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

'노인 대국' 일본, 고령 범죄 급증

Shawn Chase 2016. 4. 7. 01:04

경향신문 | 도쿄 | 윤희일 특파원 | 입력 2016.04.06. 22:13




[경향신문] 지난달 20일 오후 2시쯤 일본 효고현 가코가와의 주택가에서 75세 노인이 초등학생을 폭행했다가 체포됐다. 노인은 초등학생이 “꽁초를 버리지 말라”고 하는 것에 화가 나서 때렸다고 했다.

지난해 10월 도쿄 세타가야에서는 78세 남성이 찻집에서 일하는 20대 여성에게 청혼했다가 거절당한 뒤 살해협박을 했다. 이 남성 역시 체포됐다.

이바라키현에서는 슈퍼마켓들을 돌며 좀도둑질을 해온 86세 할머니가 경찰에 넘겨졌다. 인구 4명 중 1명이 고령자인 ‘노인 대국’ 일본은 고령자 범죄로 골머리를 앓고 있다. 노인들의 범죄가 늘어나는 배경에는 가족·사회와의 단절이 자리잡고 있다.


일본 경찰청에 따르면 경찰에 체포된 65세 이상 고령자는 1995년 1만1440명에서 2014년 4만7252명으로 20년 새 4배로 늘었다. 법무성의 2015년 범죄백서를 보면 2014년 교도소 신규 수감자 2만1866명 중 2283명이 고령자였다. 통계를 내기 시작한 1991년 고령자 비율이 1.3%였는데, 23년 만에 처음으로 10%를 넘어섰다. 특히 여성 재소자 중에서 고령자 비율이 높았다. 지난해 수감된 여성의 16.4%가 고령자였다. 최근에는 고령자 간 성범죄가 특히 많이 늘었다. 성폭행으로 검거된 고령자 수는 30년 전의 7.7배, 성추행범 수는 19.5배로 늘었다.

고령자들은 출소 후 재범율도 높고 다시 수감되는 경우가 많다. 이들이 범죄를 되풀이하는 이유 중 하나는 재수감을 겁내지 않는 탓이다. 교도소에서는 식사와 잠자리를 해결하고 공짜로 치료도 받을 수 있기 때문이다. 일각에선 교도소가 노인복지 시설이 됐다는 말도 나온다.

실제로 교도소들은 고령 수감자가 많아지면서 재소자 건강관리에 비상이 걸렸다. 오이타현의 오이타교도소는 휴대형 게임기로 고령 재소자 치매예방 활동을 하고 있다. 도치기현의 구로바네교도소는 치매를 막으려 읽기, 쓰기, 계산 연습을 시킨다. 같은 현의 도치기교도소는 외부 강사까지 불러 60대 이상 수감자의 건강관리운동을 돕는다.


가가와현 다카마쓰교도소와 히로시마현 히로시마교도소는 고령 수감자용 난간을 설치하고 이동로를 평탄하게 했다. 2004년 32억엔(약 335억원) 수준이던 일본 교도소의 의료비 부담액은 2015년 60억엔으로 늘었다.

고령자 범죄가 늘어나는 주된 이유로는 ‘사회적 고립’이 꼽힌다. 일본 노인 중 자녀와 거의 접촉하지 않는 사람 비율은 2.6%다. 그런데 2012년 일본 경찰청 조사에 따르면 고령 절도범의 63.3%, 고령 사기범의 59.6%가 자녀와 거의 접촉하지 않는 것으로 나타났다. 다른 노인들에 비해 가족과의 단절이 몹시 심각한 것이다.

노인 문제 전문가 신고 유키(新鄕由起)는 “자신의 사회적 역할이 끝난 뒤 ‘나는 더 이상 이 세상에 필요하지 않다’고 느끼게 되는 이들이 자포자기의 심정으로 범죄에 손을 대는 경우가 많다”며 “이들의 에너지와 능력을 사회에서 살려나갈 수 있도록 시스템을 만들어야 한다”고 덧붙였다.

<도쿄 | 윤희일 특파원 yhi@kyunghya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