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동

이슬람 여성 얼굴가리는 행위 남성에게 관능적 충동을 야기시킨다?

Shawn Chase 2015. 8. 4. 00: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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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슬람 여성 얼굴가리는 행위 남성에게 관능적 충동을 야기시킨다?



 

오은경
동덕여자대학교 교수
E-mail : euphra33@hanmail.net
한국외국어대학교를 졸업하고 터키 국립 하제테페 대학교에서 터키문학과 비교문학으로 문학박사 학위를 받았다. 우즈베키스탄 알리셰르나보이 국립학술원에서 우즈벡 구비문학과 민속학, 비교문학으로 외국인 최초로 인문학 국가 박사학위(Doctor of Science)를 받았다. 터키 국립 앙카라 대학교 외국인 전임교수와 한국학 중앙 연구원 초빙연구원(Post-doc), 우즈베키스탄 니자미 사범대학교 한국학 교수를 역임했다. 현재 동덕여자대학교 재직 중이다.

주요 연구 분야는 터키문학·이슬람여성·비교문학·중앙아시아 투르크 민족의 구비문학·정신분석학이다. 터키·유라시아 투르크 전문가로서 한민족의 근원과 투르크와의 친연성을 연구 중이다.
저서로 '터키 문학 속의 한국 전쟁', '20세기 페미니즘 비평: 터키와 한국 소설속의 여성', '베일 속의 여성 등이 있다.



 

입력 : 2015.08.03 17: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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베일이 권력이다?

‘이슬람’하면 우리는 당연히 베일을 쓴 여성들을 떠올린다. 그리고 베일의 정체에 관해 온갖 논쟁을 벌인다. 논쟁은 베일을 문화적 차이로 보아야 한다는 시각과 인권 유린이라는 시각으로 나누어진다. 그러나 이런 시각들은 어디까지나 외부의 시각이다. 조선시대 우리의 여인들이 너울이나 장옷을 걸치고 외출했던 것에 대해 외부세계 사람들이 이러쿵저러쿵하는 것 같은 경우이다. 물론 이슬람 사회 내부에서도 여성들의 베일착용에 대해 끊임없는 문제제기를 하고 있다. 그럼에도 왜 이슬람 여성들은 베일을 쓰는 걸까.

이란이나 과거 아프가니스탄의 탈레반 정권에서는 여성이 베일을 쓰지 않으면 국가로부터 가혹한 체벌이나 처형을 받았다. 그것은 분명히 여성의 자유 의지나 선택권을 침해하는 반인권적 행위이다. 그러나 베일 착용이 강요되지 않는 나라에서조차 여성들이 자발적으로 베일을 쓰고 다니는 것을 어떻게 봐야 할까. 최근 우리나라 여성 사이에서도 햇빛에 얼굴을 노출하지 않으려고 베일보다 더한 ‘복면’을 쓰는 피부보호 행위쯤으로 봐야 할까.
프랑스 여권을 손에 들고 부르카(무슬림 여성의 얼굴을 가리는 베일)를 착용한 여인. /조선일보 DB
프랑스 여권을 손에 들고 부르카(무슬림 여성의 얼굴을 가리는 베일)를 착용한 여인. /조선일보 DB
터키나 이집트와 같은 나라에서 여성의 베일 착용은 전적으로 여성 자신의 선택에 달렸지만 우리가 보기에 거추장스러울 것 같은 베일을 자발적으로 착용하는 여성도 적지 않다. 이 때문에 베일 착용을 굳이 강요받은 행위라고만 볼 수 없다. 이슬람 여성의 베일 착용은 자신이 속한 사회의 고유한 전통과 문화를 받아들이면서 자신의 정체성을 만들어가고자 하는 여성들의 자발적인 표현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다른 측면에서 베일 착용은 진정한 여성이 되었음을 표시하는 통과의례이기도 한 동시에 나는 이제 성숙한 여성이 되었으니 남자들은 나를 여자로서 바라보길 희망한다는 내면의 의도를 노골적으로 드러내는 메시지가 될 수도 있다. 그렇기 때문에 베일은 뭇 남성들의 시선으로부터 자신의 얼굴을 가리는 매우 엄한 징표처럼 보이지만, 다른 한편으로는 역설적이게도 이젠 혼기에 접어든 여성이 되었음을 만방에 알리고 다니는 상징이기도 하다. 이슬람 율법에 따르면 여성은 아홉 살이 되면 베일을 써야 한다. 베일을 씀과 동시에 이슬람 고유의 여성관에 따라 남성과 거리 두기가 시작된다.

그것을 권위적 율법이 아닌 문학적 시각에서 해석하자면 여자를 프레임 속에 가두는 행위로 볼 수 있지만 이젠 가까이해도 된다는 허가의 표시이기도 하다. 그렇기 때문에 베일은 어떤 이에게는 경직된 이슬람 율법을 연상시키겠지만, 상상력과 건강을 동반한 남성에겐 관능적 충동을 야기 시킬 수 있는 페티쉬이기도 하다. 때문에 무슬림 여성들은 전통적으로 베일로 몸을 가리면 가릴수록 무슬림 남성의 존중을 받아왔다.

그 안에는 성(聖)과 성(性)이라는 두 개의 성이 감춰줘 있는 것이다. 그것은 조선시대의 여성들이 조신하면 할수록 훌륭한 신붓감이 될 수 있고 존경받는 여성으로 간주하였던 것과 같다. 그렇게 함으로써 여성들은 보이지 않는 사회문화적 권력을 획득해왔다.
강아지를 안고 베일을 착용한 여성. /조선일보 DB
강아지를 안고 베일을 착용한 여성. /조선일보 DB
이 점에서 여성의 베일은 여성이 사회 고유의 문화를 받아들임으로써 어엿한 구성원이 되고자 하는 통과의례의 표식이자 여성으로서의 사회문화적 권력을 획득하기 위한 도구 역할을 하고 있다. 다시 말해, 이슬람 여성들이 베일을 쓰는 행위는, 한국여성들이 다이어트와 성형을 통해 날씬하고 규격화된 외모를 유지하여 자신의 몸을 ‘상품과 자본’으로 활용해 사회문화적 권력을 획득하려는 행위와 크게 다르지 않다고 할 수 있다.

물론 이슬람 여성의 베일착용을 고정적 시각으로 바라보는 것은 매우 위험하다. 독실한 무슬림 여성이라면 당연히 종교적 의무로서 베일을 착용하지만, 무슬림이면서도 베일을 거부하는 진보적인 여성도 적지 않다. 동시에 종교적 의무에는 관심이 없지만, 단순히 “시집을 잘 가기 위해서” 베일을 쓴다고 고백하는 여성도 상당수 있다.  

비핵화 선언으로 더욱 자유화 바람이 불 것으로 기대되는 이란이나 온건한 이슬람 국가들에서 이제 베일은 여성에게 중요한 패션 아이템이 되었다. 다양한 색상이나 옷감의 베일이 만들어지기도 하고, 베일에 명품 바람이 불기도 한다. 베일을 통해 남성과 사회로부터 인정받고 이로 인해 더욱 편하고 존중받는 삶을 살 수 있다면, 이슬람 여성들은 굳이 베일을 거부하지 않을 것이다.

*참고로 베일의 명칭, 디자인, 색상 등은 이슬람 국가마다 상이하다. ‘히잡’은 베일을 통칭하는 말로 주로 쓰인다. 전반적으로 북아프리카와 사우디, 예멘 등에서는 ‘아바야’를, 이란에서는 ‘차도르’, 아프가니스탄에서는 ‘부르카’, 터키에서는 ‘바쉬외르튀쉬’라 부르는 스카프형 베일을 쓴다. 이집트 등 일부 중동 국가에서는 ‘니캅’이라고 불리는 얼굴 가리개를 착용하기도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