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동차

“미래차 전쟁 준비 끝” 비어만 현대차 사장, 퇴임하며 남긴 편지

Shawn Chase 2021. 12. 20. 20:33

 

 

입력 2021.12.20 15:45

현대차·기아의 연구개발을 총괄하던 알버트 비어만 사장이 지난 16일 퇴임하며 현대차 직원들에게 격려와 충고가 담긴 장문의 편지를 남겼다. 비어만 사장은 ‘세계 3대 고성능차 전문가’로 꼽히는 ‘자동차 가이’로 현대차 직원들은 그가 현대차를 떠나는 것에 아쉬움을 숨기지 않고 있다. 독일 아헨공과대 기계공학 석사 출신인 비어만 사장은 1983년 BMW에 엔지니어로 입사한 뒤 BMW M 연구소장을 지내며 BMW 고성능차의 성공을 이끌었다. 2015년 초 정의선 회장이 삼고초려해 현대차로 영입한 뒤, 비어만 사장은 현대차의 고성능차 N을 세계적인 모터스포츠 대회에서 우승할 수 있도록 이끌고, 전체 차종의 주행 성능과 상품성을 크게 끌어올렸다는 평가를 받는다.

영어와 한글, 두가지 버전으로 임직원에게 전달된 그의 편지에 따르면 비어만 사장은 작년 여름 이미 정의선 회장에게 “올해를 끝으로 제 역할을 마무리하고 독일로 돌아가 가족과 시간을 갖고 싶다”고 사임 의사를 밝혔다. 정 회장은 “독일에서도 계속 일하시라”고 했지만, 비어만 사장은 “지금보다는 좀 더 여유를 갖고 싶다. 후임 본부장을 위해 순조로운 인수인계를 준비하겠다”고 한 뒤 1년간 이별을 준비했다고 전했다.

지난 2015년 알버트 비어만 현대차 당시 고성능차 개발 담당 부사장이 프랑크푸르트 모터쇼에서‘N 2025 비전 그란 투리스모’ 콘셉트카를 공개하고 있다./조선일보 DB

그는 “2015년 초 처음 한국에 왔을 때만해도 3년의 계약기간을 무사히 마칠 수 있을지 확신이 없었다”며 “그러나 동료들이 따뜻하게 환대해 주셨고, 아내도 제2의 고향인 판교에서 좋은 친구를 사귀며 그렇게 저희는 고요한 아침의 나라 한국과 한국인 여러분들과 사랑에 빠지게 됐다”고 적었다.

비어만 사장은 편지에서 그동안 현대차 R&D 직원들이 이룬 성과를 격려했다. 그는 “회장님은 ‘하나되는 R&D’를 주문하셨고, 저는 R&D 경영진과 이 과제를 잘 해결해냈다고 생각한다”며 “최근 몇 년간 과거와 견줄 수 없을 정도로 다양하고 우수한 차량을 개발했다”고 말했다. 그는 “이 과정에서 코로나로 인한 여러 제약, 내연기관차에서 전동화로 넘어가면서 인력 보강이 충분하지 않아 과도해진 업무량 같은 어려움이 있었지만 우리의 투지와 열정, 새로운 조직 신설, 신뢰와 협력을 기반으로 한 조직 문화 혁신으로 이를 극복했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오늘날 우리가 만든 차가 전세계 미디어 평가와 시상식에서 다양한 종류의 상을 휩쓸 때마다 자부심을 느꼈다”며 “항상 말씀 드리지만, ‘개선되지 않는 것은 없다’고 생각한다. 우리는 앞으로 더 발전할 수 있는 잠재력이 있다”고 말했다.

 
알버트 비어만 사장

비어만 사장은 현대차가 향후 펼쳐지는 미래차 전쟁에 대한 준비를 갖췄다고 격려하면서도 향후 더 강력한 내부 결속이 필요하다고 조언했다. 그는 “스마트 모빌리티 솔루션 선두업체가 되기 위한 경쟁은 이제 막 시작되었고, 결승선 없는 무한경쟁시대가 펼쳐질 것입니다. 그러나 우리는 만반의 준비를 갖췄습니다”라고 말했다. 현대차가 신규 차량과 차량 제어기 및 소프트웨어 개발 방향성과 계획을 수립했으며, 각 기술 부서는 복잡성과 비용을 줄이는 동시에 다양한 혁신을 진행중이며, 연료전지·로보틱스 등 선행 개발도 강화하고 있다는 것이다.

그는 “현대차는 빠른 속도로 ‘패스트 팔로워’에서 ‘퍼스트 무버’로 진화하고 있다”며 “앞으로도 이런 변화를 지속하기를 바라며, 다양한 분야에서의 ‘파트너십’과 ‘융합’을 당부하고자 한다”고 말했다. 그는 내부 협력과 융합이 필요한 부분을 “선배와 후배” “디자인과 엔지니어링” “내연기관차와 전기차” “애플리케이션과 소프트웨어” “하드웨어 검증과 버추얼 시뮬레이션” “해석과 설계” 등으로 구체적으로 열거했다. 사내 부서 이기주의로 표현되는 ‘사일로 문화’가 현대차 내에 아직도 남아 있다는 점을 우회적으로 꼬집은 것이다.

그는 2018년도에도 내부 임직원들에게 편지를 보내 현대차 조직의 탑다운 문화나 근시안적 사고, 불필요한 회의 등 개선해야할 점을 솔직하게 충고한 적이 있다. 그는 “우리 연구소 인재들이 최선의 해결책을 찾기 위해 힘을 모은다면 우리 모두 최고가 될 수 있을 것”이라고 덧붙였다.

지난 16일 퇴임한 알버트 비어만 현대차 연구개발본부장이 직원들에게 보낸 편지에 첨부한 사진.

그는 “마지막으로 꼭 기억해야할 중요한 성공 공식이 있다”며 “‘DRIVING STILL MATTERS!’(직접 운전석에 앉아 차를 느껴보십시오)”라고 적었다. 카레이서 자격증을 갖고 있는 비어만 사장은 “유일한 취미가 운전”이라고 말할 정도로 드라이빙을 즐기는 자동차맨이다. 그는 평소 신차 출시 전 주행 테스트를 위해 위장막으로 감싼 차를 끌고 새벽에 아내와 강원도까지 달린 뒤 모닝커피 한잔을 하고 돌아오는 드라이빙 코스를 즐겼다고 한다. 그가 이날 보낸 편지에는 산세가 좋은 도로 옆에서 위장막에 가려진 차와 함께 찍은 사진 한장이 담겨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