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앙선데이] 입력 2018.08.25 01:00 수정 2018.08.25 08:46
인명진 전 새누리당 비대위원장
그를 처음 만난 것은 1987년이다. 시청 앞에 최루탄이 터지고, 현직 국회의원들도 눈물을 흘렸다. 김영삼·김대중 씨를 비롯한 야당 정치인·종교인·재야세력·학생과 넥타이부대까지 모두 모였다. 그때 6월 항쟁을 주도한 민주헌법쟁취국민운동본부 대변인이 인명진(72) 갈릴리 교회 원로목사다.
사회 통합
100% 이기면 상대에게 한 남겨
반대편에도 40%의 공간을 줘야
보수 인물난
이명박·박근혜 자기 사람만 공천
인재 갑자기 툭 튀어나오지 않아
한국당 문제
비겁해 의원직 사퇴한 사람 없어
노회찬 의원은 목숨 걸고 책임져
대북 정책
방향 맞지만 국민 통합에서 동력
미국을 무시하고 건너뛰면 안 돼
그는 그때 감옥에 갈 각오를 했다고 말했다. 그는 최루탄을 마시면서도 늘 미소를 잃지 않았다. 단호하지만 차분하게 상황을 설명하고, 국민의 동참을 끌어냈다. 22일 중앙일보를 찾아온 그는 31년 전의 그 미소를 그대로 담고 있었다. 5년 전 목사직을 은퇴해 더 여유가 있었다. 현실에 대한 비판은 거침이 없었다.
- 질의 :2016년 12월 새누리당은 매우 어려운 상황이었는데, 왜 비대위원장을 맡았습니까.
- 응답 :“사람들이 다 궁금하게 생각하죠. 저 사람이 미쳤나, 치매가 왔나. 그런 이야기를 하는데. 제가 목사 아닙니까. 도와달라는 걸 어떻게 뿌리칩니까. 적폐세력을 왜 도와줬느냐는 말도 합니다. 물에 빠져 허우적거리는 사람한테 ‘너 진보냐? 보수냐?’ 따져서 건져줄 순 없잖아요.”
- 질의 :자유한국당의 문제는 무엇입니까.
- 응답 :“저는 딱 한 가지입니다. 보수가 책임질 줄 몰라요. 비겁합니다. 당을 위해 자기를 희생하려는 사람이 없고, 다 뒤로 빠져요. 노회찬 의원은 스스로 목숨을 끊지 않았습니까. 성직자의 입장에서 자살을 찬성할 수 없지만, 그런데도 존경하는 점은 자기 목숨을 걸고 책임을 지는 자세입니다. 자유한국당 의원 중에서 자살은 고사하고, 국회의원직을 사퇴한 사람이라도 있습니까. 저런 모습, 저런 태도를 가지고 국민의 신뢰를 얻겠습니까. 노무현 대통령, 노회찬 의원, 책임졌거든요. 진보가 살잖아요. 이 문제를 해결하지 않으면, 보수가 다시 국민 신뢰를 얻지 못한다고 생각해요.”
당 이름만 바꾼다고 달라지나
- 질의 :당명을 다시 바꾸자는 이야기가 나오는데.
- 응답 :“나는 새누리당에서 자유한국당으로 당명을 바꿀 때도 반대했어요. 내 인생도 부끄러울 때가 많았거든요. 그때마다 내 이름 바꾸느냐. 사람들에게 새로운 모습으로 다가가려면 내가 잘못한 것을 인정하고 내가 책임져야지, 이름만 바꾼다고 달라집니까.”
- 질의 :책임을 어떻게 집니까?
- 응답 :“노회찬 씨처럼 자살할 수는 없고… 적어도 국회의원직을 내려놓아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정계 은퇴해도 좋고요. 다음에 불출마하겠다는 건 눈 가리고 아웅 하는 겁니다.”
- 질의 :반기문 전 유엔사무총장을 냉대했다는데.
- 응답 :“유엔 사무총장은 잘 하셨지만 내가 볼 때는 정치하면 안 되는 사람이에요.”
- 질의 :안철수 전 의원에 대해서도 실망감을 표시하셨던데.
- 응답 :“굉장히 기대를 많이 했죠. 정치라는 게 사람과의 만남 아닙니까. 그런데 전혀 훈련이 안 된 분이에요. 김영삼·박근혜 전 대통령은 누구든지 만나기만 하면 빠진다는 것 아닙니까. 그런데 안철수 씨는 만나면 오히려 적이 돼요. 독일 가서 공부할 게 아니라 여기서 인간 공부를 좀 더 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 질의 :그러면 보수 쪽에 어떤 사람이 있습니까?
- 응답 :“저는 못 찾았어요. 이명박·박근혜 두 사람의 정말 씻을 수 없는 잘못은 사람을 기르지 않은 것입니다. 완전히 자기 사람만 공천해서 사람이 없는 거예요. 이런 상황이 오래갈 것이라고 봅니다. 사람이라는 게 갑자기 툭 튀어나옵니까? 지금부터 시작해야 합니다. 진보 좌파, 얼마나 열심히 공부한 사람들입니까? 또 바닥에서 실천한 사람들입니다. 깔보면 안 됩니다.”
- 질의 :기울어진 운동장이 오래 간다고 보시는 거네요.
- 응답 :“새가 지금 한 쪽 날개로만 날다 보니까, 앞으로 나가지 못하고 있습니다. 문재인 정부가 보수를 어떻게 파트너로 삼을까 심각하게 고민해야 하는 시점이라고 봅니다. 6.13 지방선거에서 싹쓸이하지 않았습니까? 저는 여권의 위기를 봤습니다. ‘이 사람들, 정신 차리지 않으면, 실패가 생각보다 훨씬 빨리 오겠구나.’”
그는 문 대통령에게 그의 저서 『1219, 끝이 시작이다』에 “사회통합을 외면하는 정권은 실패를 피할 수 없다”, “대통령이 제일 먼저 해야 할 과제는 자기네들 반대했던 사람들을 다 끌어안는 사회통합에 나서는 것”이라고 쓴 대목을 다시 한번 읽어보라고 주문했다.
“나는 애당초 탄핵에 반대했습니다. 박근혜 대통령이 그만해야 하지만 정치적으로 해결해야 한다고 생각했습니다. 탄핵하면, 사람들에게 한이 남아요. 한이 남으면 갈등으로 표출되거든요. 저는 노동운동을 오래 하면서 신념을 가졌어요. 100% 이기면 안 된다. 반대편 사람들에게 40%의 공간을 줘야 한다. 토요일마다 2만 명, 3만 명이 광화문을 휩쓸고 다녀요. 그 사람들 이야기를 들어보면, 저주예요. 한이에요. 이게 통합이 안 되고서야 어떻게 우리 사회가 편안해질 수가 있습니까?”
문재인 도와달라 했지만 사양
- 질의 :태극기 집회에 공감합니까.
- 응답 :“비대위원장 때 탄핵 반대를 당론으로 정하고, 광장에 나가 싸우자는 압력을 엄청나게 받았어요. 나는 안 된다고 했어요. 이미 국회에서 탄핵이 가결됐다. 헌법재판소에 넘어갔다. 우리 당도 헌법을 지켜야 한다. 광장에서 맞붙는다? 그러면 우리 사회가 어떻게 될까요? 더군다나 요즘 계엄령 이야기가 나오는 걸 보고 내가 정말로 잘했던 것 같다고 생각합니다.”
- 질의 :문재인 정부를 어떻게 평가합니까.
- 응답 :“남북문제 기조는 옳다고 생각합니다. 언젠가 이렇게 가야 해요. 북한이 핵무장을 하는데 그냥 보고만 있을 겁니까? 우리가 봉쇄하고, 제재한다고 핵무장이 안 되는 겁니까? 남북문제를 이렇게 놔둘 겁니까? 전 아니라고 생각해요. 그러나 여기에 두 가지 문제가 있습니다. 첫째는 국민을 통합해야 한다. 그게 안 되니까 오히려 큰 갈등이 생깁니다. 빨리 대못만 치면 된다고 하는데, 소용없어요. 국민통합에서 동력을 얻어야 합니다. 그리고 수도 서울에서 매주 벌어지는 이 사태를 ‘저 미친놈들, 하다 그만두겠지….’ 이거는 아니다. 문재인 정부가 해결해야 합니다. 두 번째는 좋으나 싫으나 미국을 무시하고 건너뛰면 안 됩니다.”
- 질의 :노무현 후보가 지원을 요청할 때 거절했었죠.
- 응답 :“노무현 후보도 도와달라고 했고, 문재인 대통령도 지난번 선거, 이번 선거 때 모두 도와달라고 했어요. 내가 자유한국당 가기 몇 주 전 만났어요. 노 대통령은 사람도 좋고 언젠가는 우리나라에 꼭 필요하겠지만, 아직 이르다고 생각했어요. 문 대통령 때는, 내가 한나라당 윤리위원장을 한 사람인데, 여기 갔다가 저기 갔다… 또 성직자로서 선거 캠페인을 하는 건 아니라고 생각했어요. 문재인 대통령이 싫어서 그런 게 아니라 ….”
- 질의 :앞으로 꼭 하고 싶은 일이 있다면?
- 응답 :“사람을 길러내는 겁니다. 주로 보수 정치 쪽으로…. 지금 인적 쇄신 해야 한다고 하잖아요. 그러면 대통령 후보는 누구? 서울시장, 경기도 지사 후보는 누구? 없잖아요. 민주당이나 정의당은 꾸준하게 밑바닥에서 공급되는 것 같아요.”
“그래서 노동의 현실을 알게 됐어요. 지금 예수님이 어디 계실까? 가장 힘들고 어려운 사람들… 이런 사람들과 같이 계시지 않을까? 목사라면 당연히 예수를 따라가야 한다. 그렇게 생각했어요.”
그는 신학교를 졸업하자마자 공장에 위장 취업했다. 영등포에서 14년 동안 도시산업선교를 했다. 4차례 구속되고, 3년여를 수감됐다. 중앙정보부 지하실에서 고문도 당했다.
그는 호주에서 2년간 신학을 공부하고 귀국한 86년 구로동에 갈릴리교회를 세웠다. 신자 여섯 명으로 시작해 2013년 은퇴할 당시 500명으로 불었다. 예산의 50% 이상을 이주 노동자 선교 등 교회 밖 사회 선교에 쓴다. 인 목사의 목회 활동을 장로회신학대학와 독일 교회가 3년 프로젝트로 연구하고 있다.
“이주 노동자 선교는 우리 교회가 우리나라에서 제일 먼저 시작했습니다. 이 사람들이 자체적으로 스스로 종교 활동을 할 수 있도록 독립교회를 만들었어요. 20여 년 동안 이주 노동자 830명에게 세례를 줬어요. 이 사람들이 자기 나라에 돌아가 스스로 교회를 만들었어요. 인도네시아는 14개, 몽골에 1개…. 선교사를 보낸 것도 아니고 스스로 교회를 세웠어요.”
북한 어린이를 매달 500명쯤 도왔다. 몽골의 사막화 방지사업도 하고, 독거노인들에게 토요일마다 도시락을 드렸다.
그는 현재 부산의 일신기독병원 이사장을 맡고 있다. 미얀마에 병원 설립도 준비하고 있다.
김진국 칼럼니스트 kim.jinkook@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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