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공기·공항

항공 패권 노리는 中東, 무차별 低價 공세

Shawn Chase 2016. 6. 20. 20:38

싼 기름값·정부 보조금 등에 없고 飛上..국내 항공사 非常


조선일보 | 이성훈 기자 | 입력 2016.06.20. 19:25



이달 초 에미레이트항공과 에티하드항공, 카타르항공 등 중동 항공사들은 두바이·아부다비·도하를 경유해 파리·런던·프랑크푸르트 등 유럽으로 오가는 왕복 항공권을 최저가 기준으로 55만~70만원에 내놓았다. 이는 대한항공·아시아나항공의 인천~유럽 직항 왕복 항공권의 최저가인 165만~178만원(항공사에서 직접 구매 기준)의 3분의 1 수준이었다.

인천에서 출발해 유럽으로 갈 경우 중동 경유 노선은 약 21시간, 직항은 약 12시간 걸린다. 국내 항공사 관계자는 “보통 경유 노선은 직항보다 30% 정도 저렴한데, 3분의 1밖에 안 하는 것은 파격적”이라며 “중동 항공사들이 유럽행 수요를 잡기 위해 파상 공세를 펼치는 것”이라고 말했다.

이는 저(低)유가가 지속되면서 중동 국가들이 석유 산업을 대체할 신규 산업 중 하나로 항공업을 집중적으로 육성하면서 생기는 현상이다. 서정민 한국외대 교수는 “항공사들은 저렴한 항공료와 공격적인 노선 확장에 나서면 당장 이익을 내지 못한다”면서 “그러나 중동 국가들은 관광·서비스업에서 더 많은 부가가치를 창출할 수 있다는 계산을 하고 있다”고 말했다.

◇중동 항공사, 값싼 항공권 공세… “허브 공항 통해 항공산업 패권 노려”

중동 항공사의 저가 공세는 싼 기름값과 정부 보조금 때문에 가능하다는 게 항공업계의 해석이다. 기름값은 운임 원가의 30%나 차지하지만, 산유국인 UAE와 카타르의 기름값은 국내의 5분의1 수준이다. 그만큼 비용이 덜 드는 것이다.

이는 국내 항공업계에도 큰 위협이다. 지난해 국내 승객 가운데 중동 항공사를 이용해 유럽으로 간 승객은 약 63만명이며, 이들이 낸 항공료는 3300억원이다. 승객뿐 아니라 항공 전문 인력도 중동 항공사로 유출되고 있다. 국내 항공사 관계자는 “에미레이트항공의 경우 700여명의 한국인이 근무하고 있다”면서 “최근 2년간 한국인 승무원을 200여명 더 채용했다”고 말했다.

중동 항공사의 공세는 자국 공항을 허브 공항으로 육성하는 전략과 맞물려 있다. 지난해 UAE의 두바이공항을 이용한 승객은 총 7745만명으로 전 세계 공항 중에 가장 많았다. 칠레 남단 등 일부 남미를 제외하고는 전 세계 어디든 1만5000㎞ 이내여서 대형 항공기를 이용하면 갈아타지 않고 한 번에 갈 수 있는 지리적 장점을 살린 것이다. 두바이는 여기서 멈추지 않고 총 공사비 320억달러(약 37조원)를 들여 현재 두바이공항의 10배 크기인 ‘알막툼 국제공항’을 2028년 완공하는 야심 찬 계획을 진행 중이다. 손성현 대외경제정책연구원 전문연구원은 “두바이는 환승객들이 잠시 머무르면서 즐길 수 있는 관광 인프라 개발에도 열을 올리고 있다”며 “UAE는 허브 공항 전략을 통해 세계 항공산업의 패권을 쥐려 한다”고 말했다.

◇중동發 항공업 빅뱅

중동 항공사들의 공세는 세계 항공업계에 지각변동을 가져오고 있다. 아시아의 허브 공항 역할을 하던 싱가포르 창이공항에서는 2012년을 기점으로 유럽행 승객이 감소하고 있다. 유럽과 호주를 오가는 승객들이 싱가포르가 아니라 두바이를 이용하고 있기 때문이다. 최근 호주 콴타스항공은 환승 공항을 싱가포르에서 두바이로 바꾸었다. 국내 항공사 관계자는 “독일도 중동계 항공사에 대거 항공 노선을 배정한 후 루프트한자 등의 수요가 급감했다”며 “이에 따라 유럽·북미의 공항들도 큰 타격을 받고 있다”고 말했다.

세계 항공업계는 중동 항공사의 확장 뒤에는 정부의 불법 보조금이 있다는 의혹을 제기하고 있다. 중동 정부가 공항 이용료 등을 몰래 지원한다는 것이다. 실제로 아메리칸에어라인(AA) 등 미국 3대 항공사는 중동 항공사가 정부로부터 약 420억달러(약 49조원)의 불법 보조금을 받았다고 작년에 주장하기도 했다.

국내 항공업계는 우리도 중동 항공사가 촉발한 항공업계 대변화에 적극 대응해야 한다고 지적한다. 국내 항공업계가 중동뿐 아니라 일본·중국 항공사와 경쟁하면서 국내 허브 공항인 인천국제공항의 ‘동아시아 허브 공항 전략’에도 빨간불이 켜졌기 때문이다. 지난 1~4월 인천공항의 환승객은 250만4375명으로, 전년 같은 기간보다 2.5% 줄었다. 허희영 한국항공대 교수는 “항공산업을 관광·서비스 산업 활성화와 연계할 수 있도록 동남권 신공항 입지 선정을 포함해 항공산업 전략을 새롭게 짜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