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제와 경영

[승계시대 뉴리더] 정의선① 자동차 제국의 황태자…모터쇼서 영어발표 깜짝 등장

Shawn Chase 2015. 9. 8. 17:54

 

  • 설성인 기자
  • 입력 : 2015.05.28 14:45 | 수정 : 2015.05.29 11:21 2015년 4월 3일(현지시각) 중국 허베이성 창저우에서 열린 현대자동차 중국 제4공장 기공식 현장. 중앙 연단에 정의선 현대차 부회장이 올라가 축사를 시작했다. “허베이성 창저우 공장 설립을 계기로 중국 파트너와 이룬 ‘현대 속도’와 ‘현대 기적’을 다시 쓰고자 합니다.”

    그의 강한 어조는 현대 신화를 일군 할아버지 고 정주영 명예회장과 뚝심 경영으로 현대·기아차를 세계 5위 자동차 메이커에 올려놓은 정몽구 회장을 연상케 한다.


    2015년 4월 3일 중국 허베이성 창저우에서 열린 현대차 중국 제4공장 기공식에서 정의선 부회장(왼쪽 첫번째)이 박수를 치고 있다./현대차 제공
    2015년 4월 3일 중국 허베이성 창저우에서 열린 현대차 중국 제4공장 기공식에서 정의선 부회장(왼쪽 첫번째)이 박수를 치고 있다./현대차 제공

    이날 행사에는 정의선 부회장이 현대차그룹을 대표해 참석했다. 재계는 정 부회장이 중국 4공장 행사를 주도한 것은 ‘그에게 힘이 실리고 있다’는 의미로 해석했다. 지난해 말 중국 4, 5공장 증설 발표 직전까지 현대차그룹은 현지 정부의 허가가 나지 않아 애를 태웠고, 정몽구 회장이 직접 진두지휘에 나서는 등 필사의 노력을 펼쳤기 때문이다. 그런데도 정 회장은 중국 4공장 기공식이라는 중요행사를 아들에게 맡겼다. 정 부회장은 이날 행사를 통해 세계 최대 자동차 시장 중국을 개척하겠다는 의지를 대외에 천명했다.

    정 부회장의 발언 역시 의미심장하다. 현대 속도와 현대 기적 같은 단어는 중국 산업계에서 불도처처럼 누적판매 1000만대를 가장 빨리 달성한 현대·기아차의 저력을 의미한다. 이 단어를 인용한데는 할아버지와 아버지에 이어 3대를 잇는 현대 특유의 추진력을 발휘하겠다는 의지가 담겼다.

    정 부회장이 이끄는 현대·기아차는 숙원사업이었던 중국 공장 증설을 계기로 2018년까지 중국 생산능력을 270만대까지 키워 1위 폴크스바겐, 2위 GM과 본격적인 선두 경쟁에 뛰어들 태세다.

    정 부회장이 아버지의 그늘에서 벗어나 본격적인 대외 행보에 나서고 있는 사례는 비단 중국 공장 기공식 만이 아니다. 올 1월 미국 소비자가전전시회(CES) 2015와 북미국제오토쇼 2015 참관, 올 2월 보후슬라프 소보트카 체코 총리 현대차 울산공장 안내, 올 4월 두바이 ‘현대차 세계 대리점 대회’, 이번달 러시아 시장점검까지 숨가쁘게 전 세계를 동분서주하고 있다. 아버지를 따라 경영수업을 받는 입장에서 이제는 미래 최고경영자(CEO)로서 당당히 자신의 역할을 수행하고 있는 것이다.

    정 부회장의 뒤에는 ‘파격’이라는 단어가 따른다. 그의 행동은 다른 오너가 자제와 다르다. 일례로 2015년 1월 12일(현지시각) 미국 디트로이트 코보센터에서 열린 ‘북미국제오토쇼 2015’ 현대차 전시관에서는 정 부회장이 직접 중앙무대에 올라 영어로 스피치를 했다. 5분간의 프리젠테이션을 통해 회사 브랜드 소개부터 전략차종인 ‘쏘나타 플러그인 하이브리드’ 공개까지 실수 없이 마무리했다.


    정의선 현대차 부회장이 2015년 1월 미국 디트로이트에서 열린 ‘북미국제오토쇼 2015’에서 현대차의 전략과 ‘쏘나타 플러그인 하이브리드’를 발표하고 있다./현대차 제공
    정의선 현대차 부회장이 2015년 1월 미국 디트로이트에서 열린 ‘북미국제오토쇼 2015’에서 현대차의 전략과 ‘쏘나타 플러그인 하이브리드’를 발표하고 있다./현대차 제공

    재계 관계자들은 오너가 자제가 직접 북미국제오토쇼처럼 큰 행사에 나서 실수라도 한다면 구설수에 오를 일이지만, 그만큼 자신이 있기에 나선 것이 아니겠냐고 분석한다. 특히, 정 부회장은 한국 기자단 앞에서도 민감한 질문에 거침없는 답변을 내놓았다.

    올 1월 일감 몰아주기 규제를 피하기 위해 추진한 현대글로비스 지분 매각건에 대한 질문이 나오자 “승계보다는 지배구조를 개편하기 위한 것으로 이해하면 된다”고 답했다. 여타 기업들은 현대글로비스 지분 매각건과 같은 사안이 발표했을 때 홍보실을 통해 일방적인 입장을 전하거나, 무대응으로 일관한다. 하지만 정 부회장의 경우 본인에 대한 궁금증을 소통으로 대응한 것이다.

    요즘 정 부회장은 국내 시장에서 수입차에 밀려 점유율이 70% 밑으로 추락한 현대·기아차에 대한 걱정을 많이 하고 있다. 정 부회장은 “수입차가 늘어나는 건 현실이고, 내부적으로 비상으로 생각한다”며 “어느 때보다 더 신경쓰고 긴장하고 있으며, 직원들의 아이디어(국내 시장 점유율 확대를 위한)를 실현할 수 있게 사내에서 고민중”이라고 했다.

  • [승계시대 뉴리더] 정의선② 복잡한 승계 방정식 해법 있나…삼성동 시대 밑그림은?

  • 설성인 기자
  • 입력 : 2015.05.28 14:46 | 수정 : 2015.05.29 11:23 정의선 부회장의 현대차그룹 핵심 계열사 지분은 경영권 승계의 딜레마다. 현대차그룹의 지배 구조는 크게 현대모비스→현대차→기아차→현대모비스로 이어지는 순환출자 형태를 보이고 있다. 정몽구 회장은 현대모비스의 지분 6.96%, 현대차 지분 5.17%를 보유하고 있다. 그러나 정의선 부회장은 지배구조 정점에 있는 현대모비스의 주식이 1주도 없다.

    조선일보DB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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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정 부회장은 기아차 1.74%를 비롯해 현대글로비스 23.29%, 현대엔지니어링 11.72% 등의 지분을 보유하고 있으나 아직까지 현대차그룹을 지배할 수 있는 지분을 확보하지는 못한 상태다.

    올해 77세인 정몽구 회장이 아직 건강상에 특별한 문제는 없다. 그러나 장남인 정의선 부회장이 아버지의 바통을 이어받기 위해서는 안정적인 지배구조 개편은 필수적이다. 삼성그룹이 와병중인 이건희 회장 입원 이후 자연스럽게 승계절차를 밟고 있는 것에 반해 현대차그룹은 정 회장의 ‘결자해지’가 없다면 승계 준비작업이 더딜 수 밖에 없는 상황이다. 재계 관계자들은 정주영 회장이 2세로의 승계를 늦추는 바람에 많은 잡음이 일었던 것을 교훈삼아 현대차그룹이 지금부터라도 미리 흔들림 없는 승계 체제 마련에 들어가야 한다고 조언한다.

    시장에서는 정의선 부회장이 그룹 내 지배력을 높이기 위해 현대모비스 지분에 나서거나 정 부회장이 대주주로 있는 현대글로비스를 활용한 지배력 확대가 유력한 방안으로 분석한다. 현대모비스의 지분을 매입하기 위해서는 현금이 필요하다.

    정 부회장은 올 2월 일감 몰아주기 규제를 피하기 위해 현대글로비스의 지분 8.59%를 매각했으며, 아버지인 정몽구 회장도 4.8%를 팔아 두 사람은 약 1조1000억원의 현금을 확보했다. 지난해 8월 정 부회장은 지난해 8월 현대차그룹 내 광고회사인 이노션 보유지분 40% 중 30%를 팔아 약 3000억원의 자금을 확보했다.

    추가적인 현금 창구로는 현대엠코를 흡수합병한 현대엔지니어링이 있다. 정 부회장은 현대엔지니어링의 지분 11.72%를 보유하고 있으며, 상장시 차익을 기대할 수 있다. 하지만 보유지분 현금화가 말처럼 쉽지 않다는 것은 고민거리다.

    현금확보가 여의치 않을 경우 지배구조 정점에 있는 현대모비스를 지주회사와 사업회사로 분할한 다음, 정 부회장이 대주주로 있는 현대글로비스를 현대모비스 지주사와 합병하는 방식도 거론된다. 하지만 합병에 양측 주주가 쉽게 동의할 지는 조심스러운 상황이다.

    대신경제연구소는 “정몽구 회장-정의선 부회장으로의 경영권 승계 방정식은 지배구조개선 효과와 함께 주가 가치를 고려하도록 진행돼야 할 것”이라며 “최근 현대차그룹 내에서 활발하게 진행된 계열사간 지배구조 개편은 경영권 승계작업이 속도를 내고 있다는 간접적인 증거”라고 했다.

    현대차그룹이 서울 삼성동에 짓는 글로벌비즈니스센터의 모형도/서울시 제공
    현대차그룹이 서울 삼성동에 짓는 글로벌비즈니스센터의 모형도/서울시 제공

    현대차그룹은 지난해 서울 삼성동 한국전력 부지를 손에 넣으면서 글로벌 자동차 메이커들처럼 사옥과 전시장, 컨벤션 기능을 아우를 수 있는 글로벌비즈니스센터 건설을 추진중이다.

    하지만 10조5500억원이라는 천문학적인 금액을 쏟아부은 것은 외국인 투자자들 사이에서 과잉투자라는 비판을 받았다. 급기야 올 3월 현대자동차 2015년 주주총회에서는 해외 투자자들이 주주의 권익을 보호하는 ‘거버넌스위원회’를 설치하라고 제안했다. 거버넌스위원회는 이사회에 직접 참여해 경영진이 독단적으로 판단하지 않고 주주의견을 반영하도록 감시한다. 회삿돈을 미래가치 창출에 합당하게 사용하느냐도 살핀다.

    현대차는 주주들의 제안을 받아들여 지난달 이사회를 열고 이사회 내에 ‘투명경영위원회’를 설치키로 결정했다. 하지만 현대차그룹 투자자들은 앞으로 다가올 정의선 부회장 체제에서는 지금보다 투명하고 계획성 있는 경영활동이 실행되어야 한다고 주장한다. 지배구조 개편에 대한 밑그림이 나와야 장기적인 신뢰를 갖고 투자에 나설 수 있다는 분석도 나온다.

    일부 외신은 오너 1인을 정점으로 한 지배구조에 대한 우려의 목소리를 제기하기도 했다. 영국 파이낸셜타임스(FT)는 “일부 투자자들은 현대차그룹의 지배구조에 대해 걱정한다”면서 “2011년 현대건설 인수 당시에도 (인수를 위한 명분으로) 주주의 가치보다는 가문의 자존심(family pride)이 우선했다는 비판이 나왔다”고 전했다.
  • [승계시대 뉴리더] 정의선③ 빨라지는 세대교체…누가 왕자의 남자인가

  • 설성인 기자
  • 입력 : 2015.05.28 14:47 | 수정 : 2015.05.29 11:25 2015년 1월 2일, 현대자동차그룹 시무식이 끝나고 정몽구 회장이 김용환 현대차 전략기획 담당 부회장의 안내를 받아 퇴장했다. 현대차그룹 부회장, 사장들은 정 회장에게 고개를 숙여 깍듯이 인사를 했다. 하지만 잠시 후 자리를 떠나는 정의선 현대차 부회장에게는 별도의 인사를 하지 않았다.


    왼쪽부터 피터 슈라이어 현대·기아차 사장, 알버트 비어만 현대차 부사장, 조원홍 현대차 부사장/현대차 제공
    왼쪽부터 피터 슈라이어 현대·기아차 사장, 알버트 비어만 현대차 부사장, 조원홍 현대차 부사장/현대차 제공

    현대차그룹 내에서 정몽구 회장의 지배력은 아직 절대적이다. MK(정몽구 회장)맨들은 회장에게 절대 복종하고 충성한다. 부회장과 사장단을 통틀어 가장 나이가 어린 정의선(45) 부회장은 현안을 논의하거나 공식 석상에서 동행하지만 경영수업중인 후계자이기에 아직까지는 대내외에 영향력을 행사하기에 조심스러운 상황이다.

    최근 들어 MK맨으로 불리던 인사들이 줄줄이 짐을 싸면서 ‘예전부터 해오던 수시인사가 이번에는 조금 다른거 같다’는 말이 현대차그룹 안팎에서 흘러나오고 있다. 세대교체를 통한 후계구도 준비가 서서히 시작되고 있다는 해석도 나온다. 초고속 승진을 거듭했던 최한영 현대차 부회장이 2014년 2월 갑작스럽게 물러났으며, 두달 후엔 설영흥 부회장이 자리를 내놓았다. 같은해 10월에는 박승하 현대제철 부회장이, 2015년 4월에는 안병모 기아차 부회장까지 퇴임했다.

    정 부회장의 인사스타일은 본격적으로 사내 인사에 개입하기보다는 외부에서 필요한 인재를 수혈하는데 역점을 두고 있다. 회사 경쟁력 확대에 필요한 인재를 적재적소에 배치하면서 조직에 활력을 불어넣고 있다는 평가다. 정 부회장이 스카우트해 회사의 기둥으로 자리잡은 사람을 꼽으라면 피터 슈라이어 사장이 빠질 수 없다.

    정 부회장은 기아차 사장 시절이던 지난 2006년 디자인 혁신을 위해 아우디와 폴크스바겐 출신인 세계적 자동차 디자이너인 슈라이어를 데려왔다. 슈라이어 사장은 쏘울과 K5, K7 등을 성공시켰고, 2012년 말 그룹 본사의 첫 외국인 사장이 됐다. 페르디난드 피에히 전 폴크스바겐그룹 이사회 의장은 정 부회장에게 슈라이어를 뺏긴 것을 두고두고 후회했다는 후문이다.

    정 부회장은 지난해 말 BMW의 고성능차 브랜드 ‘M시리즈’의 개발 총괄 책임자 출신 알버트 비어만 부사장도 영입했다. 현대차그룹이 앞으로 개발할 고성능차 프로젝트를 주도하는 것은 물론 기존 모델의 주행 성능을 높이겠다는 의도다. 정 부회장은 2013년 세계적 자동차 경주 대회 WRC(월드랠리챔피언십)에 출전하기 위해 법인을 만들고 전폭적인 지원에 나서는 동시에 고성능차 관련 인력 충원에도 신경을 쓰고 있다.


    김경배 현대글로비스 사장/현대차그룹 제공
    김경배 현대글로비스 사장/현대차그룹 제공

    정 부회장은 2010년 브랜드 고급화 전략 강화 차원에서 컨설팅 회사 모니터그룹코리아 대표를 지낸 조원홍 마케팅사업부장(부사장)을 영입했다. 조 부사장은 정 부회장이 관심 깊게 추진중인 문화마케팅에서 주도적인 역할을 하면서 향후 입지가 탄탄해질 것으로 기대를 모으고 있다.

    김경배 현대글로비스 사장의 역할도 주목된다. 김 사장은 1990년 현대정공에 입사, 고 정주영 명예회장을 보필한 수행비서 출신으로 선대에서 얻은 신임이 정몽구 회장까지 이어졌다. 2007년에는 현대차그룹 비서실장을 맡았고, 2009년 40대 중반의 나이에 현대글로비스 대표이사로 발탁됐다. 현대글로비스가 정의선 부회장이 23.29%의 지분을 가진 최대주주라는 점을 감안할 때 향후 회사의 성장에 따라 그룹 내 입지도 달라질 것이라는 관측이다.

    현대차그룹 내에서 정 부회장과 대학(고려대) 동문인 인사는 최성기 중국전략담당 사장, 김걸 기획조정1실장(부사장), 이용우 HMB법인장(부사장), 장원신 해외영업본부장(부사장), 정형중 정책개발팀장(전무), 이봉재 현대차 의전실장(이사) 등이 있다.

    기아자동차의 사외이사인 이두희 고대 경영학과 교수는 정 부회장의 은사다. 정 부회장이 재학중이던 1990년부터 고대 경영학과에 재직하고 있으며, 한국 마케팅학회에서 선도적 연구자로 활동하고 있다.

    재계 한 관계자 “현대차그룹 안팎에서는 삼성동 신사옥(글로벌비즈니스센터) 입주를 계기로 정 부회장의 역할이 대폭 강화될 것으로 본다”면서 “이에 따라 정 부회장의 인사스타일이 반영된 인재들이 수면 위로 떠오를 가능성이 높다”고 말했다.

  • [승계시대 뉴리더] 정의선④ 집앞에는 SUV '모하비'…1만원 이하 와인도 마셔

  • 설성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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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입력 : 2015.05.28 14:48 | 수정 : 2015.05.29 11:27 2015년 4월 30일 오후 서울 용산구 한남동 유엔빌리지. 정몽구 회장과 장남 정의선 부회장, 장녀 정성이 이노션 고문, 정윤이 해비치호텔&리조트 전무 등이 모여 사는 동네다. 정 부회장의 집 앞에 기아자동차의 스포츠유틸리티차량(SUV) ‘모하비’가 세워져 있다. 모하비는 일명 ‘정의선의 차’로 불린다. 정 부회장이 2005년 기아차 사장으로 부임한 뒤 개발에 들어갔던 대형 SUV다. 모하비는 정 부회장에게 의미가 남다른 차다. 2009년 10월 별세한 정 부회장의 어머니 고 이정화 여사를 떠올리게 하기 때문이다.


    정의선 부회장의 집 앞에는 기아차의 SUV ‘모하비’가 세워져 있다.
    정의선 부회장의 집 앞에는 기아차의 SUV ‘모하비’가 세워져 있다.


    2008년 1월 서울 압구정동 기아차 국내영업본부 사옥에서 열린 모하비 신차발표회에는 한 여인이 자리에 앉아 있었다. 모하비를 덮은 천막이 벗겨지자 플래시 세례가 이어졌고, 이 여인의 얼굴에도 웃음꽃이 피었다. 박수를 치며 행사 끝까지 자리를 지킨 이 여인 앞에서 정의선 부회장은 “어머니 감사합니다”라고 인사했다. 이정화 여사는 생전 공식석상에 모습을 잘 드러내지 않았지만 모하비 행사만큼은 실적부진에 시달렸던 기아차 때문에 마음고생을 했던 아들을 위해 응원차 방문했던 것으로 전해진다.

    모하비는 미국 캘리포니아 지역 사막이자 현대·기아차의 주행시험장이 있는 곳이다. 기아차는 모하비의 영어이름을 ‘MOHAVE’로 짓고 ‘고도의 기술을 갖춘 SUV 최강자(Majesty Of Hightech Active Vehicle)’라는 의미를 부여했다. 모하비는 출시 초기 목표 대비 판매량이 절반 수준에 머무르며 부진을 면치 못했다. 하지만 2013년에는 국내 시장에서 9000대 이상 팔렸고, 정의선 부회장이 지금도 즐겨타는 차로 알려져 있다. 향후 대형차 사업을 강화해야 하는 현대·기아차 입장에서는 초석을 다진 차종이다.


    정의선 부회장이 즐기는 것으로 알려진 스페인산 화이트 와인 ‘Airen Penasol Seleccion’.
    정의선 부회장이 즐기는 것으로 알려진 스페인산 화이트 와인 ‘Airen Penasol Seleccion’.


    정 부회장은 평소 소주와 김치찌개를 즐겨먹는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Airen Penasol Seleccion’처럼 평균가격이 7달러(7700원)에 불과한 스페인산 저가 화이트 와인도 즐기는 것으로 전해졌다.

    정 부회장 자택에서 1분 거리에는 꽃집이 하나 있다. 꽃집 주인은 정 부회장이 직접 오지는 않지만 자주 꽃을 주문한다고 전했다. 경조사를 잘 챙기기로 유명한 정 부회장이기에 꽃을 지인들에게 선물하거나 위로의 표시로 사용하는 것이다.

    정 부회장은 다른 사람에 대한 배려를 할 줄 안다. 2011년 10월 ‘파리모터쇼 2011’에 정명훈 서울시립교향악단 예술감독이 부인과 함께 현대·기아차 프레스 콘퍼런스를 찾자, 프랑스에서 인지도가 높은 정 감독에 대한 취재 열기가 뜨거웠다. 행사장을 둘러본 후 정 감독은 정의선 부회장과 같은 차로 이동하게 됐는데, 정 부회장은 조수석에 앉았다. 손님이자 예술계 원로인 정 감독을 배려한 것이다.

    고 정주영 명예회장이 젊은 시절 직원들과 씨름을 하고 막걸리를 나눠마시며 소통했다는 사실은 유명한 일화다. 정 부회장 역시 현대·기아차 임직원과 폭탄주를 즐겨 마시는 것은 물론이고 회식자리에서도 솔선수범하는 스타일로 알려졌다.

    현대모비스의 한 사외이사는 “정의선 부회장을 비롯한 기아차 임직원과 술자리를 함께 한 적이 있었는데, 정 부회장은 가운데 자리를 양보하는 것은 물론 자리를 옮기면서 일일이 대화를 나누고 독려하는 모습이 매우 인상적이었다”고 말했다.

  • [승계시대 뉴리더] 정의선⑤ 정주영 회장이 아끼던 손자…남다른 가족愛 과시

  • 설성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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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입력 : 2015.05.28 14:49 | 수정 : 2015.05.29 11:29 정의선 부회장이 공식 석상에 등장할 때 그의 얼굴에서는 좀처럼 미소를 찾을 수 없다. 차가운 느낌 마저 든다. 학창시절부터 남다른 배포와 승부욕을 가진 그는 업무에 관해서는 냉철한 판단력과 의사결정을 갖고 있다. 하지만 그를 사석에서 만난 사람들은 “따뜻하고 배려심이 많다”고 전한다.



    대한양궁협회장인 정의선 부회장이 부인 정지선(오른쪽 두번째)씨와 함께 지난해 9월 인천아시안게임에서 활짝 웃고 있다./조선일보DB
    대한양궁협회장인 정의선 부회장이 부인 정지선(오른쪽 두번째)씨와 함께 지난해 9월 인천아시안게임에서 활짝 웃고 있다./조선일보DB


    정 부회장은 서울 경복초등학교와 구정중학교, 휘문고등학교를 졸업했다. 조현식 한국타이어 사장, 구본상 LIG넥스원 사장과는 초등학교 동창이다. 이들과는 가끔씩 만나 허심탄회하게 이야기를 나누는 것으로 전해지고 있다.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과는 학연은 없지만 국내 재계를 대표하는 후계자들이기에 ‘호형호제’하며 가까운 사이다.

    정 부회장은 고려대 경영학과를 졸업한 후, 1994년 현대정공(현대모비스)에 과장으로 입사했다. 병역은 담낭절제라는 병명으로 면제받았다. 경영학에 대한 견문을 넓히기 위해 미국 샌프란시스코대에서 유학했다. 경영학 석사(MBA)를 마치고 일본 이토추상사 뉴욕지사에 둥지를 트는 외도를 했는데, 이는 당시 일본에 대한 관심이 많았기 때문이다.

    2년간 상사맨 생활을 마치고 귀국한 그를 둘러싼 환경은 달라져 있었다. 아버지 정몽구 회장이 현대자동차 회장에 취임했고, 쓰러져가는 기아차까지 품에 안았기 때문이다. 정 부회장은 1999년 현대차그룹에 입사, 본격적으로 자동차 사업과 인연을 맺었다.

    첫 보직은 자재본부 구매실장(이사). 이후 애프터서비스(A/S), 영업, 기획 등을 거쳐 2005년 기아자동차 사장으로 승진했다. 2004년에는 기아차 슬로바키아 공장 착공이 토지매입 문제로 지지부진하자 직접 현장을 찾아 현지 정부 관계자들과 담판을 짓고 문제를 해결했다.

    기아차의 제품 라인업을 강화하고 경영 정상화를 추진하는 것은 물론 디자인 DNA를 심어 경영능력을 인정받았다. 기아차 사장 시절에는 격의 없이 직원들과 어울렸고 많은 대화를 나눴다고 한다. 이후 2009년에는 부회장 직함을 달고 현대차에 복귀, 아버지를 도와 글로벌 경영에 시동을 걸었다.

    정 부회장은 자동차 회사의 CEO답게 자동차에 대해 해박한 지식을 갖고 있다고 한다. 북미국제오토쇼, 제네바모터쇼, 프랑크푸르트모터쇼 등을 직접 둘러보고 경쟁사 대비 현대·기아차의 부족함은 무엇인지 장·단점을 면밀히 분석하고 지시하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현대차가 서울 강남 도산대로 사거리 한복판에 수입차와 경쟁하기 위해 최고급 전시장을 만들고, 세계적 자동차 경주대회 월드랠리챔피언십(WRC)에서 조기에 성과를 거둔 것도 정 부회장의 전폭적인 지지 덕분이라는 평가가 많다.

    정 부회장은 가족에 대한 사랑이 남다른 것으로 유명하다. 재계 오너 일가 자제들이 자신의 가족을 대외에 노출시키는 것을 꺼리는 것과 달리 화목한 가정의 모습이 종종 목격되곤 한다. 올 1월 미국 소비자가전전시회(CES) 2015와 북미국제오토쇼 출장 사이에도 하와이에서 가족들과 함께 휴가를 보낸 것으로 알려졌다. 정 부회장이 장기간 해외 출장을 다녀올 때면 공항에 아내와 자녀가 종종 목격된다.

    부인 정지선씨는 정도원 삼표그룹 회장의 장녀로, 정 부회장 친구의 사촌 여동생이었다. 미국 유학시절 두 사람은 본격적으로 교제를 했고 마침내 결혼까지 골인했다. 하지만 정지선씨가 정 부회장의 사촌인 정지선 현대백화점그룹과 동명이인인데다 성도 같아 고민도 있었다고 한다. 정주영 명예회장은 서로 본이 다르다는 점을 인정하고 흔쾌히 허락해 난관을 이겨냈다.


    정의선 부회장이 누나인 정성이 이노션 고문(왼쪽 두번째)과 함께 지난해 11월 고 이동찬 코오롱그룹 명예회장 빈소를 다녀가고 있다./조선일보DB
    정의선 부회장이 누나인 정성이 이노션 고문(왼쪽 두번째)과 함께 지난해 11월 고 이동찬 코오롱그룹 명예회장 빈소를 다녀가고 있다./조선일보DB


    정 부회장은 위로 누나만 3명이 있다. 누나 중에는 정성이 이노션 고문과 막역해 두 사람이 모터쇼 등에 같이 다니는 모습을 심심치 않게 볼 수 있다. 지난해 11월 별세한 고 이동찬 코오롱그룹 명예회장 빈소에도 나란히 등장해 눈길을 끌었다.

    할아버지인 고 정주영 명예회장의 손자 사랑은 남달랐던 것으로 전해진다. 그래서 정 부회장은 어렸을 때부터 청운동 본가를 자주 다녔고, 정주영 명예회장이 와병중이었던 때도 꼬박꼬박 할아버지의 병문안을 챙겼다.

    정 부회장에게 정몽구 회장은 사업의 스승이자 엄한 아버지로 통한다. 때문에 정 부회장은 막내 같이 철 없는 모습보다는 의젓하고 믿음직한 인상을 준다. 평소에도 예의가 바르다. 정몽구 회장이 외부 행사에 등장할 때면 정 부회장은 먼저 행사장에 도착해 아버지를 맞이할 준비를 한다.

  • [승계시대 뉴리더] 정의선⑥ 양궁·야구·축구에 애정…이동국 선수에게 스타렉스 선물

  • 설성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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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입력 : 2015.05.28 14:50 2012년 7월 30일 런던 로즈 크리켓 그라운드. 런던올림픽 여자 양궁 단체전에서 대한민국 대표 선수들이 금메달을 확정짓자, VIP석에 달려가 정의선 부회장과 부둥켜 안고 기쁨을 나눴다. 대한양궁협회장인 정 부회장은 물심양면으로 우리 양궁 선수들을 지원해왔는데, 런던 현지에서도 직접 응원에 나서 주목을 받았다.

    기보배, 이성진, 최현주 선수는 “협회장(정의선 부회장)님께서 항상 격려해주고 응원해주셨던 게 큰 힘이 됐다”고 언론 인터뷰에서 감사를 표했다.

    2012년 8월 런던올림픽 양궁선수단 환영행사에서 정의선 부회장(앞줄 오른쪽)이 선수단, 감독, 코치들과 함께 기념촬영을 하고 있다./노자운 기자
    2012년 8월 런던올림픽 양궁선수단 환영행사에서 정의선 부회장(앞줄 오른쪽)이 선수단, 감독, 코치들과 함께 기념촬영을 하고 있다./노자운 기자


    정 부회장의 양궁 사랑은 아버지인 정몽구 회장 시절로 거슬러 올라간다. 정 회장은 현대정공 사장 시절인 1984년 LA올림픽 당시 정식 종목에 채택된 양궁에서 한국 선수가 금메달을 따는 모습에 지원을 결심했다.

    이듬해부터 12년간 양궁협회장을 맡았던 정 회장은 여자 양궁단을 출범시켰고, 이후 현대제철에 남자양궁단도 출범시켰다. 정 부회장은 아버지의 뒤를 이어 2005년 양궁협회 9대 회장으로 취임한 이후 10년 동안 양궁에 대한 사랑을 이어가고 있다.

    정 부회장은 양궁 외에도 프로야구에도 애정을 갖고 있다. 2009년 KIA 타이거즈가 한국시리즈 7차전에서 끝내기 홈런으로 승리했을 때 우승 축하연에 직접 참석, 선수단에 감사인사를 전했다. 우승을 계기로 지원도 약속했다. 2군 선수들이 마땅한 훈련장이 없어 떠돌이 훈련을 할 수 밖에 없다는 사실을 알게 됐고, 안타까워했다.

    이후 KIA는 전남 함평군 학교면 곡창리 일대 7만4777m²(약 2만2620평) 부지에 2군과 3군 전용훈련장인 ‘기아 챌린저스 필드’를 완공했다. 주전과 백업의 기량차가 컸던 KIA는 정 부회장의 지원으로 3년 4개월만에 총 공사비 250억원을 투입, 삼성, 롯데 같은 구단과 어깨를 나란히 하는 2군과 3군 전용훈련장을 확보했다.


    2014년 5월 ‘부산모터쇼’ 현장에서 전북 현대 모터스의 이동국 선수(왼쪽 두번째)가 기념촬영을 하고 있다. 이동국 선수는 정의선 부회장으로부터 통산 100골 선물로 스타렉스 리무진을 받았다./조선일보DB
    2014년 5월 ‘부산모터쇼’ 현장에서 전북 현대 모터스의 이동국 선수(왼쪽 두번째)가 기념촬영을 하고 있다. 이동국 선수는 정의선 부회장으로부터 통산 100골 선물로 스타렉스 리무진을 받았다./조선일보DB


    정 부회장은 프로축구단 전북 현대 모터스의 구단주이기도 하다. 전북 현대는 2000년대 초만 해도 지방 약팀으로 분류됐지만, 정 부회장의 지원으로 현재는 명문팀 반열에 올랐다. 2009년 K리그 우승 선물로 클럽하우스 건설을 약속했고, 유럽 클럽하우스를 벤치마킹해 실내축구장 등을 갖춰 선수들의 경기력 향상을 돕고 있다. 전북 현대 모터스의 주전 공격수인 이동국 선수는 서울 양재동 현대차 본사에 초청을 받아 통산 100골 선물로 스타렉스 리무진을 받기도 했다.

    정 부회장은 고교 재학 시절 테니스, 수영, 스키 같은 운동을 잘했고, 클라리넷 연주회를 열 정도로 악기를 다루는 재주가 있었다고 한다. 사촌인 정일선 현대비앤지 사장(고 정몽우 현대알루미늄 대표의 장남)과는 동갑이라 어렸을 때부터 친하게 지냈는데, 정 사장은 골프와 스쿼시, 축구 등 못하는 운동이 없는 만능 스포츠맨이었다. 운동실력은 정일선 부사장이 정의선 부회장보다 나았지만 두 사람의 경기는 때론 우열을 가릴 수 없을 정도로 정 부회장이 특유의 승부욕을 발휘했다고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