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

엠블럼도 경기장도 취소…도쿄올림픽 첫단추부터 치명적 실수

Shawn Chase 2015. 9. 1. 22:41

입력 : 2015.09.01 19:15 | 수정 : 2015.09.01 19:33

정지섭 기자

표절시비로 폐기된 2020년 도쿄올림픽 엠블럼


 

5년 앞으로 다가온32회 도쿄 올림픽(2020년 7월 24일~8월 9일)의 준비가 잇따른 악재로 비틀거리고 있다. 올림픽을 유치한 아베 정권이 야심 차게 추진하던 주경기장 건축 사업이 혈세 낭비 논란에 무산되더니, 이번에는 ‘올림픽의 얼굴’인 공식 엠블럼이 표절시비 끝에 공개 40여 일 만에 퇴출됐다.

도쿄올림픽조직위원회는 1일 표절 논란이 끊이지 않았던 올림픽·패럴림픽 공식 로고를 폐기하기로 결정했다고 밝혔다. 역대 올림픽 엠블럼이 디자인 적합성 등의 논란으로 중간에 변경된 적은 있어도, 표절 때문에 퇴출되는 것은 전례가 없었다. 도쿄 올림픽·패럴림픽 엠블럼은 디자이너 사노 겐지로의 작품으로 도쿄·팀·내일(tomorrow) 등을 뜻하는 알파벳 ‘T’를 중심으로 형상화해 만들었다고 7월 24일 공개식에서 조직위는 설명했었다. 그러나 발표 불과 사흘 뒤 벨기에 디자이너 올리비에 도비가 자신이 2년 전 발표한 극장 디자인과 흡사하다며 작품을 인터넷에 공개하면서 거센 표절 논란에 휘말렸다. 올림픽 엠블럼에 붉은 원이 첨가된 것만 빼면, 도비의 작품과 거의 흡사했다.

논란이 확산되자 사노 겐지로는 지난달 기자회견을 열어 “절대 표절이 아니다”고 항변했고 이어 조직위도 ‘독자 디자인’이라며 방어했다. 국제올림픽위원회(IOC)도 존 코티스 부위원장이 “엠블럼에 문제가 없다”고 했지만, 여론을 되돌리기엔 역부족이었다. 사노 겐지로는 표절 혐의를 벗기 위해 동그라미 대신 직선을 그린 원안 디자인까지 공개했지만, 이 디자인은 독일의 유명 시각디자이너인 얀 홀트 작품을 베낀 게 아니냐는 또 다른 의혹으로 번지면서 자충수가 됐다.

여론이 급격히 나빠진 가운데 도비가 IOC와 벨기에 법원 등에 “제소하겠다”며 법적 대응 방침을 밝혔고, 일본 내부에서도 ‘창피하다’는 비판이 잇따랐다. 국제온라인청원사이트 ‘체인지닷컴’에는 기무라 슈토라는 이름의 일본 네티즌이 올림픽 엠블럼 변경 청원을 내 이날 현재 목표(2만5000명)를 코앞에 둔 2만2300여 명이 동참했다.

여기에 사노 겐지로가 엠블럼 발표행사에 사용한 일부 사진이 무단 도용됐다는 의혹까지 추가로 제기됐다. 코너에 몰린 조직위는 결국 퇴출 결정을 내렸다.

올림픽 준비과정의 신뢰를 떨어뜨리는 악재는 사흘 전에도 있었다. 당초 조직위가 유명 건축가 자하 하디드에게 의뢰했던 주경기장 재건축 사업이 전면 백지화된 것이다. 단일 경기장 건축 비용으로는 사상 최고액으로 알려진 2520억엔(약2조3284억원)의 사업비에 반발 여론이 거세진 데 따른 것이었다. 일본 정부는 공사비를 원안의 58% 수준까지 깎는 등 예산 절감을 하겠다는 방침을 세웠다. 그러나 설계부터 모든 과정을 다시 진행하게 되면서, 2019년 5월로 예정됐던 완공 기한도 올림픽 개막 7개월 전인 2020년 1월로 늦춰졌다. 시공업체에서 시공기한 준수에 난색을 표하면서, 이마저도 장담하기 어렵다는 지적이 나온다.

도쿄올림픽을 통해 동일본 대지진의 후유증을 털고 군사·경제 강국의 부활을 선언하려던 아베 총리의 입장도 난처해졌다. 그는 이날 "조직위가 여러 가지 정황을 판단한 후 내린 결정이라고 생각한다. 국민들로부터 축복받는 올림픽이 돼야 한다"고 말했다. AFP통신은 “올림픽 준비에 그림자가 드리워졌다”고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