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제의 이야기들

13번째 출산 최다둥이 가족이 사는 법

Shawn Chase 2016. 4. 24. 10:24

채성진 기자 dudmie@chosun.com

사진 = 허재성 조선영상미디어 기자


입력 : 2008.01.04 21:15 | 수정 : 2008.01.06 11:38


씻을 때도, 먹을 때도 무조건 나이순!
스물한 살 빛나부터 막내 온새미까지 5남8녀
용돈도 나이 따라, 고교생은 1주일 3000원·초등생 500원
방 3개에 와글 와글… 형·누나는 동생들의 독선생
<이 기사는 weekly chosun 1988호에 게재된 기사입니다>

지난 12월 7일 경북 구미시 순천향병원. 12시간에 걸친 진통 끝에 오후 6시40분 3.78㎏의 여자 아이가 태어났다. 김석태(49)·엄계숙(44) 부부의 열세 번째 아이다.

1986년 4월 결혼한 김 목사 부부는 장녀 빛나(21·경북대 물리학과3)를 시작으로 차녀 다솜(19·고3), 장남 다드림(16·중3), 3녀 모아(13·중1), 차남 들(13·초6), 3남 바른(11·초4), 4남 이든(9·초3), 5남 라온(8·초1), 4녀 뜨레(7), 5녀 소다미(5), 6녀 나은(4), 7녀 가온(2)이와 이번에 나온 막내까지 1~3살 터울로 5남8녀를 두게 됐다. 이전까지는 전국적으로 세 가정이 12명의 자녀를 두고 있었지만 이번 출산으로 김 목사의 가족이 전국 최다둥이 가족이 됐다.


경북 구미시 황산리 황산교회 뜨락에 모인 '전국 최다둥이' 가족. 둘째 다솜은 입시 관계로 서울로 올라가 함께 하지 못했다.




첫째부터 열두째까지를 모두 자연분만으로 출산한 엄씨에게 이번 출산은 고비였다. 자궁 경부가 많이 부어올라 아기의 머리가 나오는 과정에서 파열될 경우 과다출혈로 이어질 가능성이 컸기 때문이다. 의료진은 제왕절개 수술을 권했고, 김 목사 부부는 고심 끝에 이를 따랐다. 건강하게 태어난 아이에게 김관용 경북지사는 ‘언제나 변함없이 영원하라’는 뜻으로 온새미란 이름을 선물했다. 엄마의 얼굴도 활짝 펴졌다.

12월 25일 성탄절, 경북 구미시 고아읍 황산리의 김 목사 집을 찾았다. 널찍한 마당에는 대문이 없었다. 주황색 슬레이트 지붕의 예배당과 살림집이 아담했다. 집 앞 등나무 그늘에는 김 목사가 손수 만든 그네 의자가 하나. 손님을 맞겠다며 아이들이 빗자루로 마당을 쓸고 있었다. “안녕하세요.” 코흘리개 어린아이들까지 두 손을 가지런히 모으고 고개 숙여 인사를 했다.


컴퓨터는 딱 한 대… 한 사람당 하루 20분

김 목사 가족의 아침은 6시부터 시작한다. 욕실은 한 칸이지만 문이 좌우 양쪽에 있어 여럿이 세수하고 양치하기를 한 번에 할 수 있다. 바쁜 시간이지만 나이 순서대로 사용하기 때문에 불평이나 다툼이 없다. 언니 오빠가 먼저 일어나 씻은 다음 바로 아래 동생들을 깨워 들여보내는 식이다.


욕실에는 아빠, 엄마부터 온 가족의 칫솔이 가지런히 걸려 있다.



나이 순 원칙은 밥상에서도 이어진다. 1995년생인 넷째 모아(1월 1일)와 다섯째 들(12월 21일)이는 나이는 같지만 누나·동생 구별을 확실히 한다. 자기가 사용한 그릇과 수저를 설거지통에 담가 놓는 것은 꼬맹이들도 따라야 하는 ‘기본’이다. 중학교 언니 오빠에 이어, 초등학생 넷이 8시쯤 등굣길에 오른다. 뜨레·소다미·나은이 셋은 9시30분쯤 어린이집을 향한다. 아이들 옷을 일일이 골라주고, 머리를 곱게 빗질해 등을 두드려 내보낸 뒤 한숨 돌린 아빠 엄마는 오전 10시가 돼야 늦은 아침 식사를 한다.

가훈(家訓)을 물었더니 부부는 ‘하나님과 사람 앞에 정직한 사람이 되자’라고 했다. 아이들이 많다 보니 다툼이 없지 않을까. 엄씨는 “사소한 말다툼은 그냥 넘어가지만 치고 받고 싸우는 것은 회초리로 엄히 다스렸다”면서 “어설프게 때리지 않고 정말 아프게 때렸다”고 했다.

“아이들이 서로 반말하는 것을 그냥 넘기지 않았어요. 혹시라도 욕설을 입에 담으면 가만두지 않았죠.”

요즘은 큰딸 빛나가 스스로 판단해서 아이들에게 훈계하고 벌을 세우기도 한다. 형과 누나는 동생들의 독선생 노릇을 자청한다. 집안에 있는 컴퓨터는 한 대. 서로 자판을 두드리겠다고 덤빌 법도 하지만 ‘한 사람당 하루 20분’이라는 규칙으로 간단히 정리했다. 얼마 전부터는 꼬맹이들에게 ‘컴퓨터 접근 금지’ 지시가 내려졌다.

아이들의 용돈은 나이에 따라 딱 정해져 있다. 차비를 빼고, 고등학생은 1주일에 3000원, 중학생은 2000원이다. 초등학생은 1주일에 500원짜리 동전 한 개를 받는다. 한창 군것질을 좋아할 아이들이지만 10분의 1을 떼어 꼬박꼬박 헌금으로 낸다. 방 한쪽에는 김 목사가 나무로 짜놓은 십일조 상자가 보였다. 김 목사는 “가난하고 어려운 사람들을 위한 배려의 시작”이라고 했다.


1986년 결혼식부터 열두째까지 10여권의 앨범과 네 상자분의 사진더미에서 찾은 김 목사 가족의 변천사. 숫자는 당시 아이들의 수.





아이도 낳다 보니 노하우가 생겨요

1986년 결혼하고 수원에서 첫 아이를 낳은 김 목사 부부는 1988년 이곳 황산리로 내려왔다. 목회자의 길을 소망했던 남편을 따라 아내는 허물어져가던 작은 시골 교회에 새로 둥지를 틀었다. 부부는 좋은 길로 함께 가자며 마을의 비행 청소년과 일 안 하고 술만 먹던 ‘농띠’들에게 손을 내밀었다. 손재주가 있던 남편은 톱과 망치를 들고 교회 구석구석을 손봤고, 땀과 정성이 배어 있는 오늘의 작고 아담한 교회를 일궈냈다.

어떻게 아이를 열셋이나 낳을 수 있을까 물었다. 김 목사는 “사람들은 제가 ‘주장해서’ 아이를 계속 가지는 것 아니냐고 묻는데, 저도 최소한의 ‘양심’은 있는 사람”이라면서 껄껄 웃었다.

“이 사람이 아이를 가지면 참 좋아합니다. 결혼 전에는 아이를 그렇게 좋아하는지 몰랐어요. 두 딸을 끝으로 아이를 그만 낳을 생각이었죠. 피를 토할 정도로 입덧을 심하게 해서 둘째 낳고는 많이 미안했거든요. 근데 이 사람이 저한테 이러는 거예요. ‘애 둘을 키우니까 셋도 키울 수 있을 것 같아요.’ 저는 그러자고 했죠. 제가 3남2녀 중 차남이라 형제 많은 것이 좋았는데, 하나 더 낳으면 아이들이 좀더 든든하지 싶었거든요.”



남편은 “아내가 출산할 때까지 할 일을 다하면서도 전혀 힘들어하는 모습이 없었다”면서 “아이를 하나 둘 낳으면서 ‘노하우’가 생긴 것 같았다”고 했다. “‘저 사람은 서부 개척시대에 태어났으면 딱 좋았을 사람이에요.” 남편의 너스레에 아내 엄씨가 눈을 살짝 흘겼지만 싫지 않은 표정이다. 그래도 아내가 안쓰럽지 않으냐는 질문에 김 목사는 “아내가 힘들어하고 부담스러워 한다면 남편된 입장에서 어떻게 계속 ‘할 수’ 있겠냐”고 반문했다. “저 사람은 임신만 하면 저렇게 좋을까 싶을 정도로 표정이 밝아져요. 솔직히 그래서 ‘부담 없이’ 계속 아이를 가질 수 있는 것 아닌가 합니다. 하하하.”

40대 중반에 벌써 아이 열 셋을 낳았지만 엄씨는 비슷한 연배의 여성들보다 훨씬 건강해보였다. 처녀 때 45㎏ 정도 나가던 몸무게가 조금씩 불었지만 지금도 52㎏ 안팎을 유지하고 있다. 만삭 때는 60㎏에 육박하지만 출산 후 며칠이 지나면 부기가 쏙 빠지면서 얼마 지나지 않아 정상 체중으로 돌아온다고 했다.




“복음은 안 전하고 애만 만드냐” 소리엔 웃지요

이번에는 김 목사의 이야기가 이어졌다. “한 동네 주민이 ‘목사님은 복음은 안 전하고 아기만 만드냐’고 하더군요. 저는 ‘애기 낳는다고 복음 전하는 일에 소홀해 본 적 한 번도 없다’고 맞받아쳤죠.”

김 목사는 “위기도 있었다”며 예비군 훈련장에 갔을 때의 이야기를 전했다. 당시 예비군 훈련장에서는 정관수술을 시술 받는 사람에 대해서는 훈련을 줄여주기도 했다고 한다. “어느 날인가 ‘묶어야겠다’고 결심했어요, 왜 그랬는지는 모르겠지만. 근데 종일 기다려도 보건소 차량이 안 오는 거예요. 개똥도 약에 쓰려면 없다더니…. 집에 와서 보니 이것 역시 하나님의 뜻이 아니었나 싶더라고요. 돌이켜보면 그때가 최대 고비가 아니었나 생각됩니다. 허허.”

김 목사 부부는 한 차례 유산의 아픔을 겪기도 했다. 여섯째를 낳고 다음 아기가 들어섰을 때였다. 임신 4개월 무렵이었는데 몸 상태가 좋지 않아 병원을 찾았더니 자연 유산됐다는 것. 부부는 “아이를 내 맘대로 낳을 수 있다는 교만한 마음을 가졌기 때문이었다”고 했다. “그 뒤로 얼마 지나지 않아 일곱째가 들어섰는데 그렇게 좋을 수가 없었어요.”



김 목사는 “절대자가 이 시대에 우리 부부를 통해서 어떤 메시지를 주려는 것이 아닌가 싶다”고 말했다. 딱 목사님의 말투였다. 출산율 1.08명(2005년)의 저출산 시대에 ‘둘만 낳아도 버겁다’는 선입견과 편견을 깨 달라는 것 아니냐는 것이다.

김씨 가족은 2006년 경북 김천에서 열린 전국체전의 최종 성화주자로 나서 출산 장려를 위한 홍보대사 역할도 했다. 김 목사의 다산(多産) 예찬론이 이어졌다. 그는 아이들에게 자주 한다는 이야기라고 했다. “아빠 엄마는 분명히 너희보다 일찍 하늘나라로 간다. 끝까지 너희를 보듬고 지켜줄 사람은 너희 13명의 동기간 아니겠니. 너희는 서로에게 다른 무엇보다 소중한 선물이다.”

아이 열셋을 키우면서 아찔했던 순간은 없었을까. 엄씨는 물놀이 사고로 다섯째 들이를 잃을 뻔했던 1997년 현충일을 또렷이 기억했다. 친구들과 함께 집 앞의 강가로 다슬기를 잡으러 간 18개월짜리 들이가 물에 빠져 사라진 것. 한참 만에 찾은 아이는 숨을 쉬지 못하고 새파랗게 숨이 잦아들고 있었다. 교회 청년의 필사적인 인공호흡 끝에 다시 살아난 아이를 붙잡고 임신 8개월의 엄마는 하염없이 눈물을 흘렸다고 했다. 2004년 전국적으로 수두가 번졌을 때는 여덟 아이의 얼굴에 한꺼번에 붉은 반점이 돋아 당황하기도 했단다.


열두째부터는 정부보조금 받아


아이 열셋에 부부까지 15명의 대식구가 무얼 먹고 어떻게 살아가는지 궁금했다. 엄씨는 “열한 번째 나은이를 낳을 때까지만 해도 정부 지원이 거의 없었다”고 했다. 주변의 아는 분들이 후원해주고, 개척교회 후원금 조금 나오고, 남편 김 목사가 틈틈이 목수일을 하면서 받는 돈을 합쳐 80만~100만원이 매달 들어오는 돈이었다. 하지만 부부는 아껴 쓰고 나눠 쓰다보니 먹을거리 걱정 없이 잘 살고 있다고 했다.

집에 있는 책꽂이와 책상, 식탁 모두 김 목사가 직접 톱질, 대패질을 해서 짜놓은 것이었다. 방마다 있는 책꽂이에는 기증받고 물려받은 책이 빼곡했다. 방은 3개. 안방에서는 부부와 아기 등 예닐곱 명이 함께 잔다. 예배당과 붙어 있는 작은 방은 모아와 뜨레가 쓴다. 건넌방에서는 남자애들 서너 명이 잔다. 마당 한쪽에 있는 낡은 그레이스 승합차는 가족들의 이동 수단. 셋째 다드림이는 “12인승 차량인데 이제 동생들이 커서 그런지 저 차도 비좁다”면서 씨익 웃었다.


김 목사 가족은 3년 전부터 기초생활 수급대상자로 지정됐다. 정부지원금이 나와 형편이 조금은 나아졌다. 도움의 손길도 이어져 열두째 가온이가 태어난 2006년에는 경북도청 직원들이 1300여만원을 모금해 지원하기도 했다. 순천향병원에서는 아이 셋에 대한 출산비용을 부담했다. 이번에 막내 출생신고를 했더니 시에서 출산장려금 100만원을 준다고 한다. 아이 열 명을 키우는 선산의 정육점 아주머니는 김 목사 가족에게 일 년에 몇 차례씩 고기 선물을 보내주는 넉넉한 이웃이다. 부부는 크고 작은 지원을 아끼지 않는 시청, 읍사무소와 고아농협 관계자들, 마트 상인들 모두가 고맙다고 했다.

엄씨는 아이들의 옷이 차곡차곡 쌓여있는 옷방을 보여줬다. 돈을 주고 산 옷은 별로 없고, 친척이나 이웃에게 받은 옷으로 동생들이 물려 입는다고 했다. “헌옷을 보내주시는 고마운 마음도 저희는 너무나 잘 알고 있습니다. 혹시 기분 나빠하지는 않을까 고민하면서 깨끗이 빨아 포장까지 해서 택배로 부쳐주는 마음, 그런 정성은 돈으로 계산할 수 없거든요.”
 

건강하고 예의 바른 사회인으로 키울 것

김 목사 가족을 바라보는 사람들의 걱정 중 하나는 ‘아이들이 제대로 교육을 받을 수 있나’ 하는 것이다. 엄씨의 목소리 톤이 살짝 올라갔다. “요즘 세상이 어떤 세상인데 아이들 어떻게 가르치려고 저렇게 무책임하게 낳아버리냐는 비난을 참 많이 받았습니다. 저희 부부, 그동안 정부 보조 없이도 아이들 잘 키우고 가르쳤습니다. 성적으로는 우등생이 아닐지 모르지만 친구들과의 관계 좋고, 예의 바른 어린이와 청년으로 잘 자라고 있다고 자부합니다.”

부부는 좋은 대학에 보내기 위해 아이들을 닦달하기보다는 아이들이 스스로 선택하고 미래를 열어가도록 하고 있다고 했다. 사회에 뒤처지지 않고 인정 받는 아이, 자신의 책임을 다하는 아이로 키우겠다는 것이다. 선생님이 내주신 과제는 반드시 해 가도록 하는 것, 참다운 인성교육은 그런 기본적인 데 있다는 것이 부부의 지론이다.

사교육 한 번 받지 않았지만 큰딸 빛나는 경북대 물리학과에 진학해 벌써 3학년이다. 고아농협에서 4년간 등록금을 지원해 줘서 한시름

놓았다고 엄씨는 말했다. 아빠를 닮아 그림을 잘 그리던 둘째 다솜이는 올해 수능시험을 치렀다. 성적이 예상보다 신통치 않게 나왔다며 속상해 하지만 디자인 전공으로 미대에 지원했다.

한때 방송에 출연한 뒤 턱없는 비난을 받은 적도 있다고 부부는 회상했다. 무책임하게 아이들을 낳기만 한다며 ‘목사가 아니라 짐승’ ‘아이들이 거지꼴을 면하지 못할 것’이라는 악의적 비난이 이어졌고, ‘시골 노인들의 피를 빨아먹는 악덕 목사’라는 저주에 가까운 인터넷 댓글이 떠다녔다고 했다. 부부는 “우리는 아빠 엄마를 믿어요. 신경쓰지 마세요”라며 등을 두드리고 위로하는 아이들을 보며 가슴이 환해졌다고 말했다. “우리 부부가 아이들은 참 잘 키웠죠?” 답답했던 당시를 회상하며 살짝 눈시울을 붉히던 엄씨가 아이들을 꼭 안았다.

부부에게 결혼 이후 지금까지 아이들이 하나 둘 늘어가는 사진을 찾아달라고 부탁했다. 엄씨는 남편의 평소 취미가 가족들 사진 촬영이라면서 앨범 10여권과 커다란 상자 네 개를 들고 왔다. 수북이 쌓인 사진 속에는 웃고 뛰놀며 밝게 커가는 아이들의 모습이 가득했다. “아이들 키우느라 제대로 정리를 못 했어요. 이건 첫 애를 낳고 찍은 사진이고…. 이건 매년 대구 금오산의

채미정을 찾아 같은 자리에서 찍은 거네요.” 아이들이 달라붙어 사진 찾기를 시작하자 결혼기념 사진부터 열둘을 낳고 찍은 작년 사진까지 13장이 금세 모였다.

어느새 해는 저물고, 예배당 주변에선 색색의 작은 전구들이 불을 밝혔다. 김 목사의 집을 나오는 길. 벽에 걸린 액자 하나가 눈에 띄었다. ‘月色花色不如 吾家族和顔色(달색 꽃색깔이 비록 좋다 한들 내 집 식구 웃는 얼굴색만 하랴)’.


다둥이네 부부 "5남 8녀, 힘들어도 더 큰 기쁨 있죠"

<배한성의 아주 특별한 인터뷰> 전국 최다 5남 8녀 둔 김석태 목사 부부

2008-02-11 17:03 | CBS 배한성의 아주특별한 인터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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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북 구미시 황산리에 가면, 동네 사람들에게 ‘마을 끝 예배당집’ ‘아이 많아 유명한 집’으로 불리는 전국 최다 ‘다둥이네’가 있습니다. 작은 시골 교회인 황산교회와 그 옆 소박한 살림집에선 늘 웃음이 가득한 5남 8녀…. 13명의 아이들과 김석태 목사 부부가 살고 있는데요.

빛나, 다솜, 다드림, 모아, 들, 바른, 이든, 라온,뜨레, 소다미, 나은, 가온, 그리고 작년 12월에 태어난 온새미까지. 김석태 목사 댁은 1987년 첫 딸을 출산한 후, 21년 동안 모두 13명의 아이를 낳아서, 전국 최다 다둥이 가족이 됐습니다. 아이가 많아 전국적으로 유명해진 다둥이네는 2006년 전국체육대회 성화 봉송 때, 전 가족이 뛰기도 했고, 어머니 엄계숙 씨는 지난해 12월 31일에 종로 보신각에서 제야의 종을 치기도 했죠.

아이들이 많아 행복한 집, 다둥이네 김석태 목사님과 부인 엄계숙씨를 2월 9일 CBS 배한성의 아주 특별한 인터뷰(FM 98.1Mhz, 연출 김우호 PD)에서 만나봤습니다.

◇ ‘다둥이네 5남 8녀’ 하나님의 선물

[BestNocut_R]▶ 가족이 함께 오셨는데, 오실 때 뭘 타고 오셨어요?

그레이스 12인승에 타고 아이들 몇 명 데리고 올라왔어요. 첫째랑 둘째, 밑에 여자애들만 해서 6명이 같이 올라왔죠. 나머지 애들은 방학이니까 집에서 밀린 숙제하고 있을 거예요.

▶ 방학 때라 더 정신이 없을 것 같아요.

개학하면 다 빠져나가니까 좀 여유가 생겨요.

▶ 학교에 다니는 아이가 몇 명이에요?

올해 대학교에 들어가는 아이가 2명이고 고등학교 1명, 중학교가 2명, 그리고 초등학교가 4명이에요.

▶ 지난 12월에 13번째 아이가 태어났는데 이름을 뭐로 지으셨어요?

‘온새미’라고 지었는데 영원히 변치 않는다는 뜻을 갖고 있어요.

▶ 전국 최다둥이를 기록하셨는데 이번 출산 때 고생하셨다면서요?

11째부터 힘들기는 했는데 이번에는 저보다 병원에서 더 겁을 먹을 정도로 힘이 들었어요. 자궁경부가 부어서 아기가 나오기 힘들었고 파열이 될까봐 걱정했던 것 같아요. 지금은 건강합니다.

▶ 14번째를 기대해도 될까요?(웃음)

생명을 주시는 분은 하나님이시기 때문에 주시면 감사하게 받는 것이지 인위적으로 가져야겠다는 생각은 하지 않아요.

▶ 첫째인 빛나양이 아주 미인인데 혹시 남자친구가 있나요?

빛나가 올해 23살이 돼요. 아이들이 학교생활이든 사생활이든 대부분 이야기를 해주거든요. 빛나한테 남자친구는 있는 것 같은데 아직 애인이라고 할 만한 사람은 없어요.

▶ 요즘은 저 출산 시대이기도 하고, 무자식이 상팔자라는 말도 있는데 어떻게 생각하세요?

저도 결혼 전에 그런 말을 들으면 어느 정도 수긍을 했는데 아이들을 키우면서 아이들이 없었다면 세상이 삭막하고 재미없었을 거예요. 그래서 보는 사람들마다 하나님이 주신 생명이니까 감사함으로 받으라고 해요. 사람들이 키울 때 힘들지 않았느냐고 물어보는데, 물론 힘든 일이 없었다면 거짓말이지만 그것보다 더한 기쁨이 있다고 이야기를 해주거든요.

▶ 문패가 특이하다고요?

‘다둥이 가족’이라고 적혀 있어요.

▶ 사진에 보면 칫솔이 가지런히 놓여져 있는데 순서대로 지켜지나요?

처음에는 칫솔 색깔만 다르게 해서 한 통에 꼽아놓았는데 나중에는 아이들이 늘어나니까 색깔 구분하는 걸로는 안 되겠더라고요. 이후에는 이름을 써서 붙여놓기도 했는데 그것도 역시 찾기가 곤란해서 번호 순서대로 해 놓으니까 자기가 몇 째인지는 알잖아요. 번호대로 뽑아서 써요.

◇ 생활 규율, 아이들 속에서 자연스럽게 생겨

▶ 부모님까지 15명이 살려면 집이 굉장히 넓어야겠어요.

아이들 숫자 맞추려면 한참 넓어야죠.(웃음) 집에서 아이들이 조금만 움직이려고 하면 뛰지마라, 먼지난다고 말리는데 미안한 마음도 있어요. 공간적인 부분에서 아쉬움이 있기는 하지만 그 속에서 부대끼면서 가족의 끈끈한 정도 느낄 수 있으니까 괜찮아요.

▶ 집수리도 김석태 목사님께서 직접 하세요?

처음부터 목공일을 했었던 건 아니고 88년도에 내려가면서 개척교회를 하면서 교회에서 조그만 공사를 하려고 해도 일꾼을 사서 해야 하잖아요. 그럴 형편이 안 되니까 다른 사람도 하는데 나도 하면 어떨까 싶어서 했죠. 몇 번의 시행착오를 하면서 솜씨가 있었는지 다른 사람이 보더니 잘 한다고 칭찬하니까 신이 나더라고요. 아이들이 성장하면서 필요한 것들이 생기니까 만들고, 또 지나다가 인테리어 하는 사람들 솜씨를 눈여겨봤다가 이용해서 만들어보기도 한 게 지금까지 온 거예요.

▶ 아침에는 정말 바쁘시겠어요?

정말 바쁘죠. 욕실은 하나고 화장실이 욕실 안에 있으니까, 볼일 볼 사람이 있고 씻어야 할 사람이 있는데 아침 6시에 일어나서 아이들을 깨우기 시작하면 9시 반에 다 나가요. 11째까지 다 나가는 거죠. 시간 별로 초등학생은 1시간 만에 다 씻어야 하고 옷 입히고 머리 빗기고 하면 정신이 하나도 없어요.

▶ 김석태 목사님이 욕실에 커튼을 쳐 놓으셨다고요?

커튼을 치면 불편하기는 해도 치기는 했어요. 전에 손님이 한 번 오셨다가 이 집 화장실은 언제 열어도 누가 있다고 말씀하시더라고요.(웃음)

▶ 요즘 아이들은 컴퓨터가 놀이인데 컴퓨터 때문에 다투지는 않아요?

아이들이 서로 하려고 하는 건 있는데 정해진 시간이 있어요. 하루에 한 사람 당 20분씩 정해서 하고 있고 또 게임을 하면 정지를 당해요. 그래서 아이들이 컴퓨터 때문에 싸우는 일은 거의 없는 것 같아요.

▶ 아이들이 어렸을 때부터 규율을 지키도록 잘 키우시나 봐요.

저희가 잘 키운 다기보다는 아까도 차를 타고 오면서 그런 이야기를 나눴어요. 12째 아이가 가온인데 차를 타면 앞으로 오겠다고 보채요. 그런데 13째가 태어나고 나서 그게 사라지더라고요. 저 어린애가 막내가 태어났다고 저 자리는 내 자리가 아니라는 것을 아는 것 같아서 신기했어요. 아이들이 어렸을 때부터 사회성이 키워지는 것 같아요. 부모인 저희들도 또 아이들 스스로도 모르는 사이에 어떤 규율이 생기는 것 같더라고요.

▶ 애들이다 보니까 티격태격하면서 싸울 때는 어떻게 하세요?

크게 싸우는 건 보지 못했어요. 집에 오시는 손님들이, 이 집은 아이들이 많은데 왜 이렇게 조용하느냐고 하세요. 아내와 저도 아이들한테 왜 이렇게 시끄럽냐고 조용히 하라는 말을 하는데, 이 정도는 시끄러운 것도 아니라고 하더라고요. 생각해 보니까 아이들 있는 집에서 이 정도는 봐줄만 한 게 아닌가 합니다.

▶ 생활 교육이 특별하신 게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드는데요.

어려서부터 아이들에게 존댓말을 가르쳤고 위의 애들이 존댓말을 하니까 밑의 애들도 따라서 자연스럽게 존댓말을 배우게 되고, 뿐만 아니라 잘못했을 경우에는 엄격하게 다루거든요. 아이들이 욕을 하거나 치고 박고 싸우면 반드시 회초리를 들어요. 말싸움은 되도록 자기들끼리 해결하도록 놔두고 만약 해결이 안 되면 저희가 선을 그어줘요. 이건 누가 잘못한 거다, 미안하다고 해라 이런 식으로요. 또 누군가가 선의를 베풀었으면 형제간에도 고맙다고 해라, 이런 것들을 어렸을 때부터 훈련시켜서 그런지 온순해지는 것 같아요.

▶ 혹시 출산하실 때마다 건강에 무리가 있으신 건 아닌가요?

제가 계속 아이를 낳아서 그런지는 몰라도 친구들을 보면 어디가 안 좋다는 말을 많이 해요. 하나님이 특별한 건강을 주셨기 때문이기도 하지만 저는 그럴 새가 없어서 그런지, 늘 아이들과 즐겁게 생활한 것이 활력소가 되어서 그런지, 아픈 적은 별로 없었던 것 같아요.

◇ ‘환상의 커플’ 일사천리로 결혼까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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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두 분은 어떻게 만나게 되셨어요?

결혼은 수원에서 했는데 지금 돌이켜보면 거의 환상적으로 만났죠. 시청 앞에서 아내를 우연히 만났어요. 예전 교회에서 잠깐 본 적은 있었는데 나중에 연락이 잘 안 되었거든요. 길거리에서 2,30m 앞에서 보이는데 제가 뒤로 살짝 붙어서 “혹시 엄계숙씨?” 하니까 뒤를 돌아보더라고요. 시청 앞을 올라가면서 제가 누군지 아느냐고 슬쩍 물어봤어요. 그랬더니 “김석태 형제님 아니세요?” 하는 거예요. 이름을 알고 있다는 걸 확인했죠.

그러고 나서 수원교회 목사님이 주일 식사를 하고 나서 할 이야기가 있다고 하세요. 혹시 엄계숙 자매를 아느냐고 하시는데 일전에 우연히 만난 걸 어떻게 아셨는지 속으로 뜨끔했지만 내색을 할 수가 없어서 잘 모른다고 말씀을 드렸어요. 오래전부터 제 아내로 기도하고 있다고 하시는데 마음속으로 하나님이 예비해 놓으셨구나 하는 걸 느꼈고 이후에는 일사천리로 진행이 돼서 결혼하게 되었어요.

▶ 결혼 전부터 아이는 많이 낳자고 계획하셨어요?

데이트하면서 2세 계획도 이야기를 했는데 그때는 하나만 낳아서 잘 키우자고 했어요. 아내는 여자 쌍둥이를 낳았으면 했고요. 그래서 출산을 했는데 여자 쌍둥이는 아니었고 큰 딸을 낳았죠. 그러고 나서 제가 이미 한 말도 있고 별 생각을 안 하고 있었는데 집사람이 먼저 이야기를 꺼내더라고요. 정말 하나만 낳고 안 낳을 거냐고, 더 있으면 좋겠다고요. 그랬던 것이 13째까지 왔어요.

▶ 다둥이네 집이 못 될 뻔한 적이 있으셨다고요?

시골에서 목회를 하는데 아내가 둘째 아이를 갖자고 해서 낳았어요. 그런데 조금 있다가 아내가 둘째를 키워보니까 셋째도 키울 수 있을 것 같다는 거예요. 그래서 셋째를 낳았는데 아들이 태어났어요. 당시만 해도 저희도 신세대 부부니까 아들, 딸 구별 없이 하나만 낳아서 잘 기르자는 생각이었는데 아이들을 데리고 시내를 걸어가는데 만약 셋째도 딸이었으면 사람들 시선이 좀 그렇겠다는 이야기를 나눈 적이 있어요.

아내는 발동이 걸렸는지 주시는 대로 낳았으면 좋겠다고 해요. 한 5명쯤 되니까 주위에서 애만 낳느냐고 농담처럼 하는데 그냥 듣고 지나칠 수는 없겠더라고요. 당시에 예비군훈련장의 보건소에서 무료로 정관수술을 해줬어요. 아침에 훈련을 받으러 나가면서 오늘은 일찍 들어올 거라고 이야기하고 나갔어요. 그런데 그날따라 매일 오던 보건소 사람들이 안 오는 거예요. 그래서 훈련 다 마치고 집으로 갔죠. 아내가 일찍 온다더니 왜 늦게 왔냐고 물어보기에 “하나님이 더 낳으래요.” 제가 그랬죠.(웃음)

▶ 엄계숙 사모님은 왜 아기를 많이 낳으려고 하신 거예요?

첫째인 빛나를 임신했을 때 10달 내내 입덧을 하는데 하루에 7,8번을 토했어요. 낳는 것도 쉽지는 않았지만 입덧 때문에 더 이상 아이는 못 낳겠다고 생각했었죠. 그런데 아이를 하나, 둘, 셋, 이렇게 낳다 보니까 아이들 커가는 모습이 너무 예쁘고 함께 하는 시간이 너무 즐겁더라고요. 그렇다면 아이를 더 낳을 수 있겠다 싶어서 넷째 낳고 다섯째는 바로 같은 해에 태어날 정도로, 주시는 대로 신앙 안에서 잘 키워봐야 되겠다 생각했어요. 아이들을 키우면서 처녀 때 갖았던 보육교사의 꿈을 이룬 것 같아요.

▶ 아이들을 키우는데 경제적인 걱정은 안 되세요?

다른 사람들도 궁금하겠지만 저희들도 궁금해요. 이 많은 아이들을 먹이고 입히고 하는데 들어가는 돈을 어떻게 우리들을 통해서 공급하셨을까. 다른 사람들에게 살아계신 하나님을 저희들을 통해서 보여주니까 감사할 따름이죠.

▶ 출산장려를 위해서 정부에서 지원하는 제도가 있잖아요?

2007년부터 구미시에서는 셋째부터 100만원을 지원해 주는 걸로 알고 있어요. 그래서 작년 12월에 태어난 13째 아이가 처음으로 수혜를 받았어요.

◇ ‘가온, 뜨레, 라온’ 한글이름 국어사전에서 찾아

▶ 이름에 다 뜻이 있던데 어떻게 지으셨어요?

다 한글이고 뜻이 있어요. 12째와 13째는 경북 도지사께서 이름을 지어주셨고 다른 아이들은 국어사전을 많이 펼쳐봤어요. 아기 낳고 출생신고하기 전까지 국어사전을 수도 없이 봤죠. 넷째가 ‘모아’이고 아홉째가 ‘뜨레’인데 쌍둥이를 낳게 해달라고 계속 기도했었어요.

만약 쌍둥이를 주시면 제주도 사투리로 ‘서로 사랑합시다’라는 뜻으로 뜨레와 모아라고 이름을 지어야지 했는데 한 명이 태어나니까 서로라는 의미보다는 사랑합시다의 의미가 낫잖아요. 그래서 모아를 먼저 짓고 9째로 태어난 딸한테 뜨레라고 지은 거죠.

▶ 아이들에게 용돈을 주는 것도 신경이 많이 쓰이시겠어요?

처음에는 용돈이라는 것 자체가 없었어요. 그래서 애들 친구들이 학교 앞에서 사먹어도 전혀 그런 게 없다가 어느 날 친구한테 얻어먹었다고 이야기를 하더라고요. 안 되겠다, 아이들에게도 용돈을 줘서 관리할 수 있도록 해줘야겠다 싶어서 초등학생들은 일주일에 500원을 주고 중학생은 2천원, 고등학생은 3천원을 줘요. 이걸 다 쓰는 게 아니라 집에 십일조 통이 이름별로 있어서 자기들이 알아서 넣어야 해요. 500원으로 십일조를 하려면 50원을 남겨와야 하잖아요. 그래서 2주일에 한 번 100원을 넣는 거죠. 아이들이 잘 모으더라고요.

▶ 다른 애들이 과외나 사교육을 받는 걸 보면 우리 애들이 뒤쳐지는 게 아닌가 하는 마음도 드실 것 같은데요.

엄마니까 그런 생각도 들어요. 하지만 다른 사람보다 덜 한 이유는 시골이라서 경쟁의 대상이 많지 않은 거예요. 아무리 사교육에 아이들을 내몰지 않겠다고 마음을 먹어도 옆집에서 학원을 보내면 우리 아이도 보내고 싶고 이러다가 뒤쳐지는 거 아닌가 생각할 텐데, 일단 주변에 경쟁자가 없다 보니까 경쟁 안에서 키우기 보다는 성격 밝고 공부든 뭐든 스스로 하는 것을 배우면 더 잘 한다는 것을 알고 있어요. 그래서 불안하지 않고 첫째나 둘째를 대학에 보내면서도 뭔가를 시키지 않아도 스스로 알아서 들어갔고 이것 또한 하나님의 은혜라는 것을 느낄 수 있는 거죠.

▶ 아이들을 키우시면서 가장 힘들었을 때가 언제셨어요?

시골에 있다 보니까 다양한 세계를 접하지 못하는 것이 안타까워요. 한편으로는 다른 사람들끼리 어울리지 않아도 자기들끼리 어울릴 수 있잖아요. 눈에 보이는 형제들만 전부라고 생각하는 건 아닌가 조금 걱정이 돼요. 그래서 방학 때 친척 집에 데려가기도 하고 캠프가 있으면 형편이 닿는 대로 보내기도 합니다.

아이들이 아플 때 가장 힘들어요. 물론 아이들이 늘어나면서 일도 정말 많은데 이건 즐겁게 할 수 있지만 아이들이 아픈 건 감당이 안 돼요. 몇 년 전에 8명이 한꺼번에 수두에 걸린 적이 있어요. 저희는 감기나 열나는 걸로 병원에 안 가요. 수두는 약도 없는데 어떻게 할 수가 없어요. 집에서 치료를 하는데 위의 아이들은 가려워도 잘 참는데 밑의 아이들은 손을 좀 댔어요. 그래서 10째가 그 예쁜 얼굴에 방울이 많아요.

◇ 방송출연 후 비난도 받았지만 격려도 많아

▶ 방송 출연 이후에 네티즌들한테 비난을 받기도 하셨다고요?

밖에 나갔다가 들어오니까 방송국에서 전화가 왔는데 어떻게 했으면 좋겠느냐고 아내가 물어보기에 다른 방송도 아닌 교육방송이고 또 경쟁체제가 아닌 시골의 자연 속에서 아이들이 이렇게 살아가도 된다, 이렇게 살아가는 사람도 있다는 것을 보여줄 수 있다면 그걸로 좋다고 생각했어요. 그래서 나갔던 건데 이후에 진실게임, VJ특공대, 아침마당으로 자꾸 연결이 됐죠.

그러다가 마지막으로 2004년도에 인간극장에 출연했는데 이것도 전혀 뜻하지 않은 계기로 나갔어요. 그때는 인간극장에 출연해 달라는 걸 거절한 상태였거든요. 그런데 밤 12시에 찾아와서 “목사님, 저희 갈 데도 없어요.” 그러는데 제가 잘난 사람도 아니고 아이가 많다는 것뿐인데 자꾸 거절하는 것도 미안하고 해서 찍으라고 해서 찍게 된 거예요.

그 방송 후에 처음으로 인터넷에 댓글이라는 문화를 봤어요. 댓글 달려있는 걸 보니까 장난이 아니에요. 한국 사람들 욕도 참 다양하다는데 방송에서 표현하기 힘든 단어들로 비난하더라고요. 저는 남자니까 세상에 이런 사람들도 있고 저런 사람들도 있으니까 마음에 담아두지 말라고 했는데 아내는 여자니까 마음에 굉장히 상처가 되었나 봐요.

▶ 반대로 격려나 성원의 글도 있었겠죠?

그럼요. 아이들이 많음으로 인해서 밝게 자라나는 모습들, 교육적인 면에서도 아이들에게 도움이 된다고 저희들 대신에 댓글로 남겨주시는 분들도 많이 계셨어요. 그리고 방송 후에 아이들 옷이며 학용품들을 택배로 보내주시고, 쉽게 할 수 있는 일이 아닌데 그런 분들을 보면서 참 감사했어요. 또 10형제 중 한 분이신데 정육점을 하세요. 그분이 고기를 1년에 1,2번씩 갖다 주시는데 평소 고기를 잘 못 먹다가 그때는 풍족하게 고기를 먹어요.(웃음)

▶ 엄계숙 사모님은 성화 봉송 주자로 뛰시기도 하고 제야의 종소리도 울리셨는데 유명해지시니까 어떠세요?

유명해지려고 해서 유명해진 게 아니고 저 같은 사람도 설 수 있는 자리가 있다는 게, 저 같은 서민들도 그런 행사에 초대될 수 있구나, 감사하다는 생각을 했어요.



▶ 아버지의 입장에서 보면 아이들을 어떻게 잘 키워야 할까, 마음의 부담도 있으실 것 같은데요.

차를 타고 오면서 다른 거 아무리 잘 해도 자식 농사 망치면 하나도 잘 한 게 아니라는 생각이 들더라고요. 자식을 키우면서 아무것도 염려하지 말라, 아버지를 믿으니 또 나를 믿으라는 예수님의 말씀에 아이들도 예외일 수는 없거든요. 아이들이 성장해서 학교에 들어가고 하는 모든 것을 주님께 맡겨야 되겠다고 생각해요.

큰 애가 대학 들어갈 때 굉장히 미안했어요. 공부 좀 하려고 하면 애들 북적대지 울어제끼고 안기지, 그런데 감사한 게 큰 애가 그런 환경을 즐기는 것 같더라고요. 그런 마음을 먹은 게 참 감사하고 대학에 들어간 게 기특해요. 부모로써 책임을 다해야겠지만 손대지 못할 부분에 대해서는 전적으로 하나님께 의탁하고 기도하는 것이 실패하지 않는 길이라는 걸 깨달았죠.

◇ 아내는 밝은 태양, 가족 모두 건강했으면

▶ 앞으로의 소망이 있다면 말씀해 주세요.

남편으로서 아내한테 항상 미안한 마음이 있어요. 아내가 힘들면 집안 전체가 어두워지고 웃으면 환해지더라고요. 그래서 아내에게 올해 건강하고 웃음을 잃지 않아서 집안의 태양이 되어 달라고 부탁했어요. 우리 국민들도 즐겁게 사는 삶을 받아들이면 참 행복하겠다는 생각을 합니다.

(FM 98.1MHz 월~토 오후 4시 5분, 정리=박길자)


GNTV엄계숙 - 2014년 호남지역 교사 세미나 선택강의: 가정에서의 자녀 양육

https://www.youtube.com/watch?v=uQltf8eXr-4




최다 ‘다둥이 가족’ 되는 김석태·엄계숙씨네

“곧 태어날 열셋째, 어떤 아기일지 너무너무 궁금해요.”

12명의 자녀를 둔 경북 구미시 고아읍 김석태(49·목사)·엄계숙(44)씨 부부가 곧 13번째 아이를 낳는다. 전국에서 12명의 자녀를 두고 있는 가정은 김씨 가족을 포함해 3가구. 예정대로 아이를 출산하면 김씨네는 전국 최다 ‘다둥이 가족’이 된다.

김씨네 14명의 가족은 요즘 밤잠을 못 이룰 만큼 들떠 있다. 만삭인 어머니 엄씨가 예정일(2일)을 사나흘 넘겨 기대는 더욱 부풀었다.

어머니 엄씨는 만삭의 몸으로 지금도 하루 세 번씩 빨래를 한다.

1986년 결혼한 김 목사 부부. 빛나(여·21·경북대 3학년), 다솜(여·19·고3), 다드림(16·중 3), 모아(13·여·중1), 들(13·초교6), 바른(11·초교4), 이든(9·초교3), 라온(8·초교1), 뜨레(여·7), 소다미(여·5), 나은(여·4) 가온(여·2)이까지 모두 부부가 낳았다. 결혼생활 20년 중 12년을 임신한 상태로 보냈다.

씻기고, 먹이고, 재우는 일까지 다른 가족보다 몇 배나 힘이 들었다. 감기라도 걸리면 모두 옮아 한꺼번에 병치레를 하기 일쑤다. 2003년엔 한꺼번에 8명의 아이가 수두(水痘)에 걸려 애를 먹은 적도 있다. 가정형편도 넉넉하지 못해 사교육은 엄두도 못 낸다.

주변에서는 “그렇게 많은 애들을 어떻게 키우느냐”고 걱정한다. 하지만 김씨 부부는 오히려 “서로 챙겨주고 공부도 가르쳐가며 우애(友愛)있게 지내는 모습이 얼마나 예쁜지 모른다”면서 “혼자서 컴퓨터 게임에 빠져 있는 요즘 아이들을 보면, 형제끼리 친구가 돼 건강하게 뛰노는 우리 아이들처럼 복 받은 아이들도 없지요”라며 환하게 웃었다.

                                      


자녀 13명 다출산 주부 엄계숙 씨





엄계숙(45)씨와 얘기를 나누는 동안 전화가 쉴 새 없이 걸려왔다. 그 중 두어 통은, 흘려  듣자니 그와 인터뷰를 원하는 언론에서 걸려온 전화인 것 같았다.

엄씨는 최근 열세 번째 아이를 낳은 뒤, 자신에게 관심을 보이는 언론들이 또 늘고 있다고 말했다. 엄씨가 세간의 주목을 끌기 시작한 것은 대략 6~7년 전부터다. 아홉째, 열째를 낳으면서 다자녀 출산의 주인공으로 부각된 바로 그 시점이다. 그 뒤로 식구가 한 명씩 더 늘 때마다 예외 없이, 또 어김없이 언론이 그녀의 가정을 찾았다.

 “방송국과 신문사에서 연락받은 것이 지금까지 100번도 훨씬 넘는 것 같아요. 한데 우리 가족이 많이 알려지다 보니, 조금은 부담스러워졌어요. 그래서 언론과 인터뷰를 가능하면 사양하고 있습니다.”

엄씨는 그러면서 <코리아플러스>의 취재 요청에 응한 것은 정부 정책 홍보에 조금이라도 도움이 됐으면 하는 마음 때문이었다고 말했다. 저출산 문제 해결이 국가적 현안으로 떠오른 만큼, 다자녀 가정으로서 출산을 장려하는 분위기를 조성하는 데 일조할 수 있다면 기꺼이 나설 수 있다는 것이었다.

우리나라의 출산율은 가임 여성 1명당 1.1명 정도다. 달리 얘기하면 자녀가 둘인 가정보다 하나인 가정이 훨씬 많다는 뜻이기도 하다. 이런 배경에서 본다면 엄씨의 경우 혼자서 가임 여성 10명 이상의 몫을 한 셈이다.

저출산은 인구 고령화와 맞물려 대한민국의 장래를 어둡게 하고 있다. 국제통화기금(IMF) 등 내로라하는 세계적인 경제기구들이 중장기적 관점에서 하나같이 우리나라의 가장 큰 문제로 꼽는 것이 출산율 저하 문제다.

단적인 예로, 최근 같은 저출산율이 지속된다면 20년쯤 후에는 경제활동인구(18~64세) 3명이 고령인구(65세 이상) 1명을 먹여 살려야 한다. 2007년 현재는 경제활동인구 약 7명이 고령인구 1명을 부양하고 있다.


작년 말에 열셋째 태어나

“물론 제가 나라의 장래를 생각하고 아이를 많이 낳은 것은 아닙니다. 저는 아이들이 너무 좋습니다. 생긴 것만큼이나 다양한 개성을 갖고 있는 아이들을 그저 바라보기만 해도 행복하답니다.”


방 안으로 들락거리는 아이들에게 이따금씩 얼굴을 돌리곤 하던 엄씨는 웃으면서 동의를 구하듯 말했다. 아이들이 사랑스럽다 보니 어느새 열셋째까지 낳게 됐다는 것이었다. 아닌 게 아니라, 아이들은 한결같이 각자의 나이 또래에 어울릴 법한 순수하고 선한 표정과 태도를 갖고 있었다



지난해 말에 낳았다는 열셋째인 막내는 강보에 쌓여 언니와 오빠들이 들락날락하건 말건 깊은 잠에 빠져 있었다. 열두째는 종종걸음으로 꽤나 높은 안방의 문지방을 넘어질 듯 넘나들다간 종내는 엄마 품을 파고들곤 했다.

올해 대학 4학년에 진학한다는 큰딸은 식구들의 때늦은 점심을 준비하는 것 같았다. 조금은 쑥스러운지 눈을 딱 맞추지는 않았지만 산소처럼 맑은 기운이 느껴졌다.

키가 고만고만한 초등학생인 아들 넷(다섯째~여덟째)은 똑같은 줄무늬의 옷을 입고, 엄마의 인터뷰를 흥미 가득한 눈길로 지켜보고 있었다. 그 중 한 녀석은 줄곧 방 안의 탁자에 붙어 있었고, 다른 아이들은 작은 의자에 앉아 있기도 했고, 잠깐씩 누워 동생과 장난을 치거나 들락거렸다.

아홉, 열, 열한 번째는 모두 여자아이들인데, 어린이집에 갔다가 느지막한 오후가 돼서야 한꺼번에 몰려왔다. 집에 오자마자 어린이집에서 그린 그림들을 엄마 아빠에게 보여주며, 재잘거리는 것이 예쁜 병아리들 같았다.

“사람들이 저보고 아이를 쑥쑥 잘 낳는 줄 알아요. 아이가 많다 보니까요. 하지만 저는 유난히 입덧이 심하고, 난산인 편이에요. 첫째, 둘째는 임신 열 달 내내 입덧을 했어요. 다행히 다섯째 이후로는 입덧 기간이 5개월 정도로 줄었지만요. 산통이야 하루 이틀 죽었다고 생각하면 되는데, 입덧은 정말 끔찍해요. 입덧만 생각하면 그 다음 아이는 갖지 말아야 하는데, 아이들을 보면 너무너무 행복한 겁니다. 입덧이며, 산통을 다 잊어버리고서 또 아이를 가질 수 있는 힘을 얻는 거지요.”

엄씨는 아이들이 주는 행복은 말로 표현하기는 힘들지만 아주 다채롭다고 말했다. 큰아이는 큰아이대로, 사춘기 아이는 사춘기 아이대로, 코흘리개는 코흘리개대로, 젖먹이는 젖먹이대로 나름의 행복감을 안겨준다는 것이다. 또 남자아이들은 남자아이들대로, 여자아이들은 여자아이들대로 키우는 맛이 다르다고 했다. 옆자리에 앉아 있던 남편 김석태 목사(50)는 그래도 여자아이 키우는 재미가 조금 나은 것 같다고 거들었다.






정부의 다자녀 지원책 큰 힘
김 목사는 신자라고 해야 양손으로 꼽을 정도로 작은 시골 교회여서 애초부터 사례 같은 걸 기대하기는 힘들었다고 말한다. 다행히 손재주도 있고 눈썰미도 괜찮은 편이어서 봉사로 시작했던 목공일이 자연스럽게 아르바이트로 연결이 되어 가게에 다소나마 보탬이 된다고 한다.


교회와 집을 겸한 낡은 건물 옆으로는 목공일을 할 수 있는 노천 작업장이 자리하고 있었다. 그의 집을 찾은 1월 하순, 김 목사는 추위가 맹위를 떨치는데도 의뢰가 들어온 일거리의 날짜에 맞춰야 한다며 바쁜 모습이었다.

낮게 세워진 조그만 십자가와 차 대여섯 대를 주차할 정도로 다소 널찍한 마당을 제외하면 엄씨네 집은 여느 시골집과 크게 다르지 않은 분위기였다. 그러나 그 속에 사는 15명의 식구들이 만들어내는 하모니는 아마도 대한민국에서 엄씨네가 아니면 찾아볼 수 없을 만큼 독특한 것이었다. 길게는 이십 몇 년에서, 짧게는 열한 달 터울의 형제자매 열세 명이 서로 자연스럽게 엮여 만들어내는 인간관계, 그것을 화음이라고 하면 그 보다 아름다운 소리도 흔치 않을 것이다.

아이들이 한결같이 밝은 데 대해 김 목사는 “천성도 순한 편들인 데다, 스트레스를 주지 않고 키워서일 것입니다”라고 말했다. 엄씨는 “대책 없이 아이들만 많이 낳았다는 소리를 듣지 않으려고, 특히 아이들의 인성 교육과 집안 분위기에 한층 신경을 쓰고 있습니다. 또 신앙을 바탕으로 올바르게 성장해 줬으면 하는 바람을 갖고 있습니다”라고 덧붙였다.


8녀 5남… 첫째와 막내 20년 차이

엄씨의 13자녀는 성별로는 8녀 5남이다. 첫째가 87년생이고, 막내는 2007년생으로 만 20년 차이가 난다. 넷째와 다섯째는 같은 95년에 태어났다. 다섯째부터 여덟째까지 넷은 죽 아들이고, 아홉째부터 열셋째까지 다섯은 모두 딸이다. 큰아이를 수원에서 낳은 뒤 곧바로 현재의 경북 구미로 이사와 나머지 아이들을 뒀다.

혈액형은 O형 다섯, A형이 여덟이다. 남자아이 다섯은 모두 아빠와 같은 A형이고, 여아 중에는 엄마와 같은 O형이 다섯으로 3명인 A형보다 더 많다. 또 13명 중 9명이 토끼, 뱀, 원숭이, 돼지(3명)로 띠 동갑이다.

김 목사는 아이들을 데리고 다니다 보면 “좋은 일 하십니다”라는 인사를 가끔 받기도 한다며 웃었다. 보육원을 운영하는 걸로 착각하는 사람들이 있다는 것이다. 엄씨는 다출산으로 유명세를 타다 보니, 불임 여성이 찾아와 내의를 간곡히 청한 적도 있다고 말했다.



꿈나무 푸른 함성, 구미시민운동장 달궜다

장영훈기자 jang@kyongbuk.co.kr 2008년 05월 06일 화요일 제20면

인기절정의 여성그룹 '소녀시대'가 히트곡들을 부르며 열창하고 있다.


제14회 경북 어린이날 큰잔치가 5일 구미시민운동장에서 어린이와 시민 3만여 명이 참석한 가운데 성대하게 열렸다.

이날 행사에는 주관사인 정정화 경북일보 사장을 비롯한 김성조 국회의원, 김영일 경북도 정무부지사, 조병인 경북도 교육청 교육감, 남유진 구미시장, 전인철 구미시의회 의장 등 30여 명의 내빈들이 참석, 어린이날 행사를 축하했다.

김관용 경북도지사는 기업 유치를 위한 미국 출장 중임에도 '영상 메시지'를 보내와 눈길을 모았다.


경북어린이들의 꿈과 희망의 나래를 연출하는 버턴터치를 참가한 내빈들이 누르고 있다.


김 지사는 동영상을 통해 "어린이가 없는 곳에 천국은 없다. 아이들은 씩씩하게, 행복하게 자라야 한다"면서 "어린이 여러분은 큰 꿈을 갖고, 최초 우주비행사 이소연씨처럼 우주로 나가길 바란다"고 말했다.

이어 김영일 부지사는 기념사에서 "어린이날을 진심으로 축하한다"면서 "오늘은 여러분 날이다. 보고, 듣고, 즐기고, 체험하며 좋은 추억을 만들기를 바란다"고 했다.

또 조병인 교육감은 대한민국 어린이 헌장을 낭독했으며, 이어서 참석한 내빈들 모두는 축하말을 통해 "어린이가 나라의 미래다"며 행사를 축하했다.

제 86회 어린이날 기념 및 제14회 경북 어린이날 큰잔치가 5일 구미시민운동장에서 3만여명의 어린이와 부모들이 다채로운 행사와 게임을 즐기며 즐거운 하루를 보냈다.


특히 이날 전국에서 가장 많은 자녀를 둬 '다둥이 가족'으로 유명한 김석태(50·목사)·엄계숙(45)씨 부부와 자녀 13명은 이날 '우리아이 지키기' 선언문을 낭독했다.

김씨 부부는 선언문에서 "우리 아이들이 안전한 사회를 만들기 위해 300만 도민의 뜻을 모아 우리아이 지키기 실천과제를 선언한다"고 말했다.

공식행사 후에는 다채로운 축하행사가 펼쳐졌다. 이날 인기가수 소녀시대와 GOD 김태우는 참석한 어린이들의 가장 큰 환호를 받았다.


경북일보 정정화 사장이 행사에 앞서 인사말을 전하고 있다.


이번 어린이날 큰잔치는 오후까지 이어졌으며, 참석한 시민들은 어린이들과 모처럼 즐거운 시간을 보냈다고 입을 모았다.

정정화 사장은 "경북일보가 주관하는 어린이 큰잔치가 벌써 14년째를 맞았다"면서 "어린이는 나라의 미래이기 때문에 맑고 건강하게 자라야 한다. 앞으로도 다양한 어린이 날 행사를 통해 아이들의 꿈과 희망을 키울 수 있도록 노력하겠다"고 말했다.


제 14회 경북 어린이큰잔치에 참가한 다둥이 가정 김석태·엄계숙씨와 13명의 자녀들이 우리아이 지키기 선포문을 낭독하고 있다.


사진 = 김우수기자 woosoo@kyongbuk.co.kr



구미소방서에서 응급상황서 시민들을 구출하는 고공낙화레펠을 펼치고 있다.


비보이 댄스배틀에 만장크루팀이 다양한 춤동작을 선보이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