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문학

[Science&] 가을 타는 뇌를 위해..명상, 과학을 만나다

Shawn Chase 2017. 11. 3. 18:29

김윤진 입력 2017.10.27. 15:42


종교 색채 신비주의 물 빼고 과학으로 재탄생한 명상치료
명상후 뇌 MRI 촬영해보니..뇌 커지고 두꺼워지는 현상
뇌 자극해 감정 공감능력 개선..스트레스호르몬 코티솔 반토막

 동·서양에 부는 명상 열풍…구글·인텔도 직원 정신건강 관리 위해 도입

잔잔하던 마음에 성난 파도가 인다. 가을이 되면 우리의 마음은 쉽게 감기를 앓는다. 가슴이 텅 빈 듯 허무함이 밀려들거나 지독한 고독에 휩싸인다. 처음에는 대수롭지 않게 넘기지만, 무기력한 나날이 되풀이되면 헤어나올 수 없는 감정의 수렁에 빠져든다. 찬바람이 불고 달력장 하나가 또 넘어가는 걸 보며 가슴이 턱 막혀온다면 당신은 혼자가 아니다. 현대인이라면 누구나 자기 몫의 무게를 하나쯤은 짊어지고 산다. 우울, 불안, 초조 등 요동치는 마음을 다스리기 위해 최근 서양에서는 '명상' 열풍이 불고 있다. 종교적 색채와 신비감은 싹 걷히고, 그 빈자리를 '과학'이 꿰찼다. 명상이 인간의 뇌 구조를 변화시켜 감정조절을 가능케 한다는 여러 인지·신경과학적 증거들이 이 같은 유행에 불을 붙이고 있다. 심지어 첨단산업의 요람이자 혁신과 속도를 생명으로 하는 실리콘밸리에서도 명상이 새로운 트렌드로 자리 잡는 추세다. 구글·인텔 등의 기업에 속속 도입되고, 미국에서만 매년 1200여 편의 명상 관련 논문들이 학술지에 쏟아져 나온다.

내년 6월 문을 여는 KAIST 명상과학연구소의 초대 소장이자 하버드대 선임연구원인 미산스님은 "서양에서는 1979년 매사추세츠의대의 존 카밧진 교수가 8주 마음챙김 명상(MBSR) 프로그램을 만든 이래 지난 40년간 명상의 스트레스 완화 효과 등에 대한 체계적 연구가 이뤄지고 있다"며 "특히 뇌 구조 및 뇌파가 어떻게 변화하는지, 코티솔(스트레스 호르몬) 분비가 어떻게 달라지는지가 주된 관심 대상"이라고 설명했다.

 명상하면 뇌가 두꺼워진다

이 같은 명상 과학 연구의 핵심은 '뇌의 가소성(plasticity)'에 있다. 가소성이란 경험이나 외부 자극에 의해 물리적으로 변하고 연일 두께가 달라지는 뇌의 성질을 가리킨다. 지난 4일 국제학술지 '사이언스 어드밴스트'의 표지를 장식한 것도 명상에 관한 연구였다. 명상이 뇌의 형태를 바꾸고 사람과의 관계에서 오는 스트레스를 경감시킨다는 두 편의 논문이 동시에 실렸다. 세계가 점점 더 연결될수록 군중 속 외로움도 더해가는데, 명상이 이를 달래주고 타인과의 '공감의 끈'을 이어준다는 게 연구의 요지다. 직장, 학교에서 협력하거나 상호작용할 때 필요한 역량까지도 수행을 통해 기를 수 있다는 얘기다. 연구를 이끈 타니아 싱어 독일 막스플랑크 인지·뇌과학연구소 교수는 "뇌가 변형되는 가소성에 대한 많은 연구가 있었지만 인간의 '사회적 뇌'와 관련된 연구는 드물었다"며 "매일 짧더라도 집중해서 명상을 한다면 다 큰 성인이라도 사회적 지능을 높일 수 있음을 입증한 것"이라고 밝혔다.

연구에 따르면 명상은 종류별로 각기 다른 대뇌피질 부위를 자극한다. 막스플랑크 연구소는 20세부터 55세까지의 연령층 300명을 대상으로 세 가지 명상법을 가르친 뒤 나타나는 뇌의 변화를 자기공명영상(MRI)으로 촬영했다. 실험은 명상법에 따라 3개월씩 총 9개월에 걸쳐 이뤄졌으며, 일주일에 6일, 하루에 30분씩 진행됐다. 첫 번째는 '주의 집중(Attention)'이라는 가장 고전적인 명상법이었다. 참가자들은 정신이 산만해지지 않도록 주의를 한 곳에 오롯이 집중시키고, 호흡 하나하나에 신경쓰면서 머리부터 발끝까지 감각에 귀를 기울인다. 이 같은 나홀로 수행의 결과 우뇌 전전두엽 피질(PFC)에서 전대상 피질(ACC)로 이어지는 뇌의 앞쪽 부분이 두꺼워지는 것이 확인됐다. 집중력을 높이고 내면의 감정을 조절하는 두뇌 부위가 발달된 것이다.

 사회적 스트레스도 낮춰

여럿이 함께하는 명상의 치료효과는 또 달랐다. 두 번째로 적용한 '자비(Compassion)' 명상은 다른 참가자에게 감정을 이입하면서 연민과 감사 등의 정서를 배우는 방법이다. 2인 1조를 이룬 참가자들은 하루 10분씩 짝과 교감을 나누며 서로의 말을 경청하고, 힘든 감정을 위로하기를 반복한다. 명상이 끝나고 난 뒤 뇌를 관찰한 결과 우뇌의 연상회에서 시작하는 대뇌섬, 배외측 전전두피질 등 부위가 커졌다. 사랑에 빠질 때 활성화되는 대뇌섬에 자극이 가해졌다는 얘기다.

이 같은 명상법은 '나'에 대한 주관적 기대, '남'에 대한 신뢰 등에 관여하는 뇌를 활성화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뇌 중심부에서 '감정 컨트롤타워' 역할을 하는 변연계의 대상회, 해마 등의 크기도 증가했다. 미산스님은 "현재 일종의 자비 명상을 국제표준에 맞게 개발 중인데, 자비 명상이 사랑 등의 감정을 느끼는 뇌의 부위를 발달시킨다는 것이 과학적으로도 입증됐다"며 "뇌가 바뀌면 자연히 표정도 달라지고, 자책이나 자기 비하를 많이 하던 사람들도 있는 그대로의 자신을 받아들이는 데 도움이 된다"고 말했다.

세 번째 명상법은 '마음챙김(Mindfulness)'이었다. 어떤 평가의 잣대나 주관도 개입하지 않은 채 한 발 떨어져 자신과 다른 사람들의 생각을 관찰하는 방식으로, 모든 명상의 근간이다. 타인의 관점을 객관적으로 취하고, 온전히 받아들이도록 훈련하게 된다. 이 같은 훈련의 결과로는 뇌의 인지기능을 통제하는 좌뇌의 복외측전전두피질과 후두엽, 우뇌의 중측두회 등이 발달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스트레스에도 차별화된 반응

뇌 구조뿐 아니라 스트레스 호르몬에도 차별화된 반응이 나타났다. 외부로부터의 급성 스트레스에 반응하는 '코티솔' 분비량이 변화한 것이다. 주저자인 베로니카 엥거 막스플랑크연구소 교수는 "사회적 정서나 인지와 관련된 두 가지 종류의 명상을 한 참가자들에게서 코티솔 분비가 최대 51%까지 감소했으며, 특히 마음챙김의 스트레스 완화 효과가 두드러졌다"며 "다른 사람 말에 공감하고 서로의 관점을 이해하는 경험은 사회적 기대나 평가, 외부 시선에 대한 두려움을 가라앉히고 참가자들을 이런 요인들로부터 '예방 접종'하는 효과가 있다"고 설명했다. 아울러 명상 종류별로 생리적 변화에는 차이가 있으나, 참가자들이 주관적으로 인식한 스트레스는 모두 감소했다고 덧붙였다.

숙련된 수행 전문가뿐만 아니라 초보자들이 3개월 프로그램처럼 짧은 명상에 참여해도 신체에 변화가 있었다. 학교에 다니는 아이, 직장생활을 하는 성인을 불문하고 다양한 세대들이 부담 없이 마음수련을 통한 효용을 가져갈 수 있다는 설명이다. 싱어 교수도 "세계가 더 연결되고 사회가 복잡해질수록 상호작용과 협력을 위한 '부드러운 기술'이 요구된다"며 "사회생활이나 관계에서 오는 스트레스에 덜 취약해지고 자신과 타인의 마음을 돌보려면 마음챙김과 같은 명상이 필요하다"고 설명했다. 미산스님은 "명상도 부작용이 있기 때문에 혼자 시도하기보다는 이왕이면 과학적 효과가 검증된 프로그램들을 따라 체화한 뒤 삶 속에서 실천하는 게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의사·심리학자 "명상효과, 보다 엄밀한 검증 필요"

현대인의 정신건강을 지키기 위한 명상이 급속도로 확산되자 과학계에서는 이를 염려하는 목소리도 나오고 있다. 신뢰할 만한 증거가 열풍이 번지는 속도를 뒤쫓아가지 못하고 있다는 지적이다.

지난 10일 국제학술지 '심리과학 조망(Perspectives on Psychological Science)'에 투고한 세계 각국의 전문가 15명은 "명상이 종교의 신성함을 벗어 버리고 과학으로 거듭나기 위해서는 보다 엄밀한 검증과 임상이 도입돼야 한다"며 "명상이 보편화될수록 잘못된 정보와 허술한 연구 방법론으로 인한 피해도 커질 수 있다"고 주장했다. 최근 몇 년간 명상이 우울증과 중독, 스트레스 완화에 효과가 있다는 주장이 언론 보도, 과학 저서, 논문을 통해 쏟아져 나왔지만, 과장된 측면이 있다는 것이다. 브라운대 의대 정신과 조교수인 윌러비 브리턴은 "명상이 행해지는 조건, 강사의 훈련기준, 그 배경에 깔린 기초과학 원리를 신중하게 따지지 않고 누구에게나 명상이 좋은 양 추천하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다"며 "안전하지 않거나 부작용이 있을 가능성은 무시되고 있다"고 말했다. 호주 멜버른대학 심리과학 교수는 니컬러스 밴덤은 "명상을 폄하하려는 의도가 아니라 좀 더 과학적 증거를 반영해 엄격해지길 바라는 것"이라며 "2007년부터 2014년까지의 명상 프로그램들을 보면 대개 근거가 빈약하며, 개념과 연구 방법론도 모호하다"고 덧붙였다.

정의와 연구방법론의 표준화가 가장 시급하다는 게 전문가들의 중론이다. 대중 매체와 과학 저술들이 명상의 개념조차 일관성 있게 정립하지 못했다는 것이다. 가령 '마음챙김'이라는 용어도 그 원리나 세부 요건을 이해하지 못한 사람들이 무분별하게 사용하다보니 관련 연구의 초점이 흐려지고 비교검증이 어려워졌다. 미국 국립보건원(NIH)에 따르면 현재까지 마음챙김에 기반한 MBI 명상 프로그램의 30%만이 임상의 첫 단계를 통과했으며, 9%만이 클리닉의 엄격한 통제 아래 효능을 검증 받았다. 밴덤 교수는 "기존 선행연구들을 더 무작위적인 실험 설계와 대조군 설정을 한 뒤 다시 연구할 필요가 있다"고 밝혔다.

자기공명영상(MRI)과 뇌파 검사와 같은 기술 발전은 명상의 과학화를 새로운 경지로 이끌 전망이다. 다만 MRI도 검사할 때 사람이 얼마나 꼿꼿하게 서 있는지, 심호흡은 어떻게 하는지 등 자세의 영향을 받는데, 숙련된 명상가의 경우 MRI에 더 적합한 신체 상태를 유지할 수 있기 때문에 이 역시 왜곡의 소지가 있다는 설명이다.

전문가들은 명상은 만병통치약이 아니며, 불충분한 연구가 이 같은 오해를 부추길 수 있다고 입을 모은다. 저자들은 "인지 및 정서와 관련된 현상을 지나치게 단순하게 해석하다 보면 혜택이 과장될 수 있고, 사회의 긴급한 수요를 맞추는 데 이용될 수 있다"며 "명상도 정교하게 설정된 상황에서 특정 사람들에게 도움을 줄 수 있을 뿐 모두에게 유익한 것은 아니다"고 말했다. 이어 "자칫 돈과 시간을 낭비하고 불필요한 부작용까지 가져갈 위험이 있다"고 덧붙였다. 미시간대 심리학과 교수 데이비드이 마이어는 "충분히 유망한 분야인데도 설익었을 때 수확하려다 정당한 노력까지 빛을 못 볼 수 있다"며 "앞으로 나아가기 전 한발 물러서서 재정비할 때"라고 말했다.

[김윤진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