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동차

보조금 없어도 경쟁력 갖춘 중국 전기차, 한국을 겨눈다 [최원석의 디코드]

Shawn Chase 2022. 2. 3. 16:25

 

입력 2022.02.03 11:41

※디코드(decode): 부호화된 데이터를 알기 쉽도록 풀어내는 것. 흩어져 있는 뉴스를 모아 세상 흐름의 안쪽을 연결해 봅니다.

“현대차가 중국에서 철수하느냐 마느냐의 문제가 아닙니다. 한국 자동차산업 전체가 중국 전기차에 먹히느냐 마느냐의 기로(岐路)에 있습니다. 빨리 ‘진짜 경쟁력’을 높이지 않으면, 전기차 보급이 세계적으로 본격화할 몇 년 뒤에는 한국의 ‘완성차’ 제조국 지위가 위태로워질지도 모릅니다.”

중국 현지 자동차시장에 밝은 업계 임원 얘기입니다.

우선 현대·기아차의 중국 상황. 현대·기아차는 2016년만 해도 중국서 180만대를 팔았지만, 작년엔 54만대를 파는데 그쳤습니다. 불과 5년 사이에 거의 4분1 토막이 났죠. 더는 물러설 곳이 없다며 회복에 모든 노력을 쏟아붓는다 했지만, 작년 판매는 전년 대비 30%가량 더 줄었습니다.(중국 시장 전체는 전년보다 4% 성장)

그런데 이 위기가 정말 심각한 것은, 한국 자동차산업이 중국이라는 세계최대 시장에서 패퇴하는 것에만 그치는 게 아니라, 조만간 중국에 우리 시장마저 압도당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모든 것이 전기차에서 촉발됩니다. 내연기관차 시대의 중국은 우리가 그 시장을 빼앗느냐 못 빼앗느냐의 차원에서만 접근하면 됐지만, 전기차 시대의 중국은 글로벌 시장은 물론 한국 내수시장에서까지 조만간 무서운 경쟁상대로 올라서게 될 것이라는 겁니다.

그리고 앞서 말씀드린 전기차에 관한 ‘진짜 경쟁력’이란 우선은 ‘제조 원가의 경쟁력’입니다. 지금은 전기차 보급 초기라 가격이 다소 비싸도, 팔면서 돈을 남기지 못하더라도 일단 만드는 게 중요하겠지만, 몇 년 뒤에 업체들마다 원가를 최대한 낮춘 양산 체제를 갖추게 될 때부터는 피 말리는 가격 경쟁이 일어날 가능성이 큽니다. 그렇게 되면, 많이 만들어도 이익을 못 내거나 적자를 보는 쪽부터 고전하게 될지 모릅니다. 한국 자동차산업이 처할 수도 있는 현실입니다.

한국은 전기차 시대 이행에 많은 이점을 갖고 있습니다. 글로벌시장에서 활약하는 배터리 업체가 3곳(LG에너지솔루션·삼성SDI·SK온)이나 있고요. 전기차시대에 더 중요해질 디스플레이·전자·반도체 등도 강합니다. 각각의 산업은 전기차 시장의 글로벌 공급망 안에서 큰 역할을 하겠죠. 하지만 이 훌륭한 ‘구슬’을 하나로 꿰었을 때, 즉 전기차라는 완성품으로서의 경쟁력에서도 한국이 뛰어날지는 별개라는 것입니다. 왜냐하면 여기에는 재료·부품의 공급망 구축부터, 핵심 부품의 내재화, 원가를 극소화하면서 차량의 상품성은 극대화하는 설계전략, 무엇보다 소프트웨어와 통합제어용 고성능반도체 전략 등이 깊고 장기적인 차원에서 최적으로 조율돼야 하기 때문입니다.

이미 현실이 된 중국의 ‘전기차 굴기’가 한국 자동차산업에 얼마나 심각한 위협이 될 수 있는지를 5가지 포인트로 분석해 보겠습니다.

샤오펑의 전기차 P7.

◇1. 작년 중국의 전기차 판매 350만대... ‘규모의 경제’ 이미 완성

중국 자동차공업협회에 따르면, 중국의 작년 신차 판매는 2627만5000대로 전년보다 4% 증가했습니다. 4년 만에 전년 실적을 상회한 것인데, 전기차(플러그인 포함) 판매가 폭발적으로 증가한 덕분입니다.

작년 중국에서 전기차는 전년의 2.6배인 352만대가 팔렸습니다. 순수 전기차(BEV)가 292 만대 팔렸고요. 플러그인 하이브리드(PHEV)는 60만대 팔렸습니다. 전체 신차 판매에서 전기차(플러그인 포함) 비율은 2020년 5.4%에서 작년엔 13.4%까지 올랐습니다.

전기차 판매가 특히 호조였던 업체는 BYD 였습니다. BYD의 작년 전체 판매는 전년보다 73% 증가한 74만대였지만, 전기차만 한정하면 3.2배인 60만대에 이르렀습니다. BYD 전체 판매에서 전기차가 차지하는 비율은 2020년 44%에서 작년엔 82%로 올랐습니다.

이보다 더 중요한 것은 ‘중국판 테슬라 3총사’인 샤오펑(Xpeng)·니오(NIO)·리오토(리샹)가 작년에 각각 10만대 가까이 팔면서 양산 궤도에 올랐다는 것입니다.

샤오펑은 9만8155대를 팔아 2020년보다 3.6배 늘었습니다. 특히 샤오펑은 작년 12월에만 1만6000대를 파는 등 최근 들어 판매가 빠르게 늘고 있죠. 니오는 작년에 9만1429대를 팔아 전년보다 109% 성장했습니다. 리오토는 작년에 9만491대를 팔아 전년보다 177% 성장했습니다.

이들 업체의 올해 최대 목표는 생산능력 확충입니다. 판매·마케팅에 비용을 들일 필요도 없죠. 공급이 수요를 못 대는 상황이기 때문입니다. 만드는 대수가 판매 대수입니다. 특히 최근 뛰어난 성과를 보여주는 샤오펑의 경우, 지난 설 연휴 기간에도 공장 증설 때문에 회사 전체가 쉴 틈이 없었다고 합니다.

이런 전기차 성장에 힘입어 중국의 자동차 수출도 급증하고 있습니다. 중국 자동차공업협회에 따르면, 2021년 수출은 2020년 대비 2배인 202만대로 이미 한국의 자동차 수출과 맞먹거나 이를 능가하는 수준까지 올라왔습니다.

이보다 더 위협적인 것은 수출대수 가운데 전기차(플러그인 포함)가 전년의 4배인 31만대나 된다는 겁니다. 물론 여기엔 테슬라 중국 공장에서 만들어진 차량의 수출 대수 16만대가 포함된 것이지만, 이 역시 메이드인 차이나 전기차의 수출인 것은 맞고요. 나머지 절반은 분명히 중국 토종업체 수출이니, 이미 중국의 전기차 수출이 궤도에 오르고 있다고 봐야 할 겁니다.

◇2. 신차 판매에서 전기차 비율 20% 넘어... 내연기관차 시대와 달리, 외자계 제치고 토종업체가 내수 시장 장악

앞서 중국의 신차 판매에서 전기차(플러그인 포함) 비율이 2020년 5.4%에서 작년 13.4%로 급등했다고 말했는데요. 중국의 전기차 보급이 워낙 빠르게 늘고 있기 때문에, 좀 더 최신 수치를 인용해 보겠습니다.

중국의 신차 판매 가운데 상용차(버스·트럭 등)를 빼고 승용차만 집계해 보죠. 작년 12월 승용차 시장의 전기차 판매는 51만대. 연간으로 단순 환산하면 연 500만대 수준을 넘었습니다. 작년 12월 기준, 중국 승용차 판매에서 전기차의 비율은 21.3%에 달합니다. 중국 정부는 2025년쯤 이 비율을 25%로 높이겠다는 방침이었는데요. 그보다 3년 빠른 올해에도 전기차 비율 25% 달성이 충분히 가능해 보입니다.

또하나 중요한 것은 테슬라 정도를 제외하면 대부분의 전기차 판매 증가가 중국 토종 자동차업체나 신흥 전기차 업체 중심으로 이뤄지고 있다는 것입니다. 작년 12월만 봤을 때, BYD는 9만3338대, 테슬라 중국법인이 7만847대, 상하이GM우링이 6만372대, 창청자동차가 2만926대, 체리자동차가 2만501대를 팔았고요. 앞서 말씀드린 샤오펑·니오·리오토 등 중국판 테슬라 3총사도 작년 12월에만 각각 1만대 이상 팔았습니다. 내연기관차의 경우 아직도 폴크스바겐·GM 등 외자계가 시장 주도권을 쥐고 있지만, 전기차에서는 이미 테슬라 정도를 빼면 토종업체들이 외자계를 압도하고 있다는 얘기입니다.

중국정부는 지난 수십년간 외국 자동차기업과 합작해 내연기관차를 생산함으로써, 외국의 내연기관차 기술을 완전히 흡수하려 했지요. 하지만 내연기관차의 기계적인 복잡성, 그리고 100여년간 쌓아올린 외국 기업들의 노하우와 비밀주의 등으로 인해 중국 토종업체들이 내연기관차의 기술주도권을 잡는 데는 실패했습니다. 반면 전기차에서는 중국 토종업체들의 주도권 장악이 현실화되고 있는 겁니다.

이렇게 되면 조만간 외자계와 토종업체 간의 전세가 역전될 가능성도 있습니다. 과거엔 외자계가 시장만 얻고 기술을 주지 않으려고 기를 썼지만, 이제는 시장을 잃지 않기 위해 중국 자동차회사 혹은 부품회사에 더 적극적으로 이익을 안겨주고 손을 내밀어야 하는 상황이 오게 된 것이죠. 그렇지 않으면 전기차 시장으로 갈수록 외자계가 완전히 밀려나게 될 수도 있으니까요.

◇3. 정부주도에서 시장주도로 대전환... 올해 전기차 보급 500만대로 당초 계획 3년 앞당길듯... 내년부터 보조금 완전 폐지

중국의 전기차산업은 정부·정책 주도형에서 시장 주도형으로 바뀌는 중대 국면에 있습니다. 중국 자동차공업협회는 2022년 전기차 판매를 전년 대비 42% 증가한 500만대로 전망하고 있는데요. 당초 정부가 목표했던 ‘2025년 연간 전기차 판매 500만대’를 3년 앞당겨 달성하는 셈입니다.

이것이 의미하는 건 명확합니다. 중국 전기차 시장은 이제 정부 주도가 아니라 시장 논리로 굴러가는 단계에 접어들고 있다는 것입니다.

속단은 이르지만, 중국에서 올해 전기차가 500만대가 팔린다면 다음은 어떻게 될까요? 폭발적인 성장세가 주춤하더라도, 2025년쯤이면 중국에서만 연간 1000만대의 전기차 시장이 형성된다고 봐도 무리는 없을 것입니다.

중국 정부는 작년 12월 31일 발표에서, 올해 전기차 구매보조금을 2021년 대비 30% 삭감한다고 밝혔습니다. 그리고 내년부터는 전기차에 보조금을 지급하지 않기로 했습니다. 올해가 전기차 보조금 시행의 마지막 해라는 얘기입니다. 중국 전기차 산업이 보조금 없이 자력 성장할 수준에 도달했다는 것입니다.

물론 중국에서는 현재 200개의 크고 작은 전기차 메이커가 있고, 그 가운데 150개사는 2018~2020년에 생긴 신생업체입니다. 샤오펑·니오처럼 궤도에 오른 신흥업체도 있지만, 작년에만 바이톤 등 6개사가 도산했습니다. 내년부터 보조금이 사라지면 진짜 경쟁력이 있는 업체만 살아남는 식으로 옥석이 가려지겠죠. 이렇게 되기까지 중국 정부가 전기차에 일관되게 지원해 온 것이 빛을 발하게 된 것이라 볼 수도 있을 겁니다.

◇4. 전기차 시대에는 소프트웨어로 무장한 중국 전기차가 고급 이미지... 한국 전기차에 치명적인 위협될 수도

중국 전기차 산업이 한국에 특히 위협적인 것은 그 영향의 범위가 내연기관차 시대와 달리 전방위적이기 때문입니다. 내연기관차 시대의 중국산은 저가 이미지였지만, 전기차 시대의 중국산은 가격경쟁력뿐 아니라 프리미엄 제품에서도 영향력을 발휘할 가능성이 큽니다. 전기차의 프리미엄 이미지는 시간이 흐를수록 소프트웨어 부문에서 나오게 될 텐데, 중국이 이 부분에 강하기 때문입니다.

중국 시장에서 전기차는 초저가 도심형 커뮤터와 고급 SDV(Software Defined Vehicle·소프트웨어로 정의되는 자동차, 소프트웨어 무선업데이트를 통해 차량 기능을 실시간으로 수정·개선할 수 있는 차)로 양극화돼 있습니다. 고급 SDV란, 소프트웨어로 제어되고 OTA(Over The Air·무선 업데이트)가 자유로우며, 강력한 성능과 400~500km 이상의 주행거리, 자율주행에 근접한 첨단 운전지원시스템 등을 갖춘 차를 말하죠.

 

우선 저가차. 긴 말 할 필요도 없죠. 상하이GM우링의 500만원짜리 전기차 ‘홍광 미니 EV’ 에서 볼 수 있듯이 압도적인 가격경쟁력을 자랑합니다. 전세계에서 이 정도 상품성의 전기차를 이렇게 낮은 가격에 찍어낼 수 있는 곳은 중국밖에 없습니다. 이게 가능한 건 중국이 이미 연간 500만대의 전기차를 만들어낼 수 있는 부품 공급망과 양산 노하우를 갖고 있기 때문이죠.

전기차에 관해서라면, 한국은 부품공급망과 양산노하우 양쪽 모두에서 중국에 열세입니다. 홍광 미니가 500만원부터 시작하는 초저가 전기차라고는 해도, 작년에 40만대나 팔린 검증된 차량입니다. 소비자 판매가격이 500만원이라면, 제조 원가는 도대체 얼마일까요? 한국이 홍광 미니EV와 같은 괴물 같은 저가 전기차에 대적할 경쟁력을 갖출 수 있을지 심각하게 고민하지 않으면 안 될 것입니다.

☞ 중국판 테슬라 3총사의 약진... 샤오펑·니오·리샹, 작년 중국에서 테슬라만큼 팔았다(2022.01.26)

https://www.chosun.com/economy/int_economy/2022/01/26/ZA3VF4MR6NEDDDGWOROC64E6IM/

그런데 이보다 더 큰 문제는 중국 전기차가, 저가형뿐 아니라 고급형에서도 높은 경쟁력을 갖고 있다는 것입니다.

한국이 홍광 미니 같은 초저가 전기차에서 경쟁하지 못한다 하더라도, 그보다 고급의 전기차에서 중국 대비 경쟁력을 유지한다면 시장 방어가 어느 정도 가능할 겁니다. 그런데 이 부분에서도 한국이 우위를 잃을 가능성이 있다는 게 심각한 일입니다. 고급 전기 SDV 분야에서 한국을 앞서는 중국 업체가 등장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앞서 말씀드린 샤오펑·니오·리오토 같은 신흥 전기차 업체들이 그런 곳인데요. 그 가운데서도 샤오펑은 소프트웨어와 제조 능력 양쪽에서 뛰어난 것으로 알려졌습니다. 샤오펑의 차량은 음성으로 조작하는 유저 인터페이스를 탑재하고 있고요. 테슬라 차량과 마찬가지로 OTA가 가능합니다. 5G 통신망을 통해 고속도로에서 자율주행에 근접한 첨단 주행보조시스템을 쓸 수도 있습니다. 이미 중국에서 소득이 높은 젊은층에는 웬만한 독일 고급차보다도 더 높은 이미지를 구축하기 시작했다고 합니다.

샤오펑·니오·리오토 모두 현재는 외부 업체인 엔비디아의 칩을 채택해 소프트웨어·알고리즘을 자체 개발해 오고 있는데요. 샤오펑의 경우 자체 칩 개발을 진행 중으로, 올해 안에 제품화를 목표로 하고 있습니다. 테슬라가 처음엔 모빌아이, 다음엔 엔비디아의 칩을 쓰다가 자체 개발로 돌아선 것과 같은 행보입니다.

샤오펑의 차량은 테슬라처럼 OTA 를 통해 인포테인먼트뿐 아니라 첨단 주행지원시스템과 차량의 물리적 성능까지 바꿀 수 있는 차입니다. 반면 한국에서 만들어진 전기차 가운데 현재 가장 발전한 모델인 현대 아이오닉5, 기아 EV6 등은 테슬라·샤오펑과 달리 높은 수준의 OTA를 구현하지 못합니다. 고급 전기차의 소프트웨어 부문 발전 단계로 볼 때 테슬라는 물론 중국 업체에도 뒤져 있는 것입니다. 특히 SDV로 갈수록 소프트웨어 역량이 요구되는데요. 이 부분에서 중국이 한국보다 앞서 있다고 보는 게 맞을 겁니다.

이는 작년 10월 벤츠의 모기업인 다임러가 베이징에 전기차 소프트웨어 개발센터를 연 것에서도 알 수 있습니다. 1000명의 엔지니어를 보유한 이 센터에는 중국인 소프트웨어 엔지니어가 많습니다. 다임러 측은 “벤츠 차량에 탑재할 AI나 자율주행 등 개발에서 중국 팀이 한층 더 중요한 역할을 맡게 된다”고 얘기합니다. 이는 중국이 가장 중요한 전기차 시장이기 때문이기도 하지만, 중국의 소프트웨어 역량이 꼭 필요하기 때문이기도 하고요. 앞으로도 중국에서 벤츠 전기차를 오래 많이 팔기 위해, 중국 산업계와의 협업, 인적 교류를 더 늘리려는 벤츠의 영리한 전략일 수도 있습니다.

요약하면, 전기차 시대로 갈수록 중국은 전기차 부품뿐 아니라 소프트웨어 부문에서도 더 많은 소싱과 협력의 대상이 되어가고 있다는 것입니다.

전문가들은 샤오펑·니오·리오토 같은 고급 전기SDV 업체들 가운데 한 두곳은 끝까지 살아남아 중국판 테슬라가 될 가능성이 크다고 보고 있습니다. 미국의 리비안이나 루시드 같은 업체가 제2 테슬라가 될 가능성을 점치기도 하지만, 두 업체는 전기차 원가절감능력 경쟁, 양산능력 경쟁이 임박한 2022년 시점에서도 여전히 양산과는 거리가 먼 상황입니다. 올해나 내년까지 양산체제를 갖추지 못하면 영원히 도태될지도 모르죠. 반면 샤오펑·니오·리오토는 작년 한해에만 각각 10만대 가까이를 팔았고, 올해는 그보다 훨씬 많은 대수를 생산할 체제를 갖출 예정입니다.

작년에 샤오펑 한 회사가 판 전기차 대수만, 한국 현대·기아차의 전기차 판매 합계와 비슷합니다. 샤오펑은 최근 월 1만5000대 이상의 차를 팔고 있고, 조만간 월 2만~3만대의 생산체제를 갖출 것으로 보입니다. 중국 애널리스트들에 따르면, 그렇게 될 경우 샤오펑은 테슬라가 현재 차량판매만으로도 충분한 이익을 내는 것처럼, 자체 생존이 가능한 수준의 수익력을 확보할 수 있을 것으로 보고 있습니다.

샤오펑 같은 회사가 테슬라처럼 성장하게 된다면 어떻게 될까요? 중국에서는 물론이고, 글로벌 시장에서도 한국 전기차가 그보다 더 프리미엄의 이미지를 가질 것이라 장담할 수 있을까요?

◇5. 한국 자동차산업 생존하려면, 전기차 제조원가와 SDV 양쪽에서 지금보다 훨씬 높은 경쟁력 확보해야

현대·기아차가 중국시장 재공략을 위해 추진 중인 것 중 하나가 중국 전용 전기차 투입입니다. 중국시장에 특화된 전기차를 개발해 판매와 브랜드 이미지를 동시에 회복시키겠다는 것이죠. 하지만 이 전략은 현재 현대·기아차의 전기차 원가 경쟁력 혹은 소프트웨어 개발능력을 감안할 때 성공 가능성이 작아 보입니다.

왜냐하면 이 차량은 가격에서는 중국 저가 전기차에 밀리고, 소프트웨어 상품성 등에서는 테슬라는 물론이고 샤오펑 등 중국 신흥 전기차업체에 밀릴 우려가 크기 때문입니다. 테슬라·샤오펑·니오 등은 이미 OTA 를 제대로 구현하고 있고요. 폴크스바겐·GM·벤츠는 물론 도요타까지 2024년 이후로는 현재의 테슬라·샤오펑과 비슷하거나 그것을 능가하는OTA 기능을 탑재한 전기차를 내놓을 계획입니다. 반면에 현대차가 같은 시기에 이들 업체와 동등하거나 더 뛰어난 전기 SDV를 내놓을지는 미지수입니다. 2024년 시점에서도 현대차에서 OTA가 제대로인 차가 나오지 못할 경우, 결과는 재앙이 될 가능성이 있습니다.

현대·기아차는 작년에 아이오닉5, EV6 같은 최신 모델을 중심으로 약 10만대의 전기차를 팔았습니다. 그런데 이렇게 팔아 충분히 이익을 내고 있느냐 하면, 그렇지 못한 것으로 보입니다. 한국이나 유럽 등 구매보조금이 지원되는 시장에서도 한자리수 이익률 혹은 손익분기점을 넘기는 수준이고요. 보조금이 없는 시장에서만 판다면 당장 큰 폭의 적자를 보는 구조입니다.

그런데 당장 중국에서 내년부터 보조금이 완전히 폐지됩니다. 유럽도 곧 뒤를 따르게 되겠죠. 지금은 판매가격을 높게 내놓아도, 보조금 덕분에 실 구매가격이 떨어지니까 팔리겠지만, 몇 년 뒤부터는 거의 모든 시장에서 보조금 없이 진검승부해야 하는 상황이 올 겁니다. 원가를 내리지 못할 경우, 전기차를 내놓아도 팔리지 않을 것입니다. 다른 주요 시장도 마찬가지일 것이고, 현대·기아차 시장회복을 노리는 중국시장에서는 더더욱 그럴 것입니다.

게다가 SDV의 수준이 톱클래스 경쟁업체를 못 따라갈 경우 문제가 심각해집니다. 테슬라·샤오펑 등은 이미 자리를 잡은 상태이고, 기존 자동차회사들도 수조에서 수십조원을 투자해 2024년쯤을 목표로 맹렬히 개발 중이죠. 테슬라나 샤오펑 같은 진짜 SDV의 성능이 소프트웨어 발전으로 점점 더 좋아질 경우, 또 벤츠·GM·폴크스바겐이 몇 년 안에 뛰어난 SDV를 내놓을 경우, 이런 차량의 매력이 다른 차량을 압도할 수 있습니다. OTA가 제대로인 차는 미래에도 고가 전략이 먹히겠지만, 제대로 된 OTA가 안 되는 차라면 고가전략을 쓸 수 없겠죠. 그러면 가격을 낮춰야 할 텐데, 원가경쟁력을 확보하지 못하면 이마저도 어려워지고 시장에서 살아남지 못하게 될 수도 있습니다.

현대·기아차는 2026년 전기차 연간 판매목표를 170만대로 상향 조정했는데요. 지금과 같은 수준의 원가경쟁력으로는 재앙을 초래할 수도 있습니다. 제조원가를 낮추지 못한다면, 팔면 팔수록 적자를 낼 수도 있으니까요.

현재 기준으로, 현대 아이오닉5나 기아 EV6는 동급의 중국 전기차는 말할 것도 없고, 테슬라의 중국 상하이공장에서 생산되는 모델3 보다도 원가가 높은 것으로 추정됩니다. 모델3는 대당 원가가 200만원이 넘는 고성능 컴퓨터, 아이오닉5·EV6에 달린 것보다 더 섬세하고 비싼 열관리시스템을 탑재하고 있습니다. 차체 등에도 알루미늄합금 등 값비싼 소재를 듬뿍 사용했습니다. 따라서 고성능 컴퓨터나 고가의 열관리시스템이 들어 있지 않고, 알루미늄 등 값비싼 금속소재를 거의 쓰지 않은 아이오닉5나 EV6의 제조원가가 모델3보다 높다는 것은 말이 안 됩니다. 더 낮은 원가로 만들어 더 비싸게 파는 차(모델3)를, 더 높은 비용을 들여 더 싸게 팔 수밖에 없는 차가 이길 수 있을까요?

이대로라면 한국의 전기차 산업이 이런 함정에 빠지게 될 가능성이 있습니다. 그렇게 된다면 중국에 전기차를 내놓아도, 적자를 메우기는커녕 더 늘리는 결과만 낳을 수도 있을 겁니다. 이미 늦었지만, 지금이라도 중국의 전기차가 저가·고급 양쪽 모두에서 한국 자동차산업에 얼마나 큰 위협인지를 직시하고, 살아남을 방안을 찾아야 합니다. 이대로 간다면, 중국이라는 시장을 잃는 게 문제가 아니라 우리 시장과 산업마저 중국에 빼앗길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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