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

[특파원 리포트] 文 대통령 訪中 때 해야 할 말

Shawn Chase 2017. 11. 28. 02:46


이길성 베이징 특파원

입력 : 2017.11.27 03:13



지난 22일 베이징 한·중 장관 회담 때 왕이 외교부장이 강경화 외교장관에게 한 '언필신 행필과(言必信 行必果)'는 논어에 나오는 말이다. "어떤 사람을 진정한 선비라 할 수 있느냐"는 제자의 물음에 공자는 "내 행동의 부끄러움을 알고(行己有恥·행기유치) 일을 맡았을 때 군주를 욕되지 않게 하면 선비라 할 만하다"고 했다. 그보다는 못하지만 "집에서 효자 소리를 듣고 마을에선 공손하다는 소리를 들으면 역시 선비라 할 수 있다"고 공자는 말했다. "소인이지만 그나마 겨우 선비라고 할 만하다"며 공자가 마지막으로 꼽은 부류가 "말에 믿음이 있고 행동에 결과가 있는(言必信 行必果) 사람"이었다.

왕이는 강 장관이 국회에서 밝혔던 이른바 '3불(不)'과 군사 채널을 통한 회담이라는 후속 조치를 이행하라는 뜻으로 이 말을 했다. 그때 강 장관이 "공자는 '행기유치(行己有恥)'가 더 중요하다고 하셨지요"라고 점잖게 맞받았다면 어땠을까. 외교 현장에서 결례에 가까운 연출도 마다하지 않는 왕이 부장이나 그런 외교 수장을 내세워 만만한 나라를 윽박지르는 중국의 행태에 뼈아픈 일침을 놔야 했지만 아쉽게도 강 장관은 그러지 않았다.

APEC 정상회의 참석 중인 문재인 대통령과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이 지난 11일 오후(현지시각) 베트남 다낭 크라운플라자 호텔에서 열린 정상회담에서 반갑게 미소지으며 악수하고 있다. /연합뉴스


왕이의 말을 그냥 흘려들을 수 없는 이유가 또 있다. 이 여섯 자는 1972년 중국 현대 외교사에 처음 등장했다. 그해 9월 29일 저우언라이(周恩來) 중국 총리와 다나카 가쿠에이(田中角榮) 일본 총리는 베이징에서 '중·일 연합 성명'에 서명하며 국교 회복을 전격 선언했다. 그날 저우언라이가 종이에 적어 다나카에게 건넨 글이 '言必信 行必果'였다. 수교는 이뤄졌지만 중국인에게 큰 고통과 치욕을 줬던 일본은 앞으로 말에 믿음이 있어야 하고 이를 행동으로 보이라는 요구였다. 그 뒤 이 여섯 자는 중·일 외교의 고비마다 등장했다.

일본통으로 이런 역사를 모를 리 없는 왕이가 이 말을 한 것은 생존 차원에서 북핵 방어용 사드를 배치한 한국과 난징(南京) 대학살 등을 통해 중국을 유린했던 일본을 같은 반열로 보고 있다는 의미이거나 외교적 무감각, 둘 중 하나일 수밖에 없다. 더구나 1972년 9월 마오쩌둥(毛澤東)은 일본에 전쟁 배상 청구를 포기하고 일본을 불구대천의 원수로 여기는 인민을 설득하는 결단을 내렸다. 하지만 2017년 11월의 중국은 국민 핑계를 대면서 가시적 경제 제재 해제 조치를 내리지 않고 있다. '言必信 行必果'는 적어도 한국을 상대로는 써서 안 되는 말이다.

12월 문재인 대통령의 방중 때 시진핑 주석이 또다시 '언필신 행필과'를 언급한다면 우리 대통령 도 고전을 인용해 당당히 응수하기 바란다. '맹자'에 '대인자(大人者) 언불필신(言不必信) 행불필과(行不必果) 유의소재(惟義所在)'라 했다. '대인은 말을 할 때 반드시 믿어주기를 바라지 않고, 행동할 때 반드시 결과가 따르기를 바라지 않는다. 오직 정당한가[義]를 생각할 뿐이다'라는 뜻이다. 지금 중국은 우리에게 전혀 정당하지 않은 행동을 강요하고 있다.



출처 : http://news.chosun.com/site/data/html_dir/2017/11/26/2017112601635.html