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제와 경영

이재용은 왜 굳이 현대차 ‘팰리세이드’ 타고 빈소 왔나

Shawn Chase 2020. 10. 27. 14:39

 

류정 기자

입력 2020.10.27 10:41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이 지난 25일 아버지 고(故) 이건의 회장의 빈소에 팰리세이드를 직접 몰고 온 사실이 알려지며 그 배경에 관심이 쏠리고 있다. 이재용 부회장이 입은 옷이나 타는 차 등이 큰 인기를 얻고, 브랜드 가치가 올라간다는 점에서 이 부회장이 고른 차에는 나름의 ‘전략’이 숨어 있다는 해석이 나온다.

이재용 부회장은 평소 제네시스 G90을 타고, 공항에 나갈 때는 외부 눈을 피하기 위해 기아 카니발도 자주 애용하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차를 그때 그때 바꿔타는 이재용 부회장이 팰리세이드를 택한 이유는 뭘까.

업계에선 현대차가 판매량이 바닥을 치고 있는 중국에서 재기를 위해 투입한 차가 바로 ‘팰리세이드’라는 점에 주목하고 있다. 현대차는 지난달 베이징모터쇼에 참가해 대표 모델로 팰리세이드를 공개했다. 팰리세이드는 중국 현지에서 생산하지 않고, 한국에서 만들어 수출하기로 했는데 중국 현지에서 ‘수입차’라는 이미지를 심어 현대차의 브랜드 가치를 높이려는 전략이다. 현대차는 실제 지난 26일 3분기 실적 발표에서 ‘중국 시장 회복 전략’을 이례적으로 별도 공개하면서 “중국에서 현대차 브랜드력을 높이기 위해 팰리세이드를 모터쇼에서 공개했다”고 밝혔다.

이런 가운데 이재용 부회장이 현대차의 가려운 곳을 콕 집어서 ‘지원 사격’에 나서고, 현대차와 협업을 강화하겠다는 의지를 담은 것이란 해석이 나오는 것이다.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이 25일 오후 이건희 삼성그룹 회장의 빈소가 마련된 서울 강남구 삼성서울병원 장례식장에 도착하고 있다. 그는 자녀들과 함께 직접 몰고 온 팰리세이드에서 내렸다. /연합뉴스

이 부회장은 2006년부터 2015년까지 9년간 현대자동차 에쿠스를 이용하다가 2015년 8월부터 쌍용 체어맨으로 바꿨다. 이 같은 사실은 삼성이 다시 완성차 사업에 진출할 가능성이 있다는 소문과 함께 현대차와 묘한 긴장관계를 만들었다. 당시엔 테슬라가 ‘IT업체의 완성차 진출 사례’로 큰 반향을 일으켰고, 삼성전자도 비슷한 전기차 브랜드를 만들 수 있다는 이야기들이 나왔다. 세계 최대 자동차용 스피커업체 하만을 9조원에 인수한 것도 이 무렵(2016년)이다.

 

그러나 이재용 부회장은 최근 1~2년 사이 다시 제네시스 G90으로 차를 바꾼 것으로 알려졌다. 이때부터는 삼성이 완성차 시장에 직접 진출하기보다는 전장(전자장치) 부품과 전기차 배터리 등 미래자동차 부품 사업을 강화할 것이란 해석이 나왔다.

실제 이재용 부회장은 완성차 시장에 진출해 현대차와 경쟁하기보다, 부품사로서 현대차와 손잡는 길을 택한 것으로 보인다. 지난 5월 삼성SDI 공장에 정의선 현대차그룹 회장을 먼저 초청해 배터리 기술을 소개하고, 전기차와 자율주행차 등과 관련된 전장 부품 협업을 제안한 것이다.

한 재계 고위 관계자는 “삼성SDI의 메인 파트너가 BMW이긴 하지만, BMW는 너무 멀리 있다"며 "배터리 기술이나 전장부품을 계속 개선하고 개발하기 위해선 완성차와 지속적인 교류와 협업이 필요한데, 코로나 사태로 국내에서 같이 하는게 가장 효율적이 됐다. 당장 배터리 공급을 하지 못하더라도 현대차와 장기적인 협력 파트너가 되고 싶어한다”고 말했다.

정의선 현대차 회장(왼쪽에서 두번째)이 2018년 말 현대차 팰리세이드 신차공개 행사를 마치고 기념촬영하고 있다.

벌써부터 ‘이재용의 팰리세이드’에 대한 반응은 인터넷에서 나오고 있다. 자동차동호회에서 ‘팰리세이드가 그런 차였냐’라는 반응과 함께 “내 차도 팰리세이드에요”라며 자랑하는 네티즌들도 등장했다.

이재용 부회장은 국내에서 언더아머를 폭풍 성장 시키는데 큰 기여를 했다. 2014년 미국 IT포럼을 방문했을 때 입었던 언더아머 티셔츠가 화제가 됐고, 이후 ‘이재용의 운동복’으로 각인되면서 국내외에서 언더아머의 판매와 위상이 크게 높아졌다. 이재용 부회장은 언더아머를 수입판매하는 효성의 조현준 회장과 친분이 두텁고, 2016년엔 언더아머와 웨어러블 기기 관련 협업을 위해 언더아머 CEO도 만난 것으로 알려졌다. 이재용 부회장이 입는 옷과 타는 차에는 나름의 ‘전략’이 숨어있는 것이다.

 

 

최태원 “한국에 큰 손실” 김승연 “가장 슬픈 날”

[이건희 회장 별세] 각계 인사들 추모 행렬

김강한 기자

석남준 기자

안상현 기자

입력 2020.10.27 03:00

 

 

지난 25일 별세한 이건희 삼성그룹 회장의 장례는 비공개 가족장으로 진행됐지만, 재계를 비롯한 각 분야 인사들의 조문 발길이 온종일 끊이지 않았다. 평소 기업 삼성이 한국 사회에 미친 공과(功過)를 두고 치열한 논쟁을 벌였던 정계 인사들도 이날만큼은 국내 기업을 세계 일류 기업으로 키운 경영자를 한뜻으로 추모했다.

26일 각계각층의 인사가 고(故) 이건희 삼성전자 회장의 빈소를 찾았다. (사진 왼쪽부터) 정세균 국무총리, 정의선 현대차그룹 회장, 최태원 SK그룹 회장, 해리 해리스 주한미국대사가 서울 강남구 삼성서울병원에 마련된 이 회장의 빈소를 찾아 조문했다. /사진공동취재단·연합뉴스

이날 서울 일원동 삼성서울병원에 마련된 빈소를 찾은 재계 인사들은 놀라운 업적으로 우리도 세계 1등을 할 수 있다는 자신감을 심어준 고인을 칭송했다. 손경식 한국경영자총협회장은 조문을 마친 뒤 “삼성에서 같이 일해 보니 고인은 생각이 아주 깊으신 분이었다”며 “그 덕분에 그동안 성공적인 결정을 내려오셨다고 생각한다”고 회상했다. 김승연 한화그룹 회장은 “(고인이 떠난 날은) 가장 슬픈 날”이라며 “친형님처럼 모셨던 분”이라고 말했다.

후배 기업인들은 세계 변방에서 아무도 주목하지 않았던 한국 산업계를 글로벌 최고 수준으로 끌어올린 선배 기업인의 별세에 대해 “안타깝고 애통하다”고 했다. 최태원 SK그룹 회장은 “대한민국에서 최초로 글로벌 큰 기업을 만든 분”이라며 “그런 분을 잃은 것은 대한민국에 큰 손실"이라고 말했다. 조원태 한진그룹 회장 역시 “위대한 분을 잃어 마음이 착잡하다”고 말했다. 서정진 셀트리온 회장은 “첫 직장생활을 삼성에서 했다. 신입사원일 때 먼 발치에서 많이 봤다”며 “이건희 회장은 2세 경영진이자 삼성을 세계적인 기업으로 만든 창업자이기도 해 후배 기업가들에게 많은 메시지를 주신 분”이라고 했다. 고인의 여동생인 이명희 신세계그룹 회장은 이날 오후 정용진 부회장, 정유경 총괄사장 등과 함께 빈소를 찾았다.

허태수 GS그룹 회장, 정지선 현대백화점그룹 회장, 조현준 효성그룹 회장도 조문했다. 고인의 조카인 조동길 한솔그룹 회장과 고인과 오랜 기간 함께 일했던 권오현 삼성전자 상임고문도 조문했다.

정·관계 인사들도 이날 추모 행렬에 동참했다. 빈소를 찾은 정세균 국무총리는 “삼성의 제2 창업자로 불려도 손색이 없는 분”이라면서 “대한민국 경제계 위상을 높였고 국가의 부(富)와 일자리를 만드는 데 많은 기여를 했다”고 말했다. 박병석 국회의장과 여야 대표도 빈소를 찾았다. 이낙연 더불어민주당 대표는 “세계적 기업을 일궈 국가적 위상과 국민의 자존심을 높여주신 데 대해 감사드린다”고 했고, 김종인 국민의힘 비상대책위원장은 “창의적인 머리로 세계 시장에서 한국의 위상을 높이는 데 큰 기여를 하셨다”고 말했다. 박지원 국정원장과 성윤모 산업통상자원부 장관, 조성욱 공정거래위원장, 김태년 더불어민주당 원내대표, 주호영 국민의힘 원내대표 등도 조문했다.

 

더불어민주당은 이 회장 별세 당일 “한국 경제 성장의 주춧돌을 놓은 주역”이라면서도 “경영권 세습을 위한 일감 몰아주기와 부당 내부거래, 정경유착과 무노조 경영 등 그가 남긴 부정적 유산은 우리 사회가 청산해야 할 시대적 과제”라는 논평을 낸 바 있다. 하지만 이날 빈소에서는 비판을 멈추고 고인을 기렸다. ‘삼성 저격수’라 불리는 박용진 더불어민주당 의원도 이날 오후 빈소를 찾아 유족을 위로했다. 박 의원은 조문을 마친 뒤 “고인의 명복을 빌고 유족에게 위로를 드리러 왔다”며 “삼성이라는 기업을 응원드리려 한다”고 말했다. 박 의원은 삼성 등 재벌기업의 지배구조 개선 문제를 지속 제기해 온 인물로, 삼성생명과 삼성화재가 보유한 삼성전자 지분을 총자산의 3% 외에는 모두 매각하도록 하는 내용의 보험업법 개정안을 대표 발의해 추진하고 있다. 삼성전자 고졸 임원 출신 국회의원인 양향자 더불어민주당 최고위원은 “배움이 짧은 저에게 거지 근성으로 살지 말고 주인으로 살라고 해주신 말씀이 생각난다”고 말했다.

해리 해리스 주한 미국 대사와 싱하이밍 주한 중국 대사, 필립 르포르 주한 프랑스 대사 등 주한 외국 대사들도 빈소를 찾았다. 토마스 바흐 국제올림픽위원회(IOC) 위원장은 “고인의 별세를 추모하고자 스위스 로잔 IOC 본부의 올림픽 기를 조기로 게양할 것”이라는 내용의 성명을 발표했다.

 

김강한 기자

 

 

 

석남준 기자

 

 

 

안상현 기자

 

 

이건희 에세이 책값 10배 급등 ‘생각 좀 하며 세상을 보자’

박순찬 기자

입력 2020.10.27 13:44

 

 

이건희 삼성그룹 회장이 별세한 이후, 그가 1997년에 쓴 유일한 에세이집 ‘생각 좀 하며 세상을 보자’가 큰 인기를 얻고있다. 당시 판매가는 6500원으로 현재 절판됐는데, 중고책은 10배 넘는 가격을 줘야 간신히 구할 수 있을 정도다.

27일 오전 현재, 교보문고·알라딘 온라인 중고장터에 5권이 나와있는데 가격은 7만~12만원선이다. 평소에도 3만~4만원선에 팔렸는데 이 회장이 별세한 이후 관심이 쏠리면서 가격이 2배 이상 뛴 것이다.

한 대형서점 온라인 중고장터에 올라온 이건희 회장의 에세이집.

이 책은 고인이 회장 취임(1987년) 10년째 되던 해인 1997년 한 일간지에 연재한 에세이를 엮은 것이다. ‘반도체 사업의 시작’ ‘리더의 덕목’부터 ‘새끼 거북에게서 배우는 마음’ ‘개를 기르는 마음’까지 이 회장의 평소 생각을 담은 100여편의 에세이가 담겨있다.

 

대기업 총수가 직접 책을 쓰는 경우는 드물다. 삼성을 글로벌 기업으로 이끈 총수가 직접 밝히는 이야기인만큼 기업인은 물론 일반인들의 관심 역시 큰 것으로 해석된다. 삼성 관계자는 “현재 절판돼서 삼성 자체적으로도 책을 갖고 있는게 거의 없고, 일부 임직원들이 개인적으로 소장하고 있다"고 했다.

선대 회장인 고 이병철 회장의 ‘호암자전’ 역시 인기다. 초판의 경우 40만원까지 가격이 치솟기도 했다. 현재도 10만원 넘는 가격에 팔린다. 출판 업계 관계자는 “기업인들 사이에서 ‘호암자전 초판을 갖고 있으면 사업이 흥한다’는 말이 나올만큼 행운의 상징으로 여기는 이들도 있다”고 했다.

 

“中企연수원, 삼성과 똑같이 지어주라” 이건희의 상생

“진정한 동반자가 떠났다” 중소·중견기업들 애도

박순찬 기자

입력 2020.10.27 03:00

 

 

경기도 용인에 있는 문수봉 인근 산자락엔 중소기업 인력개발원이 있다. 매년 전국의 중소·벤처, 소상공인들이 찾아 교육받는 연수 시설이다. 대규모 건물과 잔디 구장까지 갖췄다. 연수원 입구에는 ‘중소기업인의 열망과 이건희 회장의 뜻이 함께하여’라는 비석이 서 있다. 1997년 이건희 삼성그룹 회장 지시로 만들어진 연수원이다. 삼성 비서실 출신으로 벤처기업협회 부회장을 지낸 ‘벤처 1세대’ 이금룡 코글로닷컴 회장은 25일 소셜미디어에 “(이건희 회장은) 중소기업인들 교육이 중요하다고 판단해 경기도 용인에 연수원을 건설해 중소기업중앙회에 기증했다”고 했다.

25일 별세한 이건희 회장은 치열한 글로벌 생존 경쟁 속에서 세계 일류를 지향한 냉철한 ‘승부사’로 평가받는다. 이에 못지않게 고인이 생전(生前)에 협력사와 지역사회를 생각했던 ‘상생(相生)경영’도 재조명되고 있다. 중소기업계는 많은 대기업이 중소기업과의 ‘상생’ ‘동반성장’을 말하지만, 이 회장은 ‘진짜 중소기업이 잘돼야 한다’는 진정성을 갖고 이들을 대했다고 평가한다.

이건희 삼성그룹 회장은 평소 "대기업이 일류가 되려면 중소기업이 먼저 일류가 되어야 한다"며 상생 경영을 강조해왔다. 2011년 7월 경기도 수원 사업장에서 열린 '선진 제품 비교 전시회'에 참석한 이 회장이 임직원들과 파이팅을 외치고 있다. /연합뉴스

◇"삼성 연수원과 똑같이 지어라"

김기문 중소기업중앙회장은 26일 “중소기업 연수원을 ‘삼성 연수원과 똑같은 규모에 똑같은 시설로 지어주라’는 것이 당시 이건희 회장의 지시였다”면서 “대기업 것은 크게 짓고 중소기업 것은 작게 지을 법도 한데, 전혀 가식 없이 창문 틀부터 칠판 하나까지 같은 것으로 꼼꼼하게 챙기셨다”고 했다. 당시 개원식에 직접 참석한 이 회장에게는 공교롭게도 ‘의전 실수’가 일어났다. 당시 상황을 기억하는 인력개발원 관계자는 “이건희 회장께 가위가 전달되지 않은 상태에서 테이프 커팅식이 진행됐는데, 화는커녕 오히려 환하게 웃으시며 손가락으로 가위 모양을 하고 커팅하는 재치를 보여줬다”고 했다. 2002년에 중기중앙회가 이 회장에게 감사패를 전달하자 “중소기업 지원했다고 중소기업으로부터 감사패를 받기는 이번이 처음”이라며 기뻐했다고 한다.

25일 360만 중소기업을 대표하는 법정단체인 중소기업중앙회는 “중소기업을 진정한 동반자로 생각하며 애정을 베풀어주신 회장님께 진심 어린 애도를 표한다”는 논평을 냈다. 중견기업연합회도 “거성(巨星)의 타계를 애도하며”란 글에서 “많은 중견기업인의 무릎을 지탱하고 어깨를 나누어 준 소중한 친구이자 선배였다”고 이 회장을 기억했다.

1997년 4월 삼성이 건립해 중소기업계에 기증한 '중소기업개발원' 개원식에서 이건희(왼쪽에서 일곱째) 회장이 참석자들과 테이프를 잡고 서 있다. /중소기업중앙회

◇ “협력사가 세계 일류 돼야”

이 회장은 삼성그룹 회장 취임 이듬해인 1988년, 중소기업과 공존공생(共存共生)을 선언했다. 삼성이 자체 생산하던 제품·부품 중 중소기업으로 생산 이전이 가능한 352개 품목을 선정, 단계적으로 중소기업에 넘겨준다는 파격적인 결정이었다. “대기업이 일류가 되기 위해선 중소기업이 먼저 일류가 되어야 한다”는 이 회장의 평소 철학 때문이었다. 1993년 ‘신경영’ 선언 당시에도 이 회장은 “삼성그룹의 대부분이 양산 조립을 하고 있는데 이 업(業)의 개념은 협력업체를 키우지 않으면 살아남지 못하는 것”이라고 했다.

 

삼성에서 ‘거래처, 납품업체, 하청업체’란 말을 없앤 것도 이 회장이었다. 그는 삼성 계열사들에 “신뢰에 기반해 수평적이고 전략적인 파트너 관계를 맺으라”고 주문했고, 이후 삼성에선 ‘협력업체’란 표현을 쓰기 시작했다. “협력업체도 삼성 가족”(1989년 신년사), “협력업체는 같은 배를 탄 동반자”(1996년 신년사), “협력사가 세계 일류 경쟁력을 갖추도록 정성을 쏟자”(2012년 신년사) 등 기회가 될 때마다 이를 강조했다. “협력회사의 경쟁력을 키워 성장을 지원하고 지식과 노하우를 중소기업들과 나눠 국가 경제에 활력을 불어넣어야 한다”(2013년 신년사)는 것이 그의 뜻이었다. 김기문 회장은 “(이 회장은) 상생을 위해 끝까지 노력했고, 항상 중소기업에 애정과 진정성을 갖고 가깝게 접근하던 분”이라고 했다.

 

◇ 탁아소·문고리 “삼성이 개선하자”

이건희 회장은 글로벌 삼성을 이끌면서도, 저소득층 어린이의 육아 문제부터 삼성병원 환자들의 문고리 하나까지 ‘삼성이 개선해보자’고 할 정도로 위아래를 두루 살폈다고 한다. 이금룡 회장은 “(삼성의료원 건설 시) 받은 지시 사항 중에는 6인 입원실 어느 위치에 TV를 놓아야 환자들이 모두 편안하게 시청할 수 있는지, 입원실 문을 도어록·슬라이드 등 어떤 방식으로 해야 가장 편할지 검토하라는 것이 있었다”고 했다.

1987년 회장 취임 직후, 호텔신라에서 오찬을 하다 창밖으로 낙후된 집이 밀집된 곳을 보고 “저기 사는 사람들이 제대로 근무하려면 아이들을 편안하게 맡겨야 할 텐데, 좋은 곳에 맡길 수 없을 것 아니냐”며 “그러면 우리가 해야 한다”고 어린이집 건립을 지시하기도 했다. 노조 문제에 대해서도 “'3만달러 시대엔 용인해도 되지 않을까' 자주 반문했었다”고 회장 비서팀장을 지낸 정준명 전 삼성전자 일본본사 사장은 언론 기고를 통해 회고했다.

고인이 가장 좋아한 것은 ‘단빹팡’이었다고 한다. 일본 와세대 대학 동기인 니이무라씨는 “회장님이 단팥빵을 좋아해서, 우리는 엄청나게 비싼 음식을 대접받아도 답례로 단팥빵을 드렸다”면서 “회장님 건강을 염려한 홍라희 여사께 단팥빵을 빼앗기기도 했다”고 회고했다.

 

“이재용, 소프트웨어시대 충성고객 만들어야”

외신들 ‘삼성의 과제’ 집중 조명

오로라 기자

입력 2020.10.27 03:00

 

 

이건희 회장/조선DB

세계 주요 외신들은 이건희 삼성그룹 회장 별세 소식을 전하며 ‘이재용의 삼성’에 남겨진 과제에 대해서도 조명했다.

미국 월스트리트저널(WSJ)은 26일 “지구상에 존재하는 거의 모든 전자 제품을 생산하는 삼성은 성공적이지만 여전히 취약하다”면서 이재용 부회장의 가장 큰 과제는 하드웨어 강자인 삼성을 한 단계 도약시키는 것이라고 보도했다. WSJ는 “이건희 회장이 2014년 심장마비로 쓰러진 이후 6년간 삼성은 애플 등 경쟁사와 달리 고객 충성을 끌어낼 수 있는 서비스나 소프트웨어를 만들어내지 못했고, 가격 경쟁에서는 중국에 밀렸다”고 지적했다. 기술 하드웨어 중심 시대였던 이건희 회장은 성공 신화를 썼지만, 소프트웨어 시대로 변화한 현재 이재용 부회장이 이끄는 삼성은 여전히 취약하다는 것이다.

일본 니혼게이자이신문(닛케이)은 조간 1면과 5면에 이 회장에 대한 기사를 실었다. 닛케이는 온라인판에서는 이 회장이 생전 했던 ‘일본 기업에서 아직 더 배워야 한다’는 발언을 제목으로 뽑은 기사를 통해 이 회장과 일본의 인연을 재조명했다. 닛케이는 “이 회장은 아버지(이병철 회장)와 같은 와세다 대학에서 경영학을 배웠고 ‘일본을 배우라’는 경영 철학을 물려받았다”며 “실제로 그는 1년에 몇 번이나 일본을 방문하고 양국 기업인 교류를 도왔다. 이 같은 ‘일본 중시’는 장남 이재용 부회장으로도 이어지고 있다”고 보도했다. 이재용 부회장의 삼성이 앞으로도 일본과 긴밀한 협조를 이어갈 것이라는 전망을 한 것이다.

중국 관영 환구시보는 “한국 정치·산업계에선 이건희 회장을 한국 경제 발전을 이끈 거인이라 평가한다”고 전했다. 하지만 “이 회장은 장남인 이재용 부회장에게 삼성의 경영권을 물려줬고, ‘정경유착’이라는 부정적 평가도 남는다”고도 했다. 신문은 1995년 불량 휴대전화 제품을 소각한 이른바 ‘애니콜 화형식’을 거론하며 “이 같은 결단 때문에 삼성 휴대전화는 빠르게 모토로라를 앞지르는 신화를 썼다”고 보도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