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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 빌딩스토리]㊵ 번화가 속 무슬림의 성지…이슬람 서울중앙성원(聖院)

Shawn Chase 2021. 4. 11. 13:19

조선비즈 

 

입력 2016.12.11 16:34

‘서울 속 지구촌.’ 이태원의 특성을 가장 잘 드러낸 말이다. 한국 사람에겐 다소 이국적일수도 있지만 외국인들에겐 가장 친숙한 곳인 서울 이태원은 각 나라 전통 음식점부터 상점까지 거리 곳곳에 꽉 들어찬 ‘작은 지구촌’이다.

한국에 있는 무슬림들에게 이태원은 남다른 의미가 있는 곳이기도 하다. 무슬림들의 성지인 ‘서울중앙성원(이슬람 사원)’이 이곳에 있기 때문이다.

지하철 6호선 이태원역 3번 출구에서 나와 두번째 골목으로 들어와 걷다보면 아랍어로 된 간판들이 보인다. 이슬람 거리다. 이슬람 거리는 이태원역 근처 할랄 음식점과 이슬람 제과점, 서점 등 이슬람 상점들이 모여 있는 우사단로10길을 일컫는다.

이곳엔 서울에서 유일한 이슬람 사원, 서울중앙성원이 있다.

서울 한남동 서울중앙성원. /최문혁 기자

◆ 한국전쟁 당시 선교…이슬람 국가 지원 속 건립

한국에 이슬람교가 처음 전파된 것은 9세기 전후 통일신라시대로 알려져 있다. 이후 고려시대에는 교류가 더 잦아졌고, 원나라가 중국을 지배하면서 이슬람 문명과 접촉이 더 많아졌다. 그러나 원나라가 멸망하고 조선에서는 유교가 발전하며 이슬람교는 다시 쇠퇴했다.

1920년대에는 소수 민족인 투르크계 무슬림들이 이슬람을 전파하고, 1940년대에는 서울에 이슬람 성원을 건립하기도 했다.

한국전쟁 당시 유엔군으로 참전했던 터키 부대도 이슬람교를 선교했다. 터키 부대 압둘가푸르 카라이스마엘 오올루 종군 이맘과 주베르 코취 종군 이맘이 선교자였다. 이맘은 이스람교 지도자로 설교를 하는 등 일반 신도들을 이끌고 가르치는 존재다.

이슬람거리에서 볼 수 있는 서울중앙성원 입구. /최문혁 기자

1955년 9월에는 김진규를 초대회장으로 서울 동대문구 이문동에서 신도 70명 정도가 모여 한국이슬람협회를 만들었다. 주베르 코취는 터키군 이맘에서 한국 이슬람교 이맘이 됐다.

1965년에는 한국이슬람교중앙협의회로 재발족했고, 1967년에는 당시 문화공보부로부터 재단법인 인가를 받았다. 이때 신도수는 7500명 정도였다.

서울중앙성원은 1969년 5월 정부가 특별히 5000㎡(약 1500평) 정도의 부지를 제공하고 사우디아라비아를 비롯한 이슬람 6개국이 비용을 지원해 짓게 됐다. 1974년 10월에 첫 삽을 떴다. 약 2년 후인 1976년 5월 21일 개원했다. 한국 최초의 이슬람 사원이었다. 이후 부산과 경기도 광주, 안양과 전주 등에도 성원을 지었다.

대지면적은 4871㎡ 규모에 높이는 19.9m다.

2011년 기준 국내 무슬림은 13만5000명 정도며 이 중 한국인은 3만5000명 정도다.

서울중앙성원 전경. 정면에 보이는 녹색 글자는 아랍어로 ‘알라만이 가장 위대하다’라는 뜻이다. /최문혁 기자

이슬람 사원은 ‘꿉바’라는 돔 지붕와 ‘미나렛’으로 불리는 뾰족한 첨탑을 지닌 건축양식을 지닌다. 미나렛은 카톨릭의 고딕 양식과 마찬가지로, 신이 있다고 믿는 하늘에 조금이라도 더 가까워지려는 의도로 지어져 대개 높다.

서울중앙성원 건물에 있는 두 개의 미나렛. /최문혁 기자

미나렛은 사원 규모에 따라 그 개수가 달라지는데, 서울 중앙 성원의 경우 2개다. 규모가 아주 작은 것은 아니라는 뜻이다. 작은 곳은 보통 하나뿐이고 규모가 크면 6개에서 9개까지도 있다고 한다.

돔 천장인 꿉바는 평화라는 뜻으로 그 위에 초승달이 있는 것이 특징이다. 초승달은 진리의 시작을 뜻하는데 이슬람교 예언자 모하메드가 계시를 받을 때 초승달이 떠있었기 때문이다. 내부에서는 채광 역할을 한다.

서울중앙성원 내부에서 본 꿉바. 창을 통해 빛이 들어온다. /최문혁 기자

기본적인 건물 외부는 흰색과 무채색으로 돼 있는데 이국적이지만 화려하지는 않다. 사치를 금기시하는 이슬람 문화 영향 때문인 것으로 보인다.

예배나 기도를 드리기 위해 사전 절차가 꽤나 복잡하다. ‘우두’라고 불리는 세정대가 있는데 이곳에서 기도를 드리기 전에 깨끗이 씻는 것이 원칙이다.

서울중앙성원 옆에 있는 우두. /최문혁 기자

우두는 사원 본건물 옆에 있다. 기도를 드리기 전에 손과 입, 코, 얼굴, 팔, 머리, 귀와 발을 순서대로 씻어야 한다. 언제나 오른쪽부터다.

청결하게 씻고 난 뒤에는 신발을 벗고 예배실로 들어가 기도하면 된다.

남성용 우두 내부. 예배실로 가서 기도하기 전에 이곳에서 몸을 씻어야 한다. /최문혁 기자

이슬람 사원은 기본적으로 누구에게나 열려 있는 공간이다. 다만 여성의 경우 노출이 있는 옷을 입었을 때는 주의해야 한다. 노출된 옷을 입었을 때는 경비실 옆 착의실에서 치마나 히잡 등을 빌려 착용해야 한다.

◆ 화려하지만 교리에 충실한 내부 모습

1층에는 사무실과 강의실, 접견실이 있다. 2·3층은 모두 예배실인데, 성별이 나뉘어져 있다. 2층은 남성을 위한 예배실이고 3층은 여성 예배실이다.

이 밖에도 3층의 이슬람센터가 부속건물로 있다. 1층에는 이슬람 가게들이, 2층과 3층에는 무슬림 어린이들을 위한 이슬람학교와 무슬림 신도회 등이 있다.

서울중앙성원 2층 남성용 예배실 내부. /최문혁 기자

이는 이슬람 문화가 가족이 아닌 성인 남녀가 한 공간에 머무르는 것을 금지했기 때문이라고 한다. 따라서 방문객은 이 점을 유의해야 한다.

사원 안에는 그리 특별한 것을 찾아볼 수 없다. 이슬람교에서 우상숭배를 금지하고 있어, 모스크 내부에는 어떤 형체나 동상도 찾아보기 힘들다.

내부 벽면은 화려한 편이다. 우상숭배를 엄격히 금지해 동물 등 다른 형태를 새길 수 없기 때문에 전통적으로 꾸란 구절로 장식한 것이 많다.

한남동 서울중앙성원도 마찬가지다. 내부는 동물이 아닌 나무와 꽃을 본뜬 기하학적 무늬와 꾸란 구절로 장식돼 있다. 실내에는 꾸란이 비치돼 있는데 누구나 읽을 수 있다.

서울중앙성원 예배실에 꾸란이 비치돼 있다. /최문혁 기자

이슬람 사원은 영어로 모스크(mosque), 이슬람어로 ‘마스지드(masjid)’라고 하는데, 이는 엎드려서 기도를 드리는 곳이라는 뜻이다.

한국 서울중앙성원 예배실에는 양탄자가 깔려 있다. 엎드려 기도를 할 때 이마와 코 등이 바닥에 닿아야 하기 때문에 바닥에 양탄자를 까는 것이 일반적이라고 한다.

서울중앙성원 예배실에 있는 ‘미흐랍’. 메카가 있는 방향을 가리킨다. /최문혁 기자

사원의 방향과 형태에 상관없이 내부에는 ‘띠블라’라고 부르는, 메카 방향을 나타내는 표식이 있다. ‘미흐랍’은 이 띠블라를 가리키는 장식으로 보통 메카 방향으로 움푹 패여있고 화려하게 장식돼 있다.

서울중앙성원의 경우도 내부 전면 중앙에 미흐랍이 있다. 마치 거대한 문이나 입구 같다.

서울중앙성원 예배실에 있는 민바르. 이슬람교 지도자인 이맘이 이곳에서 설교를 한다. /최문혁 기자

이슬람 종교지도자인 이맘이 기도를 마치고 설교하는 ‘민바르’도 있다. 민바르는 계단 형태다. 계단 꼭대기는 모하메드를 위한 자리라고 해서 올라갈 수 없다.

서울중앙성원은 서울에 단 하나뿐인 이슬람 사원이라 더 의미가 있다. 무슬림들은 반드시 하루에 다섯 번 정해진 시간에 기도를 드려야 한다. 조용하고 깨끗한 장소에서 해야하기 때문에 대개 성원에서 기도한다. 그만큼 성원은 무슬림에게 뜻깊은 장소다.

함께 드리는 예배는 매주 금요일에 열린다.

이슬람 사원에서 만난 무슬림 아민(51) 씨는 “이슬람 사원은 모두

 

를 위한 공간”이라며 “누구나 언제든 올 수 있는 곳”이라고 말했다.

이슬람 사원은 이국적인 외관 덕에 관광 장소로도 사람들의 발길을 끈다. 방문객 중에는 무슬림이 아닌 일반 시민도 눈에 띄었다. 웹툰 작가 이대호(40)씨는 “골목을 탐방하고 그림을 그리는 모임에서 단체로 왔다”며 “건물(이슬람 사원)이 특이해 사진으로 찍고 나중에 그려보려 한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