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제의 이야기들

'일본 패잔병' 히로 오노다... 30년간 정글에 숨어 산 남자

Shawn Chase 2022. 4. 15. 15:29

 

 
2022.04.15. 11:13

신작 영화 '오노다, 정글에서 보낸 10000일'은 제2차 세계대전 당시의, 논란이 많은 어떤 일본 영웅에 대한 기이한 이야기를 담고 있다. 민족주의와 가짜 뉴스를 다룬 이 영화의 주제는 현재 그 어느 때보다 시기적절하게 느껴진다.

1944년 12월 제2차 세계대전 막바지 무렵, 일본군 중위 히로 오노다는 필리핀의 작은 루방섬에 파견됐다. 그러나 루방섬에 도착한 지 몇 주 만에 미군을 피해 섬 안쪽 정글로 패퇴했다.

그러나 다른 동료 병사들과 달리 오노다는 종전 이후로도 떠나지 않아 거의 30년간 이 작은 섬에 숨어 살았다.

일본 정부는 1959년 오노다가 사망했다고 공식적으로 발표했으나 사실 그는 살아있었다. 일본제국 군대가 돌아올 때까지 이 섬을 지키라는 비밀 임무에 몰두했던 오노다는 2차 대전이 절대 끝나지 않았다고 확신했다.

1974년 일본으로 귀국한 오노다는 국민들에게 영웅으로 대접받았다. 전쟁에서 귀국한 마지막 일본군인 오노다의 회고록은 곧 베스트셀러가 됐다.

아서 하라리 감독의 3시간짜리 장편 영화 '오노다, 정글에서 보낸 10000일' 또한 오노다의 삶을 그렸다. 2021년 프랑스 칸 영화제에서 초연된 이후 비평가들의 찬사와 함께 논란의 중심에 선 영화다. 영국에서는 이번 주 개봉 예정이다.

 

오노다라는 인물은 매력적인 주제임이 분명하다. 독일 영화감독 베르너 헤어조크는 6월에 오노다의 이야기를 바탕으로 한 소설을 출판할 예정이며, 필리핀계 호주인 영화감독 미아 스튜어트는 올해 말 오노다에 관한 다큐멘터리 영화 제작을 완료한다고 밝혔다.

이와 동시에 전쟁, 민족주의, 가짜 뉴스라는 이 영화의 주제는 그 어느 때보다도 시기적절하다.

또한 오노다의 이야기는 50여 년 전 그가 귀국했을 때처럼 여전히 매혹적이면서도 논란을 일으키는 주제다.

© Getty Images 제2차 세계 대전이 끝날 무렵, 히로 오노다 일본군 중위는 필리핀 루방섬에 주둔했다

1942년 일본 육군으로 징집된 오노다는 게릴라 전투 훈련을 받았다. 일본 육군 나카노 학교의 후타마타 분교에서 그는 널리 알려진 군 교리인 '전진훈(센진쿤)'에 반대되는 훈련을 받았다. 일본의 '전진훈'은 병사들에게 항복은 치욕이니 포로로 잡히는 대신 싸우거나 자결하라고 명한다.

이와 반대로 1944년 말 루방섬으로 보내진 오노다에게는 "그 어떤 상황에서도 스스로 목숨을 끊지 말라"는 명령이 떨어졌다. 1974년 출간된 오노다의 회고록 '항복은 없다: 나의 30년 전쟁(No Surrender: My Thirty-Year War)'에서도 이와 같은 내용을 찾아볼 수 있다.

오노다에게는 루방섬의 부두 시설과 비행장을 파괴하고 섬에 상륙하려는 미군 전함이나 미군을 없애라는 임무가 주어졌다.

그러나 임무는 실패로 돌아갔다. 미군이 루방섬을 점령한 것이다. 이에 그와 부대원들은 필리핀의 깊은 정글 속으로 숨어들었다.

이후 얼마 안 돼 전쟁이 끝이 났다. 루방섬에는 1945년 8월 15일 일본이 항복했다는 소식을 담은 전단이 뿌려졌지만 오노다와 동료 패잔병 3명은 이를 믿지 않았다.

이들은 적들이 자신들을 굶겨 죽이려는 전략을 펼치고 있다고 믿으며 바나나 껍질, 코코넛, 훔친 쌀 등을 먹으며 뱀과 개미로 뒤덮인 야생에서 빠져나오지 않았다.

이후 수색대가 파견돼 이들을 찾으러 나섰으나 오노다는 이들이 포로로 잡힌 일본 군인이며 강제로 자신들을 찾고 있는 것으로 생각했다.

그는 가족이 보낸 사진 또한 조작된 것이라고 믿었다. 오노다는 자신이 떠나온 고향에 폭탄이 떨어져 재건된 사실도 알지 못했다.

그러다 1950~1953년 한국전쟁 당시 머리 위로 날아가는 전투기는 일본의 반격으로 생각했다. 진실을 담은 전단이 루방섬에 뿌려졌지만, 오노다는 이를 "양키들의 선전"으로 여겼다.

오노다는 회고록에서 1959년 초 자신과 또다른 패잔병 긴시치 고즈카는 "수많은 고정 관념 속에 빠져있었기 때문에, 자신들의 믿음에 부합하지 않는 것은 그 무엇도 받아들일 수 없었다"고 적었다.

결국 고즈카는 1972년 10월 필리핀 현지 경찰이 쏜 총에 맞아 사망했지만, 오노다는 이후로도 18개월간 홀로 섬에 남아 있었다.

그러다 오노다는 노리오 스즈키라는 일본의 괴짜 탐험가와 만나게 된다. 스즈키는 오노다의 지휘관을 루방섬으로 데려와 지휘관이 오노다에게 무기를 내려놓으라고 직접 명령한다면 오노다가 따르리라고 생각했다. 스즈키의 생각은 적중했다.

그렇게 오노다의 전쟁은 1974년 3월 9일에 막을 내렸다.

끈기와 망상

프랑스 영화 감독 아서 하라리는 원래 조지프 콘래드나 로버트 루이스 스티븐슨과 같은 소설가로부터 영감을 받아 "모험" 영화를 제작하고 싶었다.

그러다 베르나르 샌드론과 제라르 체누의 2020년 저서 '오노다: 정글에서 홀로 치른 전쟁 1944-1974(Onoda: Seul en guerre dans la jungle)'를 접하며 오노다의 이야기를 알게 됐다. 오노다 본인, 가족, 지휘관 타니구치 소령, 탐험가 노리오 스즈키와의 인터뷰를 "다큐멘터리 형식으로" 담은 책이다.

그러면서 오노다의 이야기가 완벽한 소재라는 생각이 들었다고 한다. 하라리 감독은 BBC Culture와 인터뷰에서 "정말 흥미로운 이야기였다. 그냥 마음속에 박혀버렸다"고 말했다.

쌀을 둘러싼 패잔병들의 긴장 넘치는 정치, 새해 의식과 같이 샌드론과 체누의 책이 설명한 (오노다의 회고록에도 자세히 기술돼 있는) 사건과 기억은 하라리 감독의 영화에서 생생하게 되살아났다.

영화는 이러한 생생한 경험을 폭력적인 장면과 오노다가 군대에서 받은 세뇌에 대한 회상 장면과 함께 유기적으로 엮어 나간다.

사실 루방섬은 이 영화에서 오노다(유야 엔도, 칸지 츠다 분)만큼이나 주인공이라고 할 수 있다. 흐르는 개울과 푸른 정글, 활짝 핀 보랏빛 꽃들을 담은 숨 막히는 와이드샷이 펼쳐지며, 모래사장 너머로 우뚝 선 야자수는 영화 속 바람 소리, 빗소리, 야생 곤충 울음소리만큼이나 생생하다.

이처럼 끈기와 망상에 대한 매혹적인 이야기를 담은 영화 '오노다, 정글에서 보낸 10000일'은 프랑스 영화비평가협회로부터 최우수 작품으로 선정됐으며, 올해 2월 프랑스 세자르 영화제에서는 최우수 각본상을 받았다.

한편 비평가들로부터 널리 호평받은 이번 영화에 대해 영국영화협회(BFI)에서 발행하는 영화 잡지인 '사이트&사운드'지는 하라리 감독의 오노다에 대한 묘사를 비판하며 필리핀인들의 시선은 크게 누락됐다고 지적했다.

영국영화협회의 제임스 라티머는 칸 영화제 초연 이후 내놓은 비평문에서 "현재 일본에서 민족주의 정서가 재점화되고 있는 가운데 나온 영화"라면서 "제국주의적 야망과 완전히 동화된 듯한 인물을 미화하는 영화를 제작하는 것은 잘 봐줘 봐야 순진하고, 최악에는 모욕적이다. 이 영화에서 필리핀인들은 총알받이로 그려지고 있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실제로 2차 세계대전 종전 이후 몇 년간 오노다 일행이 잔혹한 폭력을 자행했다는 의혹이 제기됐다. 그러나 오노다는 회고록에서 이러한 내용을 적지 않았으며, 하라리 감독의 영화에서도 관련 내용을 쉽게 찾아볼 수 없다.

스튜어트 감독은 BBC Culture와 인터뷰에서 "총뿐만 아니라 검이나 볼로 나이프(필리핀 등지의 전통 칼)로 끔찍한 상처를 입은 채 살해당한 루방섬 주민이 30명이나 된다는 기록이 있다"고 밝혔다.

BBC Two의 다큐멘터리 프로그램인 '타임워치'에서 방영된 조나단 해커 감독의 2001년 작 다큐멘터리 '최후의 항복'에서도 페르난도 포블레트라는 이름의 한 필리핀 현지 농부는 "몸과 머리가 분리된 채 각기 다른 곳에서 발견됐다"며 섬 주민들의 시신이 얼마나 참혹한 모습으로 발견됐는지 증언했다.

하라리 감독 또한 자신의 이번 영화가 논쟁을 일으킬 것이라고 예상했다고 밝혔다. 그러면서 오노다의 행동을 옹호하진 않지만, 그의 창의적인 결정을 존중한다고 말했다.

하라리 감독에 따르면 영화를 촬영할 때 "마치 오노다 일행이 된 것처럼 (오노다를) 지지한다"라는 원칙을 세웠다고 한다. 이를 통해 자신만의 고정 관념에 "완전히 갇혀버린" 한 군인의 경험을 이해하고 싶었다는 게 감독의 설명이다. (하라리 감독은 이를 오늘날 전 세계에서 만연하는 음모론, 부정과 광신주의, 그리고 이러한 신념이 일으키는 위험한 행동에 비유했다.)

감독은 영화에서는 심지어 오노다가 잔혹하게 섬 주민들을 살해하는 장면 등 상상력을 가미해 표현한 장면들이 등장한다고 했다. 하지만 이러한 관점으로 영화를 풀어냈다고 해서 오노다에 동의하는 것은 아니라고 주장했다.

"저는 필리핀인에게 가해진 이러한 폭력은 극심했으며, 그 무엇도 이러한 폭력을 정당화할 수 없다는 것을 보여주고자 노력했습니다. (하지만) 영화 연출 관점에서 이는 어렵고 까다로운 일이라고 볼 수 있습니다. 왜냐하면 이 인물을 둘러싼 두 가지 감정 모두 영화에 담아내고 싶었기 때문입니다."

한편 일본 도쿄외국어대학의 부교수이자 에세이 '병사 오노다의 귀환과 그 울림(Le retour du soldat Onoda et ses résonances)'의 저자 나오코 세리우는 이러한 장면을 영화에 포함한 점을 높이 샀다. 오노다라는 인물에 대한 '덜 영웅적인 해석'이라는 것이다.

세리우 교수는 BBC Culture와 인터뷰에서 "이번 영화에서 오노다는 섬 원주민들의 공포와 증오의 대상으로 그려진다"면서 "이러한 영화 속 장면들이 실제 사건의 잔혹성에 미치지는 못하지만, 이 인물에 대한 무조건적인 믿음을 희석하고 관객들을 혼란에 빠뜨리며 반성의 시간을 가질 수 있도록 이끌어 준다"고 말했다.

하라리 감독이 영화에서도 강조했듯이 일본이 항복할 당시 오노다는 아직 23세밖에 되지 않은 매우 젊은 청년이었으며, 전쟁 기간 조국으로부터 지속적으로 주입받은 이데올로기에 큰 영향을 받았을 것으로 추측된다.

오노다는 회고록에서 "군인은 대의명분을 위해 죽어야 한다"고 적었다. (그리고 실제로 2차 세계대전 당시 일본군 5000여 명은 '가미카제'라고 불리는 자폭 공격을 감행했다.)

그러면서 "사형당하지 않았더라도 (망신당한 병사는) 다른 사람들로부터 철저히 배척당할 것이기에 차라리 죽는 편이 낫다"며 "이러한 임무를 저버리거나 전통적인 규범을 고수하지 못한 군인에게는 가혹한 결과가 기다리고 있을 것"이라고 덧붙였다.

그러나 오노다가 받은 비밀 명령은 모든 가용 수단을 동원해 살아남아 일본 제국 군대가 돌아올 때까지 섬을 지키라는 것이었다. 그리고 루방섬의 부두와 비행장을 파괴하라는 임무를 완수하지 못했다는 사실은 오노다 개인을 무겁게 억눌렀을 것이다.

호주 모나쉬 대학에서 일본학을 가르치는 베아트리체 트레팔트 부교수는 BBC Culture와 인터뷰에서 "전쟁 중 '항복하지 말라'는 이데올로기는 강력했지만, 이것만으로는 오노다의 집념을 설명하기 충분치 않다"고 설명했다.

"물론 자살해버리거나 최후인 것처럼 자포자기한 심정으로 전투에 뛰어드는 사람들도 있었습니다. 죽을 걸 알면서도요. 그러나 전쟁 당시 이데올로기가 이토록 강력하며 모두가 광인처럼 미쳐있었다면, 어떻게 1945년 갑자기 광기를 멈출 수 있었을까요? 정답은 '그렇게까지 이데올로기가 강력한 것은 아니었으며, 모두가 광인처럼 미쳐있는 건 아니었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대부분의 사람들은 항복을 환영했습니다."

그러면서 트레팔트 교수는 오노다를 "자신의 원칙을 저버리지 못하는, 신념을 쉽게 꺾지 않는 인물"이라고 결론 내렸다.

"그의 고집으로 인해 동료 2명뿐만 아니라 루방섬의 많은 민간인이 죽었습니다. 그러므로 끝이 다가왔을 때 오노다는 (전쟁이 끝났다는) 사실을 몰랐다고 자신을 설득하는 편이 그의 어리석은 자존심이 초래한 파괴와 폭력을 직면하는 것보다 더 쉬웠을 것입니다."

사실 오노다는 종전을 믿지 못한 유일한 군인은 아니다. 일본이 항복을 선언한 이후에도 많은 일본인이 무기를 내려놓지 못했다. 1951년 북 마리아나 제도의 아나타한섬에서는 일본군인 21명이 검거되기도 했으며, 대만계 일본군인 테루오 나카무라는 2차 세계대전이 끝난 후에도 현재 인도네시아 영토인 모로타이섬의 정글에서 29년간 버텼다.

쇼이치 요코이라는 일본군은 1972년까지 마리아나 제도의 괌섬 정글에 숨어있었다. 요코이는 이후 전쟁이 끝났다는 사실을 20년간 알았지만 포기하기 너무 두려웠다고 말했다.

세리우 교수는 "많은 다른 일본군들은 과거 일본이 점령한 영토에서 살 방법을 찾아나갔으며, 가정을 꾸린 예도 있었던 반면, 오노다는 루방섬 주민들과 함께 살아가기 거부했다"는 점이 가장 큰 차이라고 언급했다.

영웅의 귀환?

1974년 오노다가 일본으로 돌아왔을 때 일본 국민 8000여 명은 그를 열렬히 환호했으며, 일본 국영 방송사인 NHK는 그의 귀국을 생중계했다.

당시 일본 경제는 20년 만에 최악이었으며, 전쟁을 일으킨 죄를 반성하자는, 보다 진보적인 의견이 일본 내에서 퍼져가고 있었다.

그 와중에 오노다가 등장해 지난 전쟁 시기 유행했던 용맹, 충성, 자부심, 헌신이라는 일본의 전통적이고 긍정적인 미덕을 시기적절하게 상기시켰다. 이에 따라 일본의 강력한 보수주의자들은 오노다의 귀환을 유용한 선전 도구로 이용했다. 적어도 오노다를 통해 대중의 관심을 돌릴 수 있었다.

트레팔트 교수는 "오노다는 이들의 의견에 동조했으며 그에게 좋은 조건이었던 이러한 선전 역할을 수행했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언론의 광적인 취재로 벌어들인 돈은 쥐 꼬리만한 퇴역 군인 연금보다 나았을 것"이라고 덧붙였다.

트레팔트 교수는 저서 '1950-75년, 일본 패잔병과 전쟁의 기억에 대하여(Japanese Army Stragglers and Memories of the War in Japan, 1950-75)'에서 오노다의 베스트셀러 회고록을 둘러싼 논란을 언급했다.

트레팔트 교수는 대중에게 공개된 한 행사장에서 참전 군인들이 오노다에게 맞서 '큰 소리로 회고록의 내용을 의심하며 거짓으로 꾸민 게 아닌지' 비난했던 사건을 적었다.

2년 뒤 오노다 회고록의 대필 작가인 이케다 신은 오노다는 영웅도, 군인도, 심지어 용감한 사람도 아니라는 사실을 대중에게 알리는 것이 자신의 책임이라고 믿는다면서 '판타지 영웅'(Fantasy Hero)이라는 제목으로 오노다를 폭로하기도 했다.

세리우 교수는 "오노다는 영웅으로 환영받았지만 이와 동시에 희생자로 여겨졌으며, 군국주의의 화신이라고 비판받았다"며 오노다라는 인물에 대한 여러 해석 관점을 설명했다. 그러면서 오노다의 귀환에 대해선 "절대 의견이 하나로 일치하지 않는다"고 마무리했다.

© Getty Images 30년 가까이 숨어있던 루방섬의 정글을 떠나는 1974년의 오노다

한편 하라리 감독이 (그래도 주관적인 사실에 대한 설명에 대체로 충실한 '픽션' 인) 이번 영화를 통해 오노다의 이야기를 재언급하는 게 순진하게 낭만적이라는 관점에서 본다면 유사한 소설이 있다.

미국의 펭귄 랜덤 하우스 출판그룹에서 곧 출간될 소설 '황혼의 세계(The Twilight World)'에서 작가 베르너 헤어조크는 2014년 오노다가 사망하기 전 나눈 대화를 바탕으로 이야기를 풀어냈다. 이 책의 출판사는 "일부는 다큐멘터리, 일부는 시, 일부는 꿈과 같은… 현대의 로빈슨 크루소와 같은 이야기"라고 설명했다.

오노다의 생애에 논쟁거리만큼이나 환상적인 요소가 있다는 점은 분명해 보인다.

사건에 대한 필리핀의 관점을 던지는 다큐멘터리 영화 '오노다를 찾아서(The Search For Onoda)'를 제작중인 미아 스튜어트 감독 또한 이 점에 동의했다. 자신의 다큐멘터리 제작비를 모금하는 홈페이지에서 스튜어트 감독은 루방섬 출신인 자신의 어머니가 자라면서 마을 변두리에 숨어 사는 어떤 "미스터리한 군인"에 대한 이야기를 들은 얘기, 가까이 다가간 사람들을 해한 이 군인에 대한 이야기를 늘어놓았다.

"시간여행을 하는 듯 항복을 거부하는 군인이자 생존자이며 사무라이 정신의 상징인 듯한 인물을 낭만적으로 그려내는 것은 쉽다"는 게 스튜어트 감독의 설명이다. "나 또한 오노다에 대해 처음 알게 됐을 때 경외감을 느꼈다"고도 말했다.

그러나 스튜어트 감독의 신작 예고편은 오노다 이야기에서 과소 평가된 중요한 진실을 강조한다. 오노다에게 전쟁은 1945년 끝난 게 아니었다. 그러나 루방섬 주민들에게도 마찬가지였다.

필리핀 주민들의 목소리에도 관심을 기울여야 한다. "그래야 오노다의 영웅 같은 이미지에 맞설 수 있으며, 희생자들과 유족에게 관심과 정의를 가져다줄 수 있다"는 게 스튜어트 감독의 설명이다.

스튜어트 감독은 하라리 감독의 영화나 헤어조크의 책을 접하는 모든 사람에게 자신의 다큐멘터리도 한번 찾아보라고 권유했다.

오노다의 생애처럼 복잡하고, 강렬하며 논쟁의 여지가 있는 이야기에선 다음의 간단한 결론이 어쩌면 가장 논리적인 것일지도 모른다. 바로 모든 이야기에는 여러 측면이 있다는 것이다.

아무리 기이하거나 환상적이거나 끔찍할지라도 진실에 다가가기 위해선 이 모든 측면을 고려해야 한다.

영화 '오노다, 정글에서 보낸 10000일'은 4월 15일 영국과 아일랜드에서 개봉 예정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