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근혜 대통령의 연봉은 2억1200만 원이다. 작년보다 697만 원이 더 많다. 세전(稅前) 월급이 대략 1800만원이다. 업무추진비 등 별도의 활동자금도 있다. 이 돈은 당연히 국민 세금에서 나온다.
지난 한 달간 대통령은 제대로 일을 안 했다. ‘최순실 사태’의 핵심 당사자로 국정(國政)을 제대로 챙길 틈이 없었다. 대통령 스스로 “책임을 통감한다”며 ‘내치(內治)’를 맡을 김병준 국민대 교수를 국무총리로 내정했다. 사실상 ‘2선 후퇴’를 언급했으니 일을 하려고 해도 할 수 없는 처지였다. 정치권은 ‘퇴진’ ‘하야’를 요구했다. 그런데도 박 대통령은 월급을 챙겼을 것이다.
3년 7개월 전 청와대에 들어간 대통령은 ‘밥값’을 제대로 하기 위해 노력해왔을 것이다. 그 일환으로 ‘창조경제’를 얘기했고, ‘문화융성’도 꺼냈을 것이다. 그런데, 결과적으로 대통령은 밥값을 제대로 하지 못했다. ‘최순실 사태’가 그 방증이다.
박 대통령은 지난 11월 4일 대국민담화에서 이렇게 말했다.
“저 스스로를 용서하기 어렵고 서글픈 마음까지 들어 밤잠을 이루기도 힘이 듭니다. 무엇으로도 국민들의 마음을 달래드리기 어렵다는 생각을 하면 내가 이러려고 대통령을 했나, 이런 자괴감이 들 정도로 괴롭기만 합니다.”
그의 표현을 차용(借用)하면, ‘이런 나라 꼴 보려고 대한민국 국민 했나’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국민은 더 큰 자괴감에 빠져 있다.
다행히 박 대통령은 자신의 잘못을 인정했다.
“이 모든 사태는 모두 저의 잘못이고 저의 불찰로 일어난 일입니다. 저의 큰 책임을 가슴 깊이 통감하고 있습니다. 저 역시 검찰의 조사에 성실하게 임할 각오이며, 특별검사에 의한 수사까지도 수용하겠습니다.”
‘최순실 의혹’을 수사하고 있는 검찰은 11월 18일 “(박 대통령은) 입건 여부를 떠나 구속된 피의자들에 대한 범죄사실과 관련해 중요한 참고인이자 범죄 혐의가 문제가 될 수 있는 상황”이라고 했다. 사실상 피의자라는 것이다. 박 대통령은 변호인을 통해 다음 주 검찰 조사를 받겠다고 했다. 지난 11월 17일 국회에서 ‘최순실 특검법’이 통과되면서 향후 구체적인 혐의가 드러날 수도 있다 .
이제 대통령이 밥값을 제대로 하기 위해 '해야 할 일'은 명확하다.
우선 검찰과 특검(特檢) 조사에 성실히 임해야 한다. 진행되는 상황으로 볼 때 퇴임 후 형사처벌 받을 가능성이 있다. 그래도 약속한 대로 조사를 제대로 받아야 한다.
또 입법부에 제안했듯, 국회가 합의로 총리를 추천하면 신임 총리로 하여금 헌법이 보장하는 권한을 충분히 행사하도록 해줘야 한다.
야(野) 3당이 ‘대통령 퇴진’을 공론화하고 있고, 문재인(文在寅) 전 더불어민주당 대표가 대통령 퇴진을 위한 ‘전국운동’을 벌이겠다고 하니 그들에게 집회와 시위의 자유를 보장해야 한다. 불법시위를 하면 의법조치하면 된다.
국회가 탄핵안을 통과시키면 헌법재판소 판단이 나올 때까지 자숙하고 기다려야 한다.
또 한가지. 박 대통령은 지난 10월 24일 국회에서 ‘개헌(改憲)’을 국민에게 약속했다. 국회가 개헌을 추진할 수 있도록 대통령으로서 협조하고, 이미 밝힌 대로 임기 내 개헌이 완수될 수 있도록 최선을 다해야 한다.
이 모든 일들이 진행되는 동안 나라는 당분간 혼란스러운 것이고, 국민은 고통에 빠질 것이다. 대통령이 밥값을 제대로 한다면, 그런 고통을 감내(堪耐)하는 국민들이 적지 않을 것이다. 박 대통령 스스로가 “모두 저의 잘못이고 저의 불찰로 일어난 일”이라고 밝혔듯이 국민 앞에 머리를 숙이고 헌법이 규정한 대로 ‘대통령으로서 밥값’을 주어진 임기 동안 ‘확실히’ 해야 한다.
매일 아침 출근하는 ‘대통령 집무실’이 마치 ‘지옥’처럼 여겨지더라도, 대통령은 집무실에 나가 ‘해야 할 일’을 해야 한다. 그것이 국가와 국민을 위한 길이다.
시인 정호승의 ‘밥값’이라는 시(詩)가 있다. 시 속 화자(話者)는 매일 지옥을 다녀오면서도 어머니에게 “걱정 마시고 식사 꼭 챙겨드시라”고 말한다.
어머니아무래도 제가 지옥에 한번 다녀오겠습니다아무리 멀어도아침에 출근하듯이 갔다가저녁에 퇴근하듯이 다녀오겠습니다식사 거르지 마시고 꼭꼭 씹어서 잡수시고외출하실 때는 가스불 꼭 잠그시고너무 염려하지는 마세요지옥도 사람 사는 곳이겠지요지금이라도 밥값을 하러 지옥에 가면비로소 제가 인간이 될 수 있을 겁니다
박 대통령은 시(詩) 속 ‘어머니’인 ‘국민’을 가장 먼저 생각해야 한다. 밥을 허겁지겁 챙겨먹는 국민이 체하지 않도록 해야 하고, 집에 불이 나지 않도록 ‘가스불’도 챙겨야 한다. 박 대통령은 지금, 지옥보다 더한 곳이라도 달려가야 한다. 그래야, ‘그나마 대통령’이 될 것이다.⊙ [글=백승구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