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민우 기자
입력 : 2018.10.19 11:19 | 수정 : 2018.10.19 15:27
2018 이코노미조선 글로벌 콘퍼런스
"한국 사회는 과거보다 유교·도덕적인 성향이 더 짙어졌다. 비즈니스 커뮤니티의 목소리를 외면하는 사회적 분위기가 가장 큰 문제다."
대표적인 지한파 경제학자인 후카가와 유키코(深川由起子) 와세다대 교수가 내놓은 진단이다. 30여년 간 한국 경제를 관찰해 온 후카가와 교수는 지난 18일 ‘이코노미조선 글로벌 콘퍼런스’ 참석 후 인터뷰에서 한국 사회가 과거 어느 때보다 폐쇄적으로 변하고 있다는 점이 가장 우려스럽다고 강조했다.
- ▲ 후카가와 유키코 와세대교수가 2018 이코노미조선 글로벌 콘퍼런스 참석 후 인터뷰를 갖고 있다. /이존환
◇ "한국 경제, 플레이어가 아닌 심판이 주도"
―현재 한국 경제를 바라볼 때 가장 우려스러운 점은 무엇인가.
"기업의 목소리를 외면하는 게 가장 큰 문제라고 생각한다. 최저임금 인상, 노동시간 단축 등 이렇게 급격하게 기업 환경을 바꾸는 게 가능한 것조차 놀랍다. 그러나 자본주의 사회에서 정치인은 플레이어가 아니다. 심판만 모여서 시장을 구성할 수 없다. 이런 분위기 속에서 정부가 혁신 성장의 구호를 앞세우는 것도, 벤처에 뛰어들라고 권유하는 것도 앞뒤가 맞지 않는 얘기다"
―반기업 정서가 과거보다 심해졌다고 생각하는가.
"과거보다 경제·정치 분야에서 유교적인 성향이 더 강해진 느낌을 받는다. 출발점은 이명박 대통령 시절부터였다. 당시 산업화의 마무리 단계에서 ‘일본을 따라잡았다’는 생각이 퍼지기 시작했고, 그런 사고 변화 속에서 과거사 문제 등 도덕적인 이슈가 주류 여론으로서 본격적으로 부상하기 시작했다. 그 시점부터 한국 사회가 본격적으로 유교 특유의 ‘정통성’을 찾으려는 욕구와 노력이 더 커진 것으로 보인다.
문제는 이 과정에서 비즈니스 커뮤니티에 대한 존경심이 급격하게 사라지고 있다는 점이다. 과거에는 기업의 리스크 테이킹에 대한 존경, 그리고 이에 따른 일자리 창출, 수출 실적 등 결과를 존중해주는 분위기가 있었다. 그러나 지금은 기업의 잘못된 부분만 부각해서 보는 경향이 심해진 느낌을 받는다."
―기업의 부패를 옹호한다는 오해를 받을 수 있다.
"어느 자본주의 국가나 1세대 기업 중 도덕적으로 깨끗하고 흠이 없는 기업은 그 사례를 찾아보기 어렵다. 일본도 미국도 독일도 마찬가지다. 여러 가지 스토리가 있다. 마이너스적인 요소보다 플러스적인 요소가 많으면 사회에서 이를 포용해주는 태도도 필요하다고 생각한다. 지나치게 도덕적으로 완벽하게 흠이 없는 기업을 요구하는 것도 문제가 있다고 생각한다. 실존보다 이념을 추구하는 주자학적 성향이 과도하다는 점을 지적한 것이다."
―노동개혁의 중요성을 여러 차례 강조하고 있는데.
"노조 문제가 이렇게 정치 쟁점화된 나라도 많지 않다. 강성노조가 많은 한국에서 기업들이 정규직을 가능한 한 적게 뽑으려는 것도 자연스러운 현상이다. 최근 자동차, 조선 등 정규직 인력의 의존도가 높은 기업이 쇠퇴하고, LCD·반도체 등 설비 투자가 중요한 분야가 두각을 나타내는 것 또한 이러한 배경이 작용한 것이라고도 생각한다."
◇ "잃어버린 세대 방치하면 큰 사회적 비용으로 돌아와"
―과거 일본의 사례에 비춰볼 때 한국의 청년 실업 문제는 어떻게 보는가.
"일본은 청년실업에 따른 이른바 ‘잃어버린 세대’를 막는 데 적절하게 대응하지 못했다. 20대 초반 한창 일을 배워야 할 때 기회를 얻지 못하고, 30~40대가 돼서야 일자리를 얻는 사람이 많아졌음에도 마땅한 대응을 내놓지 못했다. 그 결과, 큰 사회적 비용을 아직도 치르고 있다. 그나마 지금은 일손이 부족해지는 바람에 많은 실업자가 구제됐다. 통계에 따르면, 히키코모리(은둔형 외톨이) 인구가 50만명이 감소했다고 한다."
―한국에선 일본의 구인난을 부러워하는 시각이 많다.
"결국은 일본도 베이비부머 세대가 대대적으로 은퇴하는 게 주된 동력이었다. 그러나 그런 시대의 흐름에서 기업의 일자리 수요를 늘리도록 노력했던 게 아베노믹스의 역할이었다고 생각한다. 그런 것들이 현재 일손 부족이라는 종합적인 결과로 나타나는 것이다."
―아베노믹스의 성공포인트는 무엇이라고 생각하는가.
"되돌아보면 일본은 ‘잃어버린 20년’간 문제를 짚어내는 것조차 제대로 하지 못했다. 문제 해결의 출발점은 문제가 무엇인지부터 파악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아베노믹스의 설계자로 불리는 하마다 교수 같은 사람은 해외에 오래 체류하며 외국인의 시각에서 일본을 바라봤기에 문제의 핵심을 짚어냈다고 생각한다."
◇ "한국·일본 부동산 상황은 차이점 많아"
―한국의 부동산 급등을 1990년대의 일본과 비교하는 시각도 있다.
"중앙은행이 금리를 제때 올리지 못했다는 데는 공통점이 있다. 당시 일본은 미국의 압력 때문에 금리를 제때 올리는 데 실패했고, 그 결과 급속하게 버블이 생겼다. 한국 역시 여러 대외여건 때문에 현재 금리를 제때 올리지 못하고 있다고 본다. 금리 인상 실기(失期)에 따라 부동산 시장에 투기적 요소가 많아진 점은 일본과 비슷하다고 생각한다.
그러나 차이점은 분명히 있다. 한국은 오랜 기간 부동산에 의존하는 성장을 이어왔다. 일본은 버블이 생겼을 때 반짝 부동산에 관심이 많았을 뿐 한국만큼 부동산에 대한 의존도가 높지 않다. 그러다 보니 한국은 일본보다 정부가 부동산 정책에 더 심혈을 기울인다. 한국은 무능력한 정치인조차 부동산의 중요성을 강조한다. 당시 일본정부의 대응과는 차이가 있다. 또한 일본은 지진이 많아 아파트보다 단독주택을 선호한다. 아파트를 선호하는 한국과 비교해볼 때 부동산 하락기에 현금 유동화 속도에 차이가 있다."
◇ "고령화 대책 더 미뤄서는 안돼"
―한국 저출산의 원인을 무엇이라고 보는가.
"한국도 일본과 마찬가지로 여성 홀로 애를 키우게 되는 사례가 많아졌다. 과거에는 할머니나 친척의 도움을 많이 받았다. ‘아이는 마을이 키운다’는 공동 육아의 개념이 있었다. 그러나 시간이 흐를수록 엄마 홀로 책임을 지게 되는 사례가 많아졌다. 최근 일본에서는 NGO와 같은 민간단체가 상담 등 사회의 육아를 지원하는 비중이 커진 게 한국과의 차이점이다."
―급격한 인구 고령화에 따른 가장 큰 문제점은 무엇이라고 보는가.
"보험·연금제도가 제대로 정비되기 전에 고령화가 급속히 진전되는 점이 우려스럽다. 직전 대통령 선거때 박근혜 대통령을 공격하는 것보다 더 중요한 사안이었다. 연금 등의 문제는 치열한 논쟁으로 사회적 합의를 이끌어냈어야 하는 과제였다. 그래야 여러 가지 골격이 생겨서 미세한 방법을 도출해 낼 수 있다. 미룰 문제가 아니다."
◇ "이렇게까지 폐쇄적인 한국 본 적 없어"
- ▲ 후카가와 교수 /이존환
―남북 관계 진전은 어떻게 바라보고 있는가.
"통일은 일본이 갖지 못한 한국의 마지막 카드다. 여러가지 문제를 해결해 줄 수 있다고 본다. 그러나 통일 비용 추계 등 조금 더 객관적인 시각에서 접근했으면 하는 바람이 있다. 정부가 근거 없는 꿈을 제시해서는 안된다고 본다."
―최근 한국 사회를 바라볼 때 가장 안타까운 점은.
"사소한 문제에도 집착하는 경향이 짙어졌다. 한국은 변화에 관대한 나라였다. 그러나 이렇게까지 폐쇄적인 분위기는 처음이다. 세대 갈등, 남녀갈등, 대·중소기업 갈등 등 외부인이 봐도 갈등이 걷잡을 수 없이 고조되는 느낌이다. 아이디어는 많은데 갈등 때문에 실천하기가 어렵다. 지식인 사회의 합의를 대중에게 설득하는 논리가 필요하다고 생각한다.
그래서 자꾸 사람들이 해외로 눈을 돌리는 게 아닌가 하는 생각도 든다. 여행도 가고 싶고, 이민도 가고 싶고. 그러나 이는 잘못된 방향이라고 생각한다. 선진국은 자국민이 이민을 가지 않아도 되는 나라다."
원문보기:
http://biz.chosun.com/site/data/html_dir/2018/10/19/2018101901130.html#csidxec9f704d30d3cf58109f9a6bfb5aed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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