지금처럼 결별에 이르지 않았을 수도 있다고 저는 생각합니다. 아니 그렇게 생각하고 싶습니다. 문재인 안철수 두 사람의 이번 선택이 야당의 재기불능이라는 최악의 결과로 이어지지 않기를 바랍니다.

성한용 선임기자 shy99@hani.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