출처 : http://news.chosun.com/site/data/html_dir/2016/11/28/2016112800222.html
입력 : 2016.11.28 03:00
[위기의 대한민국… '보수의 길'을 묻다] [1] 송복 연세대 명예교수
"한국정치는 사이비 보수와 사이비 진보의 극한 대립 상태"
"경제는 세계 일류 도약하는데 정치는 5~6류로 전락"
"지금의 위기는 보수(保守)의 실패가 아니라 '사이비(似而非) 보수'의 실패일 뿐이다."
원로 사회학자 송복(79) 연세대 명예교수는 27일 최순실 국정 농단 사태로 빚어진 국가적 위기에 대해 "한국 경제가 세계 1류로 도약하는 동안에 정치는 도리어 4류에서 5~6류로 전락하고 말았다"면서 "지금의 위기는 과거의 경험에서 잘못된 점을 끊임없이 개선하거나 보수(補修)하지 않고 도덕성과 성실성에서 낙제점을 면치 못한 한국 보수(保守) 정치의 실패에서 비롯한 것"이라고 말했다.
최순실 국정 농단 사태에 분노하고 상처받은 국민이 시국 집회를 열고 대통령의 하야를 요구하고 있다. '촛불 집회'를 어떻게 보는가.
"비관적이거나 비판적으로 보지 않는다. 선진국으로 가는 통과의례로 본다. 한국이 선진국으로 도약하는 기회가 될 수 있다는 점에서 축복이 될 수 있다."
4·19혁명과 1987년 6월 항쟁을 다 지켜보셨는데 이번 촛불 집회와 차이는 무엇인가.
"4·19 때는 '사상계' 기자로 동대문경찰서 앞에서 시위를 취재했고, 1987년엔 대학(연세대 사회학과)에서 학생들을 가르치고 있었다. 당시보다 지금이 훨씬 더 평화적으로 시위가 열린다. 그만큼 국민 의식이 성숙한 것이다."
광복 이후 70년이 지났지만 의회민주주의는 제대로 작동하지 않고 여야 정치인들은 '광장(廣場)'만 쳐다보고 있다. 정치권의 직무 유기 아닌가.
"1960~80년대에는 정치가 경제 발전을 주도했다. 하지만 지금 한국의 정치는 기업의 돈을 빼앗고 경제 발전을 저해하는 주범이 되고 있다. '고기를 뜯는 개는 짖지 않는다(食肉之狗 無吠)'는 중국 고사(故事)가 있는데, 지금 한국 정치는 고기를 뜯는 개와 다를 바가 없다."
―박근혜 정부의 실패를 보수의 실패로 보는 시각이 있다.
"현 정권의 실패는 보수의 실패가 아니라 '사이비 보수'의 실패다. 보수에는 4대 원칙이 있다. 과거 경험을 중시하고, 끊임없이 잘못된 것을 보수(補修)하며, 도덕성이 높고, 성실하다는 점이다. 반대로 진보는 이성적이고 급진적이며, 이상과 비전을 추구하는 성향이 강하다. 지금의 소위 '보수 정치세력'은 과거 경험을 무시하고, 도덕성과 성실성에서 낙제점을 면치 못하고 있다는 점에서 사이비일 뿐이다. 정치권 진보 역시 인기영합주의와 득표 전략에 매달려서 비전을 제시하지도 못한 채 종북(從北), 친북(親北) 성향을 보인다. 지금 한국 정치는 '사이비 진보'와 '사이비 보수'의 극한 대립이자 충돌일 뿐이다."
―현 대통령에게 투표한 유권자에게 책임을 묻기도 한다.
"유권자가 신(神)이 아닌데 어떻게 미래를 예측할 수 있겠는가. 사실상 양당 구조 아래서 유권자들은 선택의 여지가 그리 많지 않다. 최선(最善)이 아니라 차악(次惡)을 뽑게 된다. 이 차악을 차선(次善)으로 끌어올리는 것이 한국 정치의 과제일 것이다."
―국민의 수준은 정치권보다 높다는 것인가.
"세계 어느 국가든 보수 세력은 나라를 지키고 안정시키며 발전시키는 근간(根幹)이다. 한국 사회·경제 전반의 보수는 펀더멘털(fundamental·기반)이 탄탄하고 높은 수준을 지니고 있다. 보수 성향의 국민도 정치권보다 지적·도덕적인 수준이 훨씬 높다."
―지금의 정치적 위기를 '제왕(帝王)적 대통령제'의 문제로 보고, 내각책임제를 대안으로 거론하는 사람들도 있다.
"현재 한국 정치는 조선시대의 '파당(派黨) 정치'에 가깝다. 정당 정치는 서로 장점을 겨루는 '경쟁의 정치'인 반면, 파당 정치는 죽기 살기로 상대에게 흠집만 내려고 하는 '대결의 정치'다. 파당 정치와 패거리 정치에서 정당은 공익이 아니라 사익(私益)을 추구하는 집단이 되고 만다. 이런 상황에서 내각책임제를 하면 나라가 무너질 수도 있다. 4·19혁명 직후에 내각책임제를 도입했던 제2공화국의 정치적 위기가 되풀이될 수도 있다."
―현실 정치에 참여한 지식인들의 모습에 실망하는 국민이 많다. 청와대나 정부, 국회에 진출한 대학교수 출신들이 공복(公僕)이 아니라 가신(家臣)처럼 행동한다.
"학창 시절에 공부를 열심히 해서 석박사 학위를 받았던 분들이 교수만 되고 나면 총장과 학장이 되기 위해 보직에 혈안이 되거나 정치권에나 기웃거린다. 과거에는 대학교수와 지식인, 관료들이 확고한 국가관과 소명 의식을 갖고 공복을 자청했다. 1980년대 민주화 이후에는 오히려 사익만 추구하는 월급쟁이로 전락했다."
―보수의 활로(活路)는 어디에 있을까.
"문인(文人)들만 국가를 다스릴 수 있다는 '문치(文治) 의식'부터 하루빨리 버려야 한다. 요즘 말로 바꾼다면 인문·사회과학이나 법학을 전공한 인문계 지식인들이 될 것이다. 문관이나 문인들은 본질과 당위만 추구하다 보니 관념론에 빠지기 쉽다. 잘잘못이나 시시비비만 가리다 보니 상대를 끌어안기
보다는 배제(排除)하기 바쁘다. 지금 필요한 건 관념론이나 비판이 아니라 난관과 위기를 돌파할 수 있는 긍정적 건설론이다. 국회의원을 공천할 때에도 군인·체육인 출신, 이공계 전문가, 인문계 지식인을 '3:3:3'의 비율로 골라야 한다."
송 교수는 '열린 사회와 보수' 같은 저작을 통해 보수주의 담론을 주도했으며, 바른사회를위한시민회의 공동대표를 지냈다.
출처 : http://news.chosun.com/site/data/html_dir/2016/11/28/2016112800222.htm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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