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동차

[Why] "자가용 있어도 하루 평균 61분만 사용… 빌려 타는 게 더 싸고 편해"

Shawn Chase 2016. 6. 22. 22:49

장일현 기자  


입력 : 2015.04.04 03:00

자동차도 '공유 경제' 확산

소유에서 이용으로
10분단위로 빌릴 수 있어 기존 렌터카보다 경제적… 이용회원 100만명 넘어서

달라진 렌터카 인식
'허' 번호판 달린 승용차… 요즘엔 높은 직위 힌트
보험·세금 신경 안써도 돼

"영등포시장 근처인 것 같은데 정확한 위치를 잘 모르겠네. 날 좀 데리러 와 줄래."

지난달 29일 오전 3시쯤 서울 봉천동에 사는 회사원 이모(31)씨는 여자 친구의 전화를 받았다. 오랜만에 고등학교 동창들을 만난다고 했던 친구는 술을 꽤 많이 마신 듯했다. 일요일 새벽이라 바로 뛰어나가도 택시를 잡기는 어려운 상황인 데다 영등포시장 주변 도로를 돌아다니려면 기동성도 필요했다.

이씨는 카셰어링(차량 공유)을 이용하기로 했다. 업체가 전국 곳곳 주차장에 미리 갖다 놓은 자동차를, 소비자가 휴대전화 앱을 통해 자유롭게 이용하고 비용도 내는 신개념 차량 이용 서비스이다. 그는 자신의 오피스텔 바로 옆 건물 주차장에 있던 LF쏘나타를 빌렸다. 이씨는 "그날 한 시간 동안 18㎞를 주행했고, 총 비용은 1만1220원이 들었다"며 "언제든 필요할 때 내 차처럼 쓸 수 있어 차를 살 필요성을 못 느낀다"고 했다.

집과 함께 한국인의 가장 중요한 자산으로 군림했던 자동차가 점차 '소유(所有)'라는 테두리를 벗어나고 있다. 차를 사기보다는 필요할 때 빌려 쓰거나 장기간 렌트해서 사용하는 추세가 확산되고 있기 때문이다. 홍성태 한양대 경영학과 교수는 "예전엔 사람들이 내 차를 가져야 행복하다고 느꼈지만 요즘엔 필요할 때 맘대로 쓸 수만 있다면 내 것이 아니라도 좋다는 식의 '실속형 행복'이 뿌리내리고 있다"며 "이런 움직임은 앞으로 더욱 커지고 강화될 전망"이라고 말했다.

자동차 공유경제 확산


어떤 차가 더 좋을까

소유하진 않지만 언제든 내 맘대로 쓴다

요즘은 불특정 다수가 차를 함께 쓰는 '카셰어링'이 인기다. 전 세계적인 트렌드로 확산되고 있는 '공유 경제(Sharing Economy)'의 자동차 버전이다. 서울시 관계자는 "미국과 유럽 등 세계 60여개 국가에서 카셰어링 서비스가 시행되고 있다"고 말했다.

국내에선 업계 양강인 '쏘카'와 '그린카'가 각각 50만명이 넘는 회원을 확보하고 있다. 그 외 '씨티카' '유카' 등을 합칠 경우, 전체 카셰어링 회원 수는 중복 가입자를 감안해도 100만명에 육박할 것으로 추산되고 있다.

카셰어링 서비스는 4~5년 전 국내에 소개됐을 때만 해도 큰 호응을 얻지 못하다가 지난해부터 폭발적인 성장세를 보이기 시작했다. 김지만 쏘카 대표는 "2012년 말 3000명 정도였던 회원이 2013년 말엔 7만명이 됐고, 올 초 54만명으로 늘었다"며 "소비자들이 차를 남과 함께 쓰는 문화에 익숙해진 것 같다"고 말했다.

카셰어링 서비스는 업체들이 차량과 주차장을 많이 확보하면서 확산 속도가 더 빨라지고 있다. 쏘카는 전국 52개 도시1300여개 주차장에 2100여대의 차량을 배치해 놓았다. 그린카도 차량 1900여대, 주차장 1100여곳을 갖추고 있다. 그린카 관계자는 "소형에서 대형까지, 국산은 물론 일부 외제차도 확보하고 있어 다양한 차량을 운전해 보고 싶은 젊은 층의 욕구와 잘 맞아떨어지는 것 같다"고 말했다. 차량과 주차장이 늘어나면서 '편도' 이용이 가능해진 점도 이용자를 늘리는 이유다.

카셰어링의 최대 강점은 하루 24시간 언제든 '맘대로' 차를 이용할 수 있다는 점이다.

서울 관악구에 사는 김모(33)씨는 "지난 2월 설 연휴 때 2박3일 강원도 여행을 위해 렌터카를 찾았지만 연휴라 차를 원하는 시점에 반납할 수 없다고 해서 언제든 빌리고 되돌려줄 수 있는 카셰어링으로 차량을 구했다"고 했다. 그는 "휴일이든 명절이든, 새벽이든 한밤중이든 언제라도 차를 이용할 수 있는 편리함은 대단한 매력"이라고 했다.

젊은이들에게 익숙한 휴대전화 앱을 통해 자동차 예약과 비용 결제가 이뤄지고, 하루 단위가 아니라 10분 단위로 요금을 낸다는 점 등도 '쉽고 빠르고 저렴하게' 차를 이용할 수 있게 해주는 요소이다.

무엇보다 차를 대하는 사람들의 인식이 바뀌는 게 근본적인 배경이라는 분석도 나온다. 김수욱 서울대 경영학과 교수는 "기업이 실물 자산 보유를 부담스러워하고 아웃소싱을 추구하듯, 개인도 자산을 배타적으로 소유하기보다 다른 사람과 공유하는 것이 훨씬 경제적이라는 점을 깨닫기 시작했다"고 말했다. 한 경영학자는 "물건이 있고 없고가 아니라 그 물건을 즐기고 체험할 수 있느냐가 더 중요해지는 시대가 된 것"이라고 했다.

카셰어링은 차량 소유에 비해 비용도 적게 드는 것으로 나타났다. 서울시 관계자는 "아반떼 HD 휘발유 차량을 주 5일 갖고 다닌다고 가정할 때, 카셰어링은 자동차를 소유·이용하는 것에 비해 일년에 약 200만원 정도 비용을 절감할 수 있다"고 말했다. 이런 점 때문에 차를 '빌려 쓰는' 방식이 유행하게 된 배경에는 만성적인 경기 침체가 깔려 있다는 분석도 나온다. 카셰어링은 차를 사고 유지하는 부담을 줄여주기 때문이다.

KT렌탈 관계자는 "요즘 20~30대 중엔 평생 집과 자동차를 사지 않겠다는 사람들이 적지 않다"며 "이들에겐 필요할 때 잠깐 빌려 쓰는 문화가 더 자연스럽다"고 말했다.

남과 함께 차를 이용하는 시스템은 사회의 자동차 이용 효율성을 높이는 계기가 될 수 있다는 지적도 나온다. 쏘카 관계자는 "영국 왕립자동차클럽재단이 전 세계 84개 도시를 대상으로 조사한 결과, 승용차의 하루 평균 운행 시간은 61분에 불과했다"며 "이는 차들이 하루 24시간 중 95.8%는 주차장에 서 있다는 뜻"이라고 말했다. 그는 "자동차 한 대를 여러 사람이 쓰게 되면 교통량 감소와 주차 문제 완화 등에도 도움이 될 수 있다"고 말했다.

카셰어링은 환경오염을 줄이는 데도 효과적일 것으로 보인다. 실제 공유 차량 한 대가 운용되면 개인 차량 12.5대가 감소하는 효과가 있는데, 이는 CO₂ 등 자동차 배기가스를 줄이는 결과로 이어지기 때문이다.

모바일 콜택시·장기 렌터카 등과 경쟁

차를 '빌려 쓰는' 방식의 확산은 기존 렌터카·리스 시장의 판도도 바꾸고 있다. 요즘 3~4년짜리 장기 계약으로 자동차를 렌트하는 '개인 고객'이 늘고 있다. 몇 년 전까지만 해도 장기 렌터카는 기업들의 전유물이었다. 2010년대 들어 상황이 달라졌다. 국내 1위 렌터카 업체인 KT렌탈의 경우, 전체 장기 렌터카 중 개인 비중이 2011년 말 9.5%에서 올 2월 26.7%로 커졌다. 차량 수로는 4072대에서 6배가 넘는 2만4681대가 됐다. KT렌탈 관계자는 "개인 장기 렌터카 부문이 회사의 핵심 사업 분야가 됐다"고 했다.

차를 장기 렌트 또는 리스하는 이유는 비용이 저렴하고 유지·관리가 쉽기 때문이다. 현대캐피탈 관계자는 "차량을 빌려 쓰는 금액은 전액 비용으로 처리할 수 있어 개인 사업자에게 절세 방법이 될 수 있다"며 "최근 장기 렌터카와 리스 등이 급증하는 이유도 개인 사업자들이 이 시장에 밀려 들어오고 있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소비자들이 차를 자주 바꾸는 것도 '빌려 쓰는 차'를 부추기는 요인이다. 차는 관리하기에 따라 10~20년 이상도 탈 수 있지만, 국내에선 5년 정도 지나면 차를 바꾸는 소비자들이 많다. KT렌탈 관계자는 "몇 년 지나면 차를 바꾸겠다고 생각하는 사람일수록 '빌려 타는 차'에 대한 선호가 높을 수 있다"고 말했다.

차를 빌려 타면 매년 세금과 보험료 등을 신경 쓰지 않아도 되고, 업체가 엔진오일 교체 등 간단한 점검·정비 등을 해주기 때문에 편리한 점도 있다. 모든 게 요금에 다 포함된 '올인원(all in one)' 방식이기 때문이다. 사고 났을 때 보험 처리 등도 포함돼 있다. 홍성태 교수는 "요즘엔 '허·하·호' 등을 붙인 렌터카를 타는 사람이 오히려 사회적 지위가 높은 것으로 인정받는다"며 "이는 회사에서 차를 줄 정도로 높은 직급에 있다는 것을 뜻하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빌려 쓰는 차 시장이 급성장을 하면서 택시 업계도 긴장하고 있다. 최근에는 택시의 경쟁력을 높이는 대책들이 속속 등장하고 있다. 대표적인 것이 '모바일 콜택시'이다. 다음카카오가 지난달 말 서비스를 시작한 '카카오택시'와 SK플래닛이 이달 중순 오픈하는 'T맵 택시' 등이다. 이 서비스는 전화를 걸지 않고 휴대전화 앱으로 택시를 부르게 한 것으로 현재 위치가 출발지로 자동 설정돼 지도에 표시되고, 전국 어디에 가도 콜택시 전화번호를 따로 알아볼 필요가 없도록 설계돼 있다. 또 운전 기사의 사진과 이름, 차 번호 등을 승객 휴대전화에 전송해주고, 탑승자가 언제 어디서 타서 몇 시쯤 목적지에 도착할 예정이라는 메시지를 미리 지정해 놓은 부모나 친구에게 알려주는 기능도 갖고 있다. 안전성을 높이겠다는 취지다.

SK플래닛 관계자는 "소비자와 차를 연결하는 방식을 놓고 신차를 팔려는 자동차 회사와 택시, 렌터카, 카셰어링 등이 벌이는 경쟁이 더욱 치열해질 것"이라며 "그 과정에서 소비자들이 더 '쉽고 빠르고 편리하고 안전하게' 차를 이용할 수 있는 서비스들이 등장하고 진화를 하게 될 것"이라고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