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

"립스틱 색깔별로 허가받아라"… 中 '꼼수 장벽'

Shawn Chase 2016. 6. 26. 23:55

김승범 기자


입력 : 2016.06.24 03:07

[中, 비관세장벽에 김·막걸리·화장품·분유 등 수출 차질]

분유업체 팔 수 있는 브랜드 3개, 제품 수도 9개로 제한할 계획
"올해 中 수출 20% 감소 우려"
의료기기 위생허가 취득 절차 중 4000만원 등록비 규정 생겨 중간에 수출 포기한 기업도

지난 3월 중국 산시(陝西)성으로 수출됐던 2만달러어치의 한국산 조미김(670㎏)이 현지 세관으로부터 전량 반송 조치를 당했다. "중국 위생 기준치의 17배에 달하는 일반 세균이 검출됐다"는 게 이유였다. 조미김은 가열 처리한 데다 건조 상태로 유통돼 세균이 번식할 가능성이 크지 않아, 한국이나 미국·EU·일본 등에서는 세균 관련 기준이 아예 없다. 한국의 김 제품이 70여 개국에 수출되고 있지만 세균 수 초과를 이유로 반송된 사례는 중국이 유일하다. 기준이 있다는 것 자체가 유례가 없지만 기준 자체도 과도하다. 중국 당국은 조미김에서 1g당 3만CFU(세균 측정 최소 단위)가 넘는 세균이 나와서는 안 된다고 규정하고 있다. 국내 식품업계 관계자는 "김은 1g당 세균이 100만CFU는 넘어야 변질 우려가 있다"며 "결국 중국은 자국 조미김 수입시장의 65%를 차지하는 한국산을 견제하려는 의도를 갖고 있다고 봐야 한다"고 말했다.

국내 중소 막걸리 업체들은 중국 당국이 막걸리 첨가물 위생 기준을 개정해 작년 5월부터 '아스파탐'의 첨가를 금지하는 바람에 수출 길이 막혔다. 중소 막걸리 업체들은 아스파탐으로 단맛을 내는 경우가 많았기 때문이다. 이에 따라 올 들어 4월까지 우리 막걸리 수출은 작년 같은 기간보다 23% 감소했다.

중국의 각종 비관세장벽이 대중(對中) 수출의 걸림돌이 되고 있다. 중국이 다른 나라에는 없는 기술 인증을 요구하거나 까다로운 검역 기준을 만들어 관세 이외의 방법으로 우리의 수출을 어렵게 만들고 있다. 한국무역협회가 우리 수출에 심각한 영향을 미치는 국가별 비관세장벽 현황을 조사한 결과, 중국이 26개로 단연 1위였다. 그다음 순위 10개 국가의 비관세장벽을 모두 합한 것보다도 더 많다.

국제 인증 받아도 중국 품질 인증 또 얻어야

중국 비관세장벽의 대표적인 유형은 과도한 검역 기준이다. 국내 분유 업체들은 지난 20일 비상이 걸렸다. 중국 정부가 오는 10월부터 분유 판매 관련 규제를 대폭 강화하는 방침을 밝혔기 때문이다. 중국 국가식품약품감독관리총국은 분유업체가 팔 수 있는 브랜드를 3개, 제품 수는 9개로 제한할 계획이다. 판매 가능한 품목을 제한하는 경우는 있지만 제품 수까지 규제하는 것은 아주 이례적이다. 이 조치로 한류(韓流) 열풍을 타고 대중 수출이 늘고 있는 남양유업·매일유업 등 우리 업체들이 피해를 볼 수밖에 없다. 남양유업은 중국에 수출하고 있는 7개 브랜드 가운데 절반이 넘는 4개를 없애야 한다. 매일유업도 중국 내 브랜드 4개 중 1개는 접어야 한다. 업계 관계자는 "이 규제로 올해 수출은 당초 목표보다 많게는 20% 정도 줄어들 수 있다"고 말했다.


 

개선해야 할 중국의 비관세장벽 요소 정리 그래픽
그래픽=김현국 기자

복잡한 인허가 절차와 과도한 수수료도 발목을 잡고 있다. LG생활건강은 중국에서 내년 봄에 판매할 제품에 대한 위생 허가를 최근 현지 당국에 신청했다. 위생 허가를 받는 데 9개월 이상 걸리기 때문이다. 품목별로 일일이 허가를 새로 받아야 하기 때문에 시간이 오래 걸린다. 예를 들어 같은 립스틱이라도 색상이 다르면 따로 허가를 받아야 한다. 회사 관계자는 "이 절차 때문에 최신 유행에 맞는 신제품을 중국에 곧바로 내놓기가 어렵다"고 말했다.

국내 의료기기 수출 기업 A사는 지난해 7월 중국 수출을 준비하다가 중간에 포기했다. 위생 허가 취득 절차를 진행하던 중 중국 당국이 허가에 따른 등록비로 4000만~5700만원을 받도록 규정을 신설했기 때문이다.


최근에는 중국에 서로 다른 기술 규정과 표준, 적합성 평가 절차 등을 통해 수출을 가로막는 ‘기술무역장벽’이 늘고 있다.


이 가운데 가장 큰 장애물로는 ‘강제성 제품 인증’이 꼽힌다. 이 제도는 전자제품, 자동차 부품 등 158종의 공산품에 대해 국제 인증을 받았더라도 중국의 품질 인정을 별도로 받도록 의무화하고, 인증서 유효기간이 지나면 재인증을 받도록 한 것이다. 인증이 까다로운 유럽연합(EU)에서도 한 번 인증받으면 사양 변경이 없을 경우 재인증을 받을 필요가 없다. 자동차 헤드램프 수출 업체 관계자는 “절차도 귀찮지만 인증을 한 번 받을 때마다 1500만원 정도 비용이 들어간다”고 말했다.


자국 산업 보호 위해 비관세장벽 마련


정진우 코트라 베이징무역관 과장은 “중국 정부는 보호할 필요성이 있다고 느끼는 산업이나 전략적으로 육성할 분야가 있을 때 비관세장벽을 활용하는 경우가 많다”고 말했다. 최근 국내 배터리 제조업체인 LG화학삼성SDI가 중국 정부의 전기차 배터리 인증에서 또다시 빠진 것도 자국 업체를 보호하기 위한 것이라는 분석이 나온다.


한창회 무역협회 통상협력실장은 “중국의 비관세장벽은 제도 운용의 불합리성이나 행정 절차의 후진성, 공무원의 일관성 결여 등 다양한 형태로 발생하기 때문에 세밀한 대응이 필요하다”며 “정부는 한·중 FTA 같은 협상 채널을 적극 활용하고 수출 현장과 기업들의 목소리를 반영해 실효성 있는 대책을 내놓아야 한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