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택 및 건축

이 빠진 모양인데 건축상 휩쓸다…황매산 '겸손한' 휴게소 보니

Shawn Chase 2021. 12. 19. 16:52

중앙일보

입력 2021.12.19 14:31

업데이트 2021.12.19 16:43

경남 합천군 황매산 정상 길목에 자리한 관광휴게소 '철쭉과 억새 사이'. 올해 공간문화대상 대통령상과 한국건축가협회상을 수상했다. [사진 윤준환 건축사진작가 촬영.]

주변의 산세에 어우러지게 하는 데 초점을 맞춰 지어진 황매산 군립공원 관광휴게소 '철쭉과 억새 사이'. 절제된 규모에 야트막한 높이로 설계됐다. [사진 윤준환 건축사진작가]

황매산 군립공원 관광휴게소 '철쭉과 억새 사이'는 멀리서 보면 반원 형태다. [사진 윤준환 건축사진작가]]

경남 합천군 황매산 군립공원을 찾는 사람들은 정상으로 가는 길목에서 관광휴게소를 거쳐 간다. 해발 850m 기슭에 반원형으로 낮게 펼쳐진 건물 '철쭉과 억새 사이'다. 이곳은 지방 곳곳에 흔한 여느 휴게소와 다르다. 행여 주변의 풍광을 가릴세라 몸을 최대한 낮췄고, 건물 중간중간은 공간을 비워 앞뒤로 통하게 길을 냈다. 건물 자체가 자신을 요란하게 내세우지 않고 통로를 자처한 셈이다. 그 배려가 통한 걸까. 이 '겸손한' 휴게소는 올해 국내 대표 건축상을 휩쓸며 남다른 존재감을 과시했다.

지상 1층 규모의 '철쭉과 억새 사이' 휴게소(연면적 445.02㎡)는 10월 문화체육관광부가 주는 대한민국공간문화대상 대상(대통령상)을, 지난달 한국건축가협회상을 받았다. 앞서 경상남도 건축상 최우수상도 받았다. "자연 위에 군림하는 휴게소는 짓지 않겠다"며 건축가와 합천군, 그리고 주민이 함께해 일으킨 작은 돌풍이다.

황매평전, 한국에 이런 곳이?  

건물 앞뒤로 통하게 비워둔 곳을 통해 빛과 바람, 풍경이 흘러다닌다. [사진 윤준환 건축사진작가]

해발 1113m 높이의 황매산은 여느 산과 산세가 확연히 다르다. 1990년대까지 젖소를 방목하던 이곳은 높은 산 위에 광활한 들판(고위평탄면·高位平坦面)이 펼쳐져 있어 봄이면 사방에 진분홍 철쭉이 융단처럼 깔리고, 가을이면 은빛 억새가 눈부시게 일렁인다. 방문객의 탄성을 자아내는 이 풍경 때문에 '영남의 금강산'으로 불리고, 2012년 CNN이 선정한 '한국에서 가봐야 할 곳 50선'에 이름을 올렸다. 게다가 가회면 둔내리에서 정상까지 도로가 잘 정비돼 있어 가족 단위 산책 코스로 각광을 받는다.

건축가 "사람의 흔적 최소로"  

이 군립공원 조경과 휴게소 건축엔 내로라하는 전문가들의 손길이 녹아 있다. 합천군은 공원의 조경 마스터플랜은 정욱주 서울대 조경·지역시스템공학부 교수에게, 또 휴게소 설계는 디림건축(대표 김선현)의 임영환 홍익대 건축학과 교수에게 각각 맡겼다. 본래 휴게소 자리엔 주민들이 운영하던 2층 규모 식당이 있었다. 처음엔 식당은 남기고 카페와 상점만을 새로 지을 예정이었으나 주민들은 주변에 어우러지게 카페와 식당을 한 건물로 새로 짓자는데 의견을 모았다.

이 휴게소는 산꼭대기에서 내려다보면 가늘고 길게 몸을 구부린 반원 형태다. 임 교수는 "건물의 윤곽은 그곳의 지형이 자연스럽게 결정한 것"이라며 "처음 이곳을 찾았을 때 전혀 예상하지 못했던 아름다운 풍경에 입이 다물어지지 않았다. 이 자연에 겸손하기 위해선 건축물을 짓되, 사람의 흔적을 최소화해야겠다고 생각했다"고 말했다. 야트막하고 가늘고 긴 건물의 형태는 그렇게 나왔다.
건축가는 여기서 한발 더 나아갔다. 건물의 중간중간을 이 빠진 자리처럼 비웠다. 방문객들은 이곳을 통로 삼아 건물 앞뒤를 무심코 들락거리지만 사실상 이 비움이야말로 파격 중 파격이다. 임 교수는 "건물을 지으며 빈 곳은 한뼘이라도 무조건 채우고 메꿔야 한다고 여기는 게 현실"이라며 "그러나 사람도 다니고, 바람과 빛도 통하게 하고 싶었다. 그 비워진 사이 공간으로 풍경이 보이도록 하는 것도 중요했다"고 설명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