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한

어르신들을 엄마로 부르며 챙겨… 6년만에 '섬마을 里長'

Shawn Chase 2016. 11. 29. 00:18
  • 안좌도=곽래건 기자
  • 안좌도=김상윤 기자


  • 출처 : http://news.chosun.com/site/data/html_dir/2016/06/08/2016060800219.html


    입력 : 2016.06.08 03:00

    [통일이 미래다] [탈북민과 함께 '통일 사다리' 놓자] [4] 농촌 정착탈북민들

    - 전남 안좌도 '만석꾼' 이정옥씨
    北에선 엘리트 장교였지만 귀농 남성과 결혼하며 이주… 싹싹함·봉사로 주민 마음 돌려
    논·밭 43만㎡에 소 50마리… 마을에서 농사로 1~2위


    "섬마을에서 농사로 1~2위를 다툴 겁니다. 땅도 제일 많아요."

    전남 신안군에서 배를 타고 30분을 들어가야 하는 안좌도. 마을 사람들은 '이장님'을 지낸 탈북민 이정옥(49)씨에 대해 이렇게 입을 모았다. 2003년 한국에 들어온 이씨는 북한에선 러시아 유학까지 다녀온 엘리트 군(軍) 장교였다. 제대 후에는 '외화벌이 일꾼'으로 일해 손에 흙 한번 묻혀 본 적이 없었다. 그랬던 이씨는 지금 완전한 농부로 변신했다. 지난달 29일 섬에서 만난 이씨는 모내기를 앞두고 벼 모판을 손보느라 구슬땀을 흘리고 있었다. 그는 자신의 논 33만580㎡(10만평)와 밭 9만9000㎡(3만평)에서 벼·양파·마늘 등을 키우고 있다. 안좌도 내호리 전체 농지의 70%에 달하는 규모다. 맨손으로 섬에 들어와 이제는 마을 주민 모두가 인정하는 '만석꾼'이 된 셈이다.

    지난 29일 전남 신안군 안좌도에서 탈북민 출신‘만석꾼’이정옥(사진 가운데)씨가 마을 주민들의 마늘 수확을 돕고 있다.
    지난 29일 전남 신안군 안좌도에서 탈북민 출신‘만석꾼’이정옥(사진 가운데)씨가 마을 주민들의 마늘 수확을 돕고 있다. 2007년 섬에 들어온 이씨는 2013년 4월부터 2년간 이장을 지낼 정도로 마을에 완전히 정착했다. /김영근 기자


    이씨가 농사꾼이 된 건 2007년 남편 김진우(51)씨를 만난 게 결정적 계기였다. 탈북 후 강연과 통역을 하던 이씨는 도시 생활을 접고 고향(안좌도)으로 돌아가 농사를 지으려던 남편을 만났다. 김씨는 이씨에게 대뜸 "같이 가자"고 했고, 남편감을 믿었던 이씨는 곧바로 혼인 신고를 하고 섬으로 들어갔다.

    시작은 순탄치 않았다. 집도 없이 친척 집에 얹혀서 지냈고, 땅도 없어 다른 사람의 논을 빌려 농사를 시작했다. 농사짓는 법도 마을 사람들에게 하나하나 물어 배웠다. 텃세도 있었다. 이씨는 "탈북민에 대한 편견 때문인지 나를 도와주는 사람을 마을에서 따돌리는 경우도 있었다"고 했다.

    그러나 이씨는 싹싹한 태도와 성실함으로 마을 사람들의 마음을 돌려놓기 시작했다. 북한식 음식을 만들어 나눠줬고, 혼자 사는 노인들에게 도시락을 챙겨줬다. 마을 주민의 논이 태풍 피해라도 입으면 자기 일처럼 나서 도왔다. 연말마다 김치를 담가 주민들에게 나눠준 게 벌써 수년째다. 주민 김대식(79)씨는 "탈북민 여러 명이 섬에 들어와 일한 적이 있었는데 나이 많은 남자들도 이씨에게 '대장님, 대장님' 하며 깍듯이 대했다"며 "평소 하도 싹싹하고 예의가 발라서 북에서 높은 자리에 있었을 거라고는 상상하지 못했다"고 말했다.

    이씨는 농기계 운전도 하나씩 배워 이제는 이앙기·트랙터·굴착기·지게차 등 다루지 못하는 농기계가 없다. 그런 사이 논은 10만평 이상으로 늘었고, 퇴비로 쓸 쇠똥을 얻으려고 키우기 시작한 소는 50마리로 불어났다. 이씨는 "내 직업은 이제 농부"라고 말했다.

    이씨는 지난 2013년 4월 마을 이장으로 뽑혀 작년 4월까지 봉사했다. 이 섬에서 여성 이장, 탈북민 이장이 나온 것은 처음이었다. 현재 이씨는 부녀회 총무를 맡고 있다. 주민 서점단(여·72)씨는 "이제는 마을에서 없어서는 안 될 사람이 됐다"며 "주변 사람들에게 워낙 잘해서 면에서도 모르는 사람이 없다"고 했다. 최재실(여·82)씨는 "우리 동네의 자랑스러운 며느리"라고 말했다. 이씨는 마을 주민 모두를 '아버지' '엄마'라고 부른다. 그는 "내일모레면 다 80이 넘는 분들인데 모두 부모님같이 느껴진다"고 했다.

    '농사꾼' 이씨는 이제는 탈북민들에게 영농 교육을 해 주고 있다. 옆 마을에서 귀농을 시도하는 탈북민에게 농약 뿌리는 시기, 마을 주민과 지내는 법 등을 조언하는 것도 이씨의 몫이다. 이씨는 "어느 날 통일이 되면 여러 대의 차에 내가 지은 쌀을 한가득 싣고 북한으로 달려가는 게 꿈"이라고 했다.



    출처 : http://news.chosun.com/site/data/html_dir/2016/06/08/2016060800219.html