송고시간 | 2015/08/15 13:39
삼성그룹 창업주의 삼남 이건희 삼성전자 회장(왼쪽)과 장남 CJ그룹 명예회장 이맹희씨(연합뉴스 자료사진)
(서울=연합뉴스) 오예진 기자 = 삼성그룹 창업주의 장남인 이맹희 CJ그룹 명예회장의 별세를 계기로 인공감미료인 사카린이 새삼 화제가 되고 있다.
이른바 사카린 사건이 국내외 굴지의 대기업인 삼성의 후계자를 이맹희 명예회장에서 현재의 이건희 회장으로 바꾸는데 결정적 역할을 했기 때문이다.
사카린은 설탕을 대체한 획기적인 발명품으로 사랑받다가 발암물질이라고 잘못 알려졌으나 최근 새로운 연구로 그 오명을 벗었다.
그런 반면 이맹희 회장은 낙마 후 굴곡진 생활을 했고 말년에 이건희 회장을 상대로 재산반환소송까지 하는 등 형제간 분쟁을 하는 파란만장한 삶을 살다가 결국 눈을 감았다.
사카린은 1879년 미국 존스홉킨스대학 연구진에 의해 처음 발명됐다. 설탕보다 더 단맛을 내지만 열량이 없어 획기적인 발명품으로 인식됐다.
미국과 독일을 시작으로 1960∼1970년대 식품첨가물이나 감미료로서 세계적으로 널리 활용돼 황금알을 낳는 거위였다고 할 수 있다.
그러나 사카린이 암을 유발할 수 있다는 동물 실험 연구결과가 나오면서 1977년 미국과 캐나다가 식품첨가제 사용을 금지하고 1981년 미국 환경보호청(EPA)은 유해 우려 물질에 포함해 내리막길을 걷게 됐다.
사카린에 '발암성 물질'이라는 딱지가 붙여진 것이다.
국내에서도 사카린은 가난했던 1970년대 비싼 설탕을 대신해 널리 사용됐으나 발암 물질 논란을 비켜가지 못했다. 사카린은 1980년대 새 인공감미료인 아스파탐의 등장과 시민단체를 중심으로 한 유해성 논란이 커지면서 차츰 외면받게 됐다.
우리 정부도 1992년 사카린 사용 범위를 대폭 축소해 김치를 제외한 절임식품·청량음료·어육가공품 등에만 허용했다.
그러다가 사카린은 2000년대 들어 '발암 물질'이라는 오명을 벗기 시작했다.
과거 사카린 유해성을 입증한 실험 과정에 의문이 제기됐고, 그런 이후 실험·연구에서 유해성이 뚜렷하게 증명되지 않음에 따라 국제적인 인식도 변했다.
미국 독성연구프로그램(NTP)은 2000년 발암성 물질 목록에서 삭제했고, EPA도 2010년 '인간 유해 우려 물질' 리스트에서 삭제했다. 세계보건기구(WHO)와 유럽연합은 현재 사카린을 인체에 '안전한' 물질로 분류한다.
국내에서도 이런 국제적인 흐름에 맞춰 2011년 정부 차원에서 사카린 사용을 확대하는 방안의 관련법 개정을 검토하는 등 규제를 완화하는 추세다.
삼성의 창업주인 이병철 회장의 장남 이맹희 명예회장은 바로 이 사카린 덕분에 삼성의 후계자에 올랐다가 사카린 때문에 그 자리를 잃었다.
1966년 5월 24일 삼성 계열사인 한국비료는 부산세관을 통해 사카린 2천259포대(약 55t)를 밀수한 후 판매하려다 정부 당국에 적발됐다.
삼성은 이 일로 회사지분 51%를 국가에 헌납하고 당시로선 거금인 2천400만원의 벌금을 물었으며 이병철 당시 회장이 퇴진해야 했다.
그걸 계기로 이맹희 명예회장은 1968년 삼성의 모태 기업인 제일제당 대표이사, 삼성물산·삼성전자 부사장 등 그룹 주요 직위에 올라 공식 후계자로서 행보를 내디뎠다.
이맹희 회장은 그러나 아버지 이병철 회장으로부터 밀수사건을 청와대에 '투서'했다는 의심을 받아 부자 관계도 틀어졌고 그룹 내 지위도 상실한 채 한동안 '야인'(野人)으로 떠돌았다. 8남매 중 일곱째이고 아들로선 셋째였던 이건희 회장이 삼성의 후계자로 올랐다.
그 이후 이맹희 회장은 지방과 외국에서 살면서 삼성과 거리를 두고 살았다. 그 와중인 1994년 부인 손복남 안국화재 상무(현 CJ제일제당 경영고문)가 안국화재 지분을 이건희 회장의 제일제당 주식과 맞교환해 제일제당을 삼성에서 분리했으나, 이맹희 명예회장은 경영 일선에 직접 나서지 않았다.
이런 가운데 이맹희 명예회장이 2012년 2월 이건희 회장을 상대로 7천억원대 재산 반환 소송을 내 세간의 관심을 샀다. 그러다가 1,2심에서 패소하자 상고를 포기하고 지난해 2월 화해를 시도했으나, 이건희 회장이 급성 심근경색으로 쓰러지면서 형제간 화해도 이루지 못했다.
ohyes@yn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