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내정치

‘경쟁적 협력’으로 희망 준 兩金… 현 정치권은 대립만 배워

Shawn Chase 2015. 11. 24. 22:55

장택동 기자 , 홍정수 기자 , 황형준 기자

입력 2015-11-24 03:00:00 수정 2015-11-24 07:45:00

 

 

 

[김영삼 前대통령 서거]‘YS-DJ 정치’ 발전적 계승 과제

 

추모
김영삼 전 대통령 서거 이틀째인 23일 서울시청 앞에 김 전 대통령 국가장 분향소가 마련돼 추모객의 발길이 이어졌다. 영정 앞에 헌화한 뒤 돌아가던 한 여성이 흐르는 눈물을 닦고 있다. 뉴스1  

‘양김(兩金) 시대’의 화두는 독재에 맞선 민주화 투쟁이었다. 스타일은 달랐지만 김영삼(YS), 김대중(DJ) 전 대통령 모두 독재에 항거했고 민주주의의 초석을 놓았다.

6월 민주항쟁으로 대통령직선제가 시작된 ‘1987년 체제’가 28년이 지났다. 그 사이 여야가 바뀌는 평화적 정권교체가 이뤄졌다. 더는 ‘독재 대 민주’ ‘민주 대 반민주’의 프레임으로 정치 지형을 설명할 수 없게 된 것이다. YS의 서거를 계기로 양김 시대는 종언을 고한다. 양김 시대가 아닌 새 시대에 맞는 리더십을 모색해야 할 때다.


○ 감각의 YS vs 논리의 DJ 

 

“YS는 감(感)의 정치를 했고, DJ는 머리가 명석했다.”(이만섭 전 국회의장)

“YS는 논리적인 설명보다는 감각적으로 이뤄냈고, DJ는 꼼꼼하고 논리적으로 하나씩 해결해 나갔다.”(새정치민주연합 정대철 상임고문) 

 

양김 시대를 몸소 겪었던 정치 원로들은 두 사람의 리더십 차이를 ‘감각’과 ‘논리’로 설명했다. 두 사람은 출신 지역, 성장 배경, 정치적 성향이 전혀 달랐고 각각 ‘상도동계’와 ‘동교동계’로 나뉘어 선의의 경쟁을 벌였다. 

두 사람의 공동 목표는 민주주의 완성이었다. ‘경쟁적 협력 관계’를 유지할 수 있었던 원동력이다. 윤평중 한신대 철학과 교수는 “YS는 단도직입형, DJ는 심사숙고형 지도자였다”며 “180도 다른 리더십이 서로 상승작용을 하면서 한국 사회의 민주화를 업그레이드했다”고 평가했다.  

리더십의 공통점도 있었다. 김형준 명지대 인문교양학부 교수는 “두 거목은 국민에게 꿈과 희망을 주는 리더십, 국민을 두려워하는 리더십, 자기를 반대하는 사람까지 포용하는 리더십을 갖고 있었다”고 평가했다. 민주주의를 열망하는 국민에게 희망과 비전을 제시했고, 자신의 잘못에 대해서는 국민 앞에 고개를 숙였으며 정치적으로 반대편인 인재들에게도 기회를 줬다는 것이다.  

두 사람은 스스로 앞장서고 희생하면서 카리스마를 만들어냈다. 이현우 서강대 정외과 교수는 “권위주의 정권에 맞서 자기를 희생해 가면서 정치인으로 섰기 때문에 리더로서의 정통성을 확보할 수 있었다”고 말했다.  


○ 양김 시대를 넘어선 정치 리더십을 찾아야 

양김의 리더십은 ‘독재 대 민주’ 시대의 제약을 받는다. 그 시대엔 민주주의를 입에 올리는 것 자체가 눈치를 살펴야 하는 도전이었지만 지금의 민주주의는 누구나 호흡할 수 있는 ‘공기’가 됐다. 양김 시대를 보내면서 다원화 시대에 맞는 새로운 정치 리더십을 찾아야 할 때라는 것이다.  

김형오 전 국회의장은 “새로운 패러다임의 민주주의, 시민정신이 골고루 발휘된 민주주의가 필요한데 아직도 양김 시대의 ‘팔로 미(follow me·나를 따르라)’ 식의 리더십에 젖어 있다”며 “인터넷과 모바일 혁명으로 인해 세계사의 큰 조류가 변하고 있는데 한국 정치는 아직도 변화에 적응하려는 노력이 부족하다”고 지적했다.

윤평중 교수는 “YS와 DJ는 권위주의에 대항했지만 정작 본인들은 권위주의적 리더십을 보였다는 점이 한계”라며 “박근혜 대통령을 비롯한 후대 정치지도자들은 인치(人治)에서 법치(法治)로, 카리스마적 리더십에서 민주적 리더십으로 넘어갔어야 했는데 오히려 퇴행했다”고 비판했다.  

양김 시대를 거치면서 심화된 지역주의를 극복하려는 적극적인 노력도 필요하다. 이현우 교수는 “1987년 민주화 이후 차별성을 찾아야 할 필요성을 느낀 YS와 DJ는 지역주의를 통해 효율적으로 유권자를 동원했다”며 “두 사람이 퇴장했는데도 정치인들이 지역주의 혜택의 유혹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고 꼬집었다. 


○ 의회주의 복원은 필요 

양김의 리더십에서 계승해야 할 대목도 있다. 의회주의 복원이다. 박원호 서울대 정치외교학부 교수는 “두 사람은 정치가 국회에서 대화와 소통을 통해 진행된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며 “현 정부가 행정부 리더십만 생각한다면 YS와 DJ의 정신을 돌이켜보고 배워야 한다”고 제언했다. 

양김 시대의 종언을 마주한 여야는 아직도 갈등의 쳇바퀴에서 맴돌고 있다. 경제활성화·노동개혁 법안, 한중 자유무역협정(FTA) 비준 등 어느 현안 하나 접점을 못 찾고 있다.

여야 원내수석부대표는 23일 긴급 회동했지만 견해차를 좁히지 못해 26일 본회의 개최 여부도 불투명해졌다. 여야를 ‘민주 대 반민주’ 구도로 보는 낡은 틀에서 못 벗어났다는 지적이 나온다.

YS가 생전에 정치권에 던진 키워드는 ‘통합과 화합’이었다. 이만섭 전 의장은 “앞으로의 정치는 YS의 인내와 DJ의 명석함을 합쳐야 한다”며 “여야 간에 소통과 대화를 통해 나라를 위해 필요한 노력을 해야 한다”고 당부했다.  

장택동 will71@donga.com 기자의 다른기사 더보기·황형준·홍정수 기자

 

이종걸 “김무성·서청원, YS 유산만 노리는 아들” 맹비난

박해식기자

입력 2015-11-24 15:16:00 수정 2015-11-24 15:19:15

 

새정치민주연합 이종걸 원대대표(사진)가 고 김영삼 전 대통령의 상가에서 ‘정치적 아들’ 자격으로 상주 노릇을 하고 있는 새누리당 김무성 대표와 서청원 최고위원을 싸잡아 비난했다.

이종걸 원내대표는 24일 국회에서 열린 원내대책회의에서 “김무성 대표와 서청원 최고위원은 김영삼 대통령의 정치적 아들을 자처하면서 상주 역할을 하고 있으나 이들은 정치적 아들이 아니고 유산만 노리는 아들 아닌가라는 의문을 낳고 있다”고 꼬집었다.

이종걸 원내대표는 ‘금융실명제’, ‘역사 바로 세우기’, ‘하나회 해체’ 등 김 전 대통령이 추진했던 주요 개혁 정책들을 열거한 뒤 “김무성, 서청원 두 분이 고인의 정치적 아들을 자처하려면 먼저 정치적 아버지의 노선을 계승하고 발전시키는 ‘정치적 효도’를 해야 한다고 생각한다”고 주문했다. 

그러면서 “YS라면 역사교과서 국정화에 단식투쟁으로 반대했을 것”이라고 역사교과서 국정화 추진에 앞장선 두 사람을 포함한 새누리당 지도부를 질타했다.

한편 김무성 대표는 “나는 김 전 대통령의 정치적 아들”이라며 공개적으로 상주노릇을 하겠다고 밝혔고, 서청원 최고위원은 “김 전 대통령은 저의 정치적 대부”라며 자신이 상도동계 적통임을 강조했다. 

 

YS “맹순아 온나” 10년 된 차 바꾼 날 통일로 드라이브

실시간 트렌드 뉴스 순위 202


1983년 8월, 부인 손명순 여사가 서울 상도동 자택에서 김영삼(YS) 전 대통령에게 ‘백허그(back hug)’를 한 채 환하게 웃고 있다. YS는 이 해 5월 18일부터 23일간 민주화를 요구하며 단식투쟁을 했다. [사진 김영삼민주센터·국가기록원]


2009년 12월, 서울 상도동 자택 마당에 나와 있던 김영삼(YS) 전 대통령이 2층을 향해 소리를 질렀다. “맹순아(명순아), 빨리 내리온나.” 이명박(MB) 정부 출범 후 강화된 전직 대통령 예우 규정에 따라 김 전 대통령 측에 새 승용차가 지원되는 날이었다. YS가 각각 14, 15대 국회 때 발탁한 MB와 맹형규 당시 대통령 정무특보와의 인연도 작용했다는 말이 나왔다.

YS·손 여사 애틋했던 동반 64년
마산 출신 이대생 셋과 한날 맞선
문학 얘기하는 손 여사에게 반해
학생 때 결혼, 신혼여행 못 갔지만
매일 밤 청와대 산책 “이게 신혼”


 덜덜거리며 가끔 멈춰서던 10년차 자가용 대신 신형 에쿠스 리무진이 집 앞에 도착하자마자 YS는 부인 손명순 여사를 소리 높여 찾았다. YS는 나들이 차림으로 집을 나선 손 여사에게 손수 차문을 열어줬다. 운전기사에겐 “통일로로 내달리라”고 했다. 80대 노부부는 이날 경기도 문산까지 드라이브를 즐겼다.

 YS 퇴임 직전인 1997년 차남 현철씨의 구속으로 상처를 입은 손 여사는 퇴임 이후 부쩍 말이 줄었다. YS는 그런 손 여사를 기쁘게 해주려고 늘 노력했다.

 YS와 손 여사의 ‘동반 64년’이 빈소 주변에서 화제다. 각각 서울대와 이화여대 3학년생 시절 만나 결혼한 두 사람은 64년을 함께 살았다. 중앙정치 무대의 스타였던 남편은 늘 바빴다. 그런 YS가 9선을 하는 동안 지역구 관리와 가족들 건사는 손 여사 몫이었다. 그런 손 여사를 YS의 비서 출신인 새누리당 정병국 의원은 “손 여사는 타고난 선거전략가였다. YS가 대통령이 되는 데 일등공신도 손 여사”라고 말한다.

 
기사 이미지

YS가 51년 손명순 여사와 찍은 약혼 기념사진. 부부는 장남 은철씨와 차남 현철씨, 딸 혜영·혜경·혜숙씨등 5남매를 뒀다. [사진 김영삼민주센터·국가기록원]

 ◆결혼식 때 주례 안 오자=YS와 손 여사는 51년 결혼했다. 거제 출신의 YS는 조부모의 닦달로 하루 날을 잡아 3명과 선을 봤다. 상대는 모두 경남 마산 출신의 이대생들이었다. 그중 마지막에 만난 손 여사와 말이 통했다. 서거 전 마지막으로 한 언론 인터뷰인 JTBC 인터뷰(2011년)에서 YS는 “문학 얘기를 하는 걸 보면서 ‘참 멋있는 여자’라고 생각했다”고 말했다. 결혼식 에피소드도 있었다. 주례를 맡은 목사가 결혼 시작 3시간이 지나도록 오지 않았다. 급하게 하객 중 목사를 찾았다. 진주 출신 목사가 있었다. 그 초면의 목사가 주례를 맡았다. YS는 “그때 너무 정신이 없어서 고맙다는 인사도 제대로 못했다. 한참 뒤 대통령이 되고 연락해 보니 이미 돌아가셨더라. 미안한 마음에 그분 아들과 며느리를 불러 식사 대접을 했다”고 회고했다.

 손 여사는 이대 약대를 수석 입학한 재원이었다. 결혼 몇 년 뒤 YS가 손 여사에게 “약국을 차리는 게 어때”라고 말했다. 그러자 손 여사가 “당신 내조도 바쁜데 내가 약국을 어떻게 해요”라고 타박했다. 결혼 후 손 여사는 거의 매일 100여 명의 식사를 준비해야 했다. YS는 그때 일을 떠올리며 “맹순이가 참 수고가 많았다”고 주변 사람들에게 말하곤 했다. 학생 때 결혼하는 바람에 두 사람은 변변한 신혼여행도 다녀오지 못했다. 93년 청와대에 입성한 YS는 5년간 거의 매일 밤 손 여사와 청와대 경내를 산책하며 “이게 우리 진짜 신혼이다”고 달래곤 했다고 한다.

 
기사 이미지

YS가 통일민주당 총재 시절, 환갑을 맞아 손명순 여사와 함께 한복을 차려입고 찍은 기념사진. [사진 김영삼민주센터·국가기록원]

 ◆선거전략 뛰어났던 손 여사=조용한 내조에 주력했던 손 여사는 필요할 때면 전면에 나섰다. 87년 대선에 실패한 YS는 88년 총선에서 부산 서구에 출마했다. 선거전이 시작되자 전국 곳곳에서 쇄도하는 지원 유세 요청에 정작 자신의 선거운동은 뒷전이었다. 당시 지역구에서 선거를 도왔던 정병국 의원은 “선거가 시작되니 손 여사가 진두지휘를 시작했다. 적재적소에 운동원들을 배치하고 선거운동 플랜을 짜는 걸 보면서 뛰어난 선거전략가란 생각이 들었다”고 말했다.

 YS가 90년 3당 합당을 결정하자 일부 상도동계 인사는 “군부독재 세력과 손잡을 수 없다”며 거부했다. 끝까지 합류하지 않고 버틴 이가 최형우 전 의원이었다. 그는 김동영 전 의원과 함께 ‘좌형우’ ‘우동영’이라고 불렸다. 손 여사는 최 전 의원을 직접 찾아갔다. “당신은 YS가 왜 3당 합당을 하는지 그 뜻을 모르느냐. 그러고도 ‘좌형우’냐”라고 몰아붙이며 설득했다. 결국 최 전 의원은 YS를 따랐다. YS가 대통령에 당선된 뒤 장관에 임명된 최 전 의원은 YS에게 “저, 형수님 아니었으면 대통령님 안 따라왔심니더”라고 털어놓았다고 한다.

 92년 대선 땐 손 여사도 YS만큼이나 많은 사람을 만났다. 당시 여당이던 YS 측에는 정보기관에서 보내준 ‘블랙리스트’가 있었다고 한다. ‘선거꾼’으로 조심해야 할 인물들이었다. 어느 날 손 여사가 그중 한 명과 면담하는 것이 비서진의 눈에 띄었다. 손 여사에게 “만나지 말라”는 경고가 들어갔지만 그 뒤로도 손 여사는 두 번이나 더 접촉했다. 펄쩍 뛰던 비서진이 “나쁜 사람도, 좋은 사람도, 귀한 사람도, 천한 사람도 모두 같은 한 표다”고 손 여사가 말하자 잠잠해졌다고 한다.

 23일 손 여사는 입관예배 참석을 위해 남편의 빈소를 찾았다. 오전 10시15분쯤 휠체어를 타고 도착한 손 여사는 입관예배 뒤 한동안 빈소에 머물다 오후 4시쯤 귀가했다. 검은 원피스에 검은 외투를 걸친 손 여사는 지치고 외로워 보였다.

이가영·김경희 기자 ideal@joongang.co.kr

 

 

김영삼 전 대통령 서거 … 서울대 장례식장 실시간 중계③

실시간 트렌드 뉴스 순위 303
인쇄 기사 보관함(스크랩)


김경희·위문희·박병현·이은 기자 amator@joongang.co.kr
[영상
] 조수진·정해건·최재선
  • 24분전22:28

    원희룡 제주지사, 조문 마치고 나가며.
    "(YS) 뵌지는 한 3~4년 된 것 같습니다. 자택에 가면 젊은 국회의원들 식사도 주시면서 인간적인 조언도 많이 해주셨는데... 더 사실 줄 알았는데 상실감이 많이 옵니다. 역사의 흐름에서, 특히 70년대 이후는 이 어른을 빼놓고는 역사 자체가 없는거나 마찬가지잖아요. 인간적이고 기상이랄까, 호연지기랄까 그런 점이 너무 멋있고 (제가) 좋아하는 편이기 때문에 더 아쉽습니다. 정치가 나름대로 멋도 있고 국민들이 상당히 손에 땀을 쥐면서 볼 수 있게 만들었던 주인공 중의 주인공 이시죠."
  • 29분전22:23
     

    김기춘 전 청와대 비서실장, 2시간 머물다 조문 마치고 나가며.
    "당연히 조문해야지. 우리 고향(경남 거제) 대선배님인데. 민주화 하는 데 크게 헌신하신 훌륭한 국가원수아닙니까. 당연히 조문해야지요. 김 전 대통령께서는 산업화로 이룬 토양 위에 민주화라는 역사적 과업을 이룩했습니다. 난 역사적인 국가원수라고 생각합니다."
  • 1시간전21:25

    박관용 전 국회의장 조문 마치고 나가며.
    -YS 서거가 동교동과 상도동의 화합 계기인가.
    "원래 YS와 DJ는 협력과 더불어 서로 경쟁하는 관계였다. 다 같이 싸워야 할때는 싸웠고, 각자 일해야 할 때는 일했다. 동교동계 상도동계가 같이 상주 노릇 한다는 것은 새로운 화합을 의미한다."
  • 4시간전18:15

    전순옥 의원 조문 마치고 나가며.
    “제가 논문 쓸 때, 김영삼 전 대통령은 YH 사건으로 제명된 상태였다. 박사논문 인터뷰를 요청했는데, 너무 흔쾌히 잘 해주셨다. 어머니하고도 친한 사이였다.”
  • 4시간전18:12

    정두언 의원 조문 마치고 나가며.

    "화끈하고 시원하게 정치 한 분이다. 요새는 정치가 너무 쫀쫀하고 답답해. 지금 이 양반이 독재를 깨고 민주시대를 연 분인데 우리 정치는 그 전으로 돌아간거 같다. 그 과거 권위주위시대로. 민주화시대를 만든지 20년이 지났는데 지금 보니 더 거꾸로 간다."

     
    기사 이미지

    "화끈하고 멋있는 정치 선배님. 존경하고 사랑합니다. 2015.11.24. 국회 국방위원장 정두언."
  • 5시간전17:42

    백기완 통일문제연구소장 조문 마치고 나가며.
    "자기 소신대로 일생을 살아오신 분이다. 흔들리지 않고 소신대로 사신 정말로 빼어난 분이라고 생각한다. 정말로 명복을 빈다. 87년도에 군사독재 끝장을 위해서 대통령 하겠다는 사람들이 하나로 되야한다고 눈물로 호소할 때 김영삼 선생님이 기꺼이 응해줬던 생각이 난다. 군사독재 끝장을 낼때다! 라고 하니까 눈물을 글썽이시더라고."

     
    기사 이미지
    "위대한 생애 삼가 명복을 빕니다. 2015.11.24. 백기완."
  • 6시간전16:20

    김기현 울산시장 조문 마치고 나가며.
    "제 선친이 YS가 처음 정치할 때 같이 활동하셨던 인연이 있다. 그래서 어릴 때부터 김영삼 전 대통령에 대한 말씀을 선친으로부터 많이 들었고. 평소에 흠모해오던 정치 대선배셨다. 군사정권을 뒤로 하고 처음으로 제대로 된 문민정부 민주정부 초석을 만들어주셨고 오늘 대한민국 자유민주주의 발전의 동력이 됐다. 그분이 걸어오신 대도무문의 길, 통합과 화합의 정신을 후배 정치인이 잘 되살려서 대한민국과 대한민국 정치를 한단계 더 성숙시키는 계기로 삼았으면 좋겠다."

     
    기사 이미지

    "대한민국 자유민주주의의 기초석을 놓으신 김영삼 전 대통령님의 영면을 기원합니다. 2015.11.24. 김기현"
  • 6시간전16:06

    김무성 새누리당 대표 질의응답
    -장례위원 발표 됐는데 그 의미에 대해서 한마디
    "김영삼 대통령께서 서거하시기 전에 마지막으로 하신 대국민 메세지가 통합과 화합이다. 그래서 대통령의 뜻에 따라 가시는 길을 통합과 화합차원에서 모셨다. 민주주의 위해 같이 투쟁하던 동지들, 대통령이 된 뒤 개혁을 할 당시 대통령을 도우셨던 여러 참모들, 그리고 과거 동지에 대한 애착이 남다르시다. 예를 들어 대통령 되는걸 못보고 돌아가신 김동영 의원의 미망인, 서석재 전 장관의 미망인 들도 포함시켰다. 또 우리 민주화에 큰 역할을 했던 민추협 동지들도 모두 포함시켰다. 숫자가 아주 많았는데 모두 작고하셔서 350여명 맞았는데, 상도동계와 동교동계가 총망라된 분들이다. 그 분들도 다 포함시켰다."

    -전직 대통령 포함은 관례상 그런 건가?
    "그것도 저희가 회의를 통해 대척점에서 계셨던 전직 대통령도 다 모셔야 한다. 물론 그분들 뜻도 중요하지만 통합 차원에서 다 모시기로 했다."

    -사흘째 빈소 지키는데 힘들지는 않나
    "당연히 해야할 일이기 때문에 대통령 모셨던 분들 다 상주의 역할을 충실히 잘하고 있습니다."
  • 6시간전15:55

    가수 윤형주 조문 마치고 나가며.
    "정치쪽엔 무관한 사람인데 평소에 어떤 신앙의 선배로서 김영삼 전 대통령, 전 장로님이라고 부르는데 신앙적인 선배로서 나라위해 일하는 모습에 후배들이 많은 힘을 얻었다. 힘과 소망 얻은지도자였다. "
  • 7시간전15:49

    한승수 전 국무총리 조문 마치고 나가며.
    기사 이미지

    "대도무문의 민주거목 김영삼 대통령님 고이 영면 하소서. 2015.11.24. 한승수"



  • 뽀빠이 이상용 입장.
    "제가 어린이 사업할 때 직접 오셔서 많이 안아주시고, 도와주셨다. 심장병 재단할 때도 많이 도와주셨다."
  • 8시간전14:51
    신경민 의원, 조문 마치고 나가며
    "시당 당직자들, 간부들과 같이 왔다. 오늘 서울시당 당직자, 위원장 자격으로 이 자리에 왔고 이 분의 경우, 여야를 초월하는 정치지도자고 이 분의 업적은 그 결단력과 함께 이미 기록되어 있는 분이다. 다른 대통령들이 할 수 없는 신속성, 결단성, 용감함은 흉내내기가 힘들다. 특히 민주화에 기여한 것도 있어 이건 당연히 여야를 초월하는 지도자로서 저희들이 조의를 표한다."
  • 8시간전14:47

    홍준표 경남도지사 조문 마치고 나가며.
    "한국 현대사에서 가장 국가 개혁을 많이 하신 분인데 지난번에 IMF때 많은 국민들이 비난하는 것을 보고 참 가슴 아팠다. 새롭게 다시 한 번 재조명되었으면 한다. 산업화 시대와 민주화 시대가 이젠 다 끝났으니까 산업화 세력, 민주화 세력들이 더 이상 다투지 말고 나라가 선진강국이 되는 데 전부 힘 합쳤으면 좋겠다."

     
    기사 이미지

    "담대함으로 대한민국을 개혁하신 대통령님의 업적을 우리 국민들은 모두 기억합니다. 2015.11.24. 홍준표"
  • 8시간전14:46

    안희정 충청남도지사 조문 마치고 나가며.
    "반독재 민주화 운동을 이끄셨던 민주화 운동의 지도자셨다. 매우 애통하게 생각한다. 우리는 지도자 한 분을 잃었고, 후손들에게 새로운 미래를 만들어야 할 책무가 맡겨진 것이 아닌가 생각한다."

     
    기사 이미지
    "통합과 화합의 그 말씀을 잊지 않겠습니다. 편히 쉬소서. 2015.11.24. 충남도지사 안희정"
  • 8시간전13:57

    손학규 전 새정치민주연합 상임고문 입장.
    그는 김 전 대통령의 서거 이후 사흘 내내 빈소를 찾고 있다.

     
  • 9시간전13:21

    46년 전, 김영삼 전 대통령 친필 사인 받았던 정수선(62·서울 금천구)씨는 빈소를 찾아 김 전 대통령과의 인연을 밝히며 눈물을 흘렸다.

    "15살 때였다. (김 전 대통령께서) 부산 장림동에 오셨다.거제도가 고향이라고 하니 직접 사인해주셨다. (김 전 대통령께서) 상도동 자택으로 찾아오라고 하셨는데 한 번도 못 찾아뵈었다. 돌아가시고 나서 찾아뵈었다. 고생하셨으니 편안 곳으로 가시길 바란다. 사인받은지 만 46년이다. 당시에는 의원이신줄 모르고 '아저씨 대통령 되십시오' 라고 했는데 대통령 되셨다. 정말 반가웠다. 다가갈 수는 없었지만 반갑고 또 반가웠다."
  • 9시간전13:18

    새정치민주연합 고문을 맡고 있는 김옥두 전 의원 입장.

    "(김영삼 전 대통령은) 유신정권 하에서 이 나라의 민주주의를 위해서, 국민을 위해서 목숨 걸고 민주주의를 회복시킨 민주주의의 상징이다. 영원히 역사에 남을 것이다. 국가장례위원회에 동교동계가 참석한다. 6년 전 돌아가신 김대중 전 대통령을 모신 그 마음으로 김영삼 전 대통령을 모시겠다. 서울시청에 지금 다 가 있다. 역사적인 화해를 했다."

     
  • 9시간전13:08

    서울시 교육감 조희연 입장.

    "고인께서 반(反) 독재 민주화 투쟁의 선두에 계실 때 (저는) 민주화 운동에 합류한 꼬마 대학생이었다. 저희 대학생들에게 고인은 큰 산이셨다. 고인께서는 한국사회가 독재에서 민주주의로 이행하는 큰 전환기에 질서있는 이행, 안정적인 변화의 큰 길을 만드셨다고 생각한다. 젊은 세대들은 고인의 어려운 삶의 투쟁 속에 큰 혜택을 입고 오늘날 민주주의와 자유를 향유하고 있다. 깊이 감사드리고 고인의 정신을 이어가겠다. "
    기사 이미지
    "고인께서 반 독재 민주화 투쟁의 선두에 계실 때 저는 이제 막 민주화 운동에 합류한 꼬마 대학생이었습니다. 고인으로부터 큰 은혜를 입고 삽니다. 서울교육감 조희연"

  • 10시간전12:48

    조순형 전 의원, 조문 마치고 나가며
    "김영삼 전 대통령은 대한민국 민주주의를, 위기에 처한 민주주의를 지켜가신 우리 시대의 거인이시고 확고한 신념과 결단의 지도자시다. 역사는 김 대통령을 군정 종식시키고 대한민국에 민주주의를 정착시킨 인물로 기억하고 반드시 평가할 거라 믿는다."
  • 10시간전12:01

    이우재 전 의원 입장.
    "대통령께서 생존하셔서 정치 원로로 국가를 잘 지도해주셨는데 평소에 굉장히 건강하셨는데 갑자기 돌아가셔서 안타깝다"

  • 기사 이미지

    조순형 전 의원 입장.
    "한국 민주주의 지켜낸 우리 시대, 거인 영면하소서. 2015.11.24 조순형"
  • 11시간전11:39

    새누리당 서청원 최고위원 입장. 서 최고위원은 김영삼 전 대통령의 빈소가 마련된 이후 사흘 내내 빈소를 찾았다. 그는 김영삼 전 대통령이 통일민주당 총재이던 시절 비서실장을 지냈고 문민정부에서는 정무 제1장관, 신한국당 원내총무(현 원내대표)를 지냈다.
  • 11시간전11:20

    이철 전 의원, 조문 마친 뒤
    "저희들은 70년대, 80년대 양김, 그 분들과 함께 민주화 운동을 했습니다만 그 때는 사실 저희들이 왠지 모르게 좀 더 큰 역할을 해주시길 기대했는데 그게 지나고 보니까 너무나 과욕이었구나…정말 우리가 다시는 만나지 못할, 다시는 모시지 못할 그런 큰 인물이었다. 이제 그 분과 함께 이 사회를 바르게... 정말 아쉬운, 그동안 살아 생전에 잘 모시지 못한 그런 애통함을 금할 수 없습니다
  • 11시간전11:10

    이기택 전 의원, 조문 마친 뒤
    "김영삼 전 대통령은 제가 정직하게 이야기해서 오늘의 이 대한민국의 민주주의 국가로 만드는데 누구와도 비견할 수 없는 가장 탁월한 공을 세우신 분이다. 이 분이 돌아가신데 대해서 온 국민이, 민주주의를 숭앙하는 모든 국민들이 이 분의 그 민주주의 정신을 따라서 이 나라가 더욱 더 성숙한 그런 그 국가로 발전되어 나갈 것을 빌어 마지 않는다.
    우리나라가 그렇게 민주주의 국가로 성숙했을 때 국민들이 이 분에 대한 빚을 갚는 것이다. 이 분도 저 세상에서 이 나라 잘 되길 지도하고 계실 것이다."
  • 12시간전10:46
    기사 이미지
    "영원한 민주주의 지도자 영면하소서"

    일명 '꼬마 민주당' 총재를 지낸 이기택 전 의원이 빈소를 방문했다. 이 전 의원은 故 노무현 전 대통령 등과 김영삼 전 대통령의 3당 합당에 반발해 '꼬마 민주당'을 만들었다. 김 전 대통령은 1990년 자신이 이끌던 통일민주당을 민주정의당(노태우), 신민주공화당(김종필)과 합당해 '민주자유당'을 만들었다.
  • 12시간전10:25

    손경식 CJ 그룹 회장, 조문 마치고 나가며
    "우리나라의 민주화와 금융실명제 등 선진 제도를 도입한 훌륭한 지도자다. 대통령이셨기 때문에 뵙고 그랬다. 여태까지 고생하시다가 가셨는데 앞으로도 좋은 데 가셔서 영면하시길 바란다."
  • 13시간전09:53

    무소속 박주선 의원 입장
    "우리 역사의 큰 별이 지셨는데 애통하고 명복을 빈다. 김영삼 전 대통령의 유지를 받들어 통합과 화해, 의회 민주주의가 발전돼야 한다. 통합에 동참하겠다"
  • 13시간전09:37


    영삼 전 대통령 재임 시절인 1996년부터 2년 간 국회의장을 지낸 김수한 전 의장. 그는 김 전 대통령의 서거 소식을 듣고 가장 먼저 조문을 왔으며 3일 내내 빈소를 찾고 있다.

  • 13시간전09:17

    김영삼 정부 초대 비서실장을 지냈던 박관용 전 국회 의장 입장.
  • 14시간전08:44

    3일째 빈소 찾는 새누리당 김무성 대표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