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문학

[Science &] 대형산불·온난화..본래의 맛과 향 잃어가는 와인

Shawn Chase 2017. 11. 3. 18:29

원호섭 입력 2017.10.13. 15:44


"와인은 신이 인간에게 내려준 선물이다." 기원전 4000년 전부터 인간과 함께해 온 와인. 고대 그리스의 철학자 플라톤은 와인에 대한 애틋함을 '신이 내린 선물'이라고 표현하기도 했다. 와인은 지난 한 해 전 세계에서 259억ℓ가 생산될 정도로 인간의 사랑을 듬뿍 받고 있지만 최근 고통을 받고 있다. 기후 변화로 와인 생산지는 점점 줄고 있고 코르크 마개의 '질' 역시 지구 온난화로 나빠지고 있다. 미국 주요 와인 생산지인 캘리포니아주 나파에는 큰 산불이 번지기도 했다. 50년 뒤에도 인류는 맛 좋은 와인을 마음껏 마실 수 있을까.

와인은 포도가 주재료인 만큼 포도의 품종, 재배 상태 등이 큰 영향을 미친다. 이런 점에서 지난 50년은 와인을 생산하기에 적합한 시기였다. 햇빛이 강하게 내리쬐면 포도나무의 광합성이 활발해지면서 단맛을 내는 '포도당'이 많이 만들어진다. 포도당이 많아 당도가 높으면 자연스럽게 알코올 도수가 높아진다. 이 같은 변화는 와인에도 그대로 반영되고 있다.

프랑스 국립농학연구소(INRA)의 연구에 따르면 지난 1972년 이후 프랑스 주요 와인 산지의 기온이 높아지면서 포도의 숙성을 향상시켜 와인의 품질이 높아지고 수확량 또한 많아진 것으로 조사됐다. 프랑스 보르도 지역의 와인은 1980년대 초반의 와인 알코올 도수는 12.5%였지만 현재는 16%로 상승했다. 프랑스만의 일이 아니다. 2011년 영국 케임브리지대 연구진이 학술지 '와인 경제학 저널'에 발표한 논문에 따르면 캘리포니아에서 생산되는 와인의 당도와 알코올 도수 역시 지구 온난화의 영향으로 꾸준히 증가하고 있는 것으로 조사됐다.

하지만 계속되는 기온 상승은 와인에 나쁜 영향을 미칠 가능성이 높다. 높은 기온은 포도의 수분을 뺏어가 광합성을 방해하기 때문이다. 포도 재배지는 점점 북쪽으로 이동할 수 있다. 서노마와 나파 등 미국 캘리포니아 주요 와인 생산지의 기온은 크게 변함이 없었지만 온난화로 봄철 야간 기온은 빠르게 증가하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포도나무는 다른 식물과 마찬가지로 따듯한 낮에 광합성을 하고 기온이 떨어진 밤에는 호흡을 줄이며 '쉬는 시간'을 갖는다. 이때 광합성으로 생성된 포도당은 포도로 이동해 포도의 당도와 향이 좋아진다. 야간 기온이 증가하면 포도의 당도가 떨어져 와인의 질에도 영향을 미칠 수 있다.

이 같은 경고는 과거 수많은 연구가 뒷받침한다. 2013년 UC캘리포니아 지구과학과 리 한나 교수 연구진이 '미국립과학원회보(PNAS)'에 발표한 논문에 따르면 50년 뒤에는 프랑스와 이탈리아, 스페인의 와인 산지 중 5분의 4에 해당하는 지역이 포도 재배에 적합하지 않은 기후로 바뀌는 것으로 나타났다. 호주와 미국 캘리포니아 지역 역시 마찬가지였다. 린 웹 호주 멜버른대 토지식품연구소 교수는 "호주 포도 생산은 기후 변화로 인해 2030년까지 생산량이 현재보다 25%가량 줄어들 것"이라고 말했다. 포도는 약 25년 이상 살 수 있는데 현재 기후에 맞춰 포도나무를 심게 되면 투자 수익은 감소할 수밖에 없다.

값비싼 프리미엄 와인의 경우는 상황이 더욱 좋지 않다. 프리미엄 와인에 사용하는 포도는 상당히 예민한 특성을 갖고 있는 만큼 기후 변화에 더 취약하기 때문이다. 마이클 화이트 미국 유타주립대 교수는 "지구의 기온이 2020년 1.2도, 2050년 2.5도, 2080년 4.4도 상승하게 되면 더운 지방에서 자라는 포도 생산이 늘면서 프리미엄 와인 생산이 타격을 받을 수 있다"며 "미국에서 생산되는 프리미엄 와인 생산량의 약 80%가 감소할 수 있다"고 경고했다.

미국 나파 지역의 산불 역시 와인의 품질을 떨어뜨리는 원인이 될 수 있다. 지난 9월 독일 뮌헨공대 연구진은 학술지 '농업 식품 화학' 저널에 산불로 발생한 연기가 와인에 미치는 영향을 분자 수준에서 규명하는 데 성공했다. 호주나 이탈리아 남부와 같이 화재가 자주 발생하는 지역 인근에서 생산되는 와인에서는 간혹 '재'나 '그을음' 등의 '스모키향'이 나곤 한다. 냄새나 향을 나타내는 방향족 물질은 식물의 '당'에 달라붙은 뒤 다시 방출되곤 하는데 이를 '글리코실화 반응'이라고 한다. 연구진은 이 반응이 포도와 와인에도 그대로 적용된다고 설명했다. 포도나무 인근에서 화재가 발생할 경우 연기의 방향족 화합물이 날아와 포도나무의 잎과 열매를 통해 내부에 있는 포도당과 결합하고, 이는 '수용성 물질'로 변하면서 포도에 저장된다. 연구를 이끈 카트야 하트 뮌헨공대 교수는 "발효 과정을 거치면서 연기 냄새는 더 강해진다"며 "결국 산불이 잦은 지역에서 생산된 와인의 품질은 저하될 수 있다"고 말했다.

와인의 상징이기도 한 코르크 마개의 재료인 '코르크 참나무' 역시 지구 온난화를 피해갈 수 없다. 지난 2014년 포르투갈 리스본대 연구진이 '실험실물학회지'에 발표한 논문에 따르면 유럽 남서쪽과 아프리카 북서쪽에서 자라는 코르크 참나무의 껍질 두께가 얇아지고 있는 것으로 조사됐다. 와인의 코르크 마개를 만들기 위해서는 나무껍질의 두께가 최소 27㎜는 돼야 하지만 지구 온난화로 3~10㎜ 수준으로 떨어지고 있다는 결과였다. 이유는 '열충격 단백질(Heat-shock protein)'의 부족이었다. 연구진이 고품질과 저품질의 코르크나무의 유전자를 비교한 결과 저품질의 코르크나무에서는 열충격단백질의 활성화가 적은 것으로 조사됐다. 열충격단백질은 세포분열을 돕고 기온 상승과 같은 외부 환경의 변화에 버틸 수 있게 한다. 열충격단백질을 적게 만드는 대신 코르크나무는 자외선에 견디는 데 도움이 되는 '페놀성 화합물'을 더 많이 만들어내고 있었다. 지구 온난화로 강해진 자외선에 버티기 위해 코르크나무 나름대로 진화하고 있는 것이다. 연구를 이끈 리타 테이세리아 리스본대 교수는 "코르크 마개와 스크루 캡이 와인 맛에 어떤 영향을 미칠지 모르겠지만 코르크 마개를 사용하는 와인은 앞으로 바꿔야 할지도 모른다"고 말했다.

[원호섭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