입력 : 2016.10.16 08:40 | 수정 : 2016.10.16 09:58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 ARM이 손잡고 새로운 방식의 비휘발성 메모리 아키텍처 개발에 나섰다. 데이터센터, 서버용 메모리 반도체 시장에 지격 변동을 일으킬 것으로 예상되는 '스토리지클래스메모리(SCM)' 기술 분야에서 인텔을 견제하기 위한 목적이다.
14일 외신과 업계에 따르면 삼성전자, SK하이닉스, ARM, 브로드컴, 웨스턴 디지털 등 세계 상위권 반도체·스토리지 업체들과 IBM, 화웨이, 델 EMC, HPE 등 최대의 서버 업체들이 차세대 SCM 아키텍처 개발을 목적으로 'Gen-Z'라는 이름의 컨소시엄을 결성했다. 인텔과 시스코를 제외한 업계 강자들이 모두 참여하는 모양새다.
- ▲ 브라이언 크르자니크 인텔 CEO가 지난해 미국 샌프란시스코에서 열린 ‘IDF 2015’ 행사에서 서버, 데이터센터용 차세대 메모리 기술인 3D 크로스포인트를 소개하고 있다. /황민규 기자
Gen-Z는 서버, 데이터센터용 메모리 반도체의 대역폭을 높이고 구조를 단순화해 레이턴시를 낮춘 메모리 아키텍처 개발을 목표로 하고 있다. 또 데이터 처리용량과 성능을 대폭 끌어 올려 중앙처리장치(CPU)와 메모리의 병목 현상을 최대한 줄이는 것도 목표다.
현지 업계에 따르면 Gen-Z는 연내 차세대 메모리 아키텍처와 성능 등 주요 사양을 확정해 발표할 예정이다. 업계 관계자는 "아직 구체적인 수준의 표준을 정할 수 있는 단계는 아니지만 대형 서버업체들이 참여하고 있다는 점을 감안할 때 소프트웨어, 인메모리 애플리케이션을 강화할 수 있는 해법을 내놓을 것"이라고 설명했다.
지난해 3D 크로스포인트 기술을 내놓으며 서버, 데이터센터용 메모리 반도체 시장을 침입 중인 인텔은 삼성전자, SK하이닉스뿐만 아니라 델 EMC, 웨스턴 디지털, 시게이트 등의 스토리지 업체 입장에서도 껄끄러운 존재다. 인텔이 3D 크로스포인트 기술을 발판으로 스토리지 사업 분야까지 진출할 가능성도 높기 때문이다.
세계 최대의 메모리 업체인 삼성전자도 서버, 데이터센터용 시장에서의 인텔의 공세에 대응하기 위해 다양한 대응 시나리오를 마련하고 있다. 지난해 크로스 라이선스를 체결한 넷리스트의 기술을 활용해 SCM 사업을 확대하는 한편 지난 8월 공개한 'Z-SSD'로 솔리드스테이트드라이브(SSD) 분야의 경쟁력을 강화하는 것에도 힘쓰고 있다.
반도체업계 관계자는 "삼성전자가 3D 낸드로 서버 분야에서 40%가 넘는 영업이익률을 기록하고 있고, 인텔은 서버용 칩으로 매출의 30%, 영업이익의 50%를 벌고 있다”면서 “인텔이 서버용 CPU와 아키텍처를 시장을 지배하다시피하기 때문에 나머지 기업들의 반격이 어느 정도나 영향을 미칠 수 있을지는 미지수"라고 말했다.
삼성, 로드맵까지 변경하며 인텔 정조준...차세대 메모리 경쟁 '점화'
이 회사는 11일(현지시각) 미국 산타클라라에서 열린 '플래시 메모리 서밋 2016'에서 "연내 1테라바이트(TB) 용량의 ‘Z-낸드 SSD(솔리드스테이트드라이브)'를 내놓을 것"이라며 "D램과 낸드플래시의 특성을 모두 갖춘 제품”이라고 말했다. 이날 삼성전자는 국내외 미디어에도 “삼성전자가 미국에서 4세대 64단 적층 3D 낸드 플래시 ‘Z-낸드 SSD’를 공개했다"며 일제히 보도자료를 뿌렸다.
반도체 전문가들은 "삼성전자가 전략 로드맵을 미리 공개한 것은 인텔-마이크로 진영을 견제하겠다는 의미"라고 말했다. 최근 인텔은 마이크론과 손잡고 신형 3D(차원) 메모리 크로스포인트를 출시해 30년 만에 메모리 시장 재진출을 선언했다.
- ▲ 삼성전자의 Z-SSD 시제품.
삼성전자가 공개한 Z-낸드 SSD는 고성능 데이터센터용 메모리 반도체다. 이 제품은 삼성 고유의 서킷 디자인으로 만든 3차원 수직구조 낸드플래시(V낸드) 칩을 쓴다. 삼성전자의 기존 SSD(PM963 NVMe)보다 연속읽기 속도가 1.6배 빠르고, 지연속도(latency)는 4배 가량 짧다. 연속읽기 속도는 초당 2.56기가바이트(GB)시, 지연속도는 7.5마이크로초(μs·100만분의 1초)로 추산된다.
삼성전자는 이 제품이 "셀 하나에 비트 하나를 담을 수 있는 싱글레벨셀(single level cell·SLC)만큼의 내구성을 갖추고 있으면서도 셀 하나에 3비트를 담을 수 있는 트리플레벨셀(triple level cell·TLC)처럼 집적도를 높인 것"이라고 했다.
반도체 업계는 삼성전자의 이런 움직임이 인텔과 마이크론의 신형 메모리에 선제적으로 대응하기 위한 것으로 해석했다. 인텔은 상변화메모리(P램)의 한 종류로 추정되는 크로스포인트를 개발했으며, 마이크론은 지난 2월 인텔로부터 크로스포인트 샘플을 받아 SSD 개발에 나섰다. 크로스포인트를 쓴 SSD는 2017년 1분기쯤에 나올 것으로 예상된다.
삼성전자가 이번에 전격 공개한 Z-낸드는 인텔의 크로스포인트와 기능적으로 닮았다. 데이터를 많이 저장할 수 있도록 셀을 수직으로 쌓은 3D 구조, D램보다 속도는 느리지만 전원이 꺼져도 데이터를 잃어버리지 않는 비휘발성 등 Z-낸드도 D램과 낸드플래시의 중간 형태라는 평가를 받는다.
미국 IT 전문매체 EE타임즈는 삼성전자 (1,585,000원▲ 28,000 1.80%)도 이를 숨기지 않는 분위기라고 전했다. 티엔 시아 삼성 상품 마케터는 이 매체와의 인터뷰에서 "가격은 기존 TLC 플래시보다는 비싸지만 경쟁사의 제품(크로스포인트)보다는 비용 대비 효율적인 제품이 될 것"이라고 말했다.
삼성전자는 메모리 시장의 대세로 자리잡은 3D 적층 공법인 ‘V낸드’ 기술을 활용했다. 인텔의 크로스포인트는 아직 검증되지 않은 신기술을 썼다.
국내 사립대 전자공학과 교수는 크로스포인트가 "크로스포인트는 상변화메모리(P램)의 한 종류로 보인다"며 "기존 메모리와 비메모리로 구성된 반도체 구성 체계에서 새로운 시장을 만들 수 있는 기술이지만, 아직 시장성이 있다고 보기에는 이른 감이 있다"고 말했다.
◆ 데이터센터용 메모리 시장 급성장…"인텔 초기 손실 감수하며 덤빌 듯"
삼성전자와 인텔이 고성능 SSD 시장 패권 다툼에 나선 것은 시장이 급속도로 성장하기 때문이다. 시장조사업체 가트너는 전세계 SSD 시장은 지난 2013년 110억 달러에서 2017년에는 235억 달러로 성장할 것으로 예상했다. 전체 저장장치 시장에서 SSD 비중도 2010년 6.5%에서 2014년 31.5%로 증가했고, 2016년에는 50%를 넘을 것으로 관측됐다.
이런 현상은 SSD와 하드디스크의 가격차가 줄면서 가속하고 있다. 2012년에 두 제품군의 가격차는 6배 정도였지만 현재는 2.8배까지 줄었다.
삼성전자는 SSD 시장에서 독보적으로 앞서나가고 있다. 지난 10일 시장조사기관 IDC에 따르면 삼성전자는 올해 1분기 세계 기업용 SSD 시장에서 32.4%의 점유율을 기록하며 1위 자리에 올랐다. 지난해 4분기에만 해도 22% 수준의 점유율을 기록했었지만, 한 분기만에 점유율이 10.4%포인트 성장했다. 인텔은 올해 1분기 19% 수준의 점유율을 기록한 것으로 추정된다.
일부 전문가들은 인텔의 크로스포인트가 삼성전자의 반격에 초반 고전을 면치 못할 것으로 본다.
시장조사업체 마켓와쳐애널리시스의 짐 핸디 연구원은 "크로스포인트를 사줄 고객사를 확보할 때까지 인텔이 손실을 볼 가능성이 크다"며 "인텔이 이를 만회하기 위해 크로스포인트를 고성능 프로세서와 하나의 플랫폼으로 묶어 파는 도박을 할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퀄컴·아마존도 ARM 서버 칩 만들어...소프트뱅크가 최대 변수
28일 업계에 따르면 퀄컴은 올해 하반기에 ARM 아키텍처 기반의 서버용 SoC '센트릭(centriq)'을 본격 양산한다. 구체적인 제품 사양은 아직 비밀에 붙여졌지만, 전력효율성과 안정성뿐만 아니라 ARM 기반 칩의 약점이었던 데이터 처리 성능을 크게 향상한 제품으로 알려졌다.
- ▲ ARM 칩 /블룸버그 제공
ARM 진영에 속한 퀄컴은 모바일 칩 사업의 성장성 한계를 체감하고 서버를 비롯한 데이터센터 시장으로 영역을 확대해 왔다. 사업의 이익률도 서버 부문이 두 배 가까이 높다. 인텔의 경우 매출의 70% 이상이 PC용 시장에서 발생하는 반면 영업이익의 절반 이상은 서버용 사업에서 발생할 정도다.
지난 수년간 서버 시장에서 이렇다할 성과가 없었던 ARM은 퀄컴, AMD 등과 협력해 서버용 칩 설계 기술을 강화해왔다. 올초에는 세계 서버 시장 최대의 '큰 손'인 구글이 퀄컴과 서버용 칩 개발을 위해 파트너십을 맺는 등 소기의 성과를 거둬나가고 있다.
인텔의 x86을 라이선스해 서버용 SoC 사업을 하고 있던 AMD와 세계 최대의 퍼블릭 클라우드 업체인 아마존웹서비스(AWS)도 최근 ARM 진영에 가세했다. AMD는 올초 ARM 설계 기반의 ‘옵테론 A1100 SoC(코드명 시애틀)' 양산을 발표했고, AWS도 이스라엘 자회사인 안나푸르나랩을 IoT, 클라우드, 네트워킹 등에 사용하는 ARM 기반 칩셋 '알파인'을 판매한다고 밝혔다.
- ▲ 손정의 소프트뱅크 사장이 7월 28일 일본 도쿄에서 열린 기자 간담회에서 약 35조원에 ARM을 인수한다고 발표했다. /블룸버그 제공
서버업계 관계자는 "기업용 시장에서도 모든 제품이 고성능을 필요로 하지는 않기 때문에 서버나 스토리지 분야에서도 모바일 기기 시장처럼 부품을 단지 조립해서 브랜드 없이 낮은 가격에 파는 화이트박스도 등장하고 있다"며 "ARM 코어 프로세서의 경우 비교적 낮은 가격과 개방된 생태계를 내세워 저사양 시장에서 충분히 경쟁력을 발휘할 수 있다"고 설명했다.
한편 업계에서는 ARM이 소프트뱅크와의 M&A 이후 데이터센터용 시장에서 더 넓은 영업망을 구축할 것으로 예상하고 있다. 일례로 ARM이 소프트뱅크가 투자한 데이터센터에 칩을 공급해 확실한 성공 모델을 만들 경우 다른 대형 IT 기업들도 ARM 기반 서버칩 도입에 전향적인 태도를 보일 수 있다.
반도체 업계 한 관계자는 "서버용 SoC 시장에서 ARM이 성공적으로 모델을 구축할 경우 현재 스마트폰 시장과 마찬가지로 반도체 기업들이 ARM의 표준 코어 디자인을 바탕으로 손쉽게 서버용 칩 시장에 진입할 수 있을 것"고 설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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