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한

"농사 노하우 가르쳐드려요"… 탈북민 농업실습장 제공

Shawn Chase 2016. 11. 29. 00:16

여주=곽래건 기자

출처 : http://news.chosun.com/site/data/html_dir/2016/06/08/2016060800303.html


입력 : 2016.06.08 03:00

[탈북민과 함께 '통일 사다리' 놓자] [4] 농촌 정착 돕는 사람들

- 농촌 정착 돕는 '한민족밀알공동체'
수원지역 목사 8명이 설립 "농촌은 이웃 간 단절 덜해 도시보다 再사회화에 유리"
각계서 농지·숙소 빌려주는 등 도움의 손길 이어져 5년째 운영


"이건 유정란입니다. 닭이 이걸 품으면 스무날 동안 꼼짝을 안 해요."

지난달 26일 경기도 여주시 대신면 노아복지원에 놓인 닭장에서 탈북민 송진수(가명·49)씨가 토종닭이 품은 달걀을 꺼내며 밝게 웃었다. 닭장에는 암탉들이 알을 품고 있었다. 그는 "지금은 20마리밖에 안 되지만, 빨리 돈을 모아 500마리까지 늘리는 게 목표"라고 말했다. 닭장 옆 텃밭에선 송씨가 심은 옥수수가 싹을 틔웠다. 그는 "북한에 있을 때 먹거나 내다 팔기 위해 매년 800㎏쯤 옥수수를 키웠다"며 "그때가 생각나서 심었다"고 말했다.

탈북민 영농 정착 지원단체인 '한민족밀알공동체'가 운영하는 이곳 농업 실습장에는 송씨를 포함한 탈북민 3명이 공동체 관계자들과 생활하며 농촌 정착을 준비하고 있다. 탈북민이 직접 농사를 지어보는 일종의 '농업 인큐베이터'다. 앞으로 탈북민 8명이 추가로 합류할 예정이다.

지난달 29일 경기도 여주의 노아복지원에서 이동인(왼쪽) 목사, 나유정(가운데) 노아복지원장이 탈북민 송진수(가명·오른쪽)씨와 함께 새로 들여온 표고버섯 재배용 통나무를 살펴보고 있다. 한민족밀알공동체는 탈북민들에게 버섯 재배 등의 영농 기술을 가르쳐주고 있다.
지난달 29일 경기도 여주의 노아복지원에서 이동인(왼쪽) 목사, 나유정(가운데) 노아복지원장이 탈북민 송진수(가명·오른쪽)씨와 함께 새로 들여온 표고버섯 재배용 통나무를 살펴보고 있다. 한민족밀알공동체는 탈북민들에게 버섯 재배 등의 영농 기술을 가르쳐주고 있다. /이진한 기자


송씨는 2006년 9월 가족들을 데리고 남한으로 왔다. 북한에선 기차역을 경비하는 기관에서 일하며 목에 힘주고 다녔다고 한다. 그러나 남한에선 먹고살기 위해 "비닐 공장, 목재소, 조선소 등에서 안 해본 일이 없다"고 했다. 그는 남한에서 경제적으로 풍족할 것이라는 애초 기대와 달리 궁핍하게 살게 되자, 실망감으로 한동안 술에 빠져 지냈다. 송씨는 "도시 생활이 번쩍번쩍한 것처럼 보였지만 (살아보니) 옆집에 누가 사는지도 모를 정도로 삭막했다"며 "농촌 정착을 자연스럽게 결정했다"고 말했다. 그는 지난 1월부터 이곳에서 농사를 배우고 있다. 다른 탈북민인 장명옥(가명·61)씨는 2008년 두만강을 건넜다. 낯선 남한 생활은 만만치 않았다. 다단계에 속아 500만원을 날리기도 했고, 일한 월급을 떼인 적도 있었다. 지난달 29일 복지원 측은 장씨를 위해 표고버섯 재배용 통나무 300개를 들여왔다. 장씨가 북한에서 취미 삼아 200㎡(60평) 규모로 버섯을 키워본 경험이 있기 때문이었다. 장씨는 "버섯 키우는 기술을 좀 더 배워 농촌에 정착하고 싶다"며 "그동안 모은 돈으로 경기도에 조그만 땅도 사 놓았다"고 말했다.

한민족밀알공동체는 2011년 상임이사인 이동인(53) 목사 등 수원지역 목사 8명이 모여 만들었다. 이 목사가 어려운 탈북민을 돕기 위한 '쉼터'를 운영한 것이 계기가 됐다. 이 목사는 "쉼터를 운영하면서 도시에 사는 탈북민들이 남한 사회에 정착하지 못하고 겉도는 모습을 자주 봤다"며 "아직 농촌은 도시보다 이웃 간의 단절도 덜하고, 일과도 여유가 있는 편이라 탈북민의 재사회화에도 유리하다"고 말했다. 이 목사의 아내도 탈북민이다.

이 공동체는 농촌에서 농지와 숙소 등을 빌리는 방식으로 운영된다. 2011년에는 경기도 양평의 한 종교단체가 농지와 숙소를 제공했고, 2012년에는 강원도 평창의 한 독지가가 비닐하우스 8동과 목조 주택을 내줬다고 한다. 현재는 여주의 노아복지원이 숙소와 농지 등을 제공해주는 등 탈북민 농업 정착에 도움을 주고 있다. 지금까지 120여명의 탈북민이 이 공동체를 통해 농촌을 경험했다. 이들이 탈북민에게 이런 도움을 주는 것은 도시 공장과 달리 농사는 소득을 올릴 때까지 적게는 몇 달, 길게는 1년 이상이 걸리기 때문이다. 당장 돈이 필요한 탈북민에게 농업에 적응할 시간을 벌어주는 셈이다.

이 공동체의 탈북민 지원은 여러 어려움 속에서도 끊이지 않은 도움의 손길 덕분에 5년째 이어지고 있다.

농업기술센터 근무 경험을 살려 '농사 노하우'를 가르쳐준 분, 퇴직금을 쪼개 지원금을 보내준 분 등의 정성이 밑거름이 됐다. 농업 분야가 아닌 곳에서 성공 한 탈북민도 나왔다. 한 탈북민은 10여명 규모의 물류 사업체 대표가 됐고, 신학교에 진학한 탈북민도 등장했다. 이곳에 오기 전까지 남한 사회에서 방황하던 사람들이었다.

이 공동체의 감사인 권재상(63) 공군사관학교 명예교수는 "농업 교육을 받은 탈북민 일부는 독립에 성공했다"며 "이 공동체를 안정적으로 운영해 탈북민 농촌 정착에 도움을 주고 싶다"고 했다.




출처 : http://news.chosun.com/site/data/html_dir/2016/06/08/2016060800303.html