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특파원 리포트] '神이여, 미국만 축복을'

Shawn Chase 2016. 10. 16. 14:16



입력 : 2016.07.05 06:03


김덕한 뉴욕 특파원


미국 프로야구 뉴욕 메츠의 홈구장 시티필드를 밟아보고 에이스 투수 맷 하비가 등판하는 야구 경기를 보게 된 초등학생 아들은 들떠 있었다. 아들이 소속된 동네 어린이 야구리그는 한 학기를 마치며 지난달 17일 '시티필드에서 행진하고 400명이 단체로 한 구역에 앉아 야구를 보는' 이벤트를 기획했다. 그러나 야구장에선 실망의 연속이었다. '시티필드' 행진은 계단 난간에서 한 시간 반이나 기다리다가 잔디는 밟아보지도 못하고 진행요원들의 호루라기 소리를 들으며 워닝트랙의 흙바닥 위를 잰걸음으로 빠져나온 게 전부였다. 관람석은 맷 하비의 투구 모습은 고사하고 외야수가 뜬공을 잡는 것도 보이지 않는 외야 4층 꼭대기 자리였다.

이날 이벤트 요금은 40달러. 좋은 자리를 줄 것이라고 기대했었다. 200달러 넘는 메트로폴리탄 오페라의 최상급 티켓을 형편이 어려운 대학생들에게 20달러에 주던 10년 전 미국의 모습을 기억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아니었다. 어린이와 약자를 배려하고, 가난하지만 꿈을 가진 젊은이들에게 희망을 주는 '미국식 관용'이 요즘 점점 사라져 가는 느낌이다. 그날 내야 쪽 상단 관람석이 텅 비어 있는 것을 보면서 그런 생각이 더 굳어졌다. 신호가 바뀌자마자 빨리 출발하라며 경적을 울리는 차들, 혼잡한 주차장에서 빈자리가 생기면 뒤차가 쏜살같이 끼어들어 새치기하는 모습은 10여 년 전만 해도 좀처럼 볼 수 없었다.


좀 섬뜩한 느낌이 들 때도 있다. 9·11 때 파괴된 월드트레이드센터 부지에 짓고 있는 건물 중 하나인 '3 월드트레이드센터'의 상량식 취재를 갔을 때 일부 연사들의 연설에선 한(恨)을 넘어 증오가 느껴졌다. "우리에게 도전하는 악의 세력은 지금도 우리를 계속 공격하고 있다. 우리는 이들을 무찔러 이기고 위대한 미국을 건설할 것이다"라는 식의 연설이 계속되고 '갓 블레스 아메리카(God Bless America·신이여 미국을 축복하소서)'라는 노래를 주먹을 움켜쥐고 불렀다.

입만 열면 '아메리카 퍼스트(America First)'를 외치는 도널드 트럼프가 미 공화당 대선 후보로 사실상 결정된 것은 '관용이 사라지는 미국'을 상징하는 현상인지 모른다. 경력 30년 넘는 한 미국 여기자는 내게 "미국의 관용은 물론, 관용해야 한다는 위선까지 걷어치우자는 선동, 트럼프 지지자들은 그것에 열광하고 있다"며 한숨을 쉬었다.

관용은 강대국의 조건이다. 중국계 미국인인 에이미 추아 예일대 교수는 지난 2007년 출간한 저서 '제국의 미래'에서 "관용이 패권국가의 충분조건은 아니지만 관용 정책 없이 폐쇄된 국가는 결코 성장할 수 없다"고 썼다. 그러면서 관용을 다른 문화, 인종, 종교를 가진 종족들을 묶어주는 장치, '접착제'라 불렀다. 미국이 패권을 지키기 위해서는 보다 열린 이민정책, 일자리 아웃소싱에 대한 관용, 새로운 다자주의의 수용이 필요하다고 역설했다. 그러나 오늘날의 미국, 그리고 리더십을 가져야 할 강대국들 모두가 정반대 쪽을 향하고 있는 것 같다.

트럼프가 한·미동맹의 손익관계를 계산하며 시비를 거는 식의 행동은 앞으로 더 빈번해질지 모른다. 불관용 시대의 미국과 어울려 살아갈 방법을 고민해야 할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