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내정치

민심은 ‘거짓말’보다 ‘내로남불’을 심판했다

Shawn Chase 2021. 4. 8. 08:38

 

  •  조문희 기자 (moonh@sisajournal.com)
  •  승인 2021.04.08 06:30


통하지 않은 與의 출구전략…정계개편 불가피
이변은 없었다. 야권의 압승이었다. 숨 가쁘게 달려온 4·7 보궐선거 레이스는 여야의 혈전 끝에 국민의힘의 승리로 마침표를 찍었다. LH(한국토지주택공사) 사태로 수세에 몰린 여권은 ‘적폐청산’과 ‘거짓말’ 프레임으로 돌파구를 모색했으나, 선거 막판 불거진 여권 주요 인물의 ‘내로남불’ 논란에 발목 잡혔다. 여권의 출구전략은 성난 민심을 되돌리기엔 역부족이었다.

이번 참패로 더불어민주당은 상당 기간 후폭풍에 시달릴 것으로 보인다. 당 지도부와 청와대는 거센 책임론에 직면할 전망이다. 당장 이낙연 민주당 상임선거대책위원장과 이재명 경기도지사로 중심이었던 짜였던 대권 구도가 재편되고, 견고했던 당청 관계도 흔들리며 문재인 대통령의 레임덕(정권 말기 권력 누수 현상)을 가속화할 수 있다는 관측이 나온다.


오세훈 국민의힘 서울시장 후보와 김종인 비상대책위원장 등이 7일 서울 여의도 국민의힘 중앙당사 개표상황실에서 방송3사(KBS,MBC,SBS) 공동 출구 조사 결과발표에서 박영선 더불어민주당 서울시장 후보를 앞서는 걸로 예측되자 기뻐하고 있다. ⓒ 연합뉴스
‘정권심판’ 맞선 與의 ‘거짓말’ 프레임, 과했나

이번 선거는 그야말로 ‘프레임’ 전쟁이었다. 임기가 1년 남짓 남은 시장을 뽑는 선거이니 만큼 주목도는 정책 이슈보다 의혹 공방에 치우칠 수밖에 없었다. 야권이 내세운 프레임은 ‘문재인 정권 심판’이었다. 때마침 불거진 LH(한국토지주택공사) 사태는 가뜩이나 현 정권의 부동산 정책에 불만을 품던 민심에 불을 질렀다. 야권의 ‘정권심판’ 구호에는 탄력이 붙었다. 여기에 경력을 앞세운 오세훈 국민의힘 서울시장 후보의 “임기 시작과 동시에 문재인 정권을 심판하겠다”는 외침은 민심을 자극하기에 충분했다. 정권심판 프레임을 업은 야권의 지지율은 선거판에서 불거진 각종 의혹 공방에도 불구하고 견고한 흐름을 보였다. (자세한 내용은 중앙선거여론조사심의위원회 참고)

결과적으로 여권이 내세운 ‘거짓말’ 프레임은 통하지 않았다. 선거 초반 오 후보의 내곡동 ‘셀프보상’과 박형준 국민의힘 부산시장의 엘시티 특혜 분양 의혹을 제기하던 여권은 선거 막판 의혹의 초점을 거짓말로 옮겼다. 오 후보도 “땅의 존재 자체를 몰랐다”던 초기 입장에서 “한 번 정도는 봤을 것이다”고 말을 바꾸면서 비판의 빌미를 줬다. 다만 이미 정권심판으로 돌아선 판세에서 이 같은 네거티브 공세는 먹히지 않았다.

급기야 선거 막판에는 오 후보의 셀프 보상 의혹은 사라지고 오 후보가 내곡동에서 생태탕을 먹었는지 여부가 초유의 관심사로 떠올랐다. 국민의힘 측은 생태탕 논란이 본질이 아니라고 맞섰지만, 여당은 생태탕집 관계자의 증언을 근거로 오 후보의 해명은 거짓말이며 약속대로 사퇴하라는 주장을 굽히지 않았다. 이 같은 네거티브 공방이 오히려 민심에 피로감을 야기했고, 중도층의 외면을 불렀다는 게 정치권의 공통된 해석이다. 


김태년 더불어민주당 당대표 직무대행이 7일 서울 여의도 중앙당사 개표상황실에서 방송3사(KBS,MBC,SBS) 공동 출구 조사 결과 오세훈 국민의힘 서울시장 후보가 박영선 더불어민주당 서울시장 후보를 앞서는 걸로 예측되자 굳은 표정으로 자리를 떠나고 있다. ⓒ 연합뉴스
희망회로 돌렸지만 ‘내로남불’에 발목 잡힌 與

결정타는 여권 인사들의 연이은 ‘내로남불’ 의혹이었다. LH 사태로 민심이 나빠지던 찰나, 설상가상으로 여당 의원 다수가 신도시 땅 투기 의혹 명단에 이름을 올렸다. 여기에 문재인 정부 부동산 정책의 컨트롤타워였던 김상조 전 청와대 정책실장과 ‘임대차 3법’ 대표발의자인 박주민 민주당 의원마저 법 시행 직전 전세금을 인상했다는 논란에 휩싸이면서 ‘위선’이라는 꼬리표를 붙였다. 민심의 법정에 선 이들은 싸늘한 외면에 직면했다.


김상조 전 대통령비서실 정책실장이 3월29일 청와대 춘추관에서 퇴임 인사를 마치고 고개 숙여 인사하고 있다. ⓒ연합뉴스
사실 선거 판세는 초반부터 여권에 불리했다. 애초에 이번 선거가 민주당 출신 전임 시장의 성비위로 치러지는 선거였기 때문이다. 민주당은 후보를 내지 않는다는 내용의 당헌당규까지 바꿔가며 선거에 도전한 터라 처음부터 비판받는 채로 레이스를 출발했다. 초반까지만 해도 박영선 민주당 서울시장 후보는 3자 구도에서 두각을 나타냈지만, 야권 단일화가 성사된 이후로는 지지율 하락세를 면치 못하더니 결국 당선의 문턱을 넘진 못했다.

민주당은 여론조사 공표가 금지되는 ‘블랙아웃’ 기간 직전까지도 20%포인트 안팎의 차라는 굴욕적 성적표를 받아들었지만, 마지막까지 희망의 끈을 놓지 않았다. 민주당은 “한 번만 다시 기회를 달라”는 읍소 전략을 불사하며 지지층을 향한 구애를 펼쳤다. 또 부동산 정책의 실패를 인정하면서도, 땅 투기 문제는 과거 정부부터 이어지던 적폐라며 ‘물타기’를 시도하기도 했다. 그러나 이 같은 출구전략 모두 민심을 되돌리기엔 역부족이었다.


문재인 대통령이 3월29일 오후 청와대 본관에서 열린 제7차 공정사회 반부패정책협의회에서 국민의례를 하고 있다. 마스크에 '부동산 부패청산'이라는 문구가 인쇄되어 있다. ⓒ 연합뉴스
이낙연 지고 제3의 후보 등판 가능성…국민의힘은 ‘승승장구’ 예상

민주당은 향후 상당 기간 내홍에 휩싸일 것으로 보인다. 당장 대권구도가 재편될 전망이다. 이번 선거에 명운을 걸었던 이낙연 민주당 상임선대위원장이 유력 대권주자 자리에서 사라지고 이재명 경기도지수 독주 체제 또는 제3의 후보 등판이 뒤따를 것으로 관측된다. 제3의 후보로는 정세균 국무총리가 유력하게 거론되고 있고, 임종석 전 대통령비서실장과 김두관·이광재 의원 등도 대선 출마를 저울질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여권 재편과 맞물려 이 지사가 독자 노선을 선택할 수 있다는 관측도 제기된다.

아울러 당은 물론 청와대도 거센 책임론에 직면할 것으로 보인다. 선거 운동 과정에서 부동산 문제 해법을 놓고 당청이 미세한 시각차를 보여 온 만큼, 견고했던 당청 관계가 흔들리며 문 대통령의 레임덕으로 이어질 것이란 분석이다. 


이낙연 더불어민주당 상임선거대책위원장(왼쪽부터), 이재명 경기도지사, 윤석열 전 검찰총장 ⓒ연합뉴스
반대로 국민의힘은 야권 재편의 주도권을 쥐게 될 전망이다. 국민의힘이 정권심판의 구심점을 자처하면서, 윤석열 전 검찰총장을 포함한 야권 잠룡들을 끌어들일 수 있다는 해석이다. 특히 이 경우 김 위원장의 리더십이 재조명될 전망이다. 올해 초만 해도 후보조차 내지 못하던 국민의힘의 판세를 반전시킨 장본인이어서다. 김 위원장은 오는 8일 위원장직을 내려놓는다는 계획이지만, 당내에서는 이미 그를 ‘킹메이커’로 추대하려는 움직임이 관측되고 있다. 김 위원장 재추대론에 불이 붙으면 김무성 전 의원이나 홍준표 무소속 의원 등 차기 당권을 노리던 구세력은 힘을 잃게 될 것으로 보인다. 안철수 국민의당 대표 역시 주도권 잡기가 어려워져 통합 이외 다른 선택을 할 수 없을 것이란 분석도 나온다.

출처 : 시사저널(http://www.sisajournal.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