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지수 대중문화전문기자
입력 : 2015.08.15 07:00 | 수정 : 2015.08.20 13:51 “가진 건 5백원 짜리 머리핀 한 개인 히피 예술가”
“20대에 카우보이, 파일럿 되려 했다”
“사랑, 슬픔… 감정 문제도 생각으로 해결”
- ▲ 공연 연출가 박칼린은 지난 20년간 국적, 장르, 장애, 성별을 경계 없이 뒤섞어 무대 안에 아름다운 하모니를 만들어 냈다. 올 여름부터 알베르 카뮈 원작 소설 ‘페스트’와 서태지의 음악을 믹스한 창작 뮤지컬 ‘페스트’의 연출을 맡아 기대를 모은다. 공연 오픈은 내년 7월이다./사진=고운호 기자
박칼린(48세)이 습관적으로 많이 내뱉은 명사는 3개다. 문제, 생각, 해결. 그리고 간간히 점프하는 하이톤으로 내뱉은 ‘기깔나게’라는 대체 불가능한 부사가 1개. 질문에 타격을 가하듯 ‘아니요’, ‘그건 모르죠’라는 부정적인 형용사와 동사 각 1개씩.
음악 감독 박칼린뿐 아니라 인간 박칼린을 이해하기 위해서 우선 국어 공부부터 좀 해야겠다.
‘문제’의 사전적 의미는 “해답을 요구하는 물음”이다.
‘생각’은 “사람이 머리를 써서 사물을 헤아리고 판단하는 작용”이다.
‘해결’은 문제와 생각을 합친 결과다. “제기된 문제를 해명하거나 얽힌 일을 잘 처리함.”
박칼린에 의하면 “당면한 문제를 생각을 통해 하나하나 해결해 나가는 게 인생”이다. 그녀는 이제까지 ‘문제, 생각, 해결’이라는 3단 논법대로 살았고, 그동안 ‘생각의 힘’으로 풀지 못한 문제는 없었다고 한다. 한번 태어난 인생, ‘기깔나게’ 살고 싶다는 박칼린.
그렇게 ‘나’라는 개인의 ‘흥’으로 기깔나게 살기 위해, 그녀는 사람들이 결론 내리는 대부분의 일반화와 단정을 거부했다. 1995년 ‘명성황후’로 대한민국 음악 감독 1호라는 타이틀을 달았지만, ‘오페라의 유령’ ‘아이다’ ‘시카고’라는 안전한 장르 안에만 머물지 않았다.
국내 최고 소리꾼들과 8개국 보컬리스트들을 융합시켜 아리랑을 웅장한 월드뮤직으로 재탄생시켰던 전주 세계소리축제(2013년), 550명의 장애인과 비장애인을 한데 모아 감동적인 개막 무대를 만들어 냈던 인천 장애인아시안게임(2014년)이 그 예다.
작년 3월부터는 근육질 남성들의 파격적인 19금 퍼포먼스 ‘미스터쇼’로 여자들의 열광을 끌어냈고(한국을 넘어 일본까지), 올여름엔 속초 영랑호에서 76m 고층 건물 위로 폭포가 쏟아져 내리는 하이퍼 파사 드쇼 ‘더 블루’(8월 23일까지 공연)를 연출하기도 했다.
박칼린이라는 다국적 예술가 안에서 장르, 장애, 장소, 시간, 성별이 경계 없이 뒤섞여 아름다운 하모니를 만들어 냈다.
문득 그녀가 대중적인 이름을 알렸던 2010년 KBS 2TV ‘남자의 자격’ 합창단의 감동적 장면이 떠오른다. ‘넬라 판타지아’의 우아한 선율과 함께 이경규, 이윤석 등 30명 단원 한 명 한 명과 눈으로 이야기하던 그 찬란한 소통의 현장이.
인터뷰를 위해 만나 본 박칼린은 예상을 훨씬 더 벗어나는 ‘전위적인’ 인물이었다. 어머니의 나라(리투아니아계 미국인)에서 첼로를 공부하고, 아버지의 나라(한국)에서는 판소리를 공부한 크로스오버 전력은 새발의 피에 불과했다.
어린 시절엔 모하비 사막에서 뱀을 잡으러 다니고, 20대엔 파일럿이 되기 위해 비행 학교에 다녔다. 지금은 산 아래 마당이 있는 집에 살며, 내비게이션도 달지 않은 차량으로 전국을 돌아다닌다. 기자의 질문에 지속적으로 ‘아니요’ ‘그건 잘 모르죠’라는 반문으로, 일반화의 오류에서 비껴나갔다.
이름값만으로 대한민국 공연계를 좌지우지할 정도의 메이저 음악 감독이면서도, 수중에 지니고 있는 물건중 자기 소유는 오백 원 짜리 집게 핀 하나가 전부인 여자.
현재 박칼린은 알베르 카뮈의 소설 ‘페스트’와 서태지 음악을 믹스한 일명 ‘서태지 뮤지컬’ ‘페스트’를 준비 중이다.
-문제를 즐긴다고 들었어요. 맞습니까?
“네. 문제 푸는 과정을 즐기고 풀었을 때 희열을 느껴요. 이왕 문제 많은 세상에 태어난 거면, ‘기깔나게’ 살다 가겠다는 생각입니다(웃음). 어차피 인생 자체가 재밌는 숙제인걸요.”
-영화 ‘인사이드 아웃’을 보면 우리 뇌의 감정 컨트롤 타워가 나옵니다. 기쁨, 슬픔, 분노, 까칠, 소심 등등. 어떤 감정이 당신을 지배합니까?
“슬픔은 굉장히 빨리 해결합니다. 제 뇌세포는 자동으로 움직여요. 분노나 슬픔도 원인을 추적해서 풀면 됩니다. 저는 혼자 밥 먹고, 혼자 공연 보고, 혼자 차 타고 다니면서 끊임없이 생각합니다.
생각을 하다 보면 뇌의 컨트롤타워에서 이미 많은 것들을 해결해 놓더군요. 문제가 생기지 않았어도 가상의 문제를 만들어서 굴리다 보면 답이 나옵니다. 평소에 시나리오 작성을 좋아해서 이런 재앙엔 이렇게 등등 선택과 대처가 빠른 편이에요. 다음에 그 문제가 생기면 그 시나리오를 끄집어내는 식이죠.”
-감정도 해결해야 할 문제의 하나로 보는군요.
“단순해요. 물이 앞에 있으면 수영하고, 산이 앞에 있으면 올라가고, 상황에 직면해서 계속 나가는 것밖에는 없지요. 저는 옛날 추억에 빠져 뒤로 가서 살고 싶지는 않습니다.
-과거를 되돌아보거나 미래를 계획하지도 않습니까?
“아니요. 저는 굉장히 현재 중심적인 사람이예요. 미래에 대한 계획은 “내일 자장면 먹어야지.” 정도. 오늘 매 순간에 완전 올인을 하면 미래도 풀리고, 과거도 해결되고, 그 세 시점이 동시에 밸런스를 맞추며 존재하게 돼요. 물론 다른 분들에겐 아닐 수도 있습니다.”
-여성을 위한 남성 19금 쇼 ‘미스터쇼’, 3D 하이퍼파사드쇼 ‘더 블루’ 등 지속해서 새로운 시도를 할 수 있는 동력은 무엇인가요?
“예컨대 퍼즐과 같은 거예요. 내가 풀어야 할 새로운 퍼즐이 거기 들어 있거나, 내가 그 퍼즐을 풀면서 배울 게 있다 싶으면 움직입니다.”
-정말로 문제적 인간이군요!
“좋아하는 요리는 계속해서 먹지만, 작품은 계속 다른 형식을 추구했어요. 사이즈가 전혀 다르거나 무용극이거나 넌버벌이거나 장애인 올림픽이거나…. 관객분들이 저를 뮤지컬 음악 감독으로만 아시는데, 저는 3년 마다 계속 장르를 바꿨어요.”
-’명성황후’로 대한민국 음악 뮤지컬 감독 1호라는 타이틀을 얻었는데, 어떤 의미가 있나요?
“큰 의미는 없어요. 이미 그전 작품에서도 음악 감독을 하고 있었지만, 정식 명칭으로 타이틀이 생긴 거고, 사람들한테 그렇게 알려진 것뿐이지요.”
-그 작품에 대해서는 어떻게 기억하고 있나요?
“말씀드렸다시피 저는 과거에 살지 않습니다. 한 3생(生) 전의 이야기 같아요.”
-지금의 관심은 어디에 가 있습니까?
“쇼(show)가 재미있어졌어요. 3시간짜리 대형 스토리텔링 뮤지컬보다 짧고 강력한 작품들에 눈길이 갑니다. 지금은 넌버벌(비언어극)이나 쇼에 관심이 있습니다.
-속초 영랑호에서 올렸던 하이퍼파사드쇼 ‘더 블루’는 어땠습니까? 76m 높이의 거대한 건물에서 폭포가 쏟아지는 영상이 정말 장관이더군요.
“재밌었어요. 벼락치기로 두세 달 만에 만든 건데(웃음), 나쁘지 않았어요.”
-거기선 뭐가 문제였죠? 사실 파사드는 공연보다는 거리 미술의 기법인데요.
“문제는 영상쇼로만 알고 있는 파사드 맵핑 기법을 어떻게 긴 시간 스토리텔링 기법으로 끌고 갈 수 있는가였죠.”
-그 퍼즐은 어떻게 풀었습니까?
“공연으로 표를 팔 정도까지의 영상파사드쇼를 위해서 ‘라이브를 넣자’고 했는데, 그 과정에서 원래 있던 스토리를 다 버리고 새로 만들었어요. 76m 건물사이즈와 50m 무대 사이즈를 만족시킬만한 스토리, 라이브, 영상이라는 3가지 퍼즐을 만들어서 하나씩 맞춰갔어요.
-시작할 때 이 퍼즐이 결국 완성될 것이라는 믿음이 있습니까?
“그건 모릅니다. 마지막 퍼즐 한 조각은 관객이 갖고 있으니까요. 내 몸이 할 수 있을 만큼, 내 머리가 돌아가는 만큼 최선을 다했으면 거기서 끊어야죠.
블루도 ‘폭포가 쏟아지는’ 스토리로 바꾸지 않으면 못하겠다고 제작사에 버텼어요. 큰 캔버스에 어울리는 큰 이야기가 필요했지요. 저는 언제나 공연이 펼쳐지는 공간을 먼저 봐요. 관객 입장에서 공간을 보고 거기 어울리는 극을 설계하려고 해요
미스터쇼 할 때도 “이게 될 거다 안 될 거다.” 그거는 깊게 고민 안 했어요. 다만 “한국 여자들이 남자하고 있을 때랑 여자들만 있을 때가 태도가 다르다”는 거는 확신했어요. 여자들이 그 쇼에 열광하는 걸 보고 가설이 증명됐죠.”
-즐겨 보는 TV 프로그램이나 오락거리가 있나요?
“범죄수사, 미스터리 물을 어릴 때부터 좋아했어요. 판타지, 마법, 추리소설도 좋아합니다.”
-뇌가 추리에 능한 방식으로 훈련이 돼 있군요. 사운드에도 굉장히 예민하지요?
“그런 것 같아요. 은행에 가면 직원들이 얘기하면서 볼펜 심을 눌렀다 뺐다 따각거리는데 그걸 들으면 뺏어서 던져버리고 싶어요(웃음). 엊그제는 마을버스 타고 가는데 옆에 아줌마가 껌을 씹으면서 딱딱 터뜨려서, 집까지 걸어갈 뻔했죠(웃음).”
-실례지만 어디 사세요?
“운중산 쪽에 살아요. 산에 사니까 마을버스를 타고 들어가요.”
-영감을 받기 좋은 장소군요.
“아니요. 너무 시끄럽습니다. 개구리 소리, 아이들 소리… 그래도 산에서 산 지는 한 15년 정도 됐어요.”
-박칼린 감독의 뇌가 가장 싫어하는 게 소음인가요?
“아니요. 지구 상에서 가장 싫어하는 것 두 가지는 거짓말과 샘내는 것이에요. 성격상 질투하는 꼴을 못 봐요.”
-공연계 톱의 위치에 있으면 시기와 질투는 세트로 따라올 텐데요.
“그건 저는 모르죠. 질투에 사로잡힌 사람들은 첫 느낌에 신뢰가 안 갑니다. 목적이 작품이 아니라 다른 사람 머리인 사람들은 인상이 흉해요. 그런 사람들은 자신의 인생도 목적이 이상해지고, 저는 그들과 시간을 보내는 걸 극도로 경계합니다.”
-신뢰는 어떻게 쌓습니까?
“신뢰가 신뢰를 만들지는 않아요. 그 사람이 하는 일의 퀄리티, 그 사람이 가진 인격의 퀄리티. 이 두 가지가 신뢰의 증거물이지요.”
-몇 년 전 ‘남자의 자격’ 합창단의 리더로 큰 활약을 했습니다. 무대에 서기 전 떨고 있는 이경규, 이윤석에게 따뜻하게 아이 컨택하며 “아이 믿 유(나는 너를 믿는다)”라고 말하던 장면이 인상적이었어요. 리더의 믿음은 그 사람의 잠재력에 대한 신뢰인가요?
“조금 다릅니다. 왜 상대를 믿느냐면 제가 뽑았으니까요. 그리고 그 이유가 그 사람들과의 짧은 대화나 노래 속에서 전체 공연을 위한 그 사람의 ‘역할’을 캐치했으니까요.
면접이나 오디션에서 사람들이 착각하는 게 있어요. 오디션을 보러 온 사람들의 실력보다(그것도 물론 중요하지만), 심사위원의 실력이 더 중요해요. 캐스팅을 정확히 하면 일은 50% 끝난 거예요.
오디션 보러 온 사람 중에 ‘얘, 얘, 얘, 얘’ 뽑으면 이 작품 되겠구나! 순간 결정을 하는 게 심사위원의 실력이에요.”
-면접에서 긴장할 사람은 심사위원이라는 말이지요?
“그렇습니다. 리더가 잘못 뽑으면 자기만 ‘생고생’하는 거예요. 춤 안 되는 사람이 오디션만 잘 봐서 왔는데, 정작 현장에서 춤 역할 제대로 못 하면 어떻게 되겠어요? 그건 그 사람 잘못이 아니에요. 캐스팅 잘못이죠.
반대로 그 과정에서 뽑은 사람은 믿어야지요. 그 서른 명(‘남자의 자격’ 합창단) 중에 이 사람은 베이스음을 잘 낼 것이고, 저 사람은 까불어서 분위기 메이커로 팀을 이끌 것이고, 저 사람은 음은 모르지만 성실하니까 가르쳐주면 외워서 할 사람이고…. 이게 다 파악이 된 거죠.”
-순식간에 그런 계산을 끝낸다?
“그게 리더가 하는 일이니까요. 정확한 역할을 주고 믿어주는 거죠.”
- ▲ 2015년 KBS 2TV ‘남자의 자격’ 합창단을 이끌면서 최고의 리더십을 보여주었던 박칼린 감독.
-사람에 대한 실용적이고 분명한 안목으로 뽑았기 때문에, 그걸 신뢰한다는 말이군요.
“맞습니다. 당사자는 몰라요. 본인은 키가 커서 뽑혔다고 하는데… 실제로 심사위원은 팔이 길어서 원숭이 역할에 어울릴 것 같아서 뽑은 것일 수 있거든요. 교육이라면 또 완전히 다른 문제예요. 배우러 온 사람들에겐 좋은 정보를 주고 계속 키워야 하는 거고요.”
-공연 예술의 형태라서 더 특수한가요? 가령 요즘에 기업은 채용 과정에서, 20대는 취업 과정에서, 서로 ‘캐스팅’에 공을 들여도 이런저런 시행착오를 겪고 있습니다만.
“한국의 입사·취업… 이런 것은 잘 모르겠어요. 다들 대기업만 겨냥하는 것 자체가 저하고는 안 맞아요. 저는 개인의 특성을 굉장히 중요시하는 사람이라, 왜 젊은 세대를 다 공장식으로 교육해 내보내는지 모르겠어요. 과감히 이야기하자면 분명한 자기 생각이 없어요.
...리더도 생각이 다른 사람이 없으면 존재할 수가 없어요. 긴밀하게 상부상조하는 관계지요.”
-8월 25일에 시작될 서태지 뮤지컬 ‘페스트’ 오디션도 굉장히 중요한 작업이리라 짐작됩니다. 서태지의 음악과 알베르트 카뮈의 페스트를 연결을 시킨다는 발상이 독특한데, 어떻게 시작됐습니까?
“제작사에서 결정했고, 저는 그 이후에 연출로 조인했습니다(웃음).”
-아바의 음악으로 만든 ‘맘마미아’나 김광석 음악이 오버랩되는 ‘그날들’ 같은 뮤지컬은 분위기를 예상할 수 있는데, 서태지의 뮤지컬은 어떨지 상상이 안 됩니다. 머릿속에서 그림이 어느 정도 나왔는지요?
“네. 그림은 확실히 있어요. 다만 한국에서 제대로 할 수 있는지는 모르겠습니다.”
-혹시 서태지 노래 중에서 좋아하는 곡이 있습니까? 일단 서태지 노래는 가사에 상당히 사회적 함의가 많은데요.
“저는 서태지 노래는 음악으로 들었어요. 오히려 많이 들리는 노래는 미국 가수 스팅의 곡이지요. 가사의 내용, 작곡법…. 그 ‘기깔나는’ 편곡까지. 마이클 잭슨은 비트가 가장 먼저 들리고 그다음에 작곡과 내용이 들려요. 서태지는 음악이 먼저 들리고 내용은 한참 뒤에나 들립니다.”
-화성적으로 훌륭하다고 보시나요?
“괜찮은 것들이 꽤 있습니다. “어떻게 이걸 갖다가 저기에 붙였지? 여기서 왜 비트를 이렇게 꺾었지?” 그 당시에 이런 방식으로 ‘음악을 볶았다’는 게 놀랍습니다.”
-가령 ‘환상 속의 그대가 있다.’라던가 ‘하여가’ ‘교실 이데아’ 등, 곡의 스펙터클에 주목하고 있습니까?
“제목은 잘 모릅니다. 다만 서태지 곡 중에 제가 좋아하는 곡들은 다 센 곡들이에요. 센 쪽을 또 제가 잘 볶아요.”
-서태지의 음악이 흑사병으로 죽어가는 ‘페스트’라는 어두운 뮤지컬에 어울릴 수 있겠다, 고 계산했나요?
“아니요. 가사는 좀 더 공부를 해봐야 할 것 같습니다. 그런데 사회적인 노래라는 게 도대체 뭘까요? 밥 말리도 저항 정신이 있는 노래를 많이 만들었지만, 그걸 듣는다고 제가 운동권으로 변하나요? 아니에요. 그냥 음악으로 듣는 거지요.
-밥 딜런은 어떻습니까?
“밥 딜런은 저하고는 아주 멀리 있어요. 시대의 목소리를 내는 사람이지만, 저한텐 다 동등한 음악일 뿐입니다.”
-사회적 아이콘이었던 서태지를 과소평가하고 있는 건 아닌가요?
“여기서 대본은 ‘페스트’라는 거지요. 카뮈가 쓴 흑사병 이야기가 대본이기 때문에, 그걸 중심으로 서태지 음악에서 매칭되는 것을 찾겠다는 겁니다. 그러고 나서 가사를 봤을 때 그것까지 맞아 떨어지면 오케이. 하지만 제 방식이 꼭 맞다고 생각하진 않아요.”
-곡에서 무엇이 먼저 들리느냐, 그 직관을 중요하게 생각하는군요.
“네. 작곡가마다 달라요. 스트라빈스키의 곡은 스토리가 먼저 들려요. 곡마다 다른 거죠. 말러 음악은 들으면 그림이 보여요. 해 뜨는 모습, 새가 날아가는 모습.
- ▲ 2015년 하반기에도 박칼린 감독의 스케줄은 빼곡하다. 뮤지컬 ‘라스트 파이브 이얼즈’ 연출, ‘시카고’ 음악 감독은 물론 ‘넥스트 투 노멀’에는 다이애너 배역으로 출연까지 한다./사진=고운호 기자
-사운드에 대해서 특별한 훈련을 거쳤나요?
“그건 모르겠어요(웃음). 제일 어려운 것 중의 하나이긴 해요. 듣는 것이 인생의 거의 반이죠. 눈은 계속 돌리면서 봐야 하는데, 귀는 360도로 열려있지요. 사람들이 듣는 것의 중요함을 인정하는 데 인색해요.
영화에서도 그림, 그림, 그림을 외치면서 가장 마지막에 음악을 붙이잖아요. 그런데 음악이 그림과 잘 붙었나 아닌가에 따라 그 영화 퀄리티가 엄청난 차이가 나요. 음악을 잘 만들면 작품의 50%가 해결된다고 생각을 해요.”
-그렇다면 음악이 아름다웠던 영화를 꼽는다면 뭐가 있을까요?
“그런데 또 저는 영화 볼 땐 음악을 안 들어요. 아니, 안 들려요. 영화는 영화만 보여요(웃음).”
-거세된 오페라 가수의 아름다운 목소리가 들리는 영화 ‘파리넬리’는 어땠나요?
“그 영화는 또 스토리만 보였죠. 그 친구의 애달픈 삶이.”
-인간의 음성이 신이 창조한 가장 아름다운 악기라는 데 동의하세요?
“아니요. 모든 사운드가 같이 존재하는데, 왜 목소리가 제일 아름답겠어요? 풍경 소리도 예쁘고, 이상한 소리는 그것대로 재미나고…”
-정말 다원주의자군요. 사소한 것도 단정하지 않으려는 듯 보입니다.
“뭐가 더 좋고 나쁜가, 결론이 없어요. 기준에 따라 달라지니까요.”
-명백하게 싫어하는 건 뭐죠?
“동물, 인간, 생명체에 대한 예의 없는 것은 못 참아요.”
-다른 문화권에서 작품 활동을 하고 싶다는 생각은 해본 적 있나요?
“전혀 없어요. 미국에서 하거나 서울에서 하거나, 속초 가서 하거나, 강원도 시골 가서 해도 상관없어요. 미국은 너무 느리고, 영국은 날씨가 안 좋고 음식도 맛이 없어요(웃음).”
-음악뿐 아니라 음식에 대한 애정이 남다른 것으로 알고 있어요. 디저트 브랜드 ‘올리버스윗’과 콜라보레이션해서 ‘박칼린 쿠키’도 런칭했지요?
“네. 제가 베이킹을 참 좋아해요. 어릴 때부터 엄마, 아버지, 언니들 가족 모두 요리하는걸 즐겼습니다. 부엌에서 몸의 생명감을 유지하며, 맛 좋은 것을 만들어 내고, 그걸 나눈다는 행위는 태초 때부터 인간에게 주어진 행복한 본능이에요. 소스도 직접 만들어서 배우들 불러 나눠 먹어요. 집에서 파티를 자주 하죠.”
-어릴 땐 어떻게 지냈습니까?
“모하비 사막에서 뱀을 잡으러 다녔어요. 뱀을 치워야 주변이 안전해지기도 했고, 또 뱀을 잡아다 코리아타운에 팔면 50불을 받았어요. 언니랑 같이 잡아다 냉동실에 쌓아두고 한두 마리씩 꺼내서 코리아타운에 내다 팔아서 용돈으로 썼지요.”
-참으로 야성적인 어린이였군요!
“엄마 아빠가 우리 딸들 셋을 다 그렇게 자유롭게 방목하셨어요. 그래도 두 분이 다 교육자셔서 도덕적으로는 엄청난 가이드라인 안에서 컸죠. 말이나 행동이 버릇없는 건 안 봐주셨어요. 인류에 대한 예의와 도덕을 세게 가르치셨어요. 극과 극의 밸런스랄까요.”
그런데 그 두 분은 누구를 키웠어도 그렇게 키웠을 거예요. 크리스마스엔 전 세계의 제자들에게 카드가 날아오지요. “아! 우리 부모가 이렇게 사는구나.” 느꼈어요. “너는 이런 아이야”라는 단정을 절대 안 하시고 계속 경험으로 알게 하셨죠.” 넓게 가이드라인을 주고.”
-부모님은 지금의 당신을 어떻게 생각하시나요?
“제가 하는 일을 자랑스러워한다기보다 제가 어떤 인간이 된 것에 굉장히 자랑스러워하시는 것 같아요. 그런데 그건 그분들이 나한테 밑바탕을 만들어주신 거니까. 한때 제가 아주 혹독한 자식이었어요. 부모라고 언니라고 봐주는 거 없이 조금이라도 비뚤어진 걸 못 참고 대들었죠. “당신들이 그렇게 가르쳤잖아”하면서요(웃음).“
-가족들은 어디 있나요?
“아버지는 은퇴해서 부산에 계시고, 어머니는 미국에 언니들이랑 계세요.”
-음악을 안 했다면 무엇을 하고 있을까요?
“저는 진짜 지금도 음악 안 해도 돼요. 재수 없다고 욕해도 어쩔 수 없어요. 포도를 재배하든, 요리하든 뭐하는가는 하나도 중요하지 않아요. 무슨 일이든 똑같은 마음으로 했을 거예요.
…. 그 중에서도 말 타는 걸 좋아하긴 했어요.”
-카우걸이 되고 싶었다는 거죠?
“네. 10대 후반부터 심각하게 몇 년간 말을 탔습니다. 어른이 돼서도요. 예쁘게 승마하는 것 말고, 완전 서부식으로 농장에서 산으로 일주일 동안 소몰이하러 가고, 말 타는 시합도 헸었어요. 완벽히 거친 완전 카우걸이었답니다.
20대에는 음악을 하다가 중간에 그만두고 파일럿이 되려고 비행 학교에 가기도 했어요. 음악보다 비행이 더 재미있었더라면 아마 조종사가 돼 있었을 거예요. 기계를 좋아해서 자동차 정비사가 되려고도 했어요. 지금도 집에 시계, 변기, 타일…. 웬만한 건 다 고칩니다.”
-핵심이 뭡니까?
“그 순간의 올인! 뒤 돌아보지 않고 똑바로 열심히 달렸다는 것. 쉴 때는 또 아무것도 안 해요. 밤새 칵테일 마시고 수영하고… 아무 룰 없이 늘어집니다.”
-한국에서는 삶 자체가 목적 지향적이기 때문에, 열심히 노력해서 전문가가 되는 삶을 꿈꾸지요. ‘아웃라이어’라는 책에 열광하면서 말이지요. 하루 중 언제가 가장 행복한가요?
“요즘은 아침에 차 한 잔 들고 고양이들과 산책할 때 행복합니다. 주변에 예술하는 제자들과도 자주 한가로운 시간을 보내요.”
-어떤 예술가를 존경합니까?
“작곡가로서 말러를 좋아하지만, 말러의 모든 작품을 좋아하진 않아요. 작품 1번에서 9번이 다 비슷하거든요. 야구 선수든 요리사든 다 마찬가지. 그 사람들이 만들어 낸 어떤 한순간의 결과물을 좋아할 뿐이지요.
한 인간에게 절대적 영향을 미칠 만큼 그렇게 전인적으로 위대한 예술가는 없다고 봐요.”
-슬럼프에 빠질 때는 어떻게 합니까?
“졸리면 자면 되는 것이고, 배고프면 밥을 먹으면 되고…. 우리는 사실 어마어마하게 육체적인 존재입니다. 음악 연주도 육체적인 것이에요. 폐에 호흡을 넣어야 목소리가 나오고, 손가락으로 쳐야 피아노 소리가 나와요.
그 육체에 귀를 기울이고 정비하듯이 해결해 나가면 돼요. 슬럼프라는 문제도 3일만 깊게 생각하면 해결됩니다.”
-사랑과 이별 같은 오묘한 문제도 3일 만에 해결 가능하다고 보세요?
“오! 어떤 한 인간이 다른 인간에게 그토록 깊게 영향을 미칠 수가 있겠어요. 사람들이 진지하게 생각을 안 해봐서 그래요. 깊게 생각하면 어떤 인간도 다른 한 인간보다 더 대단하지 않아요. 한 개인의 삶은 타인이 이해 불가능할 만큼 위대한 거예요.
그래서 사랑이든 이별이든, 타인의 결정을 존중할 수밖에 없어요. 편견 없이 예의를 갖추고, 섣불리 판단하지 않으면서요. 그게 생명체에 대한 예의인 거죠.”
-지니고 있는 물건중에 특별히 소중히 여기는 게 있습니까?
“물건에 별로 의미를 두지 않습니다. 소유욕이 없어요. 주로 실용과 효율, 편안함만 따지죠. 이 남성용 시계는 배우가 선물해 준 거예요. 이 셔츠는 큰 언니가 준 것, 이 가방은 뉴욕의 디자이너가 만들어 준 것, 이 목걸이는 후배가 준 것, 이건 작은 언니가, 이것도 남의 옷… 심지어 남자 거네요.
아! 내가 산 게 하나 있네요. 이 집게 머리핀…5백 원 짜리네(웃음).”
-진정한 히피 예술가를 보는 것 같군요. 마지막으로 내 삶의 자랑스러운 원칙 3가지를 꼽아본다면?
“첫째, 동물을 가까이하고, 제자들에게 동물 사랑을 가르친 것. 둘째, 부모님이 주신 가르침에 따라 세계를 여행한 것. 셋째, 아직까지 차량에 내비게이션을 달지 않은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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