음식

[Why] 혼자와도 1인분씩 반죽… 거칠거칠한 면이 혀에 부딪혔다

Shawn Chase 2017. 6. 11. 13:12

정동현 대중식당 애호가

출처 : http://news.chosun.com/site/data/html_dir/2017/06/09/2017060901671.html



입력 : 2017.06.10 03:01

[정동현의 허름해서 오히려] 서울 방배본동 '양양메밀막국수'



입맛에도 가뭄이 들었다. 점심시간이 되면 쓰레기 분리배출을 하러 나가야 하는 남자들처럼 모두 어기적거리며 눈치를 봤다. 초여름이란 말이 어울리지 않는 더위였다. 봄은 한창 좋은 시절이 보통 그렇듯 꿈같이 지나가버렸다.

"뭐 먹을까?" 상사는 마땅히 해야 할 말을 던졌을 뿐이다. 그런데 그 말이 "지난번에 말했던 보고서는 어떻게 됐지?"로 들렸다. 나도 모르게 우물쭈물했다. 사람들은 즉흥시를 읊듯 아무 말이나 던지기 시작했다. 국밥, 찌개, 떡볶이, 햄버거…. 상사는 어쩔 수 없다는 듯 입을 열었다. "내가 예전에 한번 이야기 했는데 기억나니? (아니요.) 동네에 막국숫집이 하나 있거든. (아하!)"

더위 탓인지 길에는 차가 없었다. 상사는 좁은 골목길을 익숙한 솜씨로 빠르게 몰았다. 큰 카페와 고급스러운 레스토랑이 사라진 서래마을 깊숙한 곳에 다다랐다. 방배동 한적한 어귀, 그곳에 초록 간판을 단 '양양메밀막국수'가 있었다.

실내는 깔끔했다. 대충 정리한 것이 아니라 틈날 때마다 쓸고 닦은 게 느껴졌다. 안경을 쓰고 팔뚝이 굵은 주인장은 동네 막국숫집답지 않게 사각 조리모를 쓰고 주방에 서 있었다. 우리는 일부러 주방이 보이는 가게 입구에 자리를 잡았다. "늘 혼자 와서 막국수만 먹고 갔지." 메뉴판을 보며 상사가 운을 띄웠다. 인원이 되니 여러 개 시켜보자는 뜻임을 모두가 단박에 알아챘다. "김치전 하나 드시죠." "수육도 시킬까요?" 상사는 우리의 추임새에 만족한 듯 모나리자 같은 표정을 하고 말을 이었다. "김치말이 비빔국수는 꼭 시켜야 돼. 전번에 와서 막국수 한 그릇 먹고 김치비빔국수를 또 시켜 먹었다니까."

점심 식사라고 하기엔 많은 양의 주문이었다. 주인장은 주문을 받자 메밀가루를 작은 양푼에 넣고 큰 손바닥으로 반죽을 하기 시작했다. "혼자 와도 매번 1인분씩 반죽을 해주시니까 너무 미안한 거야." 상사의 말대로 주인장은 들어온 주문마다 따로 반죽을 했다. 주인장이 면을 뽑는 사이 밑반찬이 깔렸다. 각을 맞춰 자른 배추김치는 한철 물들인 봉숭아 물처럼 선연하게 붉었다. 다른 집에서는 입에도 안 대는 무절임에도 계속 손이 갔다. 큰 접시를 가득 메운 김치전(1만3000원)이 나왔을 때 불가항력적으로 막걸리를 시킬 수밖에 없었다. 돼지비계가 간간이 씹히는 김치전은 언젠가 먹어봤던 것 같은 맛이 났다. 할머니였을까? 큰이모였을까? 잘 익은 배추김치를 툭툭 털어 뭉텅뭉텅 썰고 밀가루 반죽에 넣어 반질반질한 번철에 굽던 누군가의 뒷모습이 보이는 것 같았다. 김치전 다음에 나온 돼지 수육(소 1만5000원, 중 2만원)은 부드럽게 입에서 녹아 없어졌다. 막걸리 잔을 몇 번 부딪쳤다. 모두 자세가 느슨해졌다. 얼굴에서는 긴장감이 사라졌다. 그즈음 막국수(8000원·사진)와 김치말이 비빔국수(5000원)가 나왔다. 있는 힘껏 젓가락질을 했다. 거칠거칠한 면이 혀에 부딪쳤 다. 면과 함께 무의 냉기가 서린 동치미 국물이 입속에 밀려들었다. 잠시 뒤에는 그릇을 들고 마셨다. 김치말이 비빔국수는 한 젓가락으로 멈출 수 없었다. 아삭한 김치를 곁들여 하늘하늘한 소면을 입에 넣고 우걱거렸다.

잠시 뒤 우리는 다시 회사 책상 앞에 앉아 있었다. 고개를 돌려 밖을 보니 하늘이 푸르게 맑았다. 나는 그 하늘이 동치미 국물 같다고 생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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