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시스
입력 2016-05-08 08:36:00 수정 2016-05-08 11:46:23
전단 300만장·현수막 2500장…지구 18바퀴 돌아
1999년 2월13일 오후 10시10분 경기 평택시 도일동 하리마을 입구 버스정류장.
17년 넘게 딸을 찾아다닌 송길용(63)씨의 시간은 그때부터 그곳에 멈춰져 있다.
송씨는 딸 혜희(당시 17)를 찾아 나서는 발걸음이 하루하루 무겁기만 하다. 몸도 많이 상했다. 그렇다고 기다릴 수도 없다. 전단과 현수막 등 빠진 것 없나 살피면서 차에 오르기를 재촉한다.
그런 오늘이, 어느덧 17년4개월이란 긴 세월 동안 반복되고 있다. "나의 딸 송혜희는 꼭 찾는다"는 오래전 바뀐 가훈(家訓)을 쳐다보고 집을 나선다.
◇아파도 아플 수 없는 부정(父情)
서울2호선 을지로4가역과 1호선 종로5가역 사이 청계천 배오개 다리 위에는 '실종된 송혜희 좀 찾아주세요'라는 송씨의 사연이 적힌 현수막이 있다.
같은 현수막은 서울 종로나 명동은 물론이고 고속도로 휴게소, 수도권 대학가, 지방 교차로 등 사람이 북적이는 곳이면 전국 어디에나 걸려 있다.
무려 17년 넘게 실종된 딸을 찾아다닌 아버지 송씨의 애끓는 사연이 5월 8일 어버이날을 맞아 주변의 안타까움을 사고 있다.
"몸이 많이 상한 것이 가장 걱정입니다. 디스크가 있었는데 현수막을 달다 떨어져 척추관 협착증까지 겹쳤어요. 수술 2번 했는데, 추가 수술을 하지 못하고 있어요. 뇌경색도 더 심해질까 걱정됩니다. 다리가 불편하지만, 혜희를 꼭 찾아야 합니다."
아버지 송씨의 아픔은 또 있다. "꼭 혜희를 함께 찾자"고 했던 부인을 10년 전 떠나보냈다. 몸과 마음이 지친 부인에게 지병과 우울증이 찾아왔고, 딸의 전단을 가슴에 품은 채 스스로 생을 마감했다. 송씨는 부인과 4년 넘게 1t 트럭에서 라면으로만 끼니를 해결했다. 늘 곁에 있어 줄 것 같던 아내의 건강을 챙기지 못한 아픔을 가슴에 묻었다.
아내마저 잃은 송씨는 딸을 포기하고 모든 것을 내려놓고 싶다는 생각을 잠시 가졌다. 하지만 부인과 딸에 대한 미안함을 져버릴 수 없다는 생각에 마음을 다잡았다.
작년에 메르스(중동호흡기증후군·MERS)에 걸렸을 때도 부인과 딸을 생각하며 16일 만에 훌훌 털고 일어섰다.
송씨는 지난 2일부터 속초와 삼척 등 강원도 곳곳을 누볐다. 보이는 휴게소마다 들러 가족 단위 여행객들에게 일일이 전단을 나눠줬다.
7일에는 집에서 가까운 안성휴게소에서 혜희를 애타게 찾았다. 송씨는 매일 500~700장을 나눠줘야만 딸에게 미안한 마음을 가라앉힐 수 있다고 생각한다.
"오는 10~11일에는 해경의 도움을 받아 대천과 태안 등 도서 지역에서 딸을 찾아보려 합니다. 항상 그렇지만, 그곳에서 딸을 만나기를 기도합니다."
송씨는 전국 곳곳을 얼마나 누볐는지 손바닥처럼 훤히 들여다본다. 전국의 시설이라는 시설도 모두 찾아봤다.
송씨가 그동안 차를 바꾸면서 딸을 찾아다닌 거리는 무려 72만㎞가 넘는다. 지구를 18바퀴 돈 거리다. 지금까지 나눠준 전단만 300만장, 길가에 내건 현수막은 2500여장이다. 전국 현수막에 새겨진 딸 사진과 글씨의 빛이 바래기 전 다시 새것으로 교체하는 작업도 빠짐없다.
송씨는 기초생활수급 지원금의 대부분을 전단과 현수막 제작에 쓸 뿐, 그동안 변변한 식사 한 번 하지 못했다.
그런 송씨는 딸을 봤다는 제보를 받으면 전국 어디든지 한달음에 달려갔다. 모두 혜희와 비슷한 사람이거나 장난전화, 허위제보였다. 그렇게 수백 번 헛걸음했다.
"혜희를 찾기 전까지는 아파도 아플 수가 없어요. 딸을 찾지 못하는데, 제 몸 따위가 무엇이라고. 혜희를 만나도 얼굴을 기억하지 못할까 걱정됩니다."
◇전교 1등 장학생 송혜희
둘째 딸인 혜희는 전교 1등을 다툴 정도의 장학생이었다. 밝고 성실하던 그런 혜희는 부모의 유일한 자랑거리였다.
1999년 2월13일 오후 10시10분께 고3 진학을 앞두고 있던 혜희는 집이 있는 평택시 도일동 하리마을 입구 버스정류장에서 내린 것을 끝으로 행방불명됐다.
혜희는 당일 3학년 반편성이 있어서 오전 학교에 갔다가 오후 5시30분께 친구 집이 있던 송탄동 서정리에 갔다. 그곳에서 10시께 막차 버스를 탔고, 친구들이 배웅했다. 불과 5㎞ 떨어진 곳이었다. 도일동 하리 지역이 원래 주민이 적은 지역이었고, 막차 시간이라 당시 버스 안에는 혜희와 30대로 보이는 남자 1명만 있었다.
당시 버스 기사는 오후 10시15분께 혜희가 도일동 하리 입구 도일주유소 앞에서 내리는 것을 기억했다. 버스 기사는 신경이 쓰였던 점은 술 냄새가 나는 이 남자가 혜희와 같이 내린 것이라고 했다.
버스정류장에서 집까지는 약 1㎞. 집으로 가는 길은 논과 밭, 야산뿐인 어두운 길이라 항상 위험한 곳이었다. 혜희는 앞에서 걸어가고 남자는 뒤따라 걸어갔다. 이것이 혜희의 마지막 모습이었고, 그 후로 집에 돌아오지 않고 있다.
경찰의 대대적인 수사가 진행됐지만, 혜희 실종사건은 2014년 2월로 공소시효를 넘겼다.
【평택=뉴시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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