입력 2019-05-03 03:00수정 2019-05-03 15:17
善惡 이분법과 정치선동 매몰돼… 탈탈 털어 사람잡고, 뻔뻔하게 이중잣대
4월 25일 밤 국회 대치 상황 녹취.
▽나경원 자유한국당 원내대표: “이해찬 당대표, 심상정 의원님 이렇게 국회 해도 되겠습니까. 마음대로 국회 운영하고, 불법적으로 사보임하고 이게 국회입니까.”
▽심상정 정의당 의원 : “얼굴 좀 보고 얘기합시다.”
▽이해찬 더불어민주당 대표 : “너 한번 나한테 혼나볼래.”
제1야당 원내대표에게 반말로 혼나볼래라고 하는 이해찬 대표의 육성을 들으면서 1997년 5월 저녁이 기억났다.
당시 사회부 소속이던 필자는 사내 야근 중이었다. 옆에서 막내급 사건기자가 누군가와 통화를 하고 있었는데 갑자기 수화기 너머에서 글로 옮길 수 없는 쌍욕이 마구 터져 나왔다. 순한 성품의 막내기자는 수화기를 귀에서 떨어뜨리면서도 과공이라 여겨질 만큼 공손한 말투와 존칭을 이어갔으나 끝내는 언성이 높아졌다.
얼굴이 벌개져서 전화를 끊은 막내기자에게 자초지종을 물었다. 서울 마포구 아현동 로터리에서 국회의원이 탄 차가 불법유턴을 하다 이를 적발한 의경과 시비가 붙어 의경을 경찰서로 끌고 갔다는 제보를 받고 초벌 가(假)기사를 써놓고 해당 의원의 설명을 듣기 위해 통화를 한 것이라고 했다. 어렵게 연결된 전화에서 그 의원이 그렇게 욕설을 한 데 대해 막내기자도 어리둥절해했다. 그 의원이 바로 이해찬 대표다.
당시 의경 사건의 진상에 대해선 말이 조금씩 엇갈린다. 이 의원 차의 운전기사가 “의원 차”라고 하니까, 의경이 봐주거나 싼 걸로 끊어줄 수 있다는 식으로 건방을 떨었고, 이 의원이 원칙대로 끊으라고 했는데도 의경이 시간을 끌자, 차에 태워 경찰서장에게 넘겼다는 게 이 의원 측이 훗날 설명한 내용이다.
의경 사건 외에도 포털 검색란에 이 대표 이름과 뺨, 무릎 등의 검색어를 치면 여러 사건이 뜨는데 대체로 이 대표가 원칙을 꼬장꼬장하게 지키는 과정에서 빚어진 게 많다.
이 대표는 이번 국회 충돌 과정에서도 “도둑놈들한테 국회를 맡길 수 있겠냐” “반드시 청산할 사람 청산하고 정치를 마무리하겠다” 등등의 강한 말을 쏟아냈다. 그의 공언대로 대규모 소송 사태가 벌어지고 있다. 1일 기준 여야 의원 100여 명(중복 빼면 약 70명)이 고발당했다. 검찰발 대규모 의원 물갈이가 가능할 것이란 농담까지 나온다.
그런 강한 언행은 지지자들에겐 시원하겠지만 한편으로는 강퍅하고 호전적이라는 느낌도 준다. 그런데 그런 이미지가 이 대표에 국한되지 않고 점점 더 문재인 정권을 상징하는 특질처럼 느껴져 간다. 문 대통령의 선한 인상과는 달리 정권의 권력 행사가 참으로 모질기 때문이다.
항소심에서 뇌물혐의 무죄판결을 받은 박찬주 전 육군대장 사건의 경우 그렇게 탈탈 털어 형사처벌하려다 무죄판결이라는 망신을 당하지 말고, 공관병 문제만 엄정히 책임을 물었다 한들, 군대 내 갑질문화와 군 지휘관들의 구태 개혁에 어떤 지장이 있었을까.
적폐청산 수사 과정에서 전 국군기무사령관, 국정원 소속 변호사, 서울고검 검사 등이 자살하고, 조양호 전 회장에 11개 권력기관이 달려들었는데 이 정권의 어떤 속성이 그렇게 기네스북 기록감이 될 정도로 사람 잡는 데 모두들 매달리게 만들었을까. 심리학, 정치학 전문가들에게 물어봤다.
공통된 대답은 집권세력이 선악 이분법으로 세상을 보니까 이런 행태가 연출된다는 것이다. 한국 현대사를 부패·친일집단이 승승장구해온 굴절된 역사로 보다 보니, 개혁을 도덕전쟁·선악전쟁으로 여기게 되고, 그러니 죄가 아니라 사람 자체를 반드시 응징해야 하고, 그래서 어떤 죄목으로라도 감옥에 넣어야 직성이 풀린다는 설명이다.
정치적 선동전략 차원이라는 분석도 나온다. 국민들에게 나쁠 수도 좋을 수도 있는 존재로 비칠 경쟁세력을 확실하게 악으로 낙인찍어야 장기집권의 명분과 기반을 강화할 수 있다는 거다.
집권세력의 이런 마인드는 모진 권력 행사와 더불어 뻔뻔한 이중잣대로도 표출된다. 검찰 경찰에 이어 서울시장도 1일 이 경쟁에 뛰어들었다.
한국당의 광화문광장 천막 설치가 법 위반이면 실무부서에서 불허하고 한국당이 설치를 강행하면 철거하면 될 텐데, 서울시장이 직접 격정적인 입장문을 내놓았다. 그 내용은 천막 설치가 어떻게 실정법에 어긋나는지 설명하는 게 아니라, “세월호의 진실규명을 위한 국민들의 요구를 억압하고, 국정농단을 야기했던 정당”에 절대 촛불광장을 내줄 수 없다는 정치 격문이다.
아무렇지 않게 이중잣대를 들이대는 뻔뻔함도 우리 편과 상대는 등가(等價)의 다른 진영이 아니라, 선과 악이므로 다른 잣대를 적용해도 무방하다는 자기합리화의 결과다.
'국내정치' 카테고리의 다른 글
[김창균 칼럼] 文 대통령을 잘못 봤던 건가 사람이 변했나 (0) | 2019.05.09 |
---|---|
[사설] 檢 패스트트랙 법안 반대, 공론화 계기 삼아야 (0) | 2019.05.03 |
與소속 이춘희 시장 “세종보 해체 유보” (0) | 2019.05.03 |
두 쪽 난 바른미래, 권은희에 달린 ‘운명의 시소’ (0) | 2019.05.03 |
[태평로] 옴니버스 영화 '대국민 사기극' (0) | 2019.05.03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