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내정치

‘용산 시대’ 달라질 서울… 오세훈 ‘링킹파크’도 탄력?

Shawn Chase 2022. 3. 27. 12:36

2022-03-25 오후 3:56:29

이동훈 기자

 
▲ 윤석열 대통령 당선인이 대통령실 이전을 추진 중인 서울 용산 국방부 청사(가운데 건물)와 1호 국가공원으로 바뀔 예정인 용산미군기지 일대 전경. 국방부 왼쪽 건물은 합동참모본부 청사. photo 뉴시스

윤석열 대통령 당선인의 ‘용산행(行)’에 급제동이 걸렸다. 문재인 대통령이 지난 3월 21일 ‘안보공백’ 등을 이유로 대통령 집무실의 용산 국방부 청사 이전에 사실상 반대의사를 표시하면서다. 하지만 “청와대에는 들어가지 않겠다”는 윤 당선인의 의지가 워낙 확고한 터라, 대통령실의 용산 이전은 시간문제로 보인다. 1939년 조선총독관저가 북악산 자락 아래 경복궁 후원에 자리 잡은 지 약 83년 만에 한반도 권력의 심장부가 용산으로 바뀌는 것이다.
   
   용산으로서는 100여년 만에 권력의 중심에 서게 됐다. 제2대 조선총독을 지낸 하세가와 요시미치(長谷川好道)는 조선군사령관 시절 용산기지 경내에 사령관저를 신축한 바 있다. 현재 용산미군기지 사우스포스트 ‘121병원’ 근처다. 하지만 지나치게 호화로웠던 탓으로, 1910년 준공한 건물은 총독관저로 전환했으나 실제 조선총독이 입주하지는 않고 광복 전까지 영빈관으로 활용해 왔다. 대통령실이 용산으로 옮겨 오고 경내에 관저까지 신축되면 100여년 만에 진정한 용산 시대가 열리는 셈이다.
   
   
   용산 10만호 건설은 물 건너가
   
   윤석열 당선인이 용산 국방부 신청사로 대통령실을 옮기기로 하면서 ‘1호 국가공원’인 용산공원은 온전히 보전할 수 있게 됐다. 지난 3·9 대선 때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후보는 용산공원 인근에 청년기본주택 10만호 건설 공약을 내건 바 있다. 주택 10만호는 5곳의 1기 신도시(분당, 일산, 평촌, 산본, 중동) 중 최대 규모인 분당신도시(9.7만호)보다 큰 규모다. 공약이 실현될 경우 용산공원 부지 일부가 소규모 임대주택으로 쪼개지는 것은 시간문제로 여겨졌다.
   
   하지만 용산으로 대통령실이 옮겨 가면서 용산기지의 공원화는 빨라지고 무분별한 개발에는 엄격한 제약이 가해지게 됐다. 대통령실이 용산으로 옮겨 오면 현재 국방부와 합동참모본부(합참) 등이 있어 개발이 제한되어온 용산공원 일대는 이에 버금가는 규제가 가해질 전망이다. 자연히 용산공원 본체부지(메인포스트·사우스포스트)와 길 하나를 두고 떨어진 서쪽의 캠프킴이나 동쪽의 유엔사, 미군수송부 부지를 제외하고는 공원 경내 고층건물 건립은 사실상 불가할 것으로 보인다.
   
   대통령실의 용산 이전으로 용산공원 남쪽 동부이촌동 재건축이나 용산 철도정비창 재개발에 악영향을 미칠 것이란 우려도 나온다. 다만 주변 상황을 고려했을 때 그 영향은 제한적일 것으로 보인다. 이미 용산공원 남쪽으로 용산파크타워(최고 40층)를 비롯 용산시티파크(최고 42층), 용산센트럴파크 헤링턴스퀘어(최고 43층) 등 40층이 넘는 고층 아파트와 주상복합들이 즐비하다. 국방부 청사와는 조금 떨어진 동부이촌동 래미안 첼리투스는 한강변 아파트 중 최고층인 56층에 달한다.
   
   현재 재건축을 추진 중인 이촌한강맨션(1971년 준공)이나 왕궁맨션(1974년), 이촌현대아파트(1974년), 반도아파트(1977년), 한강삼익아파트(1979년) 등은 대통령실이 입주할 국방부 청사와 조금 더 떨어져 있다. 주한 미국대사관 직원 숙소가 입주할 용산 아세아아파트 재건축 역시 32층 높이로 신축 중이다. 이미 40~50층에 달하는 아파트와 주상복합들이 즐비한 상황에서 건축규제를 강화할 경우, 주변 건물과 형평에 맞지 않아 당장 반발이 터져나올 가능성이 크다.
   
   용산공원 일대 주민들의 염려는 대통령실의 용산 이전으로 용산공원 일대가 시위대로 뒤덮이지 않을까 하는 것이다. 북악산 자락 아래 청와대는 청와대와 경복궁 사이의 청와대로만 동서로 봉쇄하면 효과적으로 시위대의 청와대 난입을 막을 수 있었다. 용산 국방부 신청사는 용산공원으로 전환되면 동서남북 사방에서 접근가능한 구조다. 시위대의 불법시위를 윤 당선인이 언급한 ‘낮은 담장’ 하나로 차단해낼 수 있을지 의문이다.
   
   지난 3월 22일, 용산 국방부 일대를 찾았을 때도 ‘반미(反美)투쟁본부’라는 단체가 삼각지 국방부와 합동참모본부 정문 앞에서 ‘윤석열 친미(親美) 호전무리 청산’이란 붉은 현수막을 내걸고 확성기로 고성을 내지르고 있었다. 지나가던 한 시민은 “청와대까지 국방부 자리로 이전해 오면 시위로 하루도 조용한 날이 없을 것”이라고 염려했다.
   
   

▲ 서울 용산공원 남쪽의 동작대교 북단 진입램프. 다리가 끊어진 형태다. photo 이신영 영상미디어 기자


   용산 인근 기형적 교통망 숙제
   
   용산공원 상부 개발이 엄격히 묶이면서 ‘용산 링킹파크(Linking Park)’는 오히려 탄력을 받을 것으로 보인다. ‘용산 링킹파크’는 지난 4·7 재보궐선거 때 오세훈 서울시장이 공약한 사업으로, 용산공원 하부에 주요 간선축(軸)이 모이는 교통결절점을 만드는 프로젝트다. 개발이 엄격히 제한된 프랑스 파리 외곽의 신도심 라데팡스 아래에 조성된 것과 비슷한 모델이다. 오세훈 시장은 지난 보궐선거 때 “서울의 마지막 기회의 땅 용산을 대한민국의 라데팡스로 만들겠다”고 공언한 바 있다.
   
   현재 용산기지 일대 교통망은 100년 넘게 외국군이 주둔하면서 교통흐름이 기형적으로 왜곡돼 있다. 정부서울청사가 있는 광화문에서 정부과천청사가 있는 경기도 과천까지를 최단거리로 이을 요량으로 1984년 개통한 동작대교가 용산기지에 막혀 목이 잘린 형태로 남아 있는 것이 대표적인 예다. 이로 인해 동작대교를 같이 사용하는 지하철 4호선도 선형이 비효율적이다. 당초 용산기지 아래를 지나려 했다가 미군의 반대로 용산기지를 우회해 신용산역으로 방향을 크게 틀면서다.
   
   서울 남대문에서 용산을 남북으로 연결하는 옛길인 후암로 역시 용산기지 메인포스트 북쪽 용산고등학교 앞에서 사실상 끊어져 있다. 용산기지의 메인포스트와 사우스포스트 사이를 동서로 가로지르는 이태원로 역시 서울 도심 한복판 도로임에도 불구하고 주요 구간의 폭이 왕복 4차선에 불과할 정도로 협소하다. 국방부 청사가 있는 삼각지에서 한남동을 연결하는 이태원로는 대통령실 용산 이전 후, 용산구 한남동 육군참모총장 공관에 머물기로 한 윤 당선인의 출퇴근 동선이기도 하다.
   
   윤 당선인은 “교통통제하고 들어오는 데 3~5분 정도 소요될 것으로 예상한다”고 호언장담했지만, 이 구간은 3.5㎞ 남짓 거리에도 불구하고 왕복 4차선 좁은 도로 폭으로 인해 최소 10분 이상 소요된다. 이로 인해 인수위는 일반인 출입이 제한된 용산기지 북쪽 메인포스트 부지를 동서로 가로지르는 동선도 지난 주말 실제로 점검한 것으로 전해진다.
   
   반면 용산공원 조성 시 용산기지 내에 있는 기존 상부도로 사용은 배제된 상황이다. 용산공원 아래를 통과하는 지하도로가 사실상 유일한 해결책이다. ‘용산 링킹파크’를 조성할 경우, 대통령실 용산 이전과 미군기지 평택 이전으로 서울의 중심이 될 용산공원 주변의 교통흐름을 적절하게 분산하는 효과도 얻을 수 있다. 한 군(軍) 관계자는 “유사시 대통령과 국방부 장관 등 전쟁지휘부의 동선이 드러나지 않게 이동하거나 대피하는 통로로도 사용할 수 있을 것”이라고도 기대했다.
   
   용산 링킹파크는 용산을 중심으로 각각 북쪽과 남쪽에 배치된 정부서울청사와 정부과천청사와의 효율적 연락을 위해서도 필수적이다. 대통령실이 청와대에서 용산 국방부로 옮겨 가면 외교부, 통일부, 여성가족부, 금융위원회 등 주요 부처가 있는 정부서울청사에서 대통령실까지 거리는 5㎞ 이상으로 되레 멀어진다. 차로 15분 이상 걸리는 거리다. 광화문 정부서울청사에서 청와대까지는 1㎞ 내외로 자동차로는 2~3분에 불과하다. ‘소통 강화’라는 명분으로 대통령실의 용산 이전을 강행했으나, 대통령실과 주요 정부 부처 사이의 거리는 되레 더 멀어지는 셈이다.
   
   정부과천청사에도 법무부와 방송통신위원회, 방위사업청 등 적지 않은 부처들이 남아 있다. 중앙선거관리위원회도 정부과천청사 인근에 있다. 용산에서 밀려난 국방부 일부 부서들도 정부과천청사로 들어갈 예정이다. 현 용산 국방부 청사 바로 옆 합참 역시 서울과 경기도 과천의 경계인 남태령 수도방위사령부(수방사) 일대로 연쇄 이동해 갈 예정이다. 자연히 과천(남태령IC)~이수(동작IC) 간 지하복합터널(총연장 5.4㎞)의 강북 연장선이 될 용산 링킹파크의 필요성은 더욱 커지게 됐다.
   
   
   용산역 기능 강화할 필요성
   
   용산으로 이전할 대통령실과 정부 부처 간의 원활한 업무협조를 위해 용산역의 기능을 강화하고 KTX 세종역을 신설해야 할 필요성도 제기된다. 윤 당선인은 대선 정책공약집에서 “대통령 세종 제2집무실을 설치하고 세종시의 실질적인 수도 기능을 확립하겠다”고 공약한 바 있다. 아울러 국회 세종의사당의 조기 건립도 함께 공약했다.
   
   이렇게 되면 윤석열 당선인은 임기 5년 내내 용산 대통령실과 세종 제2집무실을 오가며 귀중한 시간과 체력을 허비할 공산이 크다. 윤 당선인은 주로 전용헬기를 이용해 용산 대통령실과 세종 제2집무실 사이를 오가겠지만, 대통령실 참모들과 일선 부처 공무원들은 KTX나 자동차를 이용해 용산과 세종을 오갈 수밖에 없다. 기상사정이 안 좋을 경우, 윤 당선인 역시 예외가 아니다.
   
   다행히 대통령실이 입주할 용산 국방부 청사에서 용산역은 채 2㎞가 안 된다. 서북쪽 주출입구 외에도 합참 청사 서쪽 고등군사법원 쪽에 개설된 출입구를 이용하면 용산역은 지척이다. 따라서 KTX 세종역만 개설되면 용산과 세종 사이의 물리적 거리는 획기적으로 줄어든다.
   
   다만 윤 당선인은 지난 대선 때 세종역 신설 시 오송역(충북)과 공주역(충남)의 기능 약화를 우려한 충청권의 반발을 고려해 대선 공약으로 내세우지는 않았다. 대신 대전에서 세종과 오송을 거쳐 청주공항까지 연결되는 ‘충청권 광역철도’를 공약으로 내걸었다. 하지만 충청권 광역철도는 사업비만 2조1000억원가량으로, 500억원 정도면 신설가능한 세종역에 비해 막대한 예산과 시간이 필요하다.
   
   철도계의 한 관계자는 “세종역 신설에 줄곧 걸림돌이 되어온 고속철 역간 거리원칙은 이미 유명무실해진 지 오래로 역별 정차횟수 조정으로 해결 가능하다”라며 “대통령과 국회의원들이 세종 제2집무실과 국회 세종의사당을 오가면서 길바닥에서 녹초가 되어 보면 자연스럽게 세종역 신설 주장이 받아들여지지 않겠나”라고 전망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