감동적인 이야기들

주례는 판사, 사회는 경찰 아저씨… '속도위반' 18세 커플 따뜻한 출발

Shawn Chase 2016. 1. 10. 14:26
  • 박상기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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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입력 : 2016.01.09 03:00

    지역사회에서 결혼식 열어줘… 어린 부부 "행복하게 살게요"

    이한결(가명·18)군은 경남 거제시에서 할머니와 살았다. 부모는 이군이 네 살 때 집을 나가 돌아오지 않았다. 고등학생이 되자 이군도 거제 집을 나왔다. 이군과 친구들은 자주 마트에서 도둑질을 했다. 이군은 결국 2014년 11월 먹을 것을 훔치다 경찰에 붙잡혀 재판에 넘겨졌다.

    창원지법 소년법정에 선 이군은 뜻밖의 판결을 받게 됐다. 이군 사건을 담당한 오용규 부장판사가 이군을 소년원에 보내는 대신 경남 의령군에 있는 청소년회복센터에서 보호관찰을 받도록 한 것이다. 오 부장판사는 학교를 그만둔 이군이 의령 사회복지관에서 공부를 하고 상담도 받을 수 있게 했다. 비쩍 마른 몸에 수심이 가득했던 이군의 얼굴에 웃음이 돌아왔다. 센터에서 생활한 지 반년 만에 이군은 고졸 검정고시에 합격했다. 그런데 지난해 가을, 이군의 얼굴이 다시 어두워졌다. 주위에서 '무슨 고민이 있느냐'고 물어도 입을 다물었다. 이군을 돌보던 청소년회복센터 사람들은 '딸아이가 임신했는데 아이 아빠가 이군 같다'는 중년 남성의 전화를 받고서야 이군의 고민을 알게 됐다. 전화를 건 사람은 1년쯤 전부터 사귄 이군의 동갑내기 여자 친구 김은주(가명)양의 아버지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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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군을 도왔던 사람들이 머리를 맞댔다. 누구는 '임신 중절수술을 하는 게 어떠냐'고 했고, 누구는 '아이를 낳되 입양을 보내자'고 했다. 하지만 3개월 만에 이군과 김양을 결혼시키자는 데 뜻을 보았다. 이군과 김양도 "꼭 행복한 가정을 만들겠다"고 했다.

    둘의 결혼식은 지난해 11월 11일 이군이 공부하던 의령 사회복지관에서 열렸다. 주례는 오 부장판사가 맡았다. 이군을 보살핀 의령경찰서 여성청소년계 제병철 계장이 결혼식 사회자를 자청했다. 복지관 측은 신랑 턱시도와 신부 드레스를 마련하고 하객 안내도 맡았다. 법원·경찰·복지관 직원 등 이군을 도와준 60여 명이 결혼식에 참석했다. 오용규 부장판사는 "아이들 탈선에는 우리 어른들 탓도 있다"며 "어른들이 이군의 부모 역할을 맡아 응원해 줄 수 있었던 게 기뻤다"고 말했다.

    이달 말이면 이군은 아빠가 된다. 대학 진학을 위해 항공정비학과에 원서도 냈다. 아르바이트로 생활비도 벌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