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제와 경영

[K-뷰티의 미국 습격] ③ '하버드 엄친딸' 피치앤릴리 "한국의 화장품 기술 전세계에서 가장 뛰어나"

Shawn Chase 2016. 5. 31. 00:37

배정원 기자



입력 : 2016.05.30 11:34 | 수정 : 2016.05.30 14:53 ‘K뷰티’란 단어 2~3년 내로 사라질 것…유행에 휩쓸리지 않는 제품력이 중요
화장품의 핵심은 오로지 기능…귀여움·재미는 중요하지 않아
뉴욕 K뷰티 업체 최초로 백화점 오프라인 매장 진출

 알리샤 윤(Alicia Yoon) 피치앤릴리 대표/사진=피치앤릴리 제공
알리샤 윤(Alicia Yoon) 피치앤릴리 대표/사진=피치앤릴리 제공

미국 컬럼비아 대학과 하버드 비즈니스 스쿨을 졸업하고 뉴욕 골드만삭스에서 금융 전문가로 일했던 소위 ‘엄친딸’도 K-뷰티 사업에 뛰어들었다. 알리샤 윤(Alicia Yoon) 대표는 어린 시절 아토피로 고생했지만, 한국 화장품을 통해 건강한 피부를 갖게 되면서 한국 제품에 대한 믿음이 생겼다고 한다.

그는 2012년 피치앤릴리(Peach and Lily)를 설립해 온라인, 홈쇼핑, 팝업스토어 등 다양한 판매 채널로 화장품을 판매하고 있다. 론칭 3년 만인 2015년엔 까다로운 선발 과정을 거쳐 K-뷰티 업체 중 최초로 메이시스 백화점에 오프라인 매장을 냈다.

미국 메이저 백화점이 다양한 중소 기업 제품을 다루는 뷰티 편집 브랜드에게 독립 매장을 허용한 것은 대단히 이례적인 일이다. 뿐만 아니다. 피치앤릴리가 뉴욕 시내에서 팝업 스토어를 열면 하루 평균 1억원 이상의 매출을 낼 정도로 뉴요커 사이에서 큰 인기를 끌고 있다. 국내 유명 벤처기업 투자자도 피치앤릴리에 투자를 타진하는 중이다.

맨해튼 유니온스퀘어 근처 한 커피숍에서 만난 윤 대표는 “피부관리사 자격증 수업을 듣고 급하게 왔다”며 자리에 앉았다. 그는 이미 4년 전 한국에서 피부관리사 자격증을 취득했는데, 더 깊게 배우기 위해 뉴욕에서 다시 에스테틱을 공부하고 있다고 했다. 화장품을 수입해 유통하는 회사를 운영하는 그의 입에서는 리포솜, 휴멕턴트 등 화장품 연구원의 전문 용어가 쏟아져 나왔다.

알리샤 윤 대표는 다른 K-뷰티 회사와 다르게 K-뷰티라는 용어 자체에 대해서 부정적인 입장을 보였다. 그는 “유행을 좇는 단어나 트렌드에 휩쓸려 제품이 반짝 인기를 얻는 것은 중요하지 않다”며 “화장품은 무조건 피부가 개선된 결과로 보여줘야 하기 때문에 연구·개발(R&D)에 힘써서 좋은 제품을 만들어 내는 게 중요하다”고 말했다.

-모두가 가고 싶어하는 골드만삭스를 떠나 왜 K-뷰티 사업을 시작했나요?

“재미가 없었습니다. 골드만삭스에서 신용위험관리와 자문 일을 2년간 했는데 너무 맞지 않았어요. 작은 책상에 앉아서 온종일 엑셀 파일과 씨름해야 했죠. 그 후 보스턴 컨설팅 그룹으로 옮기면서 금융보다는 유통 쪽 컨설팅 업무를 하고 싶다고 손을 들었습니다. 당시 뷰티업체의 컨설팅을 맡게 되면서, 언젠가 저도 뷰티 사업을 해야겠다고 마음을 먹었습니다. 고등학교 때 뷰티스쿨에 다닐 정도로 패션과 뷰티에 관심이 많았거든요. 종종 컨설팅 회사 동료가 회사로 돌아오라고 말하지만, 지금 하는 일이 즐겁습니다.”

 뉴욕 퀸즈 플러싱에 위치한 메이시스 백화점에 오픈한 피치앤릴리의 첫 오프라인 매장/사진=피치앤릴리 제공
뉴욕 퀸즈 플러싱에 위치한 메이시스 백화점에 오픈한 피치앤릴리의 첫 오프라인 매장/사진=피치앤릴리 제공

-뉴욕 여성들이 한국 화장품에 언제부터 열광하게 됐나요?

“2011년 후반 미국에서 한국의 비비크림 인기가 폭발하면서 한국 화장품에 대한 관심이 급상승했습니다. 한국 화장품업체 한스킨이 2006년 비비크림을 처음 만들었는데 대박이 났던 것이죠. 이후 2013년 얼루어 잡지에서 K-뷰티에 대해 처음 적었고, W 잡지에서는 한국을 직접 방문해 뷰티 업계를 취재했었습니다. 보통 미국 잡지사에서 패션·뷰티에 대한 취재를 할 때는 유럽 국가를 가는 게 정석인데, 처음으로 한국이 조명을 받게 된 것입니다.

비비크림 외에도 쿠션 등의 제품은 모두 한국에서 시작됐고, 글로벌 브랜드가 후발 주자로 따라서 같은 제품을 만들어낸 케이스죠. 한국에서 화장품 산업이 발달할 수밖에 없는 건 그만큼 소비자들이 깐깐하기 때문입니다. 저만 해도 로션 하나를 살 때 성분, 제형, 향 등 많은 부분을 따져봅니다. 만약 한국 같은 시장에서 품질이 떨어지는 제품은 바로 소비자들에게 외면을 받을 수밖에 없기 때문에 기술이 발달했다고 생각합니다.”

-그런데 피치앤릴리에서 판매하는 K-뷰티 제품들이 한국인에게 다소 생소합니다.

“맞아요. 저는 한국에서 많이 알려진 대기업 브랜드를 유통하지 않습니다. 거의 중소기업 제품이죠. 어렸을 때부터 한국 여배우들의 맑고 투명한 피부를 동경하곤 했는데, 그들이 과연 자기가 광고하는 제품을 써서 저런 피부를 만들었을까에 대해 의심했어요. 예컨대, 송혜교씨가 라네즈 제품만 쓰진 않을 거라고 생각해 요.

그래서 유명인들이 실제로 사용하는 제품이 무엇일지 수소문하기 시작했습니다. 피치앤릴리를 런칭하기 전까지 300개 이상의 기업을 만나서 인터뷰했습니다. 화장품업체 혹은 피부과 의사까지 만나 제품의 철학과 R&D 시설 하나하나 제가 꼼꼼하게 살펴봤습니다. 그렇게 해서 아로마티카, 비더시킨, 메이쿱, 미즈온, 샹프리 등 브랜드를 판매하게 됐습니다.”

-그 브랜드를 고른 이유가 뭔가요?

“제가 어린 시절부터 다이빙 선수로 운동해서 그런지, 피부가 굉장히 예민합니다. 평생 아토피와 고군분투하면서 살아왔죠. (목을 보여주며) 지금도 이렇게 아토피 자국이 남아있어요. 피곤할 날은 더 심해집니다. 저는 뷰티업계에서 오래 일한 지인 혹은 배우, 모델 등을 대상으로 어떤 제품을 쓰는지, 어떤 에스테틱을 다니는 지 물어봤습니다. 그리고 제가 직접 가서 체험하며, 제 피부에 맞는지 살펴봤습니다.

서울에 있는 웬만한 유명 에스테틱은 다 가본 것 같습니다. 그중에서도 샹프리란 스파를 다녀오고 나서 피부가 놀랍게 좋아졌는데, 박수진, 한효주 등 유명 연예인이 오래 다닌 곳으로 잘 알려졌어요. 제가 써보고 주변인에 테스트해본 결과 샹프리에서 만든 제품이 훌륭했고, 피치앤릴리에 가져오게 됐습니다. 아로마티카의 경우는 피부에 대한 철학이 남다른 CEO에게 반해 판매를 결정했습니다.”

 피치앤릴리에서 판매중인 상품/사진=피치앤릴리 제공
피치앤릴리에서 판매중인 상품/사진=피치앤릴리 제공

-한국 화장품의 기술력이 정말 세계적인가요?

“한국 사람들이 아는 것보다 더 대단하다고 생각합니다. 샤넬, 에스티로더 등 유럽의 명품 브랜드들도 한국 제조업자 개발생산(ODM) 업체가 만든 제품에 브랜드만 입혀서 파는 형편입니다. 피부에 좋은 제품을 만들기 위한 연구는 전세계에서 한국이 가장 뛰어나다고 생각해요.

예를 들어 한국에 미다스킨이라는 중소기업이 있는데, 세계 최초로 바르는 보톡스 크림을 만드는 데 성공했습니다. 이 핵심 성분은 지금 국제화장품원료규격집(ICID·International Cosmetic Ingredient Dictionary)에 등재됐어요. 요즘 ‘보톡스 크림’이라는 용어를 너도나도 사용하는데 실제로 기능성을 인정받은 제품은 한국에서 처음 나왔습니다. 미용과 관련된 한국의 과학 기술은 세계 어느 국가에서도 놀랄 수준입니다.”

-피치앤릴리의 매출은 어느 정도인가요?

“저희는 매출 공개를 하진 않지만, 이틀간 오프라인 팝업 스토어를 열면 하루에 1억원 이상의 매출을 올립니다. 물론 매일 그런 행사를 하는 것은 아니죠.”

-K-뷰티의 미래를 어떻게 보시나요?

“미국의 보그, 얼루어, W 등 유명 잡지에서 K-뷰티에 대한 기사를 다루며 소개하는 점은 긍정적이라고 봅니다. 하지만 저는 언젠가 K-뷰티가 ‘메이드 인 코리아’라는 태그 없이, 그 자체로 자립할 수 있어야 한다고 봐요. 예를 들어 미국 소비자가 마트에서 니베아 로션을 사면서, 이건 독일 제품이구나 라고 생각하진 않잖아요. 그 브랜드 자체가 경쟁력이 있어야 합니다. 과거 프랑스 여자처럼 아름다워지자는 트렌드가 지금은 사라진 것처럼 K-뷰티도 지나가는 유행에 그쳐서는 안 된다고 생각합니다.”



[K-뷰티의 미국 습격] ① ‘삼성 출신’이 설립한 소코글램 “韓화장품에 반해 전도사 되다”

  • 뉴욕=배정원 기자

  • 입력 : 2016.05.23 08:47 | 수정 : 2016.05.23 15:11 중국과 동남아 등 아시아 시장에서만 통했던 K-뷰티 제품의 인기가 미국에도 번지고 있다. 제품의 ‘품질’을 중요시하는 까다로운 미국인의 성향까지 사로잡은 것인데, 미국 최대 온라인 몰 아마존에는 ‘코리안 뷰티’ 페이지가 생겨났을 정도다. 전 세계 최대 화장품 유통회사인 세포라 역시 올해 눈여겨볼 뷰티 트렌드로 한국의 스킨케어 제품을 꼽고 있다. 뉴욕에서 K-뷰티 열풍을 주도하고 있는 4개 회사를 소개한다. [편집자주]

     샬롯 조(오른쪽)와 함께 소코글램을 공동 창업한 남편 데이브 조. /사진=소코글램 제공
    샬롯 조(오른쪽)와 함께 소코글램을 공동 창업한 남편 데이브 조. /사진=소코글램 제공

    소코글램(Soko Glam)은 2012년 캘리포니아 출신의 젊은 최고경영자(CEO)인 샬롯 조와 그녀의 남편 데이브 조가 세운 한국 화장품 온라인 쇼핑몰이다. 설립한 지 3년 만에 회원 2만여명, 연 매출 300만달러(한화 약 36억원)를 달성했으며, 현재 매출이 매달 30%씩 늘어날 정도로 빠르게 성장하고 있다. 고객의 70%는 비(非) 아시아인이다. 고가품은 판매하지 않으며 제품의 90% 이상이 로드숍 화장품으로 구성돼 있다.

    소코글램은 단순히 온라인에서 화장품을 파는 것에 그치지 않는다. 온라인숍과 블로그를 같이 운영해 사용자들의 실시간 리뷰와 소통이 가능하다. 블로그(blog)에 한국(Korea)을 뜻하는 ‘k’를 더한 클로그(klog)를 통해 다양한 뷰티 정보를 제공하는 한편 미국의 유명 패션잡지인 ‘마리끌레르’, ‘보그’, ‘러키’, ‘얼루어’ 등에 소개된 한국 뷰티와 화장법을 공유하면서 미국인들에게 한국 화장품에 대한 흥미와 호기심을 유발하고 있다.

    뉴욕 맨해튼의 사무실에서 소코글램 공동 창업자 샬롯 조와 데이브 조를 만났다. 그들은 미국 시장에서 한국 화장품의 경쟁력으로 ① 가성비 ② 젊은 세대의 취향을 반영한 귀여운 용기 및 포장 ③ 새로운 시장의 창출이라고 말했다.

    -어떻게 대기업을 그만두고 창업을 시작하게 됐나요?

    “어릴 때 캘리포니아에서 자라 한국 화장품이나 한국 여성들의 화장 습관에 대해 전혀 몰랐습니다. 대학 졸업 후 삼성엔지니어링에서 해외 홍보 담당자로 근무하면서 명동 한복판을 가득 메운 로드샵 화장품 브랜드를 처음 접하게 됐죠. 1만원도 안 되는 저렴한 가격에 고품질은 물론이고 패키징도 아기자기한 한국 화장품은 저에게 신선한 충격이었습니다.

    가장 놀란 부분은 미국에 존재하지 않는 스킨 케어의 제품이 많다는 사실이었습니다. 미국에는 ‘이중 세안’이라는 말을 아는 사람이 별로 없어요. 한국에서는 매우 흔한 스킨 케어 과정의 일부죠? 화장을 한 날은 오일 혹은 크림 등의 기름 성분으로 한번 닦아내고, 폼 클렌저로 다시 세안하는 문화가 일반적이지만, 미국 대부분 여성은 얼굴에 특별한 제품을 쓰지 않고, 비누 혹은 바디 워시로 전체를 닦아 내기도 합니다. 아이라인과 마스카라를 진하게 바른 날에 도요.”

    -화장을 하고도 제대로 세안하지 않는다고요?

    “네. 미국에서 화장품 시장은 색조 제품을 중심으로 발달했습니다. 다인종 국가다 보니 아이섀도와 립스틱, 파운데이션의 종류는 정말 다양하고, 제품의 품질도 훌륭합니다. 하지만, 세안을 하고 나서 토너, 세럼, 에멀전, 수분 크림을 바르는 복잡한 순서에 대해서는 많이 알지 못합니다.

    외출할 때 얼굴에 자외선 차단제를 바르는 일도 드물어요. 한국과는 많이 다르죠? 저도 한국에 가기 전에는 일주일에 한 두 번 정도 수분 크림을 바를 정도로 스킨 케어에 무지했습니다. 한국에서 정말 기본 중의 기본으로 꼽히는 스킨 케어 루틴을 따르기만 해도 피부가 놀라울 정도로 좋아지더군요. 그래서 미국에서 한국 제품을 소개하면 좋겠다 싶었어요. 쇼핑몰과 함께 블로그를 운영한다는 게 아이디어였습니다. 단순히 한국 화장품 제품을 팔기만 해서는 미국인들이 사용할 수 없기 때문이죠. 어떻게, 언제, 얼마나 자주 사용해야지 효과를 볼 수 있는지 차근차근 알려줘야 합니다.”

     샬롯 조 대표 /사진=소코글램 제공
    샬롯 조 대표 /사진=소코글램 제공

    -한국의 어떤 스킨케어 제품이 좋던가요?

    “우선 바닐라코의 ‘클린잇제로’라는 클렌저를 좋아해요. 기존 오일 혹은 크림 타입과 다르게 밤(balm) 제형입니다. 부드럽게 발리면서 립스틱, 아이라인 등 색조 화장이 매우 잘 지워져요. 이 화장품으로 화장을 지우고, 그 다음 한국에서 유명한 메이크업 아티스트 손대식과 박태윤이 런칭한 브랜드 ‘손앤박’의 ‘뷰티워터’를 솜에 묻혀 피부톤을 정돈합니다. 그리고 마스크팩을 자주 이용해요. 마스크팩도 한국에서 처음 본 상품이었고, 저렴한 가격에 효과가 좋아서 매우 애정 하는 아이템입니다.”

    -고객의 반응은 어떤가요?

    “매출이 매달 30%씩 늘어나고 있습니다. 재정적인 수치로 보이는 것도 있지만, 종종 고객의 반응을 마음으로 느낄 때도 있어요. 가끔 뉴욕을 거닐다 보면, 저를 알아보며, ‘자신의 인생을 구해줘서 고맙다’고 말하는 팬을 만날 때가 있습니다. 그간 피부를 관리하는 방법을 전혀 몰라서 여드름 등으로 고생했는데, 제가 소개하는 피부 관리법과 제품을 사용해보고 좋아진 케이스죠. 이런 고객을 만날 때 K-뷰티 업체로서 많은 보람을 느낍니다.”

    -10년전 아모레 등 대기업은 뉴욕 진출에 실패했는데, 소코글램은 어떻게 가능했나요?

    “제 생각에 대기업들이 뉴욕에 진출할 때 ‘고급화’ 전략을 썼기 때문이라고 봅니다. 에스티로더, 랑콤 같은 고가의 프랑스 브랜드와 비슷해 보이려고 애썼지요. ‘메이드인 코리아’의 흔적을 지우고 고급스러운 용기에 넣어, 할리우드 여배우를 중심으로 마케팅했습니다. 하지만 한국 제품의 강점이 ‘프랑스 제품과 비슷하기 때문’은 아니잖아요? 같은 아모레퍼시픽 브랜드라도 ‘이니스프리’나 ‘에뛰드 하우스’는 가성비가 좋으면서도 재미있고 귀여운 시도를 많이 해 미국인에게 신선하게 보이는 것입니다.”

    -아직 K-뷰티를 중국에 한정 지어 생각하는 사람이 많습니다.

    “중국은 한국과 시장이 매우 비슷합니다. 같은 아시아인의 유교권 문화지요. 그래서 한국 제품이 전파되기도 쉽지만, 아직 화장품 시장의 전체 파이가 더 큰 곳은 미국입니다. 더군다나 미국에서는 스킨 케어에 대한 인식이 거의 없기 때문에 새로운 시장을 창출하는 셈이지요.”

    -미국에 진출하려는 한국 화장품 브랜드에 조언을 해준다면요?

    “미국 시장을 잡기 위해서 가장 먼저 용기에 영어 표현부터 개선해야 합니다. 국내 미국 제품 영문 표기는 ‘화이트닝’으로 되어 있는데, 상당히 인종차별적인 발언이 될 수 있습니다. 피부를 탈색한다는 어감도 좋지 않고요. 피부를 밝게 하는 용도라면 ‘브라이트닝’이라는 용어를 써야 합니다.

    또 지나친 가격 경쟁도 삼가야 합니다. 명동에 가면 매달 할인 행사를 하는 브랜드샵이 많더라고요. 쇼핑의 천국인 미국에서는 의류, 구두, 가방 등 재화는 365일 세일 행사를 하지만 화장품 할인은 흔치 않습니다. 그래서 ‘1+1’, ‘반값 할인’ 등을 계속 내세운다면 ‘질이 떨어진다’는 느낌이 들 수 있어요. 가격을 높게 책정하고 나서 세일로 팔 바엔 아예 할인된 가격을 정가로 책정해 출시하는 게 낫다고 생각합니다.”

     소코그램 홈페이지 /사진=소코글램 제공
    소코그램 홈페이지 /사진=소코글램 제공

    샬롯 조 대표는 지난해 발간한 K-뷰티 책 ‘더 리틀 북 오브 스킨 케어(The Little Book of Skin Care)’를 통해 한국 문화를 중심으로 피부 관리법에 대해 소개했다. 그는 국내 뷰티 기업들이 미국에 브랜드 마케팅을 할 때도 단순히 제품의 기술력을 홍보할 것이 아니라 한국 여성의 피부 관리법이나 라이프스타일에 대한 유튜브 영상을 제작하는 것이 더 효과적이라고 조언했다. K-뷰티 유행이 지속되려면, 한국 여자의 라이프스타일, 문화에 대한 관심을 불러일으켜야 한다고 강조했다. ‘프랑스 여자처럼 사는 법’이 세계적인 바람을 불러일으켰던 것처럼 말이다.

    ”과거에 미국에서 ‘살찌지 않는 프랑스 여자’, ‘늙지 않는 프랑스 여자’ 등이 책이 쏟아져 나오며 프랑스 여자처럼 아름다워지기 위한 열풍이 불었습니다. 한국 여자들은 나이가 들어도 어떻게 피부가 깨끗한지에 대한 관심이 미국에서 더 커져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앞으로 목표는 무엇인가요?

    “처음 K-뷰티 사업을 시작할 때 목표는 돈이 아니었습니다. 지금도 마찬가지예요. 제가 어린 시절 피부 트러블로 고생했지만, 한국 제품을 쓰고 깨끗하게 나은 것처럼, 다른 미국인들에게도 한국 제품의 우수성을 널리 알리고, 모두 아름다운 피부로 살 수 있도록 도와주고 싶습니다. 저와 공동창업자인 남편 데이브는 미국에서 자랐지만 한국을 방문할 때마다 기술력과 문화에 놀라곤 합니다. 화장품뿐 아니라 서비스, 쇼핑, 음식 등 혁신적인 요소가 너무나도 많습니다. 뷰티 제품만 공유하는 것이 아니라 한국에 문화에 대해서도 미국에서 많이 알리고 싶습니다.”



    [K-뷰티의 미국 습격] ② 로레알 이사가 창업한 글로우 레시피 "美소비자들, 한국 제품에 담긴 스토리 좋아해"

  • 뉴욕=배정원 기자


  • 입력 : 2016.05.26 07:00 | 수정 : 2016.05.26 09:32 달팽이·마유 등 동물성 크림은 잔인하다는 인식 때문에 美 시장에 적절치 않아
    목욕탕에서 우유를 바르는 한국 문화적 스토리에 소비자들 흥미 느껴

     사라 리(왼쪽)과 크리스틴 장 글로우 레시피 공동 창업자 /사진=글로우 레시피 제공
    사라 리(왼쪽)과 크리스틴 장 글로우 레시피 공동 창업자 /사진=글로우 레시피 제공

    지난해 한국인 최초로 미국 ABC 방송의 투자 유치 오디션 ‘샤크 탱크’에 출연해 투자 유치까지 성공한 두 명의 공동 창업자가 있다. 사업 아이템은 다름 아닌 한국 화장품. 글로벌 브랜드인 로레알에서 이사 지위까지 올랐던 뷰티 업계 베테랑들이 한국 화장품의 우수성을 미국에 알리겠다며 시작한 글로우 레시피(Glow Recipe)란 회사다. 방송 중 투자자들은 젤리 같은 제형을 지닌 한국 화장품을 발라보며 관심을 보였고, 이 신생 기업이 미국 K-뷰티 열풍을 이끌 것이라며 투자를 결정했다.

    로레알 미국 지사에서 키엘, 랑콤 등 유명 브랜드를 책임져온 한국인 사라 리(Sarah Lee)와 크리스틴 장(Christine Chang)은 회사를 나와 2014년 뉴욕에서 K-뷰티 스타트업을 차렸다. 사라 리는 로레알 코리아에서 인턴으로 일을 시작해 뉴욕 지사로 발령 난 첫 한국인이다. 그들은 뉴욕에서 일하던 중 미국 본사 직원 8000명 중 미국과 한국 뷰티 시장에서 모두 경력이 있는 사람이 둘밖에 없다고 판단하고, 한국 화장품의 현지화를 돕기 위해 사업을 시작했다. 한국 화장품을 파는 것뿐 아니라 최근 LG생활건강 브랜드 ‘빌리프’의 미국 진출을 도왔다.

     미국 최대 화장품 유통업체인 세포라에 입점한 '빌리프’
    미국 최대 화장품 유통업체인 세포라에 입점한 '빌리프’

    글로우 레시피는 앞으로 미국 화장품 시장에서 한국 화장품에 대한 수요가 늘어날 것이라고 내다봤다. 그들은 대기업보다는 제품력이 우수한 중소기업에 더 큰 관심을 보였으며, 미국 시장 진출을 꿈꾸는 한국 화장품 기업에 ① 브랜드 아이덴티티를 갖추고 ② 한국의 스토리를 담고 ③ 제품의 가벼운 사용감을 추구하라고 조언했다.

    -글로벌 기업의 이사의 직위를 버리기 어려웠을 텐데, 어떻게 스타트업을 시작하게 됐나요?

    “로레알에서 근무할 때 K-뷰티 관련 리서치를 통해 한국 화장품에 대해 많이 알게 됐습니다. 글로벌 브랜드도 한국 화장품을 연구해 신제품의 영감으로 삼을 정도로 한국 제품의 기술은 대단합니다. BB크림, 시트 마스크, 쿠션 팩트 등은 모두 한국에서 탄생한 화장품이지만, 이제 모든 글로벌 브랜드가 따라서 생산하고 있죠. 한국에서 스킨케어 제품을 사오면 연구원들이 모여서 사용해볼 정도입니다. 한국 화장품이 미국에서 충분히 경쟁력이 있다는 확신이 생겨 저희도 자신감을 가지고 로레알을 그만둘 수 있었습니다.”

    -로레알에서 10년 넘게 근무하셨으니 뷰티 업계에 대해 상당히 잘 아시겠습니다.

    “K-뷰티에 대해 알아보던 도중 미국에서 한국 화장품을 판매하는 회사 중 미국과 한국의 화장품 관련 경험을 모두 가진 곳이 한 군데도 없다는 사실을 알게 됐습니다. 화장품은 단순히 수입해서 판매하는 상품이 아닙니다. 로레알 프랑스 본사에서도 미국에 제품을 내놓을 때는 미국 소비자에 맞춰서 오랜 기간 현지화 전략을 세운 뒤 출시합니다. 같은 서양인이라도 프랑스와 미국의 고객의 제품 이해도, 취향, 니즈는 많이 다릅니다. 또 새로운 형태의 제품을 내놓을 때는 어떻게 사용할지 교육을 해야 하죠. 한국 제품을 미국에 내놓는다면 현지 뷰티 시장을 잘 분석해서 적절한 현지화 전략을 내놓아야 합니다.”

     미국 인기 방송 ‘샤크 탱크’에 출연한 글로우 레시피 공동 대표
    미국 인기 방송 ‘샤크 탱크’에 출연한 글로우 레시피 공동 대표

    -예를 들자면요?

    “가장 기본이지만, 여전히 어려운 부분인데 바로 ‘언어’입니다. 예컨대, 바르면 10분 내로 굳어 손쉽게 떼어낼 수 있는 한국 모델링팩을 직역해서 ‘modeling pack’이라고 표기한다면, 어떤 미국인도 무슨 제품인지 알 수 없습니다. 미국에서는 ‘팩’이라는 표현이 없어요. 얼굴에 바르고 닦아내거나 떼어내는 제품은 ‘마스크(mask)’라고 부릅니다. 그래서 저희는 모델링팩을 ‘러버 마스크(rubber mask)’라고 표기했어요. 고무처럼 말랑 말랑해진 상태에서 떼어낸다는 점에 착안했습니다.

    또 패팅워터팩이라는 제품이 있는데, 물에 소량을 타서 얼굴에 패팅하듯이 세안해주는 제품이에요. 이 제품의 경우 패팅이라는 단어가 와 닿지 않아서, 물을 튀기다는 뜻의 ‘스플래시 마스크(splash mask)’로 이름을 바꿨습니다. 제품 고유의 의미를 해치지 않되 미국 소비자들이 쉽게 이해할 수 있는 콘셉트로 현지화하는 것이 중요합니다.”

    -미국 소비자들은 한국 화장품의 어떤 점을 좋아하나요?

    “많은 사람이 한국 제품의 귀여운 패키지, 저렴한 가격 때문이라고 생각하지만, 저희는 한국 고유의 문화가 깃든 스토리가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 화장품을 만드는 회사는 우수한 제품을 만들기에만 바쁘지만, 미국 소비자들은 생각보다 제품 뒤에 담긴 철학과 역사, 문화에 대한 이야기를 듣고 싶어합니다.

    저희 대표 상품 중 하나인 블라이드의 패팅워터팩은 목욕탕에서 우유 혹은 녹차를 얼굴과 온몸에 바르고 씻어내는 어머님들의 세안법에서 영감을 얻어 만들어졌습니다. 한국에 이런 미용 문화가 있다는 얘기를 들은 서양인들은 매우 흥미로워해요. 실제로 사용해보니 효과도 좋기 때문에 하나의 새로운 문화로 받아들이게 되는 것입니다.”

     글로우 레시피 홈페이지
    글로우 레시피 홈페이지

    -미국에서 한국 화장품을 알리는데 힘든 점은 없나요?

    “지금 K-뷰티에 대한 이미지를 미국에서 구축해 나가는 시점이기 때문에, 말 한마디가 조심스럽습니다. 소비자들에게 어떤 첫인상으로 각인되느냐에 따라 더 큰 트렌드로 확산될 수도 있고, 외면받을 수도 있기 때문이죠. 과거 한 미국 매체는 한국 여성의 스킨케어 루틴으로 10개 이상의 스킨 케어 제품을 사용한다고 소개했는데, 기사의 헤드라인으로는 좋았지만, 한국 화장품에 대한 벽이 생겼어요.

    세포라에서 일하는 판촉 직원들도 한국 화장품은 복잡하고 어려워서 설명하기 힘들다는 얘기를 하더라고요. 미국의 소비자는 정말 합리적이고 간편한 제품을 원합니다. 여러 개의 제품 순서를 기억하고, 시간을 들여 바르는 방식을 내세우는 건 장기적으로 많은 소비자층을 이끌어내기 어렵다고 봅니다.

    아울러 달팽이 크림, 마유 크림 등의 제품도 미국 시장에서는 적절치 않습니다. 동물 보호를 중요시하는 미국 소비자에게 잔인한 상품으로 간주되거든요. 처음 호기심으로 몇 명의 소비자들이 구매할 수는 있겠지만, 지속적으로 트렌드를 이어가긴 어렵습니다.”

    -까다로운 심사 기준을 적용해 한국 화장품을 선발한다고 들었습니다.

    “저희는 한국의 대기업보다 중소기업 브랜드를 발굴하는 데 관심이 있습니다. 뷰티 업계 지인들에게 추천을 받고, 직접 화장품 회사 관계자를 만나 가능성 있는 브랜드를 찾기 위해 많은 시도를 합니다. 가장 눈여겨보는 부분 중 하나는 브랜드 철학입니다. 어떤 가치를 추구하는 회사인지, 제품에 어떤 이야기를 담았는지 꼼꼼히 보는 편이죠. 제품력도 중요하고요.”

     블라이드의 프레스드 세럼
    블라이드의 프레스드 세럼

    -화장품의 제품이 좋다는 말은 다양하게 해석될 수 있는데, 한마디로 정의한다면요?

    “사용감이 좋아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두껍게 여러 겹을 바르는 제품은 요즘 추세가 아닙니다. 가벼운 질감으로 바른 듯 안 바른듯 산뜻한 느낌이 들어야 합니다. 저희 제품 중 블라이드의 ‘프레스드 세럼’이 인기인데, 이 제품은 세럼과 크림을 혼합했기 때문에, 하나만 발라도 두 가지의 제품의 효과를 볼 수 있습니다.

    또 미국은 아무래도 인종이 다양하기 때문에 되도록 여러 피부에도 안전하고 효과적인 사용이 가능한 제품이어야 합니다. 그래서 흑인, 백인, 황인 등 피부 타입이 다양한 사람들로 구성된 테스트 팀을 만들어서 제품 테스트를 진행하고 있습니다. 디자인도 미국 시장에 맞는 패키징이 중요하고, 그런 부분이 부족할 경우에는 같이 상의하면서 바꿔 나가는 작업도 진행하고 있습니다.”

    -글로우 레시피의 앞으로 목표는 무엇인가요?

    “현재는 K-뷰티가 우수하다는 것을 더 많이 알리고 싶습니다. 그다음 단계로는 많은 미국인이 실제로 한국 화장품을 사용할 수 있게 만드는 게 목표입니다. 그렇게 되기까지 확실한 효과와 성분을 가진 제품들을 발견해 사람들에게 알려주는 일을 계속해서 할 예정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