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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방대, 무급인턴서 1억 연봉 뉴욕 수석디자이너로

Shawn Chase 2016. 4. 7. 01:40

jobsN 블로그팀     


입력 : 2016.04.06 18:17

4~5개 아르바이트 뛰며 생활비 벌어
뉴욕 역사박물관 총괄 디자이너 황지은씨


남들 칼퇴할 때 홀로 주7일제 "인정 받으려면 노력해야"



아버지가 지병으로 세상을 떠났다. 어머니는 운영하던 가게를 정리해 마련한 돈 2000만원을 딸에게 건네며 '미국서 꼭 성공하라'고 말했다. 등록금 집세 생활비를 벌기위해 4~5개 아르바이트를 했다. 결국 세계 문화의 중심 미국 뉴욕에서 성공한 딸은 후한 이자를 붙여 엄마가 우는 심정으로 준 돈을 갚았다. 뉴욕 역사박물관 (New York Historical Society Museum) 수석 디자이너 황지은(37)씨 이야기다.

미국 뉴욕 맨해튼 북쪽의 ‘센트럴 파크’ 주변에는 메트로폴리탄 오페라·자연사박물관 등 내로라하는 관광명소가 있다. 이곳에 있는 뉴욕 역사박물관도 전 세계 관광객 수천 명이 매일 방문하는 명소다.


미국 뉴욕 역사박물관


1804년에 설립된 뉴욕 최초의 박물관으로 19세기부터 최근까지 뉴욕과 미국의 역사를 보여주는 2500점의 미술작품이 있다. 미국의 흑인 노예와 이민자 역사, 2차 세계대전과 베트남 전쟁 물품, 그리고 9.11 테러 현장에서 찾은 신발과 시계까지 ‘미국과 뉴욕 역사의 보고(寶庫)’다. 이 박물관의 전시 디자인을 총괄하는 사람이 바로 황지은씨다. 그녀는 이곳에서 일하기 전까지 해외 여행 경험도 없었다. 토종 한국인인 그녀는 노력과 끈기만으로 이 자리까지 치고 올라갔다.

박물관 직원들(왼쪽), FIT 학생들과 같이 찍은 사진


◇영어 서투른 토종 한국인, 억대 연봉 그래픽 디자이너로

황씨는 인턴으로 입사한 지 3년 만인 지난 2010년 이 박물관의 보조 디자이너에서 헤드(총괄) 디자이너로 승진했다. 연봉은 8만 달러(약 9200만원)+@. 매년 열리는 주요 전시회의 디자인을 총괄한다. 전시회 소요비용만 70억~100억원에 달한다.

그녀 손에서 탄생한 2차 세계대전·중국 이민자·IBM 컴퓨터 역사전은 미국 타임즈·뉴욕타임즈 등의 조명을 받았다. 대구 계명대를 졸업한 황씨는 파슨스 등 유명 미국 디자인학교를 나온 팀원 10명을 지휘한다. 전시 디자인의 제목 서체, 색깔, 그래픽, 포스터와 전시물 제작 모두를 책임지고 있다.

“ 토종 한국인이 미국 박물관에서 일하는 것은 쉽지 않아요. 미국 직원이 디자인 시안을 1~2개 만들 때 4~5개씩 만들어야 해요. 영어가 서투르니 박물관 임원 앞에서 발표할 때 디자인으로 한 번에 이해가도록 만들어야 하거든요. 만약 미국 여성 인권에 대해 전시를 한다면 미국 인권에 대한 여러 권의 책을 읽고 공부해야 합니다. 여기서 일하려면 ‘아마추어 역사학자’ 겸 ‘프로 디자이너’여야 합니다. 일과 공부가 너무 많아 사무실에서 먹고 자고 있어요.”

황씨는 대학을 졸업하고 2005년 서울 예술의 전당  작품 브로슈어 제작 업무로 사회생활을 시작했다. 전시 디자이너를 꿈꾸면서 홍익대 대학원에 진학했다. 그러나 미국 원서를 해석하는 공부가 전부였다. 매너리즘에 빠졌다. 그는 “2005년 예술의 전당을 그만두고 세계무대에 도전했다”며 “미국은 한국 미대 출신을 알아주지 않아 처음부터 다시 시작해야 했다”고 했다.

미국 워싱턴 D.C의 한 아동예술재단의 그래픽 디자인 무급 인턴을 거쳐 2006년 뉴욕 패션스쿨(FIT)에 진학했다. “미국도 한국처럼 인맥 무시 못해요. 선배들, 교수들이 이끌어주지 않으면 취업하기 어렵거든요. 그래서 정식 코스를 다시 밟았죠.”



BBC와 뉴욕 타임즈에 보도된 황 디자이너의 전시 디자인 작품/황지은씨 제공



한국 나이로 28살, 2006년 미국 패션스쿨(FIT)의 전시 디자인 과정에 지원했다. 우리나라로 치면 2년제 전문대 코스에 재입학한 것이다.

불행히도 그 무렵 집안 형편이 어려워졌다. 아버지가 지병으로 세상을 떠난데다, 어머니가 운영하는 안경점도 사정이 어려워져 문을 닫았다. 어머니는 가게를 정리한 자금 2000만원을 딸에게 건네면서 "꼭 미국에서 성공해야 돼"라고 했다. 한 학기 등록금 500만원. 4~5개의 아르바이트를 뛰면서 집세 등 생활비를 마련했다고 했다.

“가방 회사의 가방 디자인도 그려주고, 학생 미술과외도 했어요. 집세(650달러)내면 남는 용돈이 없었어요. 종종 유통기한이 지났지만 먹을 수 있는 음식을 싼값에 떨이로 파는 ‘99센트 상점’을 자주 들렀어요. 1달러에 계란 12개를 사 먹기도 했어요.” 그러면서 학업에 매진한 결과 미국 대학생 디자인 공모전인 소매환경연합회 공모전에서 우수상을 탔고, 최우수 학생으로 졸업했다.


황 디자이너의 전시 작품


◇"언어 한계 극복하려면 2~3배 노력 필요" 주7일 불사

졸업 이후 취업비자를 발급받으려면 인턴십을 구해야 했다. 학교 교수들을 찾아가 "인턴을 뽑겠다는 전화 받은 것 없으시냐"고 물었다. 운 좋게 자리가 난 곳이  뉴욕 역사박물관. 시급 7달러짜리 인턴이었다.  교수 추천으로 일을 시작한 그는 관람객이 드문 4층의 한 전시실을 개조하는 일을 맡았다.

 “200만원 예산을 줄 테니 관람객을 모아보라고 하더라고요. 기회였어요. 밤을 새우며 일했죠. 안내 표지판과 팜플렛 등 전시 디자인과 문구를 만들고 바꿨더니 관람객이 많이 늘어났어요.” 박물관은 버려졌던 전시실을 성공적으로 개선하면서 능력을 인정받은 황씨를 정식 디자이너로 정식 채용했다. 그는 "어머니가 지원한 2000만원에 이자를 듬뿍 쳐서  갚아드렸다"고 했다.

300여명의 박물관 임직원들은 오후 5시면 ‘칼퇴’ 한다. 직원들이 떠난 이후 황씨는 밤 10시까지 일한다. 주말도 예외 없이 일하는 ‘주7일제’를 고수한다. 사무실에서 도시락과 라면을 먹으며 일한다.


황지은씨의 사무실



“사무실을 제 하숙집이라고 생각해요. 박물관에 없어서는 안 되는 존재란 각인을 받기위해선 이렇게 일해야 했어요. '결혼도 안하고 야근까지 하면서 일해야 하냐'고 하지만, 언어의 한계를 극복하려면 2~3배 이상의 노력과 시간이 필요해요."

입사 이후 그녀는 생일이나 결혼 등 경조사를 맞는 박물관 직원과 임원, 거래업체 직원들에게 자신이 손수 제작한 축하 카드를 선물로 주고 있다. 그는 “미국인들은 아무리 사소한 것이라도 자신을 위해서만 준비한 맞춤형 선물에 열광한다”고 했다. 업무 능력만큼 인간관계가 중요하다고 생각하기 때문에 바쁘지만 경조사를 챙긴다.

‘해외 취업을 희망하는 여성들에게 조언해달라’고 하자, 그는 ”사생활을 버리세요“라고 딱 잘라 말했다. “ 휴가도 반납하고 일하고 있어요.  환경과 언어가 다른 곳에서 성공하려면 대가를 치러야 합니죠. 뉴욕은 여성들이 열광하는 디저트카페와 쇼핑몰이 많지만, 저는 관심 없어요.“  그가 말을 이어갔다.

”제가 디자인을 사랑하는 이유가 뭔지 아세요? 말로 하지 않고 보여주기만해도 실력을 알릴 수 있기 때문이에요. 말이 서툴러도 실력만 있으면 해외 어디든 취업할 수 있다는 자신감을 가지세요저는 디자인으로 세계 최고 자리에 오를 거에요. 나중에 세계적인 디자인 스튜디오를 차릴 겁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