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내정치

국회 첫 미투에 女보좌진들 "터질게 터졌다" "국회야말로 미투 본산"

Shawn Chase 2018. 3. 7. 00:11

이현승 기자

출처 : http://news.chosun.com/site/data/html_dir/2018/03/06/2018030601520.html




입력 : 2018.03.06 14:32 | 수정 : 2018.03.06 14:33


지난 19대 국회에서 더불어민주당 의원을 보좌하던 5급 여성 비서관이 남성 보좌관으로부터 3년 간 성폭력을 당했다고 폭로해 파문이 일고 있다. 올해 초부터 확산된 미투 운동은 그동안 국회에선 잠잠한 듯 보였다. 하지만 여성 보좌진들 사이에선 “터질 게 터졌다” “국회야말로 미투 운동이 시급한 곳”등의 반응이 나오고 있다.

5일 서울지방변호사회관에서 연출가 이윤택의 성폭력 피해자들과 변호인단이 모인 가운데 열린‘문화예술계 내 성폭력 사건 공동대책위원회’기자회견에서 참석자들이 피켓을 들고 진상 규명과 가해자에 대한 엄중한 처벌, 연극계 성폭력 근절을 촉구하고 있다. /연합뉴스


국회 5급 여성 비서관이라고 밝힌 J씨는 5일 국회 홈페이지 국민제안 게시판에 “2012년부터 3년여 간 근무했던 의원실에서 벌어진 성폭력으로 인해 힘든 시간을 보냈다”고 밝혔다. 그는 “직장 상사 관계로 묶이기 시작한 뒤 장난처럼 시작된 성폭력이 일상적으로 반복됐다”며 가해자인 남성 보좌관 H씨가 부적절한 언행과 신체 접촉을 했다고 했다.

가해자로 지목된 H씨는 현재 다른 여당 의원실 4급 보좌관으로 소속돼 있었지만, 이날 면직 처리 됐다. 해당 의원은 이날 입장문에서 “저의 보좌관이 불미스러운 일에 연루됐다는 점에서 매우 송구스럽게 생각한다”며 “의원실에서는 해당 보좌관을 면직 처리하기로 했다”고 밝혔다.

◇ 익명 게시판에선 들끓었던 국회 미투…성폭행·외모평가 제보

국회 내에서 피해자가 실명을 밝히고 미투 운동에 동참 한 건 이번이 처음이지만 조짐은 있었다. 그동안 국회 보좌진들이 이용하는 소셜미디어(SNS) 게시판인 ‘여의도 옆 대나무 숲’에 2월 들어 익명으로 의원과 보좌진의 부적절한 언행을 지적하는 글이 자주 올라왔다.

한 직원은 익명으로 “몇 년 전 모 비서관에게 성폭행을 당했다”며 “당시 기록을 남겨뒀기 때문에 얼마든지 신고할 수 있었지만 하지 못했다”고 썼다. 그는 “그 비서관의 회관 내 인맥이나 영향력이 두려웠고, 경찰 조사를 받으면 회관에 기자들 내부보고용 카톡 혹은 경찰 정보과 발 찌라시가 돌 수도 있는데 제 신원이 밝혀질 것이 두려웠다”고도 했다.

보좌진에 대한 외모 평가를 일삼는 의원을 향한 일침도 있었다. 또 다른 직원은 야당의 국회의원을 향해 “여자 비서는 의원님 기분 좋으라고 있는 꽃이 아니다”며 “엄연히 직원이고 일을 하려고 온 사람들인데 이 방은 여자 비서가 많아서 기분이 좋다느니, 너는 나이가 좀 들어 보인다는 등 어쩌고 저쩌고”라고 적었다.

국회에서 첫 미투가 나오면서, 지금까지 익명에 그쳤던 제보가 실명으로 전환될 가능성도 제기되고 있다. 민주당 젠더폭력 태스크포스(TF) 소속 정춘숙 의원은 “여의도 옆 대나무 숲에서 계속 이야기가 됐고 사람들이 공식적으로 이야기를 하기 시작했다”며 “두고 봐야 알겠지만 더 나오지 않겠나 생각한다”고 했다.

◇ "보좌진은 의원 사(私)노비"…막강한 권력이 만든 적폐

정치권에서 ‘미투 제보’가 이어지는 건 국회의원과 고위 직급 보좌진이 가진 막강한 인사권과 관련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 국회의원은 현재 4급 보좌관 2명, 5급 보좌관 2명, 그리고 6~9급 비서와 인턴을 포함해 대략 9명을 보좌진으로 둘 수 있다. 그런데 공채 시스템이 별도로 없고 채용과 승진, 그리고 퇴사까지 모두 국회의원이 결정한다. 상당수 의원은 하위 직급 보좌진 채용을 4급 보좌진에게 일임한다.

일반 기업에서는 찾아볼 수 없는 독특한 고용 구조 때문에 의원과 고위 직급 보좌진들이 막강한 권력을 갖게 되고, 보좌진들이 ‘사노비화’ 된다는 비판이 그동안 수차례 제기돼 왔다. 잘리지 않기 위해 의원과 고위 직급 보좌진의 눈치를 볼 수 밖에 없고, 이 과정에서 강력한 상하관계가 형성된다는 것이다. 처음 국회에서 미투 운동에 참여한 비서관 J씨도 “먹고 살아야 했기 때문에 다른 곳으로 갈 수 있는 경력이 쌓일 때까지 사직서를 낼 수 없었다”고 했다.

그런데 국회는 4급 보좌진의 93%가 남자다. 본지가 국회사무처 정보공개청구와 국회인적자원시스템 전수조사 등으로 국회 보좌진 현황을 파악 해보니 20대 국회의 4급 보좌관 중 여성 비율은 7%에 불과했다. 수년째 6~8%에 머물고 있다. 300명에 가까운 국회의원이 2명을 둘 수 있는 4급 보좌진 모두 남자를 쓰거나 간혹 1명씩 여자를 둔다는 뜻이다. 반대로 8~9급의 경우 여성 비율이 60~70%에 이른다.

◇ 여야 막론하고 대응 마련 분주…상담센터 만들고 회식 자제령

5일 안희정 충남도지사는 수행비서를 성폭행 했다는 폭로가 이어진 이후 사퇴 의사를 밝혔다. / 조선일보DB


민주당에선 안희정 충남도지사의 성폭행 폭로에 이어 보좌진의 부적절한 언행이 알려지며 당혹스러워 하는 분위기다. 이날 민주당은 당 내 젠더폭력 태스크포스(TF)를 특별위원회로 격상한다고 밝혔다. 당 내 성폭력신고상담센터를 설치해 전담 인력을 둬 상담, 조사를 하겠다고 밝혔다. 여성 의원들이 여성 보좌진의 이야기를 듣는 자리도 마련하기로 했다.

야당에선 민주당에 대한 공세를 이어 가면서도 내부 대응방안 마련에 분주하다. 자유한국당 도 여성폭력 방지를 위한 태스크포스(TF)를 구성할 예정이다. 바른미래당은 미투와 관련해 국회 여성가족위원회에 긴급 현안질의를 건의했다.

보좌진 사이에서 회식을 자제하는 분위기도 생겨나고 있다. 야당 의원실의 한 보좌관은 “회식 자리에서 불미스러운 일이 자주 일어난다는 불만이 꾸준히 제기돼 왔다”며 “자체적으로 회식은 당분간 않기로 의견을 모았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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