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내정치

포호빙하', 대가는 국민이 치른다

Shawn Chase 2019. 9. 4. 03:07

김대기 단국대 초빙교수·前 청와대 정책실장

입력 2019.09.03 03:17
조선의 국난 대부분은 위정자의 무모한 용기 때문
당장은 통쾌하겠지만 국가 운명과 연결될 수도
큰일 임할 때 두려워하는 위정자의 덕목이 필요

김대기 단국대 초빙교수·前 청와대 정책실장
논어에 나오는 말이다. 제자가 공자에게 물었다. 큰일을 하실 때 어떤 사람을 쓰시겠냐고. 공자가 답했다. "나는 맨주먹으로 범을 때려잡고 맨몸으로 큰 강을 건너다 죽어도 후회하지 않겠다는 사람(暴虎馮河·포호빙하)과는 함께하지 않는다. 큰일에 임할 때 두려워할 줄 알고(臨事而懼·임사이구) 지혜를 모아 일을 성사시킬 수 있는 사람과 함께할 것이다." 무모한 용기만 내세우는 사람보다 신중한 자세로 지혜로운 대책을 세울 수 있는 사람이 중요하다는 뜻이다. '임사이구'는 세종대왕께서도 마음에 늘 담고 있던 말이다. 명나라의 무리한 요구가 이어지자 신하들과 대책을 논의하는 자리에서 이 말을 하셨다고 한다(세종실록 1449년). 예나 지금이나 위정자들이 국정에 임할 때 이보다 더 소중한 덕목은 없을 것 같다.

역사를 보면 위정자들이 '포호빙하'만 하다 실패한 경우가 많았다. 조선이 당한 국난 대부분이 이에 해당한다. 1591년 조선통신사로 일본에 갔다 온 김성일은 "도요토미 히데요시는 쥐눈이다. 두려워할 필요가 없다"면서 왜적 침범 가능성을 일축했다. 당시 조선 최고의 장군 신립은 왜군의 조총을 우습게 알고, 천연 요새인 조령을 마다하고 평지인 탄금대에서 기마 부대로 맞붙었다가 그나마 남아 있던 조선의 정예군 8000명을 전멸시켰다.

대표적 사례는 1636년 후금 홍타이지의 황제 즉위식 때 나온다. 주변국 사신 모두 절하면서 예를 다했는데 조선의 사신만이 꼿꼿이 서서 즉위식 분위기에 재를 뿌렸다. 오랑캐한테 절을 할 수 없다는 기개는 대단했지만 몇 달 후 홍타이지가 직접 조선을 정벌하는 계기가 되었다. 사신이 절하지 않은 대가는 왕이 대신 치렀다. 홍타이지 앞에서 세 번 무릎 꿇고 아홉 번 머리를 조아리며 신하가 되겠다고 서약했다. 백성들은 이보다 1000배는 더 큰 고통을 당했다. '포호빙하'가 어떤 결과를 초래하는지 역사가 많은 교훈을 주었지만 위정자들의 행태는 잘 바뀌지 않는다. '임사이구'는 쫀쫀해 보이고 당장 효과도 없는 반면 '포호빙하'는 기개가 있는 것 같고 당장 통쾌한 느낌을 주기 때문이다.

근자에 들어서도 '포호빙하'는 계속되고 있다. 정책을 추진하면서 "한 번도 가보지 않은 길을 가겠다"고 호언하는 것이 대표적 사례이다. 결과는 어땠나? 박근혜 정부 때에는 가계 부채만 잔뜩 늘어났고, 현 정부에서는 국가 부채가 크게 늘고 있다. 포호하던 기개와는 달리 경제 체질만 취약해졌다.

'포호빙하'가 국내에서 일어나는 것은 그나마 낫다. 우리끼리 고통받고 끝나기 때문이다. 그런데 대외 관계에서는 다르다. 조선시대 사례에서 보듯이 국가의 안위와 직결될 수 있다. 최근 일본과 미국에 대한 '포호빙하'가 걱정되는 이유이다.

위안부 합의를 깨는 것이나 강제징용자 보상 판결은 기세는 좋지만 후폭풍에 대한민국이 어디로 흘러가는지 가늠이 안 된다. 일본의 경제 보복에 대해 죽창가를 부르고 다시는 지지 않겠다고 호언하는 것은 참 느닷없다. 국가의 운명이 걸릴 수도 있는 중대 사안임에도 '임사이구'가 없었다. 일본과 경제 전쟁을 선언했지만 정작 전쟁을 수행할 기업인에 대한 지원은 없다. 반기업 정서도 그대로이다. 검찰 새 수뇌부는 기업의 불공정 행위에 대한 강력한 처벌을 예고했고, 노동부는 해고자도 노조에 가입할 수 있다는 국제노동기구(ILO) 협약 비준을 발표했다. 새로 취임할 공정거래위원장 역시 재벌 개혁에 대한 강력한 의지를 보였다. 경제 전쟁의 선봉장에 서야 할 삼성 이재용 부회장은 대법원 판결로 구속될 처지가 되었다. 기업인에 대한 배려 없이 국민의 반일 감정만으로는 전쟁에 이길 수 없다.

지소미아 협정을 파기하고 미국에까지 '포호빙하'하는 것은 더욱 우려된다. 중국과 북한에 대해서는 제대로 목소리를 못 내면서 미국에 대해서는 할 말 다 하겠다고 나서는 것은 매우 위험한 발상이다. 미·중 패권 전쟁을 정확히 예측한 '예정된 전쟁'의 저자 그레이엄 앨리슨이 "옳고 그른 것은 양측 힘이 동등할 때만 의미가 있다"고 한 말을 곱씹을 필요가 있다. 역사적으로 보아도 약자가 큰소리쳐서 성공한 사례는 없다. 지금 우리가 미·일 동맹에 대해 '포호빙하'하는 대가는 훗날 감당치 못할 결과를 가져올 수 있다. 세상의 대변혁기에는 어떠한 일도 일어날 수 있음을 간과해서는 안 된다. 위정자들의 역사의식과 '임사이구'가 너무도 간절한 시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