송희영 주필
입력 : 2015.10.03 03:20
고령화·低성장 등 일본의 늪… 20년 時差 우리도 빠져들어 부동산價 유지 여부도 불투명
4年 前 꺾여버린 경제 흐름을 전·현 정부 모르거나 무시해… 앞으로도 사막행군 각오해야
한국개발연구원(KDI) 조동철 수석이코노미스트는 거시 경제 분석과 전망에 관한 한 최고 수준의 전문가이다. 그가 지난 8월 한 세미나에서 '우리 경제의 역동성― 일본과의 비교를 중심으로'라는 자료를 냈다길래 거들떠보지도 않았다. 한껏 풀이 죽어 있는 우리 경제에서 무슨 역동성(力動性)을 찾겠다고 저러나 싶었다.
하지만 최근 조 박사의 강의를 듣고 나서 다시 자료를 들춰봤더니 내용은 딴판이었다. 인구 고령화나 성장률 추세, 그리고 주력 수출 품목까지 20년 시차(時差)를 두고 우리가 일본을 뒤쫓아가고 있다는 것이었다. 그것도 '놀라울 정도로' 유사하게.
이코노미스트로서 입을 다물 수 없었던 것은 각종 그래프가 일치하는 현상이었으리라. 일본이 20년 침체에 빠지기 전에 그렸던 여러 경제 지표 그래프가 20년 뒤 한국의 그것들과 하나인 것처럼 오버랩 되고 있기 때문이다. 유일한 예외는 주택 가격이었다. 한국의 부동산 시장은 아직 폭락하지 않고 있다. 그는 일본 같은 급격한 부동산 버블 붕괴는 가능성이 낮다고 보았다. 한국이 일본 뒤를 쫓아간다는 감각은 많은 경제인이 공통으로 갖고 있었다. 다만 상세한 통계 자료를 기반으로 분석한 심층 보고서는 작년 말부터 하나둘씩 나오고 있다. 국책 연구소가 일본식 함정에 빠질 수 있다고 걱정하기 시작한 것은 그나마 다행스러운 일이다.
1950년대 이후 가난한 나라에서 벗어난 성공 사례는 10개국에 불과하다. 빈곤국이 선진국 꽁무니에 다가가려면 경제 규모(GDP)가 60년간 매년 평균 6%씩 성장해야만 한다. 오만, 보츠와나, 적도기니는 석유나 다이아몬드 덕분에 빈곤에서 빨리 탈출했다.
싱가포르와 홍콩은 조그만 도시국가라는 특수성을 감안해야 한다. 굶주림에서 탈출시켜야 할 농촌 인구가 적었다. 외국인 투자를 유치한 뒤 고작 몇백만 명에 불과한 국민의 임금을 적당히 올려주는 전략으로 성공했다.
반면 일본·소련·대만·한국·태국은 원래 배고픈 농촌 인구가 많았다. 그래서 국가 주도로 농촌 인구를 도시로 대거 이동시켜 산업화에 투입했다. 균질적인 교육으로 평균적인 근로자들을 육성해 중산층을 만들었던 것도 공통된 전략이었다. 그중에서 소련은 지나치게 계획경제에 집착하다 몰락했고, 태국은 아직도 농촌 문제를 해결하지 못해 정국이 수시로 뒤집히는 혼란을 겪고 있다.
일본은 유일하게 누구나 인정하는 선진국에 등극한 사례다. 중국이 경제 규모는 일본보다 거대해졌지만 국가 발전 단계를 보면 태국 언저리에 있다고 볼 수 있다. 중국이 일당 체제를 끝까지 고집하며 부(富)를 소수 엘리트가 독점하는 상황이 장기화되면 소련처럼 되지 않을 것이라는 보장은 없다. 그래도 우리가 대만과 함께 일본의 뒤를 따라가고 있는 것만은 자부심을 가져도 된다.
문제는 우리가 일본이 빠진 20년 전의 함정에 제 발로 기어 들어가고 있다는 사실이다. 그 당시 일본 정부는 성장률이 매번 3~4%는 될 것이라고 했다. 채점 결과는 0.5% 아니면 1% 성장에 그쳤다. 3% 이상 성장을 장담하다 2%대 성적표를 내놓는 지금의 한국 정부와 다를 게 없었다.
일본 정부가 현실 진단에 실패한 결과 저성장과 물가 하락이 겹치는 디플레이션이라는 불황은 해마다 깊어질 수밖에 없었다. 우리 정부나 한국은행도 아직 디플레이션 상태는 아니라고 하지만 언제까지 그 입장을 고수할지 자못 궁금하다.
기업 간 거래 가격을 표시하는 생산자 물가지수는 2012년 4월 최고점 108.97을 찍은 이후 줄곧 하락해 지금은 100.88에 머물러 있다. 40개월 사이 7.4% 떨어졌다. 기업 간 거래 물가 가격이 하락하는데 소비자 물가가 더 내리지 않고 언제까지 버틸 수 있을까. 정부가 바겐세일을 권유하기 전에 백화점·마트들이 할인에 나서지 않을 수 없을 것이다.
조동철 박사는 "일본과 같은 부동산 버블 붕괴 가능성은 낮다"면서도 말끝을 흐렸다. 일본처럼 집값이 반 토막 나거나 7~8할까지 폭락하지는 않더라도 요즘과 같은 강보합세가 지속될 것이라고는 확신하지 못한 것이다.
우리의 비극은 정치마저 일본의 실패를 뒤따라가고 있는 점이다. 일본 정치가 경제가 중병(重病)에 걸렸다고 인정한 것은 성장이 한계점에 도달한 후 10년이 지나서였다. 2001년 등장한 고이즈미 총리가 처음 일그러진 제 얼굴을 제대로 보았다. 그는 혁명적인 행정 개혁, 부실기업 정리 등을 단행해 한때 경기 흐름을 바꾸었다.
그러나 우리의 전·현직 대통령들은 경제 흐름이 4년 전 2011년을 고비로 덜커덩 꺾였다는 것을 모르거나 무시하고 있다. 대선 후보들이나 여당·야당이 절박한 경제 상황을 걱정하는 일도 없다. 누가 다음 정권을 잡든 10년 이상 멀고 먼 사막길 행군을 각오해야 할 듯하다.
하지만 최근 조 박사의 강의를 듣고 나서 다시 자료를 들춰봤더니 내용은 딴판이었다. 인구 고령화나 성장률 추세, 그리고 주력 수출 품목까지 20년 시차(時差)를 두고 우리가 일본을 뒤쫓아가고 있다는 것이었다. 그것도 '놀라울 정도로' 유사하게.
이코노미스트로서 입을 다물 수 없었던 것은 각종 그래프가 일치하는 현상이었으리라. 일본이 20년 침체에 빠지기 전에 그렸던 여러 경제 지표 그래프가 20년 뒤 한국의 그것들과 하나인 것처럼 오버랩 되고 있기 때문이다. 유일한 예외는 주택 가격이었다. 한국의 부동산 시장은 아직 폭락하지 않고 있다. 그는 일본 같은 급격한 부동산 버블 붕괴는 가능성이 낮다고 보았다. 한국이 일본 뒤를 쫓아간다는 감각은 많은 경제인이 공통으로 갖고 있었다. 다만 상세한 통계 자료를 기반으로 분석한 심층 보고서는 작년 말부터 하나둘씩 나오고 있다. 국책 연구소가 일본식 함정에 빠질 수 있다고 걱정하기 시작한 것은 그나마 다행스러운 일이다.
1950년대 이후 가난한 나라에서 벗어난 성공 사례는 10개국에 불과하다. 빈곤국이 선진국 꽁무니에 다가가려면 경제 규모(GDP)가 60년간 매년 평균 6%씩 성장해야만 한다. 오만, 보츠와나, 적도기니는 석유나 다이아몬드 덕분에 빈곤에서 빨리 탈출했다.
싱가포르와 홍콩은 조그만 도시국가라는 특수성을 감안해야 한다. 굶주림에서 탈출시켜야 할 농촌 인구가 적었다. 외국인 투자를 유치한 뒤 고작 몇백만 명에 불과한 국민의 임금을 적당히 올려주는 전략으로 성공했다.
반면 일본·소련·대만·한국·태국은 원래 배고픈 농촌 인구가 많았다. 그래서 국가 주도로 농촌 인구를 도시로 대거 이동시켜 산업화에 투입했다. 균질적인 교육으로 평균적인 근로자들을 육성해 중산층을 만들었던 것도 공통된 전략이었다. 그중에서 소련은 지나치게 계획경제에 집착하다 몰락했고, 태국은 아직도 농촌 문제를 해결하지 못해 정국이 수시로 뒤집히는 혼란을 겪고 있다.
일본은 유일하게 누구나 인정하는 선진국에 등극한 사례다. 중국이 경제 규모는 일본보다 거대해졌지만 국가 발전 단계를 보면 태국 언저리에 있다고 볼 수 있다. 중국이 일당 체제를 끝까지 고집하며 부(富)를 소수 엘리트가 독점하는 상황이 장기화되면 소련처럼 되지 않을 것이라는 보장은 없다. 그래도 우리가 대만과 함께 일본의 뒤를 따라가고 있는 것만은 자부심을 가져도 된다.
문제는 우리가 일본이 빠진 20년 전의 함정에 제 발로 기어 들어가고 있다는 사실이다. 그 당시 일본 정부는 성장률이 매번 3~4%는 될 것이라고 했다. 채점 결과는 0.5% 아니면 1% 성장에 그쳤다. 3% 이상 성장을 장담하다 2%대 성적표를 내놓는 지금의 한국 정부와 다를 게 없었다.
일본 정부가 현실 진단에 실패한 결과 저성장과 물가 하락이 겹치는 디플레이션이라는 불황은 해마다 깊어질 수밖에 없었다. 우리 정부나 한국은행도 아직 디플레이션 상태는 아니라고 하지만 언제까지 그 입장을 고수할지 자못 궁금하다.
기업 간 거래 가격을 표시하는 생산자 물가지수는 2012년 4월 최고점 108.97을 찍은 이후 줄곧 하락해 지금은 100.88에 머물러 있다. 40개월 사이 7.4% 떨어졌다. 기업 간 거래 물가 가격이 하락하는데 소비자 물가가 더 내리지 않고 언제까지 버틸 수 있을까. 정부가 바겐세일을 권유하기 전에 백화점·마트들이 할인에 나서지 않을 수 없을 것이다.
조동철 박사는 "일본과 같은 부동산 버블 붕괴 가능성은 낮다"면서도 말끝을 흐렸다. 일본처럼 집값이 반 토막 나거나 7~8할까지 폭락하지는 않더라도 요즘과 같은 강보합세가 지속될 것이라고는 확신하지 못한 것이다.
우리의 비극은 정치마저 일본의 실패를 뒤따라가고 있는 점이다. 일본 정치가 경제가 중병(重病)에 걸렸다고 인정한 것은 성장이 한계점에 도달한 후 10년이 지나서였다. 2001년 등장한 고이즈미 총리가 처음 일그러진 제 얼굴을 제대로 보았다. 그는 혁명적인 행정 개혁, 부실기업 정리 등을 단행해 한때 경기 흐름을 바꾸었다.
그러나 우리의 전·현직 대통령들은 경제 흐름이 4년 전 2011년을 고비로 덜커덩 꺾였다는 것을 모르거나 무시하고 있다. 대선 후보들이나 여당·야당이 절박한 경제 상황을 걱정하는 일도 없다. 누가 다음 정권을 잡든 10년 이상 멀고 먼 사막길 행군을 각오해야 할 듯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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