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겨레 입력 2015.09.01. 20:30
이 사무국장은 "이 비가 만들어진 것은 간토대지진이 일어난 지 50년이 지난 1973년이었다. 당시 일본인들이 이런 비를 만든 것은 대단한 일이었지만 92년 전 간토대지진 이후 벌어진 조선인 학살을 일으킨 주체가 누구인지 알 수가 없게 되어 있다. 92년 전 학살과 같이 다른 민족을 차별하고 배제하는 흐름이 '헤이트 스피치'(혐한시위) 등에서 드러나듯 현재 일본 사회로 이어지고 있다"고 말했다. 1일 이 비 앞에서 열린 '간토대지진 92주년 조선인 희생자 추도식'에선 '울밑에선 봉선화'의 구슬픈 배경 음악이 흐르는 가운데 총련계 재일동포들과 일본 시민 400여명이 당시 숨진 이들을 위해 묵념과 헌화를 했다.
최근 일본 사회에서 헤이트 스피치 등 타민족을 차별하고 멸시하는 배외적인 흐름에 대한 경계심이 커지면서 간토대지진 때 발생한 조선인 학살에 대한 사회적 관심도 높아지고 있다. 일본의 젊은 세대들 사이에선 2014년 3월 독립 언론인 가토 나오키가 쓴 <9월, 도쿄의 거리에서>라는 책이 화제가 되며, 간토대지진 때 발생한 조선인 학살에 대한 관심이 커졌다. 가토는 이 책을 집필한 이유에 대해 "불령선인이라는 문자를 혐한시위 플래카드에서 본 순간 간토대지진 당시 발생한 조선인 학살이 떠올라 무서운 생각이 들었다. 인종주의자들의 '(조선인을) 죽여라'는 외침이 90년 전 도쿄 거리에서 울려 퍼진 '죽여라'는 외침과 공명하고 있다"고 지적한 바 있다. 헤이트 스피치를 저지하기 위한 '대항행동'에 참여하고 있는 일본 젊은이들은 "일본 사회가 이대로 가다간 92년 전과 같은 잘못을 되풀이할 수 있다"고 말한다.
일본 사회에서 '사라진 주어'를 찾는 작업은 그동안 꾸준히 진행돼 왔다. 일본변호사연맹은 2003년 8월 "국가는 당시 벌어졌던 학살에 대한 진상규명을 하고 학살 피해자·유족들에 대해 책임을 시인하고 사죄해야 한다"는 권고를 내놓은 바 있다. 2009년엔 학살 현장인 스미다강 주변 야히로 전철역 부근에 일본 군·경과 시민의 책임을 분명히 한 최초의 추모비도 세워졌다.
그러나 일본 정부는 시민사회의 이런 노력에 역행하는 모습을 보이고 있다. 일본 문부과학성은 지난 4월 중학교 교과서 검정에서 "군대, 경찰, 자경단에 의해 살해된 조선인의 수는 수천명에 달했다"는 기술을, "자경단에 의해 학살된 조선인에 대해 당시 사법성은 230명 정도라고 발표했다. 전체 살해된 이들이 수천명에 이른다는 얘기도 있지만 희생자의 수에는 통설이 없다"는 내용으로 고치도록 했다. 적어도 6000여명이 숨진 것으로 알려진 조선인 희생자 수를 사실상 축소하고 있는 셈이다.
이날 추모 행사에 참석한 아시자와 가즈아키 시부야구 구의원(민주당)은 92년 전 발생한 조선인 학살 사건은 "일본인의 차별의식과 배외주의의 뿌리 깊음을 드러내는 것이다. 일본은 오랜 시간 이 사실을 감춰왔지만, 새로운 미래를 만들기 위해선 과거를 직시하고 제대로 기억하는 것과 함께 역사와 진지하게 마주해야 한다"고 말했다.
도쿄/글·사진 길윤형 특파원charisma@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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