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무튼, 주말] [서민의 문파타파]
여당의 선거용 억지사과
백신 부족 사과는 언제쯤?
서민 단국대 기생충학과 교수
입력 2021.04.10 03:00 | 수정 2021.04.10 03:00
일러스트=안병현
“주거 문제를 온전히 살피지 못한 정부 여당의 책임이 크다. 무한 책임을 느끼며 사죄드린다.”
3월 31일, 이낙연 전 더불어민주당 대표가 부동산 문제에 대해 사과했다. 그간 부동산 가격 폭등을 투기 세력 탓, 전 정권 탓으로 돌리던 집권 여당이 드디어 자신의 과오를 인정한 것이다. 가슴 뭉클한 감동이 따라야 하지만, ‘이미 버스는 지나갔다’는 댓글에서 보듯 반응은 싸늘했다. 서울과 부산에서 실시되는 보궐선거의 여론조사가 불리하게 나오자 궁여지책으로 한 사과이기 때문이다. 다음 날에는 김태년 원내대표가 사과했다. “청년 세대의 마음도 제대로 헤아리지 못했습니다. 그 원인이 무엇이든 민주당이 부족했습니다.” 20대의 낮은 지지율을 ‘경험치가 낮은 탓’으로 돌리던 그 정당에서 이런 말이 나오다니, 급하긴 급했나 보다. 그래도 선거가 좋긴 좋다. 두 곳 모두 야당이 승리해 정권 교체의 희망을 갖게 된 것도 있지만, 유독 사과에 인색했던 이번 정권한테 영혼 없는 사과라도 받을 수 있었으니까.
하지만 현 정권이 보궐선거 기간에도 사과하지 않은 분야가 있으니, 바로 .백신에 관해서다. 작년 2월 시작된 코로나19 감염증은 1년 하고도 2개월이 더 지난 지금도 꺾일 줄을 모른다. 지난 열흘간 하루 확진자는 여전히 500여 명선. 이러다간 언제쯤 마스크를 벗을 수 있을지 까마득해 보인다.
이 사태를 끝낼 수 있는 비법은 역시 백신, 몸 안에 생긴 항체가 감염을 막아줄 수 있다면, 코로나는 더는 위험한 적이 아니다. 화이자백신이 나왔을 때 전 세계가 기뻐했던 이유도 여기에 있다. 하지만 백신 접종 횟수로 보건대 우리나라는 명백히 백신 후진국이다. 인구 100명당 접종 횟수 통계를 보면 우리나라는 1.82회로 111위에 그치고 있다. 116회인 이스라엘과 52회의 영국, 45회의 미국에 뒤지는 것은 물론 방글라데시(3.26), 르완다(2.69)도 우리보다 낫다. 왜 이렇게 된 것일까? 제때 백신을 구하지 못한 게 근본적인 원인이긴 하다. 다른 나라들이 발 빠르게 백신을 찾아다닐 때, 우리는 K방역이 전 세계의 표준이 된다면서 넋을 놓고 있었기 때문이다.
진짜 문제는 그나마 들여온 백신조차 제대로 접종하지 않는다는 데 있다. 백신 접종이 시작된 2월 26일부터 4월 3일까지 38일간, 우리나라에서 백신을 맞은 이는 96만 명에 불과하다. 하루 평균 2만5000명꼴, 이런 식이면 전 국민이 다 접종하기까지 5년 반 정도가 소요될 전망이다. 이상한 일이다. 현재 들어와 있는 백신은 260만 회분, 우리가 마음만 먹는다면 하루 100만명도 충분히 접종할 수 있으니, 넉넉 잡아 3일이면 남은 백신을 다 소모할 수 있다.
그런데 왜 우리 능력의 4%만 발휘하며 111위의 굴욕을 감수하는 것일까? 좋게 해석하면 정부가 백신을 식량으로 착각한 것일 수 있다. 쌀 100톨로 한 달을 버텨야 한다면 하루에 다 먹고 29일을 굶는 것보다 하루 세 톨씩 아껴서 먹는 게 합리적이다. 하지만 백신은 쌀이 아니며, 되도록 빨리, 많은 이에게 접종하는 게 유리하다. 한 사람이 두 번을 맞아야 제대로 된 면역이 생기지만, 한 번만 맞는다 해도 코로나 감염 시 덜 앓을 수 있고, 중증으로 갈 확률도 훨씬 낮아지기 때문이다.
게다가 보관비를 들여가며 백신을 냉장고에 오래 놔두는 건 바보짓이다. 나도 아는 사실을 정부 관계자가 모를까? 그럴 가능성도 있지만, 그보다는 느릿느릿 접종의 원인이 다른 데 있다고 보는 게 합리적이다. 조선일보 사설의 한 구절을 인용한다. “접종 속도가 나지 않는 것은 백신이 크게 부족한 상황에서 정부가 그런 티를 안 내려고 접종 일정을 접종 능력보다 훨씬 못 미치게 잡고 있기 때문이다.” 무슨 말일까? 사흘 만에 백신을 다 맞은 뒤 멍하니 있으면 ‘접종 안 하고 뭐 하느냐?’는 질타가 쏟아질까 두려워 쇼를 한다는 얘기다. 실제로 인터넷을 보면 백신 접종에 관한 뉴스가 매일같이 쏟아지고, 누군가는 이 쇼에 속아 정부가 잘하는 줄 착각한다.
백신과 관련된 이 정권의 쇼는 처음이 아니다. 백신이 들어오기 전, 우리나라에선 뜬금없는 백신 수송 모의 훈련이 펼쳐졌다. 하등 쓸데없는 이 훈련은 사실 백신에 굶주린 국민의 눈을 속이려는 쇼였다. 하지만 더 한심한 쇼는 백신 탈취에 대비한 대테러 훈련이었다. 테러 단체가 백신접종센터를 습격해 의료진을 납치하고 백신을 탈취하는 상황을 가정했다는데, 해당 사진을 보고 있노라면 ‘부끄러움은 국민 몫'이란 탄식이 저절로 나왔다. 백신 접종이 시작된 뒤인 3월에도 안동시에 있는 백신 생산 시설에 육군부대를 보내 비슷한 일을 벌인 걸 보면, 자기들 딴에는 이런 쇼가 효과가 있다고 생각하나 보다.
대통령은 신년기자회견에서 “방역을 너무 잘해서 질문이 없냐?”는 말을 농담이랍시고 한다. K방역이란 말은 이제 안 하는 것 같아 다행이지만, 그 대신 K주사기를 가지고 자화자찬에 여념이 없다. 지금이 과연 이럴 때일까? 이제라도 백신이 부족한 걸 인정하고, 향후 백신을 어떻게 들여올 것인지, 이전에 발표된 접종 계획은 지킬 수 있는지 솔직히 밝혀라. 필요하다면 러시아에서 백신을 들여오는 것도 고려해 봐야 한다. 아스트라제네카보다 효과가 뛰어나다는 게 입증됐고, 우리나라에 생산 기지가 있어 백신 수급에 숨통을 틔워 줄 수 있는데, 마다할 이유가 없다.
이보다 우선해야 할 것이 국민에 대한 진솔한 사과다. 미국과 유럽에서는 백신 책임자가 나와 백신 공급에 차질을 빚은 것에 대해 사과했건만, 세계 순위 111위로 추락한 대한민국에서는 아무도 사과하는 이가 없다. 향후 대책이란 것도 어디까지나 진솔한 사과가 선행된 후에나 가능하다는 점에서, 늦었지만 사과는 하는 게 맞는다.
‘코로나는 코리아를 이길 수 없습니다.’ 정부에서 밀고 있는 홍보 문구다. 하지만 이대로 간다면 이 문구는 다음과 같이 수정될 것이다. ‘코리아만 코로나를 이길 수 없습니다.’
‘한번도 경험해 보지 못한 나라’ 공동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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