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의 고속철

8兆달러 아시아 인프라시장, 한국이 안보인다

Shawn Chase 2015. 9. 1. 23:14

최현묵 기자

 

입력 : 2015.09.01 03:05 | 수정 : 2015.09.01 06:20

[中·日, 수십조원 지원 물량공세로 동남아 고속鐵 싹쓸이]

日, 泰·印에 14조·18조원 투자… 양국 고속철 공사 잇따라 수주
中도 泰 철도사업 따낸데 이어 59조원 내걸고 인도네시아 공략

韓, 자금력 열세에 수출실적 全無 "정부 주도 컨소시엄 구성 필요"

중국과 일본의 고위급 대표단은 올 5월 27일 인도네시아 조코 위도도 대통령을 차례로 예방했다. 류옌둥 중국 국무원 부총리, 후쿠다 야스오 전 일본 총리가 각각 대표단을 이끌었다. 양국은 모두 인도네시아에 대한 경제적 지원을 약속했다. 중국과 일본이 인도네시아에 지극정성을 쏟는 이유는 간단하다. 인도네시아 정부가 추진 중인 고속철도 사업 수주를 위해서다. 인도네시아 정부는 자카르타~수라바야를 잇는 총연장 730㎞의 고속철도 사업을 본격화하고 있다.

이 사업은 일본이 2009년부터 타당성 조사를 실시하며 공(功)을 들여왔다. 하지만 올 들어 중국 정부가 "중국 국영은행을 통해 500억달러 규모의 고속철 건설 자금을 지원하겠다"고 나서면서 상황이 반전했다. 다급해진 일본은 올 7월 건설비 대부분을 '40년 상환에 10년 유예 조건'의 차관으로 제공한다는 조건을 내걸었다.

아시아 주요 지역 인프라 쟁탈·확보 실태
이미지를 클릭하시면 그래픽 뉴스로 크게 볼 수 있습니다. / 조선닷컴

중국과 일본이 2020년까지 8조달러(약 9000조원)로 추산(아시아개발은행)되는 아시아 인프라 개발 사업 수주 경쟁에서 막대한 자금력을 동원하며 불꽃 튀는 경쟁을 벌이고 있다. 반면 우리나라는 자금력 부족, 정부의 지원 의지 실종(失踪) 등으로 이런 경쟁에 발조차 들여놓지 못한 채 뒷짐만 지고 있다.

중국의 '물량 공세'에 일본도 '맞불'

일본은 지난 5월 태국 방콕~치앙마이 간 670㎞ 구간 고속철 사업을 수주했다. 총사업비 4300억바트(약 14조1000억원)로, 일본이 기술과 건설자금을 모두 지원한다. 이에 맞서 중국도 8월 말 태국 북동부 농카이~방콕~남부 라용을 잇는 길이 867㎞의 철도 복선화 사업을 10월부터 시작하기로 태국 정부와 합의했다.

인도에서도 양국이 치열하게 맞서고 있다. 일본은 8월 21일 인도 뭄바이~아메다바드 고속철 사업을 사실상 수주했다. 총연장 500㎞에 총공사비 9800억루피(약 17조5000억원)에 이른다. 이 밖에도 일본 기업들이 계획 중인 인도 SOC(사회간접자본) 공사는 총 19건, 1조2000억엔에 이른다. 중국 정부도 시진핑(習近平) 주석이 작년 인도 방문에서 200억달러의 투자를 약속하는 등 자금 지원을 무기로 인도 시장을 공략하고 있다.

2000년 이후 아시아 인프라 시장에서 앞서간 나라는 중국이다. 중국 정부가 2013년 공표한 신(新)실크로드 구상인 '일대일로(一帶一路)'에는 중국 정부 예산만 1조400억위안(약 190조원)이 투입된다. 여기에 중국이 설립을 주도한 아시아인프라투자은행(AIIB)도 자본금이 1000억달러에 이르고 있다.

중국의 물량 공세에 맞서 일본도 주도권 사수에 나섰다. 아베 신조 일본 총리는 올 5월 21일 "아시아 지역 인프라 투자에 향후 5년간 1100억달러(약 120조원)를 투입하겠다"고 밝혔다. 중국에 주도권을 내주지 않겠다는 뜻이다.

리더십, 意志, 자금력 全無한 한국

중국, 일본과 달리 한국 정부는 아시아 인프라 시장 개척에 아예 손을 놓고 있다. 정책은 소극적이고 비전도 보이지 않는다는 평가가 많다.

한국은 2004년 세계 네 번째로 자체 기술을 통해 고속열차를 개발했지만 지금까지 고속철 수출 실적이 '0건'이다. 원전 수출도 UAE와 사우디아라비아를 제외하면 뚜렷한 실적을 못 내고 있다. 반면 중국은 파키스탄에서 원전 2기를 수주했고 5기를 추가 건설하기로 계약했다.

정부의 적극성도 뒤진다는 지적이다. 이부형 현대경제연구원 동북아연구실장은 "정상외교 차원에서 아시아 인프라 시장 개척을 위한 의지와 전략이 보이지 않는다"며 "인프라 사업은 거액이 투입되기 때문에 개별 기업이 나서는 것보다는 정상외교로 먼저 길을 뚫고 이후 민관 차원에서 후속 작업을 해야 한다"고 말했다.

일본은 정부 주도로 대기업들이 '선단(船團)'을 구성해서 공동 수주에 나서는 반면, 우리나라는 기업 간 협력도 제대로 이뤄지지 않고 있다. 유환익 전국경제인연합회 산업본부장은 "일본은 정부가 나서서 컨소시엄을 구성하고 정책금융을 지원해주는 반면, 우리나라는 해외 사업에까지 공정거래법상 담합 처벌 조항을 적용하는 등 제도적 지원이 전혀 이뤄지지 않고 있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