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 및 연예

[김지수의 人터스텔라] 나영석PD, 쇼를 사랑한 남자

Shawn Chase 2015. 10. 3. 23:45

김지수 대중문화전문기자

 

 

입력 : 2015.09.19 06:00 | 수정 : 2015.09.19 08:57 “더 치열한 환경에 던져지기 위해 CJ E&M으로 옮겨… 인터넷 예능 ‘신서유기’는 지금이 최적의 타이밍… 김태호는 스티브잡스 나영석은 빌게이츠라는 말에 동의… 삼시 세끼-어촌 편에선 참돔과 문어 요리도 기대”

나영석의 로드무비는 할배들도 누나들도 세대를 넘어 수직적 평화의 세계를 완성하면서 더많은 사람들이 길을 떠나도록 거대한 운동에너지를 만들어내고 있다./사진=이진한 기자
나영석의 로드무비는 할배들도 누나들도 세대를 넘어 수직적 평화의 세계를 완성하면서 더많은 사람들이 길을 떠나도록 거대한 운동에너지를 만들어내고 있다./사진=이진한 기자

웃음은 에너지다. 힘들게 웃기면, 웃으면서도 힘이 든다. 나영석은 영리하다. 그는 폭소 대신 미소를 택했다. 코미디언에게 과한 미션을 부여하는 대신 매력적인 스타들의 힘을 뺀 리얼리티 드라마에 승부를 걸었다.

사실 나영석의 모든 것은 KBS ‘1박 2일’에서 나왔다. ‘1박 2일’ 게스트특집(‘여배우특집’ ‘조연특집’ 등)에 나온 인물들을 적절히 불러모아 tvN에서 ‘1박 2일’의 번외편으로 ‘꽃보다 OO’ ‘삼시 세끼’ 시리즈를 만들어 공전의 히트를 쳤다.

그다음엔 KBS ‘1박 2일’의 메인 멤버(강호동, 이승기, 이수근, 은지원)들을 모아 또 한 편의 번외편인 인터넷 방송 ‘신서유기’를 만들었다. 3분에서 13분 길이의 이 팝콘 예능은 오픈 2주일 만에 한국과 중국에서 각각 2천만 뷰를 가볍게 넘어섰다.

쇼란 무엇인가? 이제 쇼는 이벤트나 서커스가 아니라 공감과 성찰이며, 미디어의 형태에 상관없이 소통의 힘이 바로 시청률이다.

KBS라는 거대 비행장에서 CJ E&M으로, 인터넷으로 미디어를 가볍게 바뀌타면서 나영석은 언제든 스스로 날아오를 수 있는 날개를 달았다. 매일 먹는 밥처럼, 때가 되면 꿈꾸는 여행처럼, 나영석이 계속 우려먹어도 질리지 않고 또 우려먹을 게 있다는 게 놀라울 뿐.

어쨌든 그는 무에서 유를 창조하는 김태호 PD가 아니다. 김태호 쇼의 괴물 같은 에너지를 지닌 루저를 보면 내가 이 우주에 인간으로 태어났다는 사실에 짠해지지만, 나영석의 쇼를 보면 내가 뼛속까지 한국인의 유전자를 타고났다는 것에 심장이 뜨거워진다.

채플린과 백남준 사이에 선 나영석. 야전의 예능사령관은 끝없이 도전한다./사진=이진한 기자
채플린과 백남준 사이에 선 나영석. 야전의 예능사령관은 끝없이 도전한다./사진=이진한 기자

때때로 나는 그의 리얼리티쇼에 등장하는 사람들을 모두 만난 것 같은 착각이 들었다.

‘꽃보다 누나’에서 공항에 내리자마자 짐꾼에서 짐으로 전락한 이승기, ‘꽃보다 할배’에서 유럽의 복잡한 지하철역에서 장조림 통을 냅다 던져버린 백일섭, ‘삼시 세끼’ 정선 옥순봉 아래서 약 절구에 커피콩을 갈아 마시던 이서진, 만재도의 홍합으로 기가 막힌 짬뽕을 끓여내는 차승원, 땀 흘리며 먹고 조용히 설거지를 하러 사라지는 유해진, 어느새 자라 새끼를 낳은 강아지 밍키까지.

그가 출연자들과 제작진을 이끌고 바다를 갈 때도 산으로 갈 때도, 그 뻔한 파리의 에펠탑 앞에서 기념사진을 찍을 때나, 중국 서안의 어느 도시를 헤매고 다닐 때도 나는 그와 동행한다. 그리고 휴가가 끝난다. 모두가 짐을 싸서 떠나기 시작한다.

나영석의 쇼는 어쩌면 휴가를 갈 때마다 품게 되는 희망과 휴가가 끝날 때 느끼는 아쉬움에 관한 드라마다. 우리가 하루하루를 열심히 보내는 동안, 바다와 하늘도 그들의 하루하루를 열심히 보내고 있다는 사실이 기분 좋다.

나영석을 만났다. 야전 스타일로 하이엔드를 만들어 내는 우리 시대의 예능꾼. 강자만이 살아남는 신자유주의 시대에 너무 아등바등하지 말고 떠나라, 고 코치하는. 인생은 멋진 추억을 만들어가는 것이라는 미래완료형의 PD를!

-KBS를 떠나기 전에 아이슬란드로 여행을 떠났지요?

“네. 오로라를 보고 싶어서 갔어요. 정말 좋았습니다.”

-오로라를 보고 온 뒤 왜 KBS에서 CJ E&M으로 갔나요?

“저는 의외로 게으른 구석이 있어요. 그걸 알기 때문에 저를 더 치열한 환경에 던져놔야 해요. 그래야 살려고 발버둥 치다가 좋은 프로그램도 만들 수 있어요. 주변에서 “KBS에 있으면 정년 보장되는데, 그런 치열한 기업에 가면 너 금세 잘린다” 말렸지만, 어쩔 수 없지요.

고민은 하나였어요. 나라는 사람이 좋은 결과물을 내면 더 행복할까? 적당히 오래 살면 더 행복할까? 전 예상외로 성공 지향적인 사람이었던 거죠(웃음). 막판까지 밀어붙이고 그 결과를 보고 싶었어요.”

-최적의 환경이었나요?

“직장인들이 느끼는 건 다 비슷해요(웃음). 의무와 압박으로 자아분열도 오지만, 아직은 잘 되고 있으니까 여러모로 회사에서 이해를 받는 분위기죠.”

언제부턴가 자외선 차단제도 바르지 않아 얼굴이 점점 더 검게 그을리고 있다./사진=이진한 기자
언제부턴가 자외선 차단제도 바르지 않아 얼굴이 점점 더 검게 그을리고 있다./사진=이진한 기자

-원래 검은 얼굴이 더 까매지셨군요.

“며칠 전에 바다에 다녀왔어요. 인터넷에 신서유기 오픈하고 그 다음 날 만재도로 떠났어요.”

-성공을 누릴 시간도 없이 다음 도전지로 떠났군요. 왜 그렇게 급하신가요?

“후회도 돼요. 첫 방송을 한다는 것은 1년 농사 거두며 스태프들과 수확의 기쁨을 나누는 건데… 그걸 못 누렸죠. 그런데 어떤 기획이 생각났을 때 더 일찍 해도 안 되고 더 늦게 해도 안 되는 최적의 타이밍이 있는 거에요. ‘삼시 세끼-정선 편’ 마무리하고 ‘어촌 편’ 준비하는 과정에서 ‘신서유기’는 지금 이때 해야 한다는 그런 강력한 느낌이 왔습니다.”

-만재도는 어떤가요?

“....(회상하는 듯한 눈빛으로 웃으며) 만재도는 여름입니다. 여름의 끝자락이지요. 지난겨울엔 눈이 오고 강풍이 불고 하늘도 뿌옇게 흐린 날이 많았지만, 지금은 하늘도 바다도 모두 파랗습니다. 비 오고 난 뒤 맑게 갤 때는 아주 아름답지요.”

-지난겨울 ‘삼시 세끼’를 보며 굉장히 많은 위로를 받았어요. 다들 어떻게든 먹고 살겠다고 아등바등 살다 보면 ‘그 밥벌이의 투쟁’에서 밀려난 사람은 한 끼 한 끼가 참 비루하다 여겨지는데, ‘삼시 세끼’가 다시 그 정성스러운 한 끼 한 끼의 위로로 상처를 회복시켜주더군요.

“(함박웃음을 지으며)저는 그런 이야기를 들을 때 가장 행복해요. 지난겨울의 만재도는 또 수온도 낮고 그래서 유해진 씨가 감성돔 한 마리 잡으려고 고군분투하다가 우럭 몇 마리 잡고 끝이 났어요.”

-그런데 그걸 또 차승원 씨가 타박하지 않고 정성스레 멋들어지게 요리를 해냈지요. 지난겨울엔 거북손이라는 투박한 따개비가 ‘스타’가 돼서 마트에서 동났었는데, 여름의 만재도는 또 어떤 바다 생물을 보여주나요?

“참돔, 돌돔 이런 게 좋다고 해요. 그리고 운 좋으면 통발에 문어가 잡힌다고 해서 차승원 씨가 굉장히 고대하고 있어요. 그런데 사실 저희가 대단히 특이한 어종과 요리를 보여드린 건 아니에요. 김이나 홍합 모르시는 분 없잖아요. 그런데 그런 것들이 돌에 붙어서 자라고, 사람들이 함께 모여 앉아 채취해서 요리해 먹고… 그 과정을 지켜보면서 저도 재미있었어요. ”

-신서유기가 오픈 일주일 만에 중국에서도 한국에서도 2천만 뷰가 훌쩍 넘었습니다. 애초 바람을 훨씬 뛰어넘는 반응입니다. 미디어 환경의 변화에 대처가 빠른 편이죠?

“튀고 싶다는 생각은 없지만, 달라야 한다는 생각은 늘 있어요. 프로그램은 잔잔해도 저희는 늘 위기의식을 갖고 새로운 것을 다루려고 해요. 제가 아무리 바빠도 지금 아니면 후회할 거 같다는 생각에 ‘신서유기’를 런칭했다고 말씀드린 것도 같은 이유예요.”

-어떤 변화를 감지했나요?

“인터넷 플랫폼의 가능성이 보였고, 그걸 시험해보고 싶었어요. 삼성도 다음 휴대전화는 뭘 내놓을까, 고민하듯이 저희도 다음 프로그램은 뭐로 할까? 이 시장은 어디로 흘러갈까 계속 생각을 해요. 저희 직업이니까요.”


인터넷 플랫폼의 가능성을 시험해보고 싶었다는 나영석PD. 게임의 법칙이 계속 바뀌는 시장에서 광고주들이 가장 주목하는 온라인·모바일 플랫폼에 스스로 들어가 새로운 룰을 제안했다. /사진=이진한 기자
인터넷 플랫폼의 가능성을 시험해보고 싶었다는 나영석PD. 게임의 법칙이 계속 바뀌는 시장에서 광고주들이 가장 주목하는 온라인·모바일 플랫폼에 스스로 들어가 새로운 룰을 제안했다. /사진=이진한 기자

-‘신서유기’가 죄 있는 자들이 모여 서역으로 간다, 는 설정이긴 합니다만, 흠 있는 연예인들에게 지나친 면죄부를 주는 것 아니냐는 비판도 있어요. 강호동-세금, 은지원-이혼은 그렇다 치고 이수근-도박을 ‘상암동 베팅남’으로 은근슬쩍 넘어가는 데 대해 시선이 곱지 않습니다.

“제가 면죄부를 줄 수는 없어요. 그건 개인이 풀어가야 할 몫이라고 생각해요. 다만 인터넷은 선택적인 시청이니까 시청자들이 본인의 의지로 이 프로그램을 봤다면, 그런 부분은 마음속에서 이미 계산이 끝났다고 보는 거예요. 이수근 씨는 이 프로로 일종의 착시 현상을 줄 수 있겠지만, 다른 곳에서도 그 열광이 이어질지는 또 숙제로 남는 거고요.”

-유니끌로, 코카콜라, 말보로, 신라면 등 브랜드 이름이 그대로 노출돼서 불편하다는 시선이 있었어요. PPL에 대해서도 풀어야 할 숙제들이 있습니다.

“인터넷 예능 방송은 돈 버는 구조가 없기 때문에 PPL이 절대적으로 필요해요. 하지만 저희는 이번 방송에서는 PPL을 일부러 하나도 안 받았어요. 더운 날씨에 유니끌로 히트텍을 입는 걸 벌칙으로 정했는데, 그 순간에 협찬사 상품으로 바꾸고 이러면 이미 부자연스러워지거든요.

그 정도의 재기발랄함은 있어야 된다고 판단했어요. 미디어가 달라지면, 연기자도 제작진도 그 미디어에 맞게 태도가 달라져야 한다고 봐요. 뉴스와 팟캐스트가 다른 것처럼요.”

-나영석 감독은 그런 서브스트림을 메인스트림 안으로 끌어들이는 전략이 탁월합니다. 모험은 하지만, 완벽한 모험이라고는 볼 수 없어요. 패배에 대한 관리 능력이 불가사의할 정도인데, 알고 보면 사방에 안전판을 깔아뒀어요. 스타, 스토리, 캐릭터, 여행지, 게임, 자막, 편집 등으로 얄미울 정도로 간을 맞춰서요.

“저희는 비즈니스를 하는 사람이에요. 제가 만드는 프로그램은 큰 자본이 움직이기 때문에 절대 스타트업이 될 수 없어요. 저 영역에 들어가서 신제품을 내야 하는데, 10% 개발됐을 때 들어가면 헛돈 쓰는 것이고 100% 개발됐을 때 들어가면 뒷북치는 거예요.

일단 시점을 잘 보고 들어가서는 데이터, 시청 패턴 등을 연구해요. 인터넷이 기존 방송하고 뭐가 다른지. 언젠가는 우리가 씨를 뿌릴 소중한 일터니까요.”

-‘신서유기’도 기존 방송의 변주지만, 새로운 미디어가 주는 긴장을 적절히 활용했어요. ‘진행병’ 있는 ‘옛날’ 스타일 강호동이 이승기에게 인터넷 예능의 직설화법을 배우면서 성장하는 모습이라든가. 어떤 부분을 중점적으로 계산했나요?

“내용보다 ‘한 클립은 몇 분이어야 할까? 한 번 방송하는데 몇 클립을 낼까? 20편을 쪼개서 올릴까? 한꺼번에 올릴까?’ 이런 고민이 중요했어요. 그 경험치가 쌓이면 이 시장이 본격적으로 열렸을 때 능동적으로 대처할 수 있으니까요.”

-인터넷의 자유=욕먹을 각오, 이기도 합니다. 방송 중에도 눈치 없는 강호동이 “인터넷으로 하면 욕을 안 먹느냐?”고 우문을 해서 다들 실소하는 장면이 나오듯이요.

“다른 관점에서 저도 욕이 두렵죠. 욕을 한다는 건 시청자가 싫어한다는 건데, 시청자들의 관심과 사랑을 먹고 사는 저희로서는 그런 미친 짓을 해서는 안 되거든요. 그런데 저희는 그 외로운 줄타기를 하는 노하우가 좀 있다고 봐요.”

나영석의 시리즈 중 하나인 ‘꽃보다 할배’는 미국 지상파 NBC가 정식 판권을 수입해 ‘더 늦기 전에’라는 프로그램으로 리메이크했다./사진=이진한 기자
나영석의 시리즈 중 하나인 ‘꽃보다 할배’는 미국 지상파 NBC가 정식 판권을 수입해 ‘더 늦기 전에’라는 프로그램으로 리메이크했다./사진=이진한 기자

-원래 재미있는 사람인가요?

“아니요. 저는 그냥 보통 사람, 평범한 사람이에요. 제 프로그램 보면 아시겠지만, ‘신서유기’를 제외하고는(그건 웃음을 주는 게 직업인 사람들이 모여서 만든 거니까요), 그렇게 배꼽 잡고 넘어가면서 빵빵 터지는 게 없어요. 그저 심심하게 보다가 미소 짓는 정도지요.”

-할아버지들, 여배우들, 이서진, 차승원 같은 40대 남자가 ‘next who?’의 솔루션이 될 수 있다고 생각한 건 ‘1박 2일’의 게스트특집에서 어느 정도 실험을 거쳤기 때문일 테죠.

“그렇죠. 무엇보다 ‘웃기는 게’ 목적이 아니라 자기 스토리가 있다는 게 더 중요했어요. 생각해보세요. 아이돌 가수가 스토리가 많을까요? 이순재 선생님이 스토리가 많을까요? 당연히 후자지요.

그럴 때 질문하는 거죠. 개그맨, 아이돌 가수 MC로 쓰고 스튜디오에서 뚝딱 만드는 공식이 지금 메인스트림이라면, 한 발짝 물러나서 보자. 분명 다른 걸 원하는 사람이 있을 거다.”

-재미있는 건 분명 야전의 ‘서바이버’인데, 서바이버의 비정함이 없다는 거예요. 긴장은 있되, 출구가 보장된 상태의 안정된 긴장이라고나 할까요. 그런 툴은 처음부터 의도한 건가요?

“어떤 것이 옳다 그르다의 문제는 아니고 전적으로 취향의 문제라고 봐요. 예를 들어 일상생활이 100이라면 ‘정글의 법칙’ 같은 프로의 일상성은 거의 0에서 2 정도예요. 보통사람이 정글에 가서 그렇게 살아갈 이유가 없거든요. 하지만 그 프로는 또 그 나름의 의미가 있지요.

저도 ‘1박 2일’ 때 좀 더 가혹한 제한을 뒀어요. “잘 못 하면 굶길 거야.” “실패하면 입수시킬 거야.” “못해내면 밖에서 자야 해.” 그때는 그게 웃음이나 긴장을 주는 장치로 통했고 재미있었어요. 그런데 ‘삼시 세끼’에서는 제한이라는 장치는 최소화하고, 더 많이 허용을 해야 한다고 생각했어요.

“여기서 나온 거로 밥을 해먹어”라고 해도, 이서진 씨는 맘에 안 들면 읍내 나가서 이것저것 사오고, “고기는 안 돼!” 그래도 “손님 왔는데, 고기 한 상 차려야지.” 그러면 저희는 또 못 이기는 척 받아들이게 되고. 사실 예능의 기법으로 가자면 땅을 일궈서 화전민처럼 일을 시켜야 하는데, 저는 요즘엔 그런 것보다 일상생활과 더 가까운 모습으로 공감을 주고 싶었어요.”


인터넷 예능인 ‘신서유기’에서는 강호동이 저팔계, 이승기가 삼장법사, 은지원이 사오정, 이수근이 손오공 캐릭터를 맡았다./사진=이진한 기자
인터넷 예능인 ‘신서유기’에서는 강호동이 저팔계, 이승기가 삼장법사, 은지원이 사오정, 이수근이 손오공 캐릭터를 맡았다./사진=이진한 기자

-그런 편안한 리얼리티에 열광하는 건 실제 삶이 더 각박해졌다는 반증이겠지요? 예전엔 ‘no pain no gain’의 법칙으로 예능인들의 치열한 고통의 현장을 보고 재밌어했어요. 그런데 나영석의 코미디쇼가 슬쩍 그 패러다임을 비틀어 버렸어요. “웃기려고 너무 애쓰지 마. 좀 가만있어도 돼.”라고 하면서.

“제가 게스트들에게 제일 많이 들은 말이 “이렇게 가만있어도 돼?”였어요. 예전엔 웃기려고 재밌는 사람 여럿 불러다 계속 시끄럽게 했어요. 장소도 계속 바꾸고, 게임이나 미션으로 가차 없이 몰아치고, 그래도 시청자들은 지루하다고 채널을 돌려요.

그래서 생각했어요. 그렇게 웃고 싶으면 ‘개그콘서트’를 보면 될 테니, 나는 좀 고개 끄덕끄덕하며 “아우! 좋겠다! 나도 저렇게 한숨 자고 싶다” 하는 정서를 전달해주자.”

-그 말에 동의하는 게 작정하고 웃는 것도 참 에너지가 드는 일이에요. 그래서 한없이 느리고, 무계획적인 정반대의 예능이 또 힘을 얻는 것일 테지요.

“네. 기존 예능 하고 멀어진 거죠.”

-결과적으로 레드오션에서 블루오션으로 갔지만, 그 과정에 두려움은 없었나요?

“(얼굴을 감싸 쥐며)내가 잘 나간다고 오버했구나, 괴로워했어요. 그런데 예능 일을 오래 해오면서 그런 확신은 있어요.

첫째, 시청자들은 예상외로 다양한 취향을 갖고 있다. 둘째, 농담이나 몸개그가 예능의 전부는 아니다. 셋째, 어쨌든 달라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시청자는 등을 돌린다. 무엇보다 불안하지만, 계속 다른 시도를 해야 된다고 생각했어요.

-시리즈 포맷팅의 귀재다, 이런 말도 있습니다.

“제가 한 프로그램 ‘삼시 세끼’나 ‘꽃보다 OO’ 시리즈나 어떤 특별한 포맷이 있다고는 생각 안 해요. 그냥 인생의 어느 한 부분을 두부처럼 싹둑 잘라서 꺼내서 보여주는 거죠. 현미경으로 세밀하게. 여행도 그렇고 시골에서의 삶도 그렇고, 크게 대수로울 것 없지만 치열한 생존이 아닌 그냥 사는 것, 그냥 거기 있는 것이에요.

-그냥 사는 것, 그냥 거기 있는 것, 그래서 잊어버렸고, 그래서 소중하다는 거죠?

“그렇죠. 예를 들어 ‘복면가왕’처럼 복면을 쓰고 노래하면 “복면 안에 누가 있을까?”하는 질문은 특별한 거예요. 그런데 제가 하는 예능은 특별한 질문이 없어요. 하루를 지내다 보면 되게 빛나 보이는 부분이 있잖아요.

저도 기자님 만나기 전에 건물 앞 벤치에서 10분 정도 햇볕 쬐며 앉아 있었는데 정말 행복했거든요. 보통 그런 걸 까먹는데, 저희는 이서진, 옥택연이 아무 생각 없이 취해있는 그런 시간을 잡아서 보여주는 거죠.

그는 예측가능한 인생 사파리의 여유 있는 탑승객이고 싶어한다./사진=이진한 기자
그는 예측가능한 인생 사파리의 여유 있는 탑승객이고 싶어한다./사진=이진한 기자

-프로그램을 구성할 때 어떤 부분을 가장 많이 고민하나요?

“사람이죠. 사람이 프로그램 전부예요. 누가 이 프로를 이끌어갈까, 누구에게 조연출을 맡길까.”

-너무 편안하게 간다는 느낌도 있어요. 의외인 듯 뻔하다는.

“겉보기에 그렇게 하는 게 제 목표예요. 인간에 대한 무한 애정, 동시에 달라야 한다는 무한 강박이 있죠. 일단 기존 예능 풀에 없던 사람을 쓰고 싶고, 기존 풀에 있었어도 내가 다른 모습을 보여줄 자신이 있으면 해요.”

-이서진 씨는 의외의 발견이었죠? ‘꽃보다 할배’와 ‘삼시 세끼’ 시리즈는 이서진이라는 캐릭터가 예능이라는 구조 안에서 길들여 지지 않고, 삐죽이, 일명 ‘시크하게’ 자기 하고 싶은 대로 했기 때문에 나온 결과라는 생각도 듭니다만.

“중요한 발견이었죠. 저희끼리 “서진 형 덕에 2년 잘 버텼다.” 그래요(웃음). 제가 CJ E&M으로 넘어와서 한 중요한 두 프로젝트가 다 그 사람으로 시작했어요. ‘꽃보다’ 시리즈나 ‘삼시 세끼’ 시리즈 다 이서진이라는 사람이 레퍼런스를 만들어 줬지요. 제가 생각하는 리얼리티쇼의 주인공으로 아주 근접한 사람이에요.”

-‘예능감’이 있는 사람의 특징이 뭔가요?

“이 세상에 이서진 씨보다 재밌는 말, 몸동작, 표정을 가진 사람은 많아요. 한마디로 웃음기술자들이지요. 그런데 리얼리티쇼의 주인공은 좀 달라야 해요. 이서진은 재미있다, 없다, 수준이 아니라 한마디로 ‘문제적 인간’이죠(웃음). 뒤틀려 있다고나 할까요.

가장 큰 매력은 솔직함이에요. 카메라 앞에서 누군들 다 보여주고 싶겠어요. 그런데 이 인간이 감추질 않아요. “나는 편하게 하라고 했으니 진짜 편하게 할 거다. 어떻게 가공해서 쓰건 그건 당신들 몫이다.” 그런 각오는 희귀해요. 어떻게 보였으면 좋겠다, 라는 사심, 본능적인 필터링이 아예 없어요. 게다가 까칠하면서도 따뜻해요(웃음).”

-차승원 씨는 마초 중의 마초, 승부욕 강한 남자, 일명 ‘이겨야 사는 남자’인데, 나영석의 남자로 다시 태어난 것 같습니다.

“이미 예능으로 알려진 사람이라도, 내가 다른 걸 느끼면 캐스팅한다고 한 게 딱 차승원 씨 케이스예요. 저한테는 아줌마 같은 모습이 잡혔고, 그런 모습이 여태껏 방송에 드러나지 않았다는 게 놀라웠어요.

본인이 감추고 싶었거나, 연출자가 중요하게 여기지 않았거나 둘 중 하나겠죠. 제가 볼 땐 충분히 매력적이었어요. 까칠해 뵈고 허우대 멀쩡한 사람이 섬세하고 따스하고 요리도 잘하고(MSG도 서슴없이 잘 치고).

-결국 예능적인 끼라기보다는 극적인 앵글로 그 사람의 의외성, 인간적 매력을 극대화하는 거네요. 출연자 캐릭터에 대해서 전적으로 책임을 져야 한다고 생각하나요?

“물론 최소한의 도리를 해야겠다는 생각은 해요. 책임까진 아니어도 끝나고 나서도 출연자가 “하길 잘했다”고 생각하기를 바라면서요.

프로젝트 끝나고 나면 3그룹이 웃어야 해요. 1번 시청자, 2번 제작진, 3번 출연자. ‘꽃 할배’도 이순재 선생님이 이걸 보고 기분 나빠하지 않을까? 걱정도 하지만 결론은 여행의 추억을 떠올리며 좋아하시겠다, 하는 쪽으로 가는 거죠. 그래야 장기적으로 프로그램에 도움도 되고요.

중요한 건 그런 심지가 있는 분을 고르는 거예요. 그걸 방송에 드러내도록 저희는 다만 믿음을 주도록 노력하는 것뿐이죠.”

출연자가 구설수에 오르면 가장 힘들다는 나영석 PD./사진=이진한 기자
출연자가 구설수에 오르면 가장 힘들다는 나영석 PD./사진=이진한 기자

-방송하면서 언제가 가장 힘들었나요?

“망하는 건 나만 탓하면 되니까 괜찮은데, 출연자가 구설수에 오를 때가 제일 힘들어요. 가령 ‘삼시 세끼’ 어촌 편을 장근석이랑 같이 준비했는데, 안 좋은 일이 터졌어요. 그러면 공인으로 판단해서 프로에서 빼지만, 저는 함께 뒹굴었던 추억이 있으니 그런 결정을 내리면서도 참 견디기 힘들어요.

‘1박 2일 때 김종민도 중간에 군대에 갔어요. 연예인은 잘 먹고 잘사는 거로 생각하지만, 그들도 사정이 있는 터라, 군대는 일종의 실직 같은 거예요. “2년 2개월 동안 사고 치지 않고 돌아오면 멤버로 받아주겠다”고 제가 약속을 했고, 실제 컴백을 했는데 1년 동안 욕을 먹었어요.

예능 프로는 즉흥적으로 소비되기 때문에 시청자는 재미있으면 선이고 재미없으면 악이거든요. 그럴 때 스트레스를 좀 받았어요. 아이러니한 건 지금 ‘1박 2일’에서 남은 오리지널 멤버가 김종민이고, 지금 기둥 역할을 하고 있다는 거예요(웃음).”

-출연자들에 대한 애정이 정말 각별하군요.

“식구처럼 생각되죠. 몇 년을 함께 했는데, 방송 끝났다고 그 추억이 사라지는 건 아니거든요.”

-왠지 더 마음이 쓰이는 사람은 누구지요?

“은지원 같은 캐릭터를 좋아해요. 주인공으로 부각되지 못하고 옆에서 양념 역할을 하지만, 솔직하고 과감하고 또 굉장히 프로페셔널해요.”

-나PD의 예능은 새로운 여행지 새로운 캐릭터의 조합에도 그것의 목표가 안전한 귀가이기 때문에 공감대를 끌어내는 것 같습니다. 성향이 보수적인 편인가요?

“KBS에 있었기 때문에 갖게 된 정체성이 분명 있어요. 방송은 공공재고 선한 역할을 해야 하고, 아빠가 봐도 재밌어야 하고, 있어야 할 자리로 돌아와야 끝이 나고…

항상 밸런스를 생각해요. 나는 이익을 만들어내는 회사원이면서도, 시청자들에게 영향을 끼치는 사람이다. 방송도 그래요. ‘꽃보다 할배’ 시리즈도 희한한 나라보다는 익숙한 프랑스, 스위스 정도를 가고, ‘삼시 세끼’ 마당에도 타조가 아니라 개나 염소 정도를 기르는 거죠.”

-자기 한계를 극복하려는 김태호 PD의 주인공들에 비해 나영석 PD의 주인공들은 보통 사람들의 허허실실을 다루고 있어요. 김태호 PD를 경쟁자로 의식하시나요?

“...(어색한 웃음) 사람마다 취향이 다른 것 같아요. 저는 더 보편적인 재미를 추구하고(웃음), 그래서 나이 드신 분들이 좋아해 주시지요.”

-김태호 PD는 스티브 잡스에 나영석 PD는 빌 게이츠에 비유에는 동의하나요?

“아! 잡스나 게이츠… 그분들은 이 사실을 알까요(웃음)? 너무 과해요. 너무 과하다는 것만 빼고는 동의해요. 전 챌린지도 좋아하지만, 기본적으로 안전지향적이예요.”

-예능을 통해 최종적으로 어떤 목표를 이루고 싶은가요?

“높은 연봉과 사회적 성공(웃음). 저는 일할 때가 제일 힘들고 제일 좋아요. 예능은 저에게 직업이에요. 과거엔 통일을 당겨보려고 개성도 갔다 오고, 백두산도 가고 그랬는데, 이젠 그런 과한 목표는 안 세워요. 거창하게 사회적 역할 생각하기보다, 그냥 사람들에게 긍정적인 힘을 주면 좋겠다, 정도입니다.”

-다음 비전은 뭔가요?

“아직은 없어요. 여러 신호를 살피고 있어요. 그전까지는 돌려막기를 하는 거고요(웃음).”

-‘삼시 세끼’ 어촌과 농촌에서 가장 맛있었던 음식은 뭐죠?

“어촌에서는 홍합 짬뽕이고요. 농촌에서는 고기 구워서 상추 쌈 싸먹는 게 제일 맛있어요(웃음).”

어차피 인생은 상투적이다. 우리는 그 상투성에 기대 하루하루를 산다. 그렇게 나영석의 쇼가 ‘살아가는 것이 즐겁다.’ ‘우리는 참 괜찮은 친구들로 둘러싸여 있다’는 메시지를 주어서 다행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