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내정치

‘박근혜 이후’가 문제다… 박정희 패러다임 ‘관치경제’ 끝내자

Shawn Chase 2016. 11. 22. 22:40
                                        




■ 최순실 국정농단 특별기획 ‘진단과 전망’ : 최장집 교수 인터뷰
광장에서 보여준 우리 국민들의 민주적 의사 표현은 세계 정상급이다. 이번엔 생방송 중계까지 했다. 그 힘은 4.19혁명 이래 여러 크고 작은 시위를 통해 반복적으로 확인되었다. 그러나 그것이 민주주의의 전부가 아니다. 절반일 뿐이다. 다른 절반이 있음을 우린 종종 놓친다. 1987년 민주화 이후 30년을 맞이하는 이 시점에 우리는 그 전철을 다시 밟을 것인가.
 

‘민주화 이후의 민주주의’ 문제를 지속적으로 제기해온 최장집 고려대 명예교수. 개혁에 대한 국민들의 열기가 이번엔 정치를 통해 제대로 구현될 수 있을까. 관치경제 종결을 그 첫걸음으로 지목했다. [사진 김춘식 기자]

‘박근혜 이후’가 문제다. 경쟁하는 정당들이 그리고 현재 대권을 꿈꾸는 이들이 개혁에 대한 국민의 열망을 어떻게 풀어나갈 것인가. ‘민주화 이후의 민주주의’ 문제를 지속적으로 제기해온 최장집 고려대 명예교수의 이야기를 들어봤다. “민주화 운동을 잘했다고 해서 모든 게 끝나는 것이 아니라 민주화 이후 선출된 정부들이 좋은 정치를 통해 정부를 잘 운영하고, 좋은 정책을 통해 시민들의 사회경제적, 문화적 삶의 질과 국민적 자긍심을 향상시키는 것이 민주주의의 또 다른 절반입니다.”

최순실 사태의 원인은 과거 회귀
제왕적 대통령과 사적 관계 접목…결국 공사 구분 못하는 상황 초래

법 따라 탄핵, 새 총리, 과도내각을
대통령 스스로 안 물러난다 전제로…국회 법적 절차 해보는 게 큰 의미

DJㆍ노무현도 박정희 대안 못 내놔
야당이 두 번이나 국가 운영했지만…자신들의 경제정책이라 할 게 없어


최 교수는 국회에서 대통령 탄핵, 새 총리와 과도내각 인준 등을 법 절차에 따라 무리없이 진행해 나갈 수 있을 것이라고 전망했다. 이와 함께 새 정부가 지향해야 할 제1의 과제로 60년대 이후 한국의 경제운영원리로 작용해온 ‘박정희 패러다임’의 극복과 관치경제의 종결을 지목했다. 그것이 이번 최순실 사태를 근원적으로 해결하는 방법이라는 얘기다. 그렇지 않으면 권위주의 구체제의 유산이 그대로 또는 변형된 형태로 다시 부활할 수도 있다고 했다. 1년여 앞으로 다가온 대선에서 각 정당과 정치인들이 이 문제를 놓고 자신의 비전과 대안을 내놓고 경쟁하길 기대하고 있다. 개헌은 중요하고 필요하면 할 수 있지만, 지금은 시기가 아니라며 차기 정부에서 논의했으면 좋겠다고 했다.
질의 :헌정 사상 처음으로 대통령이 국정농단의 ‘주범’으로 피의자 신세가 됐습니다. 원인부터 진단해 주시죠. ‘도대체 왜 그랬을까’ ‘박근혜 대통령을 이해할 수 없다’는 사람이 많아요.
응답 :“박정희 대통령의 딸이라는 개인적으로 특수한 배경과 민주화 이후 드러난 여러 제도의 허점이 결합되면서 이번 최순실 사태가 벌어진 것이 아닐까 생각해요. 사회 속에서 살고 성장한 것이 아니라 특수한 가정환경 속에서 성장했잖아요. 공주니 하는 그런 말로 표현되잖아요. 그 과정에서 최태민ㆍ최순실씨와의 특수한 인간관계도 만들어졌고요.

박근혜 대통령이 정치와 사회를 이해한 것은 박정희 대통령 통치의 전기가 아니라 그 후기인 유신시대입니다. 그때 대통령 권력의 성격과 통치방식은 민주주의와 극단적으로 반대되는 것이었지요. 대통령이 법을 존중하지 않고도 통치할 수 있고, 모든 것을 다 할 수 있다는 생각은 했겠지만, 민주적으로 선출된 대통령이 공익에 기여하고 자기를 지지하지 않는 사람들의 의견과 요구도 존중해야하고, 그들의 권익을 보호하고 그들의 삶의 내용을 보살펴야하고, 그것이 곧 국가 전체 이익에 기여하는 것이라는 의식은 갖지 못한 것 같습니다. 그것이 대통령의 책무이지 의무라는 의식말이지요. 그런 것과는 달리 내가 대통령이기 때문에 내가 판단하고, 그것이 무엇인가를 정의하면 그것이 곧 국가전체의 이익이자 목표라고 생각했던 것 같습니다. 나는 박대통령의 실패는 이러한 의식이 중요한 요인이었다고 생각해요”
투표
정국 수습을 위해 가장 시급한 방안은 무엇이라고 생각하십니까.참여기간 2016.11.21 - 2016.11.28 / 11421명 참여
 
질의 :민주화 이후 제도의 허점이란 무엇인가요.
응답 :“박근혜 대통령이 기대고 있던 아버지 박정희 대통령의 국가운영과 경제성장모델을 ‘박정희 패러다임’이라고 부를 수 있어요. 이 패러다임은 우리가 경제적 후진국에서 60~70년대 산업화를 통해 대표적 개발도상국가로 성장하고 지금은 세계 13, 14위 경제 강소국으로 성장한 발판이 되는데 크게 기여했다고 봐요. 그러나 거기엔 근본적 한계가 있습니다.”
 
질의 :어떤 한계죠.
응답 :“두 가지인데요, 하나는 민주적 규범과 병행하기 힘들다는 점이에요. 강력한 대통령이 위로부터 권위주의적으로 경제를 주도하고 목표를 달성하는 모델입니다. 이 패러다임의 핵심요소는 국가-재벌 동맹입니다. 노동자들도 산업화의 중심 동력의 하나였는데 노동을 억압하고 배제하는 구조였어요.”
질의 :또 다른 한계는 뭔가요.
응답 :“시대의 변화입니다. 값싼 노동력에 기반한 수출 제조업 육성이 60~70년대 산업화의 특징입니다. 초기 산업화에서 지적해야할 것은, 냉전시기 그 최전방에 위치한 한국경제발전을 위해 미국이 수출시장을 열어주는 매우 중요한 역할을 했던것이에요. 그래서 어떤 학자들은 “초청에의한 발전”이라고 말하기도 하지요. 그러나 90년대 말 국제금융위기 이후 우리가 신자유주의적 원리를 과격하게 그리고 전면적으로 도입하면서 달라지죠. 한국경제가 놓인 세계경제환경과 경제를 운영하는 원리가 급진적으로 변하게 된 것이지요.”
질의 :경제구조가 어떻게 바뀌었나요.
응답 :“신자유주의의 핵심요소는 감세를 강조하면서 작은 정부를 주장하고, 시장의 자율성과 경쟁을 중시합니다. 국가의 경제개입을 부정적으로 보고, 국가역할을 대폭 줄여 사적 경제영역으로 민영화하는 것이지요. 금융자본의 역할이 엄청나게 커지고, 기술발전이 세계경제발전의 동력이 되면서, 모든 나라의 사회경제적, 문화교육적 구조를 뒤바꾸어 놓았지요. 이러한 체제는 개인의 창발성, 자유로움, 다원적 사회구조, 경제운영과 생산의 유연성과 잘 상응하는 구조라고 하겠어요. 제조업은 여전히 중요하지만, 고기술, 지식집약적 서비스산업이 중심이 되는 시대가 도래했습니다.

이는 관치경제를 통해 이른바 ‘개발독재’를 하던 사회구조와는 잘 상응하지 않는 것입니다. 말하자면 우리사회는 박정희 패러다임에서 벗어나야할 국내외적 환경을 대면한 것이지요. 그것은 이제 구시대적 유물이 된 겁니다. 민주주의, 자유주의, 다원주의와 같은 가치와 사회구성, 정치체제와도 잘 상응할 수 없고요. 급기야 과거 박정희 패러다임의 경제운영방식으로는 성장도 고용도 확대할 수 없고, 청년실업문제, 노동문제, 사회적 양극화 같은 문제들을 해결하기 어렵게 됐습니다.

이렇게 변화된 환경하에서 박근혜 대통령이 상상했던 경제운용원리는 아버지 시대를 재현하는 것밖에 몰랐고, 그걸 현재에 대입하려고 했다는 데 문제가 있었다고 봅니다. 우리나라 경제운용방식을 바뀌어야할 시점에 박근혜 대통령이 집권했는데, 이 정부는 시대변화에 대응하지 못했다고 생각해요. 그것은 불완전한 박정희 모델을 완성한다는 측면에서 매우 좋은 기회였다고 생각해요. 박 대통령의 관점에서 말한다면, 좋은 기회를 살리지 못해 아쉬운 생각이 들 수밖에 없다고 봅니다.

이탈리아 시칠리아출신 귀족가문의 후예이자 작가인 주세페 디 람페두사는 ‘표범’(Il Gattopardo- 가문의 문장)이라는 소설에서 한 의미심장한 말을 하고 있어요. “변하지 않기위해서라도 변해야한다”라고. 박근혜 대통령의 선택을 특징지을 수 있는 말로 이해돼요. 과거의 인연들을 벗어던지고, 스스로 변하는 길을 선택했다면, 자신과 나라 모두를 위해 좋았겠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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질의 :박근혜 대통령이 어떤 정책을 펼쳤어야 했을까요.
응답 :“아버지의 업적을 알리려고 했다면 박근혜 정부는 한국사회가 더 민주화하는 방향으로 정책을 폈어야 했어요. 아버지 모델은 민주주의의 규범과 충돌하는 불완전한 모델이었으니까요. 그걸 박근혜 대통령이 완성하는 방향으로 나갔다면 부녀가 역사적 역할을 했을 수도 있었겠지요. 박근혜 대통령은 과거 회귀적인 방향을 선택했고, 21세기에 유신시대를 재현하려고 했어요. 그것은 파멸로 가는 길이지요. 그것이 이번 최순실 사태를 통해 드러났어요. 강력한 제왕적 대통령 권력이 사적 인간관계와 접목되고, 공사 구분을 하지 못하는 상황에서 그런 현상이 나타났어요.

아버지의 업적을 완성해야 할 사람이 자기가 해야 할 시대적 사명을 이해하지 못했고, 옛날 박정희를 그대로 재현해버림으로써 박정희 패러다임 자체를 해체하는 사태를 초래했지요. 우리나라 민주화 이후 헌법이라는 것이 대통령 권력에 대한 입법부와 사법부에 의한 억제가 너무 취약해서, 대통령 권력이 제도적으로 너무 강해졌어요. 그래서 법 위에 군림하게 되고, 미국헌법의 아버지로 불리는 제임스 매디슨이 무척 강조했던 점, “자신의 사안에 대해 자신이 심판관이 될 수 없다”는 자유주의적 민주주의의 대명제를 박근혜 대통령은 이해하지 못했어요. 우리나라 일반 대중들도 많이 그런 것 같고, 대통령 권력은 법위에 존재할 수 있다는 인식, 대통령이니까 뭐든지 다 할 수 있다는 생각은 민주주의와 정면으로 충돌하는 거예요. 그렇게 되니까 공사구분이 없어지는 거지요.”
질의 :‘박근혜 이후‘가 문제입니다. 국민의 엄청난 분노와 열기를 어떻게 정치적으로 풀어갈 수 있을까요.
응답 :“대통령으로서의 역할은 끝났습니다. 이제 그 이후 문제를 생각해야할 전환점입니다. 해답은 분명하다고 생각해요. 그동안 한국사회를 지탱해왔던 국가운영의 이념이자 원리인 박정희 패러다임을 대체할 패러다임을 발견하는 거라고 봐요.”

덕수궁에 세워진 경제개발 5개년 종합 전시관 개관식에 참석한 박정희 前 대통령이 설명을 듣고 있다.

질의 :그렇다면 대안적 패러다임은 뭐가 있을까요.
응답 :“박정희 패러다임은 ‘발전국가(developmental state)’라고도 부릅니다. 발전국가란 국가가 발전목표로 세우고 모든 사회적 자원을 여기에 투여하는 것인데, 우라나라에서는 국가-재벌대기업 동맹을 통해서 국가의 경제행정 관료들이 경제를 주도해서, 이를 ‘관치경제’라고도 하지요. 이 발전국가는 박정희 시기 그 전형을 보여줬어요. 90년대 말 신자유주의시대를 맞이하여 신자유주의원리를 전면적으로 도입한 이후, 산업화시기의 이 발전국가는 새로운 종류의 발전국가로 변화했어요. 우리는 옛날 하던 경제운영방식(박정희 모델)을 계속 유지하는 상태에서 레이거노믹스와 대처리즘으로 대표되는 신자유주의를 과격하게 받아들이는 과정에서 ‘신자유주의적 발전국가’라고 특징지을만한 현상이 나타났어요.

서구 국가들에서 민영화는 국가의 역할과 규모를 작게 유지하는 방법이지요. 그런데 우리나라에서는 민영화된 사적영역까지 국가권력이 확대돼 오히려 국가 영향력이 더 넓어지는 현상이 나타났어요. 이번 최순실 사태에서도 알려졌듯이 CJ그룹 부회장을 청와대에 협조하지 않는다고 퇴진시킬 수 있고, 또 포스코나 KT가 민영화돼 정부주를 갖지않고 있어도 정부가 그 회장을 임명하거나 퇴진시킬 수 있지요. 한국은, 국가영역이 확대돼 너무나 강하고, 민간영역, 사적 영역에서의 자율성은 거의 존재하지 않거나 굉장히 약합니다.

한국에서 재벌 대기업은 자신들의 영역에서 경쟁자가 없다시피 절대적으로 강하지만, 국가권력은 그들을 줄 세우고, 충성을 강제할 수 있지요. 삼성이나 현대차는 물론, SK, 롯데 같은 대기업들이 세계적 경제 플레이어가 될 정도로 컸지만, 청와대가 요구하면, 수십억씩 갖다 바치지 않으면 안 되는 국가권력앞에 초라한 존재가 아닐 수 없지요. 최근년에 와서는, 국가 영역과 사적 영역이 중첩되는 광범한 지대는, 부정ㆍ부패ㆍ비리의 온상이 되었어요. 이 영역은 민주적 통제나 법의 효과가 적게 미치고 약한 영역이에요. 이 영역은 온 사회로 부패와 도덕적 타락을 확대하는 선도적 역할을 한다고 할 수도 있어요.”
질의 :국가의 역할을 시대변화에 맞게 조정해야 한다는 뜻이군요.
응답 :“우리나라는 민주화가 되었음에도 자유주의적이고 다원주의적 가치와 요소가 약하지요. 그래서 사회운영원리든 국가운영원리든, 이걸 강화하는 사회구성원리가 필요해요. 나는 이것을 위해 세 가지 방향에서 그 원리랄까, 비전을 말하고 싶습니다.

첫째는 국가-재벌 유착관계를 끝내는 것이고, 둘째는 노동자들에게 산업적 시민권을 부여하는 것이고, 셋째는 내가 ‘온건하게 조절된 시장경제’라는 말로 표현하는 시장의 운영원리에 관한 것입니다. 그래서 먼저 그 첫째, 관치경제를 끝내는 문제에 대해 말해보도록 하지요. 사적 경제영역과 재벌 대기업을 국가의 통제로부터 풀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서구 자본주의와 민주주의국가를 보면 쉽게 알 수 있지 않나요. 선진자본주의 국가에서 정부 행정관료기구가 사기업 부문에 개입해서 경제를 계획하고, 사기업을 통제하고 필요하면 강제적으로라도 자금을 갹출하는 사례가 있나요. 그런데 한국에서는 그런 일이 가능하잖아요. 그래서 관치경제를 해체하고, 국가와 재벌대기업의 동맹을 분리해야하는 것이 새로운 국가운영의 비전을 발견하는데 첫 번째 출발점이라고 봐요. 왜 그러냐하면, 그렇지 않으면 국가도 나쁘고 기업도 나쁜 결과가 되기 때문이에요. 동반성장이 아니라 동반퇴락이랄까 그런 거지요.

재벌대기업의 입장에선 법을 위반하고도 관치경제, 국가 재벌 동맹관계를 통해 여러 보호를 받을 수 있지요. 재벌대기업들은 세계시장에서 경쟁해서 이익을 보고 기업성장을 도모하는 것보다 국가와의 동맹으로 얻어지는 권력의 정책적 지원, 특혜를 통해 쉽게 돈 벌 수 있기 때문이지요. 그리고 재벌소유구조를 개혁하지 않고도, 거버넌스를 근대화하지 않고도 기업을 운영할 수 있는 것이지요. 대기업은 세계적 기준의 소유구조에서부터, 기업구조를 발전시키는 데에 게을리 해도 되죠. 재벌기업이 이렇게 성장했음에도 세계적 대기업으로서의 번듯한 구조를 갖는 기업이거나 없든가하는 상태를 만들어냈어요.”
질의 :미르재단ㆍK스포츠재단 사태로 그런 문제점이 다시 드러나게 된 것이군요.
응답 :“전경련을 통해 재벌들을 강탈한다는 게 말이 안 되잖아요. 청와대 수석비서관이나 누군가 정치실력자들이 요구하면 재벌들이 들어주지 않을 수 없는 구조라서 그런 거지요. 공식적으로 나타난 것만 미르재단ㆍK스포츠재단에서 770여억 원이고, 평소에 잘 드러나지 않는 것까지 합치면 얼마나 될지 모를 일이지요.

사실 공식적인 것이라 말하지 않고 있지만, 미래창조경제부의 구조자체도, 정부 관련 부처로부터 파견된 관료들과 사용자단체들이 파견한 대표들로 민관합동운영체제를 구성해서 운영하는 방식도 문제지만, 17개 지자체권역별로 대기업들을 배치해서 수백억씩 출자하도록 하는 것도 결국 대기업으로부터 운영기금을 갹출하는 것이라고 봅니다.

대기업들이 이런 식으로 공식ㆍ비공식적으로 강제성을 갖는 출자를 요구받을 때 그들이 투자를 확대하고, 고용을 증대해서 사업할 의욕이 나겠어요. 정부가 그들에게 국가발전에 기여하라고 압박하는 것에 부응하려는 의욕이 얼마나 생길지 의문입니다. 경제적으로 우리만큼 성장한 국가로서 이런 나라가 얼마나 있을지 잘 모르겠군요.

관치경제는 끊어야 합니다. 국가의 규모와 권력을 조정해야하고, 기업에는 자율성을 부여해야 합니다. 그래야 국가권력을 견제하는 역할도 할 수 있습니다. 과거 산업화시기 구시대의 유물인 전경련은 마땅히 해체돼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한국대기업의 공동이익과 의사, 그리고 정책 비전과 대안을 제시할 수 있는 문자그대로 한국을 대표하는 자율적인 사용자단체로서 말입니다.

국가권력에 대해 한국경제를 움직이는 대기업들의 자율적 결사체가 자율적이지 않은데, 어떻게 다른 기능적 부문, 영역에서 자율적 결사체들이 자율적일 수 있기를 기대할 수 있겠어요. 그렇지 않고서는 경제고, 시민사회고 국가를 상대로 해서 자율성을 갖기는 어려울 것이라고 봅니다. 사회구조, 국가운영체계에 있어 권위주의적 유산이 그대로 살아움직이는데, 그것을 기초로 작동하는 민주주의는 얼마나 민주주의적일수 있을까요.

여기에서 한 가지 강조돼야할 것은, 재벌 대기업이 국가권력에 대해 자율성을 가질 때 지금까지와는 달리 법을 지켜야한다는 것이 대전제라고 하겠어요. 물론 이때 법은 공정하게 적용돼야겠지요. 나는 이런 것들을 ‘자유주의 원리’라고 통칭하고 싶어요. 특히 이러한 자유주의는 정치적 자유주의를 중심으로 한 것이에요. 그동안 우리는 자유주의 없는 민주주의를 해왔다고 할 수 있는데, 그런 민주주의가 얼마나 취약하겠습니까.”
질의 :자유주의 부재를 한국 민주화의 허점이라고 보는 것인가요.
응답 :“민주화투쟁시기 대표적인 구호가 “우리 손으로 직접 뽑는 대통령”이었지요. 선거를 통해 대통령을 선출하는 것만으로는 민주주의가 제대로 작동하기 어렵다는 것을 우리는 이번 박근혜-최순실사태를 통해 깨닫게 됐습니다. 어떤 정부 형태, 어떤 국가구조를 갖느냐하는 문제가 민주주의발전을 위해 정말 필요하다는 것을 절실히 느끼게 됐습니다. 그리고 이러한 국가구조는 사적 영역에서의 자율성, 그러니까 경제영역에서 기업들의 자율성이 출발이라는 것을 깨닫게 된 거죠.”

박정희 전 대통령(왼)과 중국 덩샤오핑(오).

질의 :박정희 패러다임은 중국의 덩샤오핑도 벤치마킹했다는데.
응답 :“1970년대 덩샤오핑이 중국의 개혁개방을 주도하면서, 산업화 노선을 현실로 옮겼을 때, 한국에서처럼 중국의 정치체제는 민주주의가 아니었고, 산업화도 안 된 상태였지요. 중국을 위해서 박정희 발전모델은 매우 매력적인 모델이었지요. 그러나 지금은 중국 역시 산업화를 성취하고, 신자유주의적 세계화를 적극적으로 수용하는 성공적인 개발도상국가의 하나이고, 나아가 고기술, 고학력에 서비스산업 또한 한국 못지않게 빠르게 발전하고 있지요. 지금은 중국에서도 박정희 패러다임이 더 이상 필요하지 않게 되었어요. 내가 박정희 발전모델을 평가절하하는 것이 아니라, 그것이 초기 산업화단계에서는 유용했을지 모르지만, 시대가 바뀌었는데도 그것을 유지하는 것은, 시대착오적이란 말입니다.”
질의 :그럼 두 번째가 노동문제의 개혁이라고 말씀했는데, 그 내용은 어떤 것입니까.
응답 :“한국에서는 60, 70년대의 산업화시기로부터 조금도 변하지 않은 것이 노동문제입니다. 알다시피 그것은 줄곧 억압돼왔지요. 민주화에도 불구하고 변한 것이 없고요. 박정희 패러다임의 두 번째 구성요소가 노사관계에서 산업적 시민권을 인정하지 않고, 노동운동, 노조의 활동을 여러 형태의 법적ㆍ정치적 방법으로 억압하고 생산과정에서 기업에 대한 파트너역할을 부정해왔다는 점이지요.

민주적 노사관계의 발전은 비단 노동영역에서만이 아니라, 한국사회의 모든 갑을관계의 기초라고 할 수 있겠지요. 그러니까 노동이 기업과 사업현장에서 민주적 노사관계로 인정받지 못하는 것은 곧 우리사회의 모든 갑을관계, 그것이 대체로 위계적이고, 권위주의적이고, 인간존엄성과 인간적 가치가 부정되거나, 존중되지 않는 사회경제적 계약관계의 불균등의 원천이라고 할 수 있겠어요. 그리고 경제적 영역에서 노조 활동은 임금교섭이나, 민주적 노사관계를 위해 필요한 것이 아니라, 한국사회전체에서 가장 중요한 생산자집단을 억압한다는 의미를 갖는 것이고, 그 결과는 한국 전체의 자율적 결사체를 억압하는 것으로 이어질 수 있어서죠. 우리사회에서는 모든 결사체들이 국가에 의존하고, 그럼으로써 자율성이 제한된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에요. 이게 바뀌어야 한다는 것이에요. 그것이 민주주의가 기반을 둬야하는 기초가 되니까요. 사회의 자율성이 취약하고, 제한되는 사회에서 민주주의가 발전하기란 어렵기 때문이지요.”
질의 :노조와 노동운동은 바뀌지 않아도 되나요.
응답 :“노동을 배제하지 않는 방향으로 노사관계가 개선된다는 전제 위에서 노동운동도 바뀌어야 합니다. 노조는 기업을 적대시하거나 투쟁의 대상으로 삼기보다, 기업의 생산성 증가와 기업성장에 기여하는 협력자로서 역할하는 것이 필요하다고 생각해요. 노동운동의 책임의식이 필요하고, 노동자들의 노동윤리도 필요하다고 생각해요. 노동운동이 투쟁일변도이고, 자기이익만 추구하는 너무 나쁜 노조 이미지를 불식시키도록 노력하는 것이 좋다고 생각합니다. 그렇게 될 때 기업과 노동조합사이에 상호간 신뢰와 협력관계가 만들어질 수 있을 것이라고 믿습니다. 독일이나 일본의 노동운동이 하나의 모델 사례가 아닐까합니다. 그건 일종의 교환관계입니다. 기업이 노동운동을 인정할 때, 노동자들도 그에 부응해야 한다는 점에서 그렇습니다. 또 그 반대도 사실이고요.”
질의 :대기업 노조들이 ‘귀족 노조’로 비판받기도 하는데.
응답 :“그런 노동운동이면 안 된다는 거죠. 노조는 중소기업에서 사실 더 필요해요. 여러 형태의 비정규직노동운동도 필요한 부분이 있고. 대기업 노조가 진짜 이익을 실현하는데 발목잡고 이런 역할만 하면 사회적 여론도 여기에 동조할 수 없지요. 노동운동이 사회적으로 인정받으려는 노력이 필요합니다. 대기업노동 운동이 귀족 노조가 되어 기업발전에 기여하지 못한다는 비판은 새겨들어야할 비판이라고 생각합니다.”
질의 :앞에서 박근혜 이후 시기의 세 번째 요소에 대해 말했는데, 그건 어떤 것을 말하는 것입니까.
응답 :“그것은 경제와 시장을 운영하는 원리에 관한 것입니다. 내가 염두에 두는 것은 ‘온건하게 조절된 시장경제’입니다. 영미식의 규제되지 않은 시장경제가 있고, 유럽 사회민주주의에서 사회적으로 규제된 시장경제가 있다면, 그 중간에 ‘온건하게 조절된’ 시장경제가 위치할 수 있다고 생각하는 것이지요. 우리는 시장 경제에서 대기업의 힘이 너무 크기 때문에 이것은 적절히 국가에 의해 조절되는 게 필요하다고 봅니다. 조절된다고해서 갑자기 기반도 없이 유럽식 사회민주주의원리에 상응하는 사회적으로 규제된 시장경제를 말하는 것은 아닙니다. 그 중간쯤 어디엔가 위치할 수 있다고 생각하는 사회적 요구에 조응하는 조절된 시장경제를 말합니다. 민주적 결정을 통해 사회적 문제를 풀어가는, 온건하게 조절된 자율적 시장 경제가 우리가 할 수 있는 범위가 아닐까 생각합니다.”
질의 :내년 대선까지 1년 남짓 시간이 남았는데, ‘박근혜-최순실 사태’를 해결하기 위해 어떤 과정을 밟아야 할까요, 시간이 너무 촉박한 것 아닌가요.
응답 :“탄핵이든 퇴진이든 하야든 우선 박근혜 대통령이 자발적으로 퇴진하지않는 한, 퇴진시키는 절차자체가 시간을 필요로 할 것입니다. 내가 말하는 오늘의 주제는 박근혜 대통령 퇴진과 관련된 것이 아니라, ‘박근혜 이후’ 자기들이 무엇을 할 것인지를 보여주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박정희 패러다임의 해체와 그로부터의 전환이란 문제의식으로 방향이 잡히면 좋겠다는 것입니다. 우리는 역사적인 정치적 전환점을 대면하고 있는데, 박정희 패러다임의 붕괴로 정당 간 정치경쟁의 하부기반 자체가 붕괴됐다는 사실입니다. 그것은 기존의 정당체제 자체를 뒤흔드는 지각변동의 의미를 갖습니다. 여기에서 내가 말하는 것은, 정당체제가 서있는 전체적인 틀이지, 누가 이러이러해야 한다 또 이런 건 아니다라고 주장하려는 것은 아닙니다.”
김대중 전 대통령(왼)과 노무현 전 대통령(오).

김대중 전 대통령(왼)과 노무현 전 대통령(오).

질의 :민주화 이후 김대중ㆍ노무현 정부는 박정희 패러다임과 다르지 않았나요.
응답 :“아니에요. 나는 그렇게 생각지않습니다. 보수지배의 정치체제에서 야당이 두 번이나 선거에서 승리해 정권을 잡고, 국가를 운영할 기회를 가졌다 하더라도 나는 그들이 박정희 패러다임의 대안을 가지고 통치했다고 생각지 않습니다. 김대중ㆍ노무현 정부의 국가운영원리, 또는 그 자신들의 경제정책이라고 할만한 것이 있었다고 생각지 않아요. 박정희 패러다임 위에서 당시 한나라당을 비판하며 선거에 나가 당선이 된 것이지, 박정희 패러다임의 대항 모델을 갖지는 못했습니다. 그런데 이제 새로운 패러다임을 만들지 않을 수 없는 조건이 만들어졌다고 봅니다. 이제 그 결과는 정당들과 정치인들의 어깨에 걸려있다고 생각합니다.”
질의 :향후 새로운 패러다임은 통일과 관련되어야 하지 않을까요.
응답 :“지금까지 큰 틀에서 정부 형태, 경제를 운영하는 방향을 얘기했는데, 통일은 그것과 구분되는 영역입니다. 통일문제도 이제 방향은 간단하다고 봐요. 평화지향적이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그동안의 모든 대북정책은 평화를 존중하는 것이 아니었지요. 북한을 힘으로 무너뜨려서라도 흡수통일을 하겠다는 것이었으니까요. ‘통일 대박’은 그걸 경제적으로 바꾸어 말하면서, 통일만 되면 우리는 싼 노동력이 대량 공급되고 시장도 생기고, 세계의 강대국 반열에 오를 수 있다는 그런 생각 아니었을까요. 그런 발상은 망상으로 끝나는 것이 아니라, 엄청나게 위험하다고 생각합니다. 소규모 무력충돌, 또는 대규모 전쟁, 한반도 군비경쟁과 최첨단 무기 배치 등 이런 문제들에 대해 고려하지 않으면서 오로지 북한을 굴복시키겠다는 발상 또는 접근이라고 봐요. 이제 진정으로 대북정책을 평화지향적인 것으로 바꿀 때가 됐고, 그런 상황이 강제되는 시점에 이르렀다고 봐요. 박정희 패러다임의 해체가 이러한 기회와 공간을 열었다고 믿습니다.”
질의 :다시 개헌 문제가 나오고 있는데.
응답 :“정부 형태가 문제가 있으면 개헌을 논의할 수 있겠지요. 그러나 개헌 문제를 제기하는 방식과 시점은 참으로 문제가 크다고 생각합니다. 현재의 정치 체제가 제도적으로 어떤 문제를 안고 있는지, 헌법내용에서 무엇이 문제인지에 대해 광범하게 논의한 다음, 이슈를 축소하고 개헌이 필요한 부분에 대해 논의하여 컨센서스가 일정하게 형성된 연후에 본격 논의로 들어가면 좋겠다는 생각입니다. 개헌 문제는 굉장히 복잡합니다. 박근혜 정부 문제를 처리하는 것도 복잡한데 그 둘을 섞어 놓으면 문제를 제대로 해결할 수 있을까요. 나는 그렇게 생각지않습니다. 박근혜 대통령 퇴진문제를 처리한 다음 대선을 치르고나서 필요하다면 다음 정부에서


[출처: 중앙일보] [단독] ‘박근혜 이후’가 문제다… 박정희 패러다임 ‘관치경제’ 끝내자
논의하는 게 순리라고 생각합니다.”
질의 :검찰이 박근혜 대통령을 공범으로 지목하자 국회에서도 ‘탄핵’ 절차로 들어갈 것 같은데요.
응답 :“탄핵은 헌법절차를 따라서 해보는 게 중요하다고 봅니다. 대통령이 스스로 물러난다고 보기 어렵고. 안 물러난다는 것을 전제로 하고 법적 절차를 따라서 국회에서 실제로 해보는 것 자체가 큰 의미를 갖는다고 생각합니다. 물론 그 사이에 대통령이 스스로 퇴진한다면 좋겠습니다. 시민들은 포괄적으로 물러나라고 요구하고 있지만, 그 절차까지 시민들이 결정하고, 다룰 수는 없는 것이니까요. 그것은 어디까지나 의회와 정당들의 몫입니다.”
질의 :탄핵 역풍을 우려하기도 하는데요.
응답 :“중요한 것은 대선 경쟁 후보나 주요 정치인들이 수동적으로 움직일 것이 아니라 적극적으로 자기들에게 부여된 역할을 다하는 것입니다.”

배영대 문화선임기자 balance@joongang.co.kr
[사진 김춘식 기자, 중앙포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