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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정없는 알파고 앞에서… 이세돌은 '겸손의 手' 배웠다

Shawn Chase 2016. 3. 15. 08:52



입력 : 2016.03.15 03:00

[인간 對 인공지능 두뇌전쟁] 인공지능과 붙고 달라진 반항아

세계 휩쓸던 10·20대 땐 '독설가' "불리해서 대충 뒀는데 이겼다"
알파고 대결 직전 "내 승리 불변"

3연패 뒤엔 "이세돌이 진 것일 뿐, 인간이 기계에 진 건 아닙니다"
자신감→당혹→절망→반전까지… 대국 거듭하며 원숙한 승부사로

이세돌 9단은 20대 시절 지나치게 공격적인 기풍이 아니냐는 질문을 받자 “싸울 만해서 싸운다. 수가 보이는데 어쩌란 말인가”라고 대응할 정도로 자신만만했다. 그랬던 이 9단이 알파고와 대국을 하면서 겸손한 승부사 면모를 보였다. 사진은 10일 대국 중인 이 9단의 모습과 바둑판을 다중노출로 촬영한 모습.

이세돌 9단은 20대 시절 지나치게 공격적인 기풍이 아니냐는 질문을 받자 “싸울 만해서 싸운다. 수가 보이는데 어쩌란 말인가”라고 대응할 정도로 자신만만했다. 그랬던 이 9단이 알파고와 대국을 하면서 겸손한 승부사 면모를 보였다. 사진은 10일 대국 중인 이 9단의 모습과 바둑판을 다중노출로 촬영한 모습. /뉴시스



지난 1월 제2회 몽백합배 결승을 앞두고 이세돌(33)은 19세의 중국 기사 커제(柯潔)에게 수모를 당했다. 커제가 "이세돌이 우승할 확률은 5%에 불과하다. 전설의 시대는 갔다"고 안하무인의 발언을 터뜨린 것. 말보다 실력으로 보여주겠다는 다짐도 보람 없이 이세돌은 세계 3관왕 커제에게 패배, 준우승에 그쳤다. 두 달쯤 지나 이세돌은 당시 기분이 상하지 않았느냐는 질문을 받고 이렇게 답했다. "어린 친구가 자신감이 넘치다 보니 그렇게 이야기한 거죠. 다 이해합니다." 어쩌면 자신의 어린 시절이 떠올랐던 것은 아닐까. 어린 시절의 이세돌은 커제 못지않은 독설가였다.
승부사 이세돌이 진화하고 있다. 바둑 기술에 대한 이야기가 아니다. 사려 깊고 조심스러운 30대의 모습을 갖춰가고 있다는 뜻이다. 자유분방하던 어린 시절의 혈기가 상당 부분 사라진 느낌이다. 10대와 20대 시절 그는 속마음을 생각나는 대로 거침없이 쏟아내 구설수에 오르곤 했다.

인공지능 프로그램 알파고와 펼치고 있는 5번기가 그 분수령 역할을 하고 있다. 예상과 달리 초반 3국을 연패하면서 이세돌의 자존심은 상할 대로 상했다. 모두가 이세돌의 완승을 예상하던 터여서 충격은 더 컸다. 전 세계가 "인간이 기계에 종속당하는 신호탄"이라며 들끓을 때 그는 이렇게 말했다. "이세돌이 진 것일 뿐 인간이 기계에 진 것은 아닙니다." 다른 고수가 나섰더라면 이길 수도 있었다는 속뜻을 품고 있다.

이튿날 4국서 값진 1승을 따낸 이세돌을 향해 한 기자가 이런 질문을 던졌다. "알파고가 이 9단의 기보를 마음껏 연구하는 것과 달리 이 9단은 알파고의 기보를 극히 제한적으로만 보고 출전했다. 정보의 비대칭 문제를 어떻게 생각하느냐." 그는 여기서 전혀 과거 이세돌답지 않은 답변을 내놓았다. "큰 문제라곤 보지 않는다. 기본적으로 내 실력 부족 탓이다."

이번 알파고와의 대결 시리즈에서 이세돌이 보여준 발언 사이클은 자신감→당혹→현실 인정→절망→반전 성공→겸양의 코스로 이어져 오고 있다. 2월 22일 1차 회견 때 그는 "뜻깊은 대국에 내가 나서게 돼 영광"이라며 "인공지능이 상당한 수준에 올랐다지만 적어도 이번엔 나를 이길 수 없을 것"이라고 했다. 5번기 돌입 직전인 3월 8일의 개막 회견 때도 그는 "혹시 완봉승이 아닐 수는 있어도 나의 승리는 불변"이라고 했다.

실전 모드로 접어들면서 상황은 예상 밖으로 흘러갔다. 연패가 거듭되는 사이 이세돌의 소감을 모아보면 이렇게 된다. "사람이 생각하기 힘든 승부수를 두어 놀랐다"(9일 1국 패배 후), "초반부터 한 번도 앞서본 적이 없었다. 알파고의 완승이다"(10일 2국 패배 후). 그는 12일 3국에서도 패해 3연패를 기록한 후엔 "무력한 모습을 보여 죄송하다. 극심한 압박감, 부담감을 감당해내지 못했다"며 죄인처럼 머리를 숙였다.

과거의 이세돌이었어도 그런 모습을 보였을까. 10·20대 무렵의 그는 바둑계에선 보기 힘든 반항아였다. 승단대회 및 바둑리그에 불참해 차질을 주는가 하면, 최정상급 기사로는 유례없는 6개월간의 휴직으로 파행을 불렀다. 바둑계의 크고 작은 사건의 중심엔 거의 언제나 이세돌이 있었다. 설화(舌禍)나 문제 어록(語錄)도 그를 따라다녔다. 부조리에 대한 용기 있는 반항이란 긍정 평가도 있었지만 지나친 자기 과시라는 비판도 있었다.

이세돌 어록 정리 표

이세돌 어록 정리 표



부드럽고 겸손해진 이세돌의 변신을 단순히 쌓여가는 나이로만 설명할 수는 없다. 올해 초 커제의 도발 때부터 인내력을 보여주기 시작한 이세돌의 언행은 3월 알파고와의 대결을 계기로 한층 더 원숙해졌다. 감정 없는 기계와의 대결을 통해 겸양과 인내를 배워가는 셈이다. 인공지능이 "아직 기계 따위에는 질 수 없다"는 자존심 강한 인간 스타 한 명을 원숙한 승부사로 변신시켰다.


가족과 교외 나들이… 이세돌 모처럼 휴식



입력 : 2016.03.15 03:00

[인간 對 인공지능 두뇌전쟁] 복귀 뒤 홀로 오늘 대국 구상


이세돌 9단에겐 모처럼 승부에서 해방돼 야외로 진출한 최고의 하루였다. 연일 격전을 치러온 이 9단은 14일 부인 김현진씨, 딸 혜림양과 함께 큰마음 먹고 야외 드라이브에 나섰다. 알파고와의 최종국에 하루 앞서 머리를 식히고 컨디션을 끌어올린다는 뜻도 작용했다. 인공지능 프로그램 알파고와의 5연전 기간 동안 온 가족이 야외에서 함께 가진 첫 외출이었다.

행선지는 서울 근교 모 TV 예능 프로그램 촬영장으로 알려졌다. 장소는 혜림양이 정했다고 한다. 이세돌만 해방감을 느꼈던 게 아니다. 가장의 긴박한 승부가 계속되면서 덩달아 스트레스에 시달렸던 가족들도 모처럼 한국 땅에서 즐거운 시간을 가졌다고 한다. 캐나다에 거주 중인 이 9단의 부인과 딸은 이번 행사에 맞춰 이 9단이 초청, 현재 세 명의 가족이 같은 포시즌스호텔에 묵고 있다.



이 9단은 나들이를 마치고 오후에 호텔로 돌아온 뒤 혼자 호텔 방에서 자신이 이번 행사 기간 동안 알파고와 두었던 바둑을 다시 검토하며 최종 5국의 포석 구상을 마친 것으로 전해졌다. 이 9단 일가족은 15일 알파고와의 최종전이 끝나는 대로 제주도로 여행을 떠날 계획이다.


한국기원, 구글에 2차전 제안


한국기원은 구글 측에 이세돌 대 알파고 대국 종료 이후 한국 기사와 '2차전'을 펼치는 방안을 제안한 것으로 확인됐다. 이번 대결에 걸렸던 것과 똑같은 액수인 11억원을 한국 측에서 걸고 알파고와 한국 기사가 5번기를 펼친다는 내용이다. 성사가 될 경우 이세돌의 패배를 설욕할 수 있는 '리벤지 매치'가 된다. 한국기원은 소요 예산을 몇몇 국내 IT기업으로부 터 후원받을 방침인 것으로 알려졌다.

박치문 한국기원 부총재는 그러나 "이 계획은 이세돌이 3연패한 시점에 우리 젊은 기사들 가운데 승복하지 못하겠다는 의견이 많아서 나왔던 얘기"라며 "구글 데미스 허사비스 딥마인드 최고경영자에게 의사를 타진한 정도여서, 성사 여부는 불투명하다"고 밝혔다. 구글 측 역시 한국의 제안에 아직 확답을 하지 않은 것으로 전해졌다.


상대가 질릴 정도로 복기에 매달려… 졌을 땐 드라마 보며 아쉬움 달래

입력 : 2016.03.15 03:00

[인간 對 인공지능 두뇌전쟁] 누나 이세나씨가 본 이세돌
새벽 4시에 자는 올빼미 스타일

14세 때 승부 스트레스로 실어증… 높은 톤 목소리는 그 때 후유증

이세나씨 사진



이세돌은 알파고와 대결하는 데 가족의 성원이 큰 힘이 됐다고 말한다. 월간바둑 편집장인 아마 6단 이세나(39·사진)씨는 대국 현장에서 분투하는 동생의 모습을 평생 지켜본 친누나다. 이세돌과 관련된 궁금증을 그로부터 풀어봤다.

세돌이가 고향 신안을 떠나 서울에 유학을 간 것이 초등학교 2학년 때였다.우리 형제는 3남 2녀이며 세돌이가 막내다. 언어학, 천문학 등에 밝으신 선친(이수오 아마 5단)께서 이름을 지어주셨는데, 세돌은 순수 한글 이름이다. 원래 '세'자와 '돌'자에 특별한 애착을 가지셨다. 일부에선 '돌(바둑돌)로 세계를 제패하라'는 뜻에서 지어줬다고 하는데, 사실과 다른 이야기다.

차남인 차돌이도 어릴 때 바둑을 했다. 동생 세돌이에게 추월당하면서 공부로 전환해 서울대 컴퓨터공학과를 졸업했다. 아버지께서 "너는 머리가 나쁘니까 바둑 접어라"고 해 차돌이가 공부로 전환했다는 것도 낭설이다. 차돌은 원래 상훈 오빠(이상훈 9단)의 본명이었는데 동생이 태어나면서 물려줬다.

세돌이는 '올빼미' 과다. 새벽 3~4시 취침해 낮 11시 정도 기상한다. 복기(復棋)를 누구보다 즐기는데, 의문을 꼭 풀어야 직성이 풀리는 성격 때문이다. 공식, 비공식전 불문하고 상대 대국자들이 질릴 정도로 복기에 매달린다. 심각한 국면을 만나면 양쪽 손목을 X자로 교차시키거나 손나팔을 불듯이 손을 입에 갖다 대는 습관이 있다.

세돌이가 바둑에 졌을 때 아쉬움을 다스리는 방법으로 요즘 애용하는 것은 드라마 감상이다. 외국에 원정 나갈 때는 컴퓨터에 담아가서 돌려보기도 한다. 바둑을 졌을 때 울분을 삭이려고 대국장을 뛰쳐나가 무작정 걷던 습관은 이제 사라진 것 같다. 무협지를 즐겨 읽고 등산도 가끔 가지만 특별히 하는 운동은 없다. '결혼 10년 차'란 말에 놀라는 사람이 많다. 회식 자리에서 지금의 아내를 알게 돼 6개월 후 청혼했다. 세돌이는 "결혼하면 편할 것 같다"는 말 한마디로 8세 위 상훈 오빠를 제치고 먼저 식을 올렸다. 담배는 하루 몇 개비 정도 태우는 것으로 알고 있다. 술도 20대 초반엔 소주 3~4병이 거뜬했는데 지금은 절반쯤 될 것 같다.


지금의 가늘고 높은 톤 목소리는 프로 데뷔 직후인 14세 무렵 승부 스트레스로 실어증에 걸렸던 후유증이다. 제때 치료받지 못해 기관지가 상했다. 머리카락 자르는 걸 너무 귀찮아해 1년에 2~3회 정도 바짝 자른다. 우리 세돌이는 오래 정상을 유지할 것이다.




"이세돌 자랑스럽다"… 울어버린 여성 캐스터들, 토요일 3국 중계한 TV조선 시청률 4.84% 기록


입력 : 2016.03.14 03:09

[인간 對 인공지능 두뇌전쟁]

정다원, 도은교씨 사진

13일 치러진 이세돌 9단과 알파고의 제4국에서 이 9단이 치열한 접전 끝에 중반 이후 승기(勝機)를 잡자 각 방송사 해설진은 숨을 죽였다. 이 9단의 승리가 확정됐을 때는 믿을 수 없다는 듯 환호했다. 여성 캐스터들 중엔 참지 못하고 울음을 터뜨린 이들도 있었다.

이날 TV조선에서 4국 중계를 맡은 도은교(여·31·아마 6단) 캐스터는 이 9단이 180수 만에 알파고에 첫 승리를 확정 짓자 "인간 승리다. 같은 한국인인 게 자랑스럽다"고 말하다 감정이 북받친 듯 말을 더 이상 잇지 못했다. 도 캐스터는 끝내 참지 못하고 데스크에 고개를 파묻고 울음을 터뜨렸다. 옆에 있던 남자 캐스터가 당황해 다독거려야 했을 정도였다.

도 캐스터는 초등학교 6학년이던 1997년 아마 바둑 세계대회에서 우승한 경력이 있다. 도 캐스터는 본지 통화에서 "이 9단이 자신만의 바둑으로 멋진 모습을 보여준 데 대한 고마움과 감동이 몰려와 울음이 터진 것 같다"고 했다.

도 캐스터와 함께 4국을 중계한 정다원(여·30·아마 6단) 캐스터도 연일 인터넷 포털 검색어 순위 상위권에 오르는 등 누리꾼들 사이에서 인기를 얻고 있다. 이날 차분하게 경기 중계를 하던 정 캐스터는 이 9단의 승리가 확정되자 "정말 자랑스럽다"며 눈물을 흘렸다. 그는 2007년 아시아 킹스필드배 여자 부문에서 우승한 경력이 있다. 정 캐스터는 경기 중반 이 9단이 승기를 잡자 "그래도 인간의 '벼랑 끝에서의 수 읽기'를 믿어보고 싶다"고 했다.

바둑TV의 김여원(여·29·아마 6단) 캐스터도 승리가 확정되자 "이 9단이 승리할 확률이 없다고 판단했는데 가슴이 벅차오른다. 정말 대단하다"고 했다. 김 캐스터는 프로 바둑기사 박정 상 9단의 아내다. 이날 KBS 인터넷 플랫폼 '마이K'에서 남편인 개그맨 김학도씨와 함께 4국을 중계한 한해원(여·34) 프로 3단도 이 9단이 승리하자 "오늘은 지난 대국 때보다 상황이 굉장히 좋아 보였다"며 기뻐했다.

한편 지난 12일 이 9단과 알파고의 3국 대결을 중계한 TV조선은 평균 4.84%(오후 3시~5시 30분)의 높은 시청률을 기록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