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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현수가 두산 팬들에게 보내는 편지

Shawn Chase 2015. 12. 4. 16:48

 

]① 김현수 '여자친구가 해외진출 지지해줘 고맙다'

[일간스포츠] 입력 2015.12.04 06:30 수정 2015.12.04 13:04

김현수(27)는 2015년 모든 걸 다 이뤘다.  

처음으로 두산의 4번 타자를 맡은 김현수는 14년 만에 소속 팀의 한국시리즈 우승을 이끌었다. 지난 11월 열린 프리미어12 대회에서는 불방망이를 휘둘러 한국의 우승에 힘을 보탰고, 대회 MVP를 차지했다. 내년 1월에는 한 살 연하 여자친구와 평생을 함께 하기로 약속한다. 그러나 김현수는 만족하지 않고 있다. FA(프리에이전트) 자격을 얻은 그는 메이저리그 도전에 성공해 '만루 홈런'을 날리겠다는 각오를 보이고 있다.

김현수는 지난 2일 서울 플라자호텔에서 열린 조아제약프로야구 대상 시상식에서 첫 대상의 영예를 안았다. 트로피를 안고 활짝 웃은 김현수를 만나 앞으로의 계획을 물었다. 좋아하는 수제 햄버거를 먹으면서 그는 미국 진출에 대한 솔직한 심정을 밝혔다.
  

#우승·우승·결혼  

- 시즌을 시작할 때 이런 결과를 예상했나. 

"전혀 예상하지 못했다. 그냥 'FA(프리에이전트) 자격 조건을 갖추는 해'라고 생각하고 시즌을 시작했다. 물론 이전보다 성적은 좋아질 거라는 예상을 했다. 타격할 때 다리를 들지 않았기 때문이다. 주위에서 올 시즌을 앞두고 준비한 것 아니냐고 하는데, 옛날부터 준비를 했다. 다리를 들지 않으면 방망이 중심이 맞는 정확성이 높아진다."
  
- 장타력이 좋아진 것도 같은 이유인가. 

"처음 이야기 한다. 시즌 초반에서 중반으로 넘어갈 때 방망이를 바꿨다. 34인치-870g짜리 방망이를 사용했는데, 밀어치거나 라인드라이브 타구에 스피드가 붙질 않더라. 그래서 에이전트(이예랑 대표)에게 부탁을 해 평소 쓰고 싶었던 H사 방망이를 미국에서 공수했다. 메이저리그 중계를 볼 때 '저 방망이 한 번 쓰고 싶다'는 생각을 했다. 새로운 방망이는 33.5인치-900g으로 길이는 짧아지고, 무게는 늘렸다. 그런데 무겁지 않았고, 배트 스피드가 늘어난 느낌이 들더라. 홈런과 2루타 등 장타 쪽에서 많은 차이가 났다."
  
처음으로 4번 타자를 맡아 풀시즌을 치렀는데, 부담은 되지 않았나.

"당연히 부담됐다. 4번 타자는 상징성이 크니까. 게다가 김동주 선배님께서 우리 팀 4번 타자의 기준을 잡아주고 가셔 고민이 됐다. 감독님께서 많은 도움을 주셨다. 프로 생활 10년을 했는데, 올해 감독님과 가장 많은 대화를 했다. 감독님은 '이렇게 하겠다'고 마음 먹으면 직접 이야기를 하신다. '미안하다. 4번을 맡아줘야 한다'고 부탁하시더라. 부담을 느낄까봐 '원래 3번이 어울린다. 나도 잘 안다. 너가 그렇다고 4번 가서 다르게 할 거 아닌거 다 안다'며 농담까지 하시더라(웃음). 슬럼프가 오면 코치님께 상담을 많이 받았다."

 

- 우승에 대한 예상은 어느 정도 했는가. 

"우승은 마음 속으로 간직하지 예상하기는 힘들다. 처음에는 반신반의 정도였다. 장원준 형이 우리 팀에 온다고 했을 때 '막강 선발진을 구축할 수 있겠다. 하던 대로 하면 6등은 하지 않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김태형 감독님께서 우리를 잘 아니까 더 좋은 성적을 얻은 것 같다." 
  

- 슬럼프 또는 고비가 있었나. 

"올해 우리 팀이 6연패를 빠진 적이 있다. 한 번 끊을 기회가 있었는데, 비가 와서 노게임이 됐다. 그리고 다음날 또 졌다. 팀 연패와 맞물려서 타격이 부진했다. 정말 힘들었고, 감독님과 코치님께 면목이 없었다." 
  

- 어떻게 탈출했나. 

"나는 슬럼프가 오면 박철우코치님을 찾아간다. 코치님께서 '칠래'라고 하면 다음날 1시에 출근해서 2시간 동안 미친 듯 특타를 한다. 말도 안되게 방망이를 돌리고, 힘을 다 빼버린다. 그러면 신기하게 시합에서 안타를 쳤다. 올해 다섯 번 정도 '칠래'를 했다. 더 잘했으면 좋겠는데, 좋은 경험을 했다." 
- 올해 개인 성적이 전반적으로 상승했는데, 만족하나.

"장타율 평균치를 찾은 것이 만족스럽다. '조금 더 좋아질 수 있겠다'는 자신감도 생겼다. 앞서 언급했지만, 나에게 맞는 스타일의 방망이를 찾은 것이 좋았다. 나는 방망이 스폰을 받지 않는다. 내 돈을 주고, 나에게 맞는 스타일을 찾는다. 미국을 가면 구하기 쉬우니 많이 사둬야 겠다(웃음)." 
  

- 반대로 불만족스러운 부분은. 

"솔직히 다 만족하지 못한다. 장타율도 만족스럽지 않다. 전반적으로 더 할 수 있었으니까. 그러나 한계점 없이 더 올라갈 수 있다는 걸 깨달았다. 더 배웠다."
  

- 프리미어12 우승까지 차지했는데. 

"대회가 열린다는 이야기를 들었을 때 '올해 힘들겠구나' 하는 생각을 했다. 대표팀은 뽑히면 나가야 한다. 힘들겠지만, 내가 대표팀을 워낙 좋아한다. 에이전트도 '해외 진출을 하려면 국제대회에서 도전을 해야하지 않겠나'라고 하더라. 이번 대회는 정말 재밌는 시간이었다. 좋은 결과를 얻고 와서 더욱 기뻤다." 
  

- 인천 아시안게임에 이어 두 번째 국제대회 우승인데.

"인천 아시안게임에서 느낀 점이 많았다. 나는 아무 것도 모를 때 병역 혜택을 받았다. 막내로 나가 '어, 어' 하니 금메달을 목에 걸었고, 한국에 오니 스타가 돼 있더라. 솔직히 간절함 없이 혜택을 받았다. 그러나 작년에 동료 선후배들의 간절함을 보면서 내가 뭐라도 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인터뷰를 자청했고, 팀 분위기를 이끈 것도 그런 이유였다. 그러면서 간절함을 배웠다." 
  

- 오는 1월 결혼을 한다. 책임감이 더 클 것 같은데. 
"여자친구에게 인터뷰를 빌어 고맙다는 말을 하고 싶다. 사실 해외진출과 결혼이라는 큰 일이 겹쳐서 고민이 됐다. 여자친구가 해외진출에 적극적으로 지지해줬기 때문에 결심을 할 수 있었다. 여자친구는 내가 야구를 편하게 하는데 큰 도움을 준다. 신경쓰지 않게 알아서 정말 잘한다. 이번 결혼 준비도 혼자 다했다. 미안했다. 나는 '사진 찍으러 가자'고 하며 같이 가서 사진 찍고, '이거, 이거 샀어' 이러면 잘 했다고 칭찬한 것이 전부다. 가정을 꾸린다는 건 책임감이라고 생각한다. 더 열심히 해야하는 이유가 생겼다."

유병민 기자

 

 

김현수 '미국에서 은퇴하고 싶다'

[일간스포츠] 입력 2015.12.04 06:30 수정 2015.12.04 13:04 
  

김현수(27)는 2015년 모든 걸 다 아뤘다.  

처음으로 두산의 4번 타자를 맡은 김현수는 14년 만에 소속 팀의 한국시리즈 우승을 이끌었다. 지난 11월 열린 프리미어12 대회에서는 불방망이를 휘둘러 한국의 우승에 힘을 보탰고, 대회 MVP를 차지했다. 내년 1월에는 한 살 연하 여자친구와 평생을 함께 하기로 약속한다. 그러나 김현수는 만족하지 않고 있다. FA(프리에이전트) 자격을 얻은 그는 메이저리그 도전에 성공해 '만루 홈런'을 날리겠다는 각오를 보이고 있다.

김현수는 지난 2일 서울 플라자호텔에서 열린 조아제약프로야구 대상 시상식에서 첫 대상의 영예를 안았다. 트로피를 안고 활짝 웃은 김현수를 만나 앞으로의 계획을 물었다. 좋아하는 수제 햄버거를 먹으면서 그는 미국 진출에 대한 솔직한 심정을 밝혔다.
  

#메이저리그, 더 큰 무대로 
  
- 미국 진출은 언제부터 희망했나. 

"초등학교 시절부터 생각은 했다. 부모님의 영향이 컸다. 신경 쓰지 않으시는 것 같은데, 챙겨주시는 스타일이다. 어릴 때 매일 메이저리그 중계를 봤다. 자다가 일어나서 보고, 다시 자고. 야구를 하면서 '언젠가는 미국에서 해보고 싶다'는 생각은 늘 했다. 솔직히 FA가 다가오니까 '나가야지' 이런 건 아니다. 에이전트를 선임했다고 무조건 해외진출을 연관시키는데, 나는 야구를 편하게 하기 위해서 집중에 도움을 받기 위해 에이전트를 고용했다. '혹시 외국 구단에서 영입을 원한다면 잘 선택해달라'고 당부했을 뿐이다."
  

- 평소 좋아하는 메이저리그 구단 또는 선수가 있었는지.

"특별히 좋아하는 구단은 없었다. 그러나 배리 본즈를 엄청 좋아했다. '그 덩치에서 어떻게 저렇게 칠까', '정말 대단하다' 이런 생각을 많이 했다."
  

- 미국에 간다면 상대해보고 싶은 투수가 있는지. 
"투수를 상대하려면 경기에 뛰어야 한다. 나는 미국에 가기 되면 무조건 시합을 뛰고 싶다. 물론 야구를 하면서 뉴욕 양키스 마무리 투수 마리아노 리베라를 존경했다. 더 할 수 있는 기량이 있는데, 할 만큼 하고 은퇴를 하더라. 정말 멋있었다. 아직 현역으로 뛰었으면 상대할 수 있지 않았을까 싶다." 
  

- 목표는 시합 출전인가. 

"경기 출장을 해야 얻는 것이 있지 않겠나. 정확한 수치는 나도 궁금하다. 적응이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나름 '적응할 수 있을까' 고민하는데, 크게 문제되지 않을 것 같다. 미국은 개인주의 경향이 있고, 남에게 신경쓰지 않는다. 내 성격이 그렇다. 평소 스테이크, 햄버거를 좋아하기 때문에 음식 걱정도 없다. 

다만 내가 마음을 놓지 않았으면 좋겠다. 한국에서는 감독님께서 좋게 봐주시기 때문에 못해도 주전이다. 그러나 미국에선 못하면 바로 밀려난다. 나한테 원하는 것이 있어서 데려가는데, 거기서 밀리기는 싫다. 마음을 내려놓지 않은 강한 마음가짐을 갖고 싶다. 만약 밀린다면 현실을 인정하고, 흐트러지지 않아야 한다. 한국에 돌아와서 창피 당하기 싫다."
  
- 강정호의 올해 활약으로 자신감을 얻었을 것 같은데.

"강정호와 자주 연락을 했다. '할 만 하다'고 하더라. 강정호 성격상 적응 못할 아이가 아니기 때문에 잘 할거라 예상했다. 강정호가 잘 했기 때문에 기회가 온 것 아니겠는가. 이제는 강정호가 아니라 '갓정호'라고 불러야 한다(웃음). 나하기 나름이라고 생각한다. 소심해져서 가면 안 될 것 같다. 대범하게 하고, 대차게 하고 싶다. 칼을 잘 갈겠다." 
  

- 꿈에 그리던 무대를 밟으면 어떤 기분이 들 것 같나.

"재밌을 것 같다. 류현진·강정호·박병호 등 한국에서 같이 뛰던 선수들을 미국에서 보는 것 아닌가. WBC(월드베이스볼클래식)이 생각난다. 미겔 카브레라, 데릭 지터를 보고 '와, 와' 이랬는데, 같이 뛰게 된다니. 아, 하드웨어에서 비교를 당할 것 같다. 내 덩치는 미국에서 평범한 수준 아닌가. '배나온 돼지'라는 소리 듣지 않도록 이번 겨울 열심히 트레이닝을 하고 있다." 
 

- 미국에서 선수 생활은 얼마나 하고 싶나. 

"마음 같아서 은퇴하고 돌아오고 싶다. 이왕 나가는 거 잘 해야지. 만약 잘 한다면 미국 구단이 날 놓아주겠는가. 나가기로 마음 먹었다면, 그런 목표를 갖는 것이 맞다고 생각한다.
나이가 들면 한국에서 마무리 하는 것이 공통된 생각이다. 그러나 나는 그렇게 생각하지 않는다. 잘 크고 있는 후배의 자리 하나를 뺏는 것 아닌가. 우리는 성적을 중요하게 생각해 리빌딩을 소홀히 한다. 두산은 리빌딩을 더 중요시 했기 때문에 지금의 성적을 얻었다고 생각한다. 만약 한국에 돌아온다면 플레잉코치를 맡고 싶다. 내가 알고 있는 노하우를 전해주고, 대타로 나서 팬들에게 즐거움을 주고 싶다. 연봉은 박봉이어도 괜찮다. 박찬호 선배님처럼 좋은 곳에 쓰고 싶은 생각도 있다." 
  

- 영어 공부는 얼마나 했는지. 

"거의 못했다(웃음). 그러나 외국인 선수와 함께 한 시간이 많아서 어느 정도 느낌으로 알아듣는다. 영어 공부는 앞으로 계속 해야할 것 같다." 
  

- 미국에서 얻고 싶은 별명이 있나. 

"아프지 않는 사람을 뭐라고 해야 할까. (에이전트가 '아이언맨'이라고 하자) 그게 좋겠다. '아이언맨' '헐크' 이런 별명을 얻고 싶다. 프로다운 선수가 되고 싶다. 드러눕고 싶지 않다. '돈을 많이 받는 선수는 앞에 있어야 한다'는 것이 내 철학이다. 사실 외국인 선수에게 실망을 많이 했다. 스와잭은 처음부터 태업의 기미가 보였고, 잭 루츠는 갈수록 싫어졌다. 나는 아프지 않으면 무조건 뛴다." 

김현수 '김경문·김광림·그리고…감사드린다'

[일간스포츠] 입력 2015.12.04 06:30 수정 2015.12.04 13:05  
김현수(27)는 2015년 모든 걸 다 아뤘다.  

처음으로 두산의 4번 타자를 맡은 김현수는 14년 만에 소속 팀의 한국시리즈 우승을 이끌었다. 지난 11월 열린 프리미어12 대회에서는 불방망이를 휘둘러 한국의 우승에 힘을 보탰고, 대회 MVP를 차지했다. 내년 1월에는 한 살 연하 여자친구와 평생을 함께 하기로 약속한다. 그러나 김현수는 만족하지 않고 있다. FA(프리에이전트) 자격을 얻은 그는 메이저리그 도전에 성공해 '만루 홈런'을 날리겠다는 각오를 보이고 있다.

김현수는 지난 2일 서울 플라자호텔에서 열린 조아제약프로야구 대상 시상식에서 첫 대상의 영예를 안았다. 트로피를 안고 활짝 웃은 김현수를 만나 앞으로의 계획을 물었다. 좋아하는 수제 햄버거를 먹으면서 그는 미국 진출에 대한 솔직한 심정을 밝혔다.
  
  
#두산과 함께 한 10년 
  
- FA 자격을 획득했는데, 10년이라는 시간 어떻게 보냈나.

"제대로 한 건 없는데, 정말 빨리 지나간 것 같다. 늘 더 좋은 쪽으로 도전하려고 노력했다. 나름 연구를 많이 했다고 할까. 좋지 않은 쪽으로 연구도 많이 했다. 10년 동안 알차게 이것저것 도전을 하면서 온 것 같다. 내 것으로 만든 것도 있지만, 실패도 많이 했다. 실패를 하면서 깨달았다. 실패를 했을 때 10배는 더 와닿더라. 그런 깨달음이 성공으로 온 것 같다."
  

- 어떤 실패를 했나. 

"2008시즌을 마치고 홈런에 욕심을 냈다. 잘 치고 있는 상황에서 홈런 타자가 되겠다고 목표를 잡았는데, 큰 실패를 봤다. 홈런 타자가 되기 위해 방망이 무게와 길이를 다 다르게 해보고, 타격폼을 바꿔도 힘들더라. 그런 건 문제가 아니었다. 지금 생각해보면 좋은 도전이었다." 
  

- '타격기계'를 만든 건 엄청난 노력이라고 보면 되나.

"노력을 한 건 맞지만, 막연하게 한 점은 지금도 아쉽다. 어릴 때 무작정 잘하다보니 너무 방향성없이 막연하게 달리기만 했다. 탄탄하게 길을 다지지 않고, 거칠게 왔다고 할까. 확실한 목표를 세우고 길을 따라갔으면 더 좋은 성적을 낼 수 있었을 것 같다."
  - 두산에서 보낸 10년, 성공했다고 평가하나. 

"물론이다. 난 경기에 뛰는 것 자체가 성공이라고 생각한다. 2007년 2군에 한 번 다녀온 걸 제외하고, 항상 1군에서 경기를 뛰었다. 그리고 20대에 FA 자격을 얻었고, 해외진출을 준비하고 있다. 두산에 있어서 가능했다." 
  

- 아프지 않고 정말 꾸준히 했다. 비결이 무엇인가. 

"처음에는 타고난 것으로 많이 버텼다.  그러나 시간이 지나면서 살이 찌고 체력이 떨어지더라. 다이어트를 하고, 맨날 뛰고 힘을 키웠다. 김동주, 이종욱, 손시헌, 임재철 등 선배들에게 보고 배운 것이 많다. 특히 비활동 기간 체계적으로 운동하는 법을 배운 것이 큰 도움이 됐다. 외부 트레이너에게 체계적인 관리를 받고, 운동을 했다. 그러면서 부상이 없어졌고, 꾸준함이 생긴 것 같다." 
 손시헌을 유독 잘 따랐던 것 같다. 

"2006년 신고선수로 입단했을 때 가장 많이 챙겨주셨다. 내가 부상없이 꾸준하게 선수 생활을 할 수 있던 건 손시헌 선배님의 지분이 20%는 된다(웃음)."
  

- 김태형 감독이 차기 주장으로 생각하던데. 미국을 가면 누가 차기 주장에 어울릴 것 같나.

"감독님께서 그런 말씀을 하셨더라. 오재원 형이 아팠을 때 임시 주장을 했었다. 차기 주장은 내 친구 양의지! 양의지는 말없이 정말 묵묵하게 일한다. 말이 없으니까 더 무서울 때도 있다. 나는 잔소리를 많이 하는데, 완전 반대 스타일이다."
  

- 두산 생활 10년. 감사한 분 세 사람을 꼽자면

가장 먼저 김경문 감독님께 감사드린다. 지금의 김현수가 있게 만든 분이다. 다음은 김광림 코치님이다. 타격에 많은 도움을 주셨다. 고민이 있으면 언제나 찾아가서 물어보고 궁금증을 해결했다. 

나머지 한 자리는 모든 분들께 감사드리고 싶다. 도움주신 분이 많다. 입단할 때 양승호 감독님이 당시 2군 감독님이셨는데, 연락을 주셔서 '꼭 데려오고 싶다. 함께하자'고 격려해주셔다. 김승영 사장님, 김태룡 단장님께도 감사드린다. 입단할 당시에는 각각 단장님, 운영부장이셨던 걸로 기억하는데, 정말 잘 해주셨다. 지금도 감사함은 잊지 않고 있다."
  

-미국 진출을 한다면, 다 이루고 가서 홀가분 할 것 같다.

"아니다. 반대로 부담이 된다. 우승을 하지 않았다면 나는 그저 '우승을 못 시키는 선수'로 남았을 것이다. 그러나 내가 어떤 역할을 해야하는지 잘 알고 있기 때문에 내년에 우승을 못하면 '김현수가 있어야 하는데, 떠났다'는 이야기가 들릴 것이다. 그래서 더 잘해야 한다. 물론 우승은 너무 기쁘다. 지금도 소름 돋는다. 유투브 사이트에 가서 우승 순간 동영상을 자주 본다. 나도 모르게 '헤헤' 거리며 웃고 있더라." 
  

 

 

 

[일간스포츠] 입력 2015.12.04 06:30 수정 2015.12.04 13:05

 

안녕하세요. 김현수 입니다. 

2015년 10월31일. 잠실구장을 가득 메운 여러분의 함성 속에 우리는 그토록 염원하던 우승을 차지했습니다. 점수 차가 커서 내심 준비는 하고 있었어요. 만약 나에게 공이 오면 '우승 공'이니까 주머니에 꼭 챙기고, 뒤에서 응원해 준 외야 팬들 그리고 우리 팬클럽 회원들에게 인사를 드리려고 했어요. 이현승 형이 마지막 아웃카운트를 멋지게 삼진으로 잡아내 공은 챙기지 못했지만, 뒤로 돌아 허리 숙여 감사의 인사를 드린 게 지금도 생생히 기억이 나네요. 
  

올 시즌을 마치고, 해외진출을 선언했을 때 두산에서 함께 한 10년의 기억이 떠올랐습니다. 2006년 데뷔 첫 경기가 가장 기억에 남네요. 9월2일 청주구장에서 한화를 상대로 대타로 나섰지만, 덜덜 떨다가 무안타를 기록하고 물러났었죠. 그러나 지금의 김현수를 만들어 준 첫 걸음이었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기쁠 때나 슬플 때나 함께 해 준 팬 여러분 생각도 많이 났습니다. 무엇보다 저를 위해 많은 신경을 써 준 팬클럽 분들께 진심으로 감사드립니다. 동갑내기 친구이자 우리 팬 클럽 회장. 툴툴대는 내 성격을 받아주느라 고생했죠. 정말 고마워요. 
  
동료 여러분. 여러분과 함께 해서 영광이었습니다. 미국에 함께 가고 싶은 형·동생들이 많아요. 일단 가장 먼저 유희관 형을 언급해야 할 것 같은데. 귀여운 동생 박건우·정수빈, 내 친구 양의지·민병헌. 마지막으로 우승을 함께 해서 너무 기뻤습니다. 장원준 형, 오현택 형 언급하지 않으면 삐치니까 꼭 이야기 해야죠. 고마워요.
  
정규시즌 마지막 경기를 마치고, 인사를 드리기 위해 1루 단상에 오르자 팬 여러분께서 '가지마. 가지마'를 연호하셨죠. 그때 그 감동은 살면서 정말 잊을 수 없을 것 같습니다. 미국으로 가게 된다면, 언제나 그렇듯 몸 건강하고 즐겁게 야구를 하고 돌아오겠습니다. 새로운 도전에 박수를 보내주시고 격려해주신 마음 잊지 않겠습니다. 늘 한결 같이 응원해 주신 팬 여러분께 다시 한 번 감사드립니다. 
  
정리=유병민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