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내정치

[태평로] 옴니버스 영화 '대국민 사기극'

Shawn Chase 2019. 5. 3. 16:06

조선일보

  • 이동훈 논설위원


  • 출처 : http://news.chosun.com/site/data/html_dir/2019/05/02/2019050203537.html


    입력 2019.05.03 03:15

    북 비핵화는 가짜 쇼로 드러나고 경제 성적표는 10년 만의 최악
    자기들끼린 반칙하고 특권 누려… 절반 안 됐는데 환불받고 싶어


    이동훈 논설위원
    이동훈 논설위원


    같은 주제나 스타일을 가지되 에피소드를 달리하는 단편을 모은 영화를 옴니버스라고 하는데 지금 대한민국에서 2년째 상영 중이다. 정확히 말해 9일이면 만 2년이다. 주제는 '대국민 사기'인데 에피소드가 3개다. 보통 옴니버스 영화는 한 편씩 순차 상영되는데 이건 세 편이 동시에 돌아간다.

    첫째 에피소드는 북한 비핵화다. 부제는 '지성이면 감김(感金)'. 스케일이 나름 크다. 미국·북한·동남아를 오가고, 미국 대통령이 나오는 등 등장인물도 화려하다. 판문점과 평양, 백두산 등에서 자못 감동적인 만남이 여러 차례 연출된다. 여기까지다. 얕은 감동을 강요하는 장면의 반복이 금세 싫증을 유발한다. 어느새 신파극이 됐다. 결정적으로 북한이 비핵화를 할 생각이 없다는 게 드러난다. 북 체제 특성으로는 하려고 해도 할 수가 없다. 그러거나 말거나 대통령은 북이 비핵화를 할 거라고 우긴다. 자못 진지한 표정으로 "큰 강은 구불구불 흐르지만 끝내 바다에 이른다"며 시(詩)도 쓴다. 그런데 너무 티가 난다. 북한이 비핵화를 안 할 거라는 걸 본인도 아는 것 같다.


    둘째 에피소드는 '소득 주도 성장'이란 이름의 좌파 경제정책. 부제는 '기다려라. 이뤄진다'이다. 기다렸더니 10여년 만의 최악 성장률이란 성적표가 나왔다. 실험적 좌파 정책이 그리 길지 않은 시간에 나라 경제를 밑동부터 흔들 수 있다는 사실에 관객들의 눈이 커진다. 그러거나 말거나 대통령은 잘될 거라고 우긴다. 현실감 없는 대사도 내뱉는다. "물 들어왔을 때 노 저어라." "견실한 흐름을 유지하고 있다." 북핵과 달리 수치가 제시되는데도 마냥 우긴다. 경제가 어려우니 추경을 편성하겠다고 앞뒤 안 맞는 대사도 한다. 등장인물도 지질하다. "연말이면 성과가 나타날 것"이라던 정책 책임자가 "내년이면"이라고 말을 바꾸는 대목에선 관객들의 헛웃음이 터져 나온다. 아는 사람은 알지만 '조금만 기다려 달라'는 전형적인 사기꾼 말투다. 그는 중국으로 달아난다. 정책을 현실이 아니라 신념 위에서 펼치는 장면도 나온다. 신념으로 탈원전하고, 의지로 4대 강 보(洑)를 때려 부순다. 세금을 퍼부어 숫자에 덧칠을 하고 가짜 고용을 늘리는 장면에선 참다못한 관객의 야유가 터져 나온다.

    셋째는 '적폐 청산', 부제가 내로남불이다. 대통령이 "특권과 반칙 없는 세상을 만들겠다"며 취임하는 장면으로 시작한다. 전 정부와 우파 진영 사람들을 적폐라며 마구잡이로 감옥으로 보내더니 자기들은 거리낌 없이 반칙하고 특권을 누린다. 전 정부 블랙리스트는 '적폐', 자기들 것은 '관행'이라고 우기는 대사가 나온다. 검찰은 알아서 꼬리를 잘라낸다. 부동산을 죄악시하던 청와대의 대변인이 부동산에 '올인' 투자하고 도망가는 장면도 나온다. 백미는 총선 개입이다. 지난 총선 때 여당 공천에 개입했다고 전직 대통령에게 유죄를 선고한다. '역대 청와대가 여당 공천에 관여 안 한 적이 없는데 이를 최초로 단죄한 역사적 판결'이란 설명이 자막으로 달린다. '몸이 아프다'며 형 집행을 잠시 멈춰 달라고 하자 엄한 표정으로 거부한다. 그런데 정작 자신들은 1년 앞 선거 전반에 당당하게 개입한다. 위성 정당들 도 움을 받아 선거 룰을 자기에게 유리하게 바꾸겠다고 국회를 난장판으로 만드는 장면이 클라이맥스다.

    영화의 러닝타임은 5년인데 이제 겨우 만 2년밖에 안 됐다. 반도 못 틀었는데 환불해달라는 관객들이 속출한다. 수가 얕은 뻔한 사기 행각이 반복되기 때문이다. 아직 미련을 못 버린 관객들이 보고 있어 어쨌든 영사기는 돌아간다. 끝까지 상영될 수 있을지는 모르겠다.

    출처 : http://news.chosun.com/site/data/html_dir/2019/05/02/2019050203537.html