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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보식이 만난 사람] "현실 제대로 못 본 錯視였구나, 우린 그때 바다에 쟁기질을 했구나"
최보식 선임기자 본문듣기 기사 북마크 기사 공유 글꼴 크기
입력 2018.10.08 03:12
'左派 정치인 가정교사'로 통했던… 김대호 사회디자인연구소장
"남미(南美)의 사회주의 혁명가 시몬 볼리바르(1783~1830)는 죽기 전에 '평생 혁명을 했지만 바다에 쟁기질한 것'이라고 말했습니다. 아마 과거에 민주화나 노동운동을 했던 사람들 중에는 지금 와서 이와 비슷한 심정일 겁니다."
대학을 졸업한 지 30년이 더 흘렀는데 이런 '거창한' 담론을 듣게 될 줄이야. 하여튼 김대호(55) 사회디자인연구소장은 자신의 방식으로 말문을 열었다.
김대호 소장은“문 대통령은‘노동이 어려운 것은 자본의 착취와 억압 때문’이라는 프레임에 갇혀있다”라고 말했다. /조인원 기자
"치열하게 운동했던 사람은 늘 '왜?'라는 의문을 갖는 겁니다. 우리가 신봉한 이론(理論)은 가설이고, 현실에 부딪혀 검증되고 보완되거나 폐기되는 것이니까요. 과거에 했던 민주화나 노동운동이 무얼 놓치고 착각했는지를 이제 깨닫게 됐습니다. 바다에 쟁기질을 한 것이지요."
서울대 공대 금속공학과 출신인 그는 학생운동을 하다가 두 차례 구속과 무기정학을 당했다. 졸업 후에는 구로공단에 위장 취업했다. 이념적 환상(幻想)에서 깨어난 것은 구소련과 동구권이 무너지면서였다. 그는 서울 압구정동에서 입시 학원을 하다가 운동권 특채로 대우차에 입사했다. 외환 위기로 대우차가 GM으로 넘어간 뒤에 퇴직했다.
그는 운동권 친구들과 함께 '사회디자인연구소'를 차렸다. 우리 사회를 새롭게 디자인할 정책을 개발하겠다는 야심이었다. 이때부터 그는 '좌파 정치인의 가정교사'로 통했다. 2010년 지방선거에서는 한명숙, 송영길, 김두관, 유종필씨 등 현 여당 인사의 정책 공약 작업에 직접 관여했다. 2012년 대통령 선거를 준비하던 문재인 의원이 그를 불러 고용과 노동 정책을 청취한 적도 있었다.
"우리 세대는 천안문 사태, 동독의 흡수 통합, 소련 붕괴 등을 겪었습니다. 메가톤급 충격이었지요. 현실을 제대로 보지 못한 착시(錯視)였구나, 생각 있는 사람은 이런 근본적인 회의(懷疑)를 하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하지만 그 뒤 전대협 세대들은 깊은 고민 없이 주체사상을 받아들이고 대중의 마음을 사로잡는 방법에만 고민했습니다. 이들은 자기 성찰이 미흡해 근본적인 질문을 하지 못했습니다."
―'근본 질문'이라는 게 뭡니까?
"우리 손으로 직접 대통령을 뽑는 직선제를 하면 민주화가 된다고 여겼지만 다른 더 큰 문제가 있었습니다. 우리 일상에서 국가 권력의 과도한 개입과 의존 문제에 대해 고민하지 못했던 겁니다. 국가가 해서는 안 될 일까지 너무 많이 하고 있는 겁니다. 무엇보다 현 정권이 천문학적 예산을 쏟아부어 공공 부문 일자리를 늘리는 것을 보고 절망했습니다."
―문재인 정부는 '일자리 정부'를 내세운 만큼 정부 예산으로 공공 부문 일자리를 먼저 늘리겠다는 것인데.
"공공 부문 일자리는 재직 기간 30년, 연금 기간 30년을 합쳐 '60년짜리 정책'입니다. 공공 부문은 국가 울타리에 들어가 편하게 잘 먹고사는 일종의 특권 집단입니다. 이 특권을 위해 숱한 청년이 몇 년간 노량진 공무원 학원에 가 있습니다. 정부가 우리나라의 미래를 이렇게 만들고 있는 겁니다. 이는 마치 양반 관료가 곧 공공 부문이었던 조선시대의 부조리를 연상케 합니다. 백성의 사생활 깊숙한 곳까지 개입하던 조선시대의 관료 체제가 지금 좌파적 멘털리티와 닮아 있습니다."
―김병준 자유한국당 비대위원장이 현 정권을 향해 '국가주의'라고 비판한 적이 있었는데, 그런 맥락입니까?
"정부 권력이 너무 막대합니다. 정부가 너무 많은 것을 틀어쥐고 있고 규제를 통해 배제하거나 유리하게 만듭니다. 미운 놈이 있으면 권력으로 혼내주려고 합니다. 족쇄·오랏줄·구속 등 상시적인 권력 농단이 가능한 구조입니다. 어떤 세력은 정부가 갖고 있는 것을 따 먹기 위해 붙어먹거나 예산에 빨대를 꽂습니다. 권력은 수단인데, 이런 구조에서는 목적이 되는 겁니다. 권력 쟁탈전이 될 수밖에 없습니다."
―당신은 좌파 진영과 가깝지 않았나요. 왜 이렇게 현 정권에 대해 비판적입니까? 이념적 성향이 좌에서 우로 바뀐 겁니까?
"한국의 좌파는 퇴행적이고 시대착오적입니다. 운동권 퇴행 세력이 좌(左)로 너무 가는 바람에 제가 마치 보수 논객처럼 됐습니다. 젊은 날의 노동운동이 지금과 같은 결과를 낳을 줄은 몰랐습니다."
―지금의 어떤 결과가 잘못됐다는 겁니까?
"이제 더 이상 노동조합은 약자가 아니라 강자의 수단이 됐습니다. '지대'(地代·어떤 조직에 소속된 특권을 뜻함)를 추구하는 집단인 공공 부문과 대기업 노조 등의 무기(武器)가 된 겁니다. 생산성에 비해 너무 많은 임금을 받고 있는 이들의 노조가 분배 구조를 왜곡시키고 있습니다. 국내 투자와 고용도 어렵게 만들고 있고요."
―임금이 너무 높다는 말은 논쟁의 여지가 있습니다. 이는 사용자의 논리이지, 우리 사회는 생활비가 많이 들기 때문에 대부분 노동자들의 가계는 빠듯하고 부채도 많습니다.
"같은 직무, 같은 일을 하는 생산직에서 노동 가격의 차이를 저는 말하는 겁니다. 가령 현대·기아차 매출액에서 인건비가 14%인데, 다른 나라는 7% 선입니다. 국제 무대에서 경쟁하려면 결국 협력업체를 쥐어짤 수밖에 없습니다. 대기업 생산직 노동자는 연봉 8000만~1억원을 받지만, 1차 협력업체 노동자는 연봉 4000만~5000만원, 2차는 3000만~4000만원, 3차는 2000만~3000만원을 받습니다. 같은 공간에서 같은 일을 하는데도 소속 업체에 따라 임금이 달라집니다."
―납득이 안 되지만 현실적으로 그렇습니다. 대기업이나 공기업에 머리 싸매고 들어가려는 것도 그 때문이고.
"우리 사회는 '직장 계급 사회'가 됐습니다. 수적으로 가장 많고 잘 조직돼 있는 공공 부문과 대기업 노조가 이런 사회적 보상 체계를 왜곡하는 지대(地代) 추구 집단인 겁니다. 문 대통령은 이런 구조를 개혁하기는커녕 이들과 손을 잡아버린 것 같아요."
―2012년 대선 준비를 하던 문재인 의원이 불러 만난 적이 있다고 했지요?
"그분이 국회의원 선거에 당선된 직후 만났습니다. 주위에서 가장 먼저 만나봐야 할 정책 전문가 중 한 명으로 저를 추천했던 것 같습니다. 2시간 30분 동안 고용과 노동 문제에 대한 제 생각을 전달했습니다. 이분은 '노동이 어려운 것은 자본의 착취와 억압 때문'이라는 프레임에 갇혀 있는 듯했습니다. 이분 주위에 있는 사람들도 대부분 낡은 노동 패러다임을 갖고 있습니다."
―낡은 노동 패러다임이라는 게 뭡니까?
"일자리와 저임금 문제를 자본의 과잉 착취로 봅니다. 그러니 국가 규제를 통해 고용을 할당하고, 임금을 올리고, 규제와 처벌을 하고, 공공 부문을 키우는 것을 해결 방법으로 생각하게 되는 거죠. 이분의 고정관념이 너무 강해 바뀔 것 같지 않습니다."
―당시 같이 일해보자는 제안을 못 받았으니, 별로 감동을 못 준 모양이군요.
"하지만 그 자리에서 제가 해줬던 말을 대선 때부터 써먹었습니다."
―어떤 걸 말합니까?
"당시 '정의론'에 대해서도 얘기했습니다. 저는 '경쟁 입구에서는 평등하고, 경쟁 과정에서는 공정하며, 경쟁 결과에서는 합리적 불평등(공평)한 것'이 정의라고 했지요. 이때 해준 말이 2012년 대선 때부터 '기회는 평등할 것이고, 과정은 공정할 것이며, 결과는 정의로울 것이다'로 바뀐 것 같습니다."
―문 대통령의 상징적인 국정 운영 구호로 채택된 셈이군요.
"핵심 아이디어를 대중적 구호로 만들어 사용하는 것은 잘한 일인데, 문제는 이분이 '정의'를 제대로 이해했는지는 의문입니다. 무슨 불법(不法)을 없애는 것 정도로 생각한 게 아니었는지 모르겠습니다."
―문 대통령이 이념적으로 사회주의에 경도됐다고 봅니까?
"이분은 어떤 '주의(主義)'의 신봉자는 아니라고 봅니다. 주의자가 되려면 이념의 체계성과 완결성이 있어야 합니다. 나름대로 치열한 학습이 필요하지요. '주의'라기보다는 '정서(情緖)'가 더 정확할 겁니다. 이분은 청와대의 전대협 참모들처럼 그저 막연한 반자본, 친노동, 친북, 반일, 반미 정서에서 헤어나지 못하는 것 같습니다."
―최저임금 인상 등을 주도한 김수현 청와대 사회정책수석과는 그전에 같이 작업을 한 적이 있다고 했지요?
"2010년 한명숙 전 총리가 서울시장 후보로 출마했을 때 정책 작업을 함께 했습니다. 3년 전에는 서울시의 일자리 전략위원회에서 같이했습니다. 그와는 의견이 맞지 않았습니다. 임금이 오르면 가처분소득이 증가해 소비가 늘어나고, 소비 증가는 기업의 투자와 고용을 늘리는 선순환을 한다는 '소득 주도 성장'은 정치적으로는 너무 그럴듯합니다. 하지만 이는 허구(虛構)입니다. 시장 현실을 전혀 모르고 하는 얘기입니다. 한마디로 고용 학살이고 경제 자살로 나타날 겁니다."
―현 정권은 소득 주도 성장 정책을 포기하지 않겠다는 뜻을 분명히 밝혔는데.
"청와대 참모들 중에는 경쟁이 치열한 민간 기업에서 근무했거나 작은 기업이라도 창업해 사람을 고용해 본 경험자가 없습니다. 복잡하고 다양한 현실을 보지 않고, 어느 한 면만 보고 정책을 내놓는 것 같습니다."
―당신은 운동권이었다가 대우차에서 9년 직장 생활을 했지요. 어떻던가요?
"그동안 외면해왔던 현실을 봤던 셈입니다. 우리가 했던 노동운동은 말하자면 파이를 분배하는 것인데, 대우차에서 파이를 만드는 것의 중요성과 복잡성을 알게 됐지요."
외환 위기 여파로 대우차가 매각 협상에서 실패하고 부도를 맞았을 때 그는 과장(課長)이었다. 그는 취재와 자료 조사를 바탕으로 '대우자동차 하나 못 살리는 나라'라는 책을 썼다. 그 뒤로도 '한 386의 사상혁명' '진보와 보수를 넘어' '노무현 이후-새시대 플랫폼은 무엇인가' '결혼불능세대' '2013년 이후-희망코리아 가는 길' 등을 펴냈다. 그 책들이 세간에 조명받은 적은 없었다.
[최보식이 만난 사람] "현실 제대로 못 본 錯視였구나, 우린 그때 바다에 쟁기질을 했구나"
최보식 선임기자 본문듣기 기사 북마크 기사 공유 글꼴 크기
입력 2018.10.08 03:12
'左派 정치인 가정교사'로 통했던… 김대호 사회디자인연구소장
"남미(南美)의 사회주의 혁명가 시몬 볼리바르(1783~1830)는 죽기 전에 '평생 혁명을 했지만 바다에 쟁기질한 것'이라고 말했습니다. 아마 과거에 민주화나 노동운동을 했던 사람들 중에는 지금 와서 이와 비슷한 심정일 겁니다."
대학을 졸업한 지 30년이 더 흘렀는데 이런 '거창한' 담론을 듣게 될 줄이야. 하여튼 김대호(55) 사회디자인연구소장은 자신의 방식으로 말문을 열었다.
김대호 소장은“문 대통령은‘노동이 어려운 것은 자본의 착취와 억압 때문’이라는 프레임에 갇혀있다”라고 말했다. /조인원 기자
"치열하게 운동했던 사람은 늘 '왜?'라는 의문을 갖는 겁니다. 우리가 신봉한 이론(理論)은 가설이고, 현실에 부딪혀 검증되고 보완되거나 폐기되는 것이니까요. 과거에 했던 민주화나 노동운동이 무얼 놓치고 착각했는지를 이제 깨닫게 됐습니다. 바다에 쟁기질을 한 것이지요."
서울대 공대 금속공학과 출신인 그는 학생운동을 하다가 두 차례 구속과 무기정학을 당했다. 졸업 후에는 구로공단에 위장 취업했다. 이념적 환상(幻想)에서 깨어난 것은 구소련과 동구권이 무너지면서였다. 그는 서울 압구정동에서 입시 학원을 하다가 운동권 특채로 대우차에 입사했다. 외환 위기로 대우차가 GM으로 넘어간 뒤에 퇴직했다.
그는 운동권 친구들과 함께 '사회디자인연구소'를 차렸다. 우리 사회를 새롭게 디자인할 정책을 개발하겠다는 야심이었다. 이때부터 그는 '좌파 정치인의 가정교사'로 통했다. 2010년 지방선거에서는 한명숙, 송영길, 김두관, 유종필씨 등 현 여당 인사의 정책 공약 작업에 직접 관여했다. 2012년 대통령 선거를 준비하던 문재인 의원이 그를 불러 고용과 노동 정책을 청취한 적도 있었다.
"우리 세대는 천안문 사태, 동독의 흡수 통합, 소련 붕괴 등을 겪었습니다. 메가톤급 충격이었지요. 현실을 제대로 보지 못한 착시(錯視)였구나, 생각 있는 사람은 이런 근본적인 회의(懷疑)를 하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하지만 그 뒤 전대협 세대들은 깊은 고민 없이 주체사상을 받아들이고 대중의 마음을 사로잡는 방법에만 고민했습니다. 이들은 자기 성찰이 미흡해 근본적인 질문을 하지 못했습니다."
―'근본 질문'이라는 게 뭡니까?
"우리 손으로 직접 대통령을 뽑는 직선제를 하면 민주화가 된다고 여겼지만 다른 더 큰 문제가 있었습니다. 우리 일상에서 국가 권력의 과도한 개입과 의존 문제에 대해 고민하지 못했던 겁니다. 국가가 해서는 안 될 일까지 너무 많이 하고 있는 겁니다. 무엇보다 현 정권이 천문학적 예산을 쏟아부어 공공 부문 일자리를 늘리는 것을 보고 절망했습니다."
―문재인 정부는 '일자리 정부'를 내세운 만큼 정부 예산으로 공공 부문 일자리를 먼저 늘리겠다는 것인데.
"공공 부문 일자리는 재직 기간 30년, 연금 기간 30년을 합쳐 '60년짜리 정책'입니다. 공공 부문은 국가 울타리에 들어가 편하게 잘 먹고사는 일종의 특권 집단입니다. 이 특권을 위해 숱한 청년이 몇 년간 노량진 공무원 학원에 가 있습니다. 정부가 우리나라의 미래를 이렇게 만들고 있는 겁니다. 이는 마치 양반 관료가 곧 공공 부문이었던 조선시대의 부조리를 연상케 합니다. 백성의 사생활 깊숙한 곳까지 개입하던 조선시대의 관료 체제가 지금 좌파적 멘털리티와 닮아 있습니다."
―김병준 자유한국당 비대위원장이 현 정권을 향해 '국가주의'라고 비판한 적이 있었는데, 그런 맥락입니까?
"정부 권력이 너무 막대합니다. 정부가 너무 많은 것을 틀어쥐고 있고 규제를 통해 배제하거나 유리하게 만듭니다. 미운 놈이 있으면 권력으로 혼내주려고 합니다. 족쇄·오랏줄·구속 등 상시적인 권력 농단이 가능한 구조입니다. 어떤 세력은 정부가 갖고 있는 것을 따 먹기 위해 붙어먹거나 예산에 빨대를 꽂습니다. 권력은 수단인데, 이런 구조에서는 목적이 되는 겁니다. 권력 쟁탈전이 될 수밖에 없습니다."
―당신은 좌파 진영과 가깝지 않았나요. 왜 이렇게 현 정권에 대해 비판적입니까? 이념적 성향이 좌에서 우로 바뀐 겁니까?
"한국의 좌파는 퇴행적이고 시대착오적입니다. 운동권 퇴행 세력이 좌(左)로 너무 가는 바람에 제가 마치 보수 논객처럼 됐습니다. 젊은 날의 노동운동이 지금과 같은 결과를 낳을 줄은 몰랐습니다."
―지금의 어떤 결과가 잘못됐다는 겁니까?
"이제 더 이상 노동조합은 약자가 아니라 강자의 수단이 됐습니다. '지대'(地代·어떤 조직에 소속된 특권을 뜻함)를 추구하는 집단인 공공 부문과 대기업 노조 등의 무기(武器)가 된 겁니다. 생산성에 비해 너무 많은 임금을 받고 있는 이들의 노조가 분배 구조를 왜곡시키고 있습니다. 국내 투자와 고용도 어렵게 만들고 있고요."
―임금이 너무 높다는 말은 논쟁의 여지가 있습니다. 이는 사용자의 논리이지, 우리 사회는 생활비가 많이 들기 때문에 대부분 노동자들의 가계는 빠듯하고 부채도 많습니다.
"같은 직무, 같은 일을 하는 생산직에서 노동 가격의 차이를 저는 말하는 겁니다. 가령 현대·기아차 매출액에서 인건비가 14%인데, 다른 나라는 7% 선입니다. 국제 무대에서 경쟁하려면 결국 협력업체를 쥐어짤 수밖에 없습니다. 대기업 생산직 노동자는 연봉 8000만~1억원을 받지만, 1차 협력업체 노동자는 연봉 4000만~5000만원, 2차는 3000만~4000만원, 3차는 2000만~3000만원을 받습니다. 같은 공간에서 같은 일을 하는데도 소속 업체에 따라 임금이 달라집니다."
―납득이 안 되지만 현실적으로 그렇습니다. 대기업이나 공기업에 머리 싸매고 들어가려는 것도 그 때문이고.
"우리 사회는 '직장 계급 사회'가 됐습니다. 수적으로 가장 많고 잘 조직돼 있는 공공 부문과 대기업 노조가 이런 사회적 보상 체계를 왜곡하는 지대(地代) 추구 집단인 겁니다. 문 대통령은 이런 구조를 개혁하기는커녕 이들과 손을 잡아버린 것 같아요."
―2012년 대선 준비를 하던 문재인 의원이 불러 만난 적이 있다고 했지요?
"그분이 국회의원 선거에 당선된 직후 만났습니다. 주위에서 가장 먼저 만나봐야 할 정책 전문가 중 한 명으로 저를 추천했던 것 같습니다. 2시간 30분 동안 고용과 노동 문제에 대한 제 생각을 전달했습니다. 이분은 '노동이 어려운 것은 자본의 착취와 억압 때문'이라는 프레임에 갇혀 있는 듯했습니다. 이분 주위에 있는 사람들도 대부분 낡은 노동 패러다임을 갖고 있습니다."
―낡은 노동 패러다임이라는 게 뭡니까?
"일자리와 저임금 문제를 자본의 과잉 착취로 봅니다. 그러니 국가 규제를 통해 고용을 할당하고, 임금을 올리고, 규제와 처벌을 하고, 공공 부문을 키우는 것을 해결 방법으로 생각하게 되는 거죠. 이분의 고정관념이 너무 강해 바뀔 것 같지 않습니다."
―당시 같이 일해보자는 제안을 못 받았으니, 별로 감동을 못 준 모양이군요.
"하지만 그 자리에서 제가 해줬던 말을 대선 때부터 써먹었습니다."
―어떤 걸 말합니까?
"당시 '정의론'에 대해서도 얘기했습니다. 저는 '경쟁 입구에서는 평등하고, 경쟁 과정에서는 공정하며, 경쟁 결과에서는 합리적 불평등(공평)한 것'이 정의라고 했지요. 이때 해준 말이 2012년 대선 때부터 '기회는 평등할 것이고, 과정은 공정할 것이며, 결과는 정의로울 것이다'로 바뀐 것 같습니다."
―문 대통령의 상징적인 국정 운영 구호로 채택된 셈이군요.
"핵심 아이디어를 대중적 구호로 만들어 사용하는 것은 잘한 일인데, 문제는 이분이 '정의'를 제대로 이해했는지는 의문입니다. 무슨 불법(不法)을 없애는 것 정도로 생각한 게 아니었는지 모르겠습니다."
―문 대통령이 이념적으로 사회주의에 경도됐다고 봅니까?
"이분은 어떤 '주의(主義)'의 신봉자는 아니라고 봅니다. 주의자가 되려면 이념의 체계성과 완결성이 있어야 합니다. 나름대로 치열한 학습이 필요하지요. '주의'라기보다는 '정서(情緖)'가 더 정확할 겁니다. 이분은 청와대의 전대협 참모들처럼 그저 막연한 반자본, 친노동, 친북, 반일, 반미 정서에서 헤어나지 못하는 것 같습니다."
―최저임금 인상 등을 주도한 김수현 청와대 사회정책수석과는 그전에 같이 작업을 한 적이 있다고 했지요?
"2010년 한명숙 전 총리가 서울시장 후보로 출마했을 때 정책 작업을 함께 했습니다. 3년 전에는 서울시의 일자리 전략위원회에서 같이했습니다. 그와는 의견이 맞지 않았습니다. 임금이 오르면 가처분소득이 증가해 소비가 늘어나고, 소비 증가는 기업의 투자와 고용을 늘리는 선순환을 한다는 '소득 주도 성장'은 정치적으로는 너무 그럴듯합니다. 하지만 이는 허구(虛構)입니다. 시장 현실을 전혀 모르고 하는 얘기입니다. 한마디로 고용 학살이고 경제 자살로 나타날 겁니다."
―현 정권은 소득 주도 성장 정책을 포기하지 않겠다는 뜻을 분명히 밝혔는데.
"청와대 참모들 중에는 경쟁이 치열한 민간 기업에서 근무했거나 작은 기업이라도 창업해 사람을 고용해 본 경험자가 없습니다. 복잡하고 다양한 현실을 보지 않고, 어느 한 면만 보고 정책을 내놓는 것 같습니다."
―당신은 운동권이었다가 대우차에서 9년 직장 생활을 했지요. 어떻던가요?
"그동안 외면해왔던 현실을 봤던 셈입니다. 우리가 했던 노동운동은 말하자면 파이를 분배하는 것인데, 대우차에서 파이를 만드는 것의 중요성과 복잡성을 알게 됐지요."
외환 위기 여파로 대우차가 매각 협상에서 실패하고 부도를 맞았을 때 그는 과장(課長)이었다. 그는 취재와 자료 조사를 바탕으로 '대우자동차 하나 못 살리는 나라'라는 책을 썼다. 그 뒤로도 '한 386의 사상혁명' '진보와 보수를 넘어' '노무현 이후-새시대 플랫폼은 무엇인가' '결혼불능세대' '2013년 이후-희망코리아 가는 길' 등을 펴냈다. 그 책들이 세간에 조명받은 적은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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