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동차

[최원석의 디코드] 테슬라가 도요타를 '가격'으로 이기는 날

Shawn Chase 2020. 7. 30. 17:04

 

입력 2020.07.30 14:43 | 수정 2020.07.30 16:52

※디코드(decode): 부호화된 데이터를 알기 쉽도록 풀어내는 것. 흩어져 있는 뉴스를 모아 세상 흐름의 안쪽을 연결해 봅니다. ‘뇌피셜’이 넘쳐 죄송합니다!

‘현재 1등이 잘하는 방식으로 백날 갈고닦아봐야 이기기 어렵다. 기존의 연장선 위에서만 과제를 풀려고 하지 말고, 과제를 아예 새로 설정할 능력이 필요하다’.
전략의 기본이지만 좀처럼 실천하긴 어려운 것에 대해 얘기해 보겠습니다. 왜 테슬라가 혁신성이나 매력 뿐 아니라, 실제 ‘가격경쟁력’에서도 도요타를 이길 가능성이 있는지에 대한 이야기입니다.

자동차업계에서 ‘원가’란 생명선입니다. 누가 더 저렴하게 더 좋은 제품을 만드느냐가 경쟁력의 핵심입니다. 대중차만 그런게 아닙니다. 벤츠·BMW 같은 고급차 브랜드도 마찬가지입니다. 고급차라 해도 시장에서 용인된 가격엔 한계가 있죠. 그 한계 내에서 더 고급스럽게, 게다가 요즘 필수인 인포테인먼트·주행보조장치까지 더 좋은 것을 집어넣어서 시장에 내놓아야 겨우 소비자 눈에 들 수 있는데요. 그러러면 모든게 돈, 돈이죠. 제조원가를 낮추지 못하면 이런 장비를 다 넣으면서도 경쟁력 있는 가격에 차를 내놓을 수 없게 되고, 그렇게 되면 제아무리 프리미엄 자동차라 해도 도태되고 말겁니다.

자동차 원가경쟁이 얼마나 치열하냐 하면, 단가 몇원 혹은 몇십원을 아끼기 위해 업체들끼리 박터지게 싸운다는 겁니다. 그렇게 하지 않으면 살아남기 어려울 만큼 엄청나게 터프한 시장이라는 거죠.

◇도요타, 전통적 원가경쟁력의 절대강자

이런 원가 경쟁력의 노하우는 지난 100년간 자동차 역사에서 계속 발전돼 왔는데요. 이 노하우의 정점을 찍은 회사가 도요타입니다. 부품과 제조과정의 원가를 줄이고 또 줄여 소비자에게 경쟁사보다 낮은 가격, 혹은 같은 가격에 더 높은 가치를 담은 차를 제공해 왔습니다.

도요타 가격경쟁력의 근본은 도요타생산방식(TPS·Toyota Production System)이라 불리는 ‘낭비 줄이기’ 노하우에 있는데요. ‘TPS 의 아버지’ 오노 다이이치 전 도요타 부사장 때 집대성된 이후 지난 반세기 동안 일신우일신(日新又日新)하여 지금에 이르렀습니다.

TPS는 미국·독일 업체들도 오랫동안 배워왔고, 특히 미국에선 ‘린 생산(Lean Production)’이라고 해서 이를 현지화해 꽤 효과를 보기도 했습니다. 물론 TPS의 근원을 따지고 들어가면 100년전 포드 생산방식까지 이어지겠지만 말입니다.

한국 역시 지난 수십년간 TPS 배운다고 누적으로 따지면 수백만명이 일본 연수도 가고, 교육과정·세미나·강연에 참석했을 겁니다. 하지만 제가 알기로는 결과가 그리 신통치 못합니다. TPS의 겉모습을 배운다고 도요타만큼 할 수 있는건 아니거든요. 결국은 철학이고 문화이기 때문에, 구성원이 마음으로 받아들이지 않으면 100% 효과를 내기 어려운 시스템니까요. TPS 배운다고 돈만 잔뜩 들이고 효과는 제대로 못낸 대한민국 기업들이 허다합니다.

도요타자동차의 도요다 아키오 사장이 지난 5월12일 실적발표를 하고 있다. 도요타는 전통적인 원가절감능력의 세계최강자이다. /도요타자동차


◇기존방식 고수해선 도요타 잡기 불가능

근본적인 것을 생각해보면, TPS의 본류이자 원가경쟁력 세계최고인 도요타를 따라한다고 해서 도요타를 이기긴 힘들겠지요. 전략의 기본입니다. 1등이 하던 방식을 그대로 따라한다고 1등이 되긴 어렵습니다. 지금까지 잘해왔고 앞으로도 쉬지 않고 단련해 나가는 1등을 어떻게 이기겠습니까.

그래서 자동차 업계에서는 아주 오랫동안 도요타의 시가총액이 1등이었던 겁니다. 도요타는 연간 1000만대 정도를 만들지만, 폴크스바겐도, 르노·닛산·미쓰비시 연합도 다 그정도는 만듭니다. 그런데도 도요타 시총이 압도적으로 높았던 것은 물량 뿐 아니라 도요타의 원가경쟁력, 이익창출능력이 최고라고 봤기 때문입니다.

이런 구조에서는 도요타가 스스로 넘어지기 전엔 절대 1등을 빼앗을 수 없습니다. 그런데 도요타는 자만하는 법이 없거든요. 오늘도 열심히 원가절감 활동을 하고, 고객을 위해 노력하고 또 노력합니다. 창업자의 직계 손자인 현 도요다 아키오 사장 이하 37만 전 직원이 일심동체가 되어 열심히 달리고 있는 겁니다.

◇과제를 ‘해결’하려 하지 말고 새롭게 ‘설정’해야 상대 이긴다

이래서는 자동차업계 1등을 빼앗을 가능성이 거의 없지요. 어떻게 해야 할까요? 잠시 다른 얘기를 해보겠습니다. 2년전 손태장(孫泰蔵·48, 일본명 손타이조) 미슬토(Mistletoe) 회장을 싱가포르의 미슬토 본사에서 만났을 때였습니다. 재일 교포 3세인 손태장 회장은 손정의(일본명 손 마사요시) 소프트뱅크 회장의 친동생으로 열다섯 살 터울입니다. 자수성가한 재외 동포 사업가 중 한국 국적을 유지하는 몇 안 되는 인물이기도 하지요. 손태장 회장은 일본 최대 온라인게임업체인 겅호(GungHo)온라인엔터테인먼트를 창업해 억만장자 반열에 올랐고, 현재는 본인이 세운 벤처 투자사 미슬토를 경영하고 있습니다.

그는 제게 이렇게 얘기했습니다. “세계에는 논리적 사고력이 뛰어난 엘리트들도 풀지 못하는 과제가 산더미처럼 존재한다. 정치·경제 상황에서 보듯 세계는 상호 관계하면서 많은 요소가 얽혀있는 복합계다. 과제를 해결하는 것이 더 어려워지고 있다. 그래서 나는 ‘과제 해결의 시대는 끝났다’라고 생각한다. 그렇게 말하면 ‘네? 지금부터가 과제 해결의 시대 아닌가요”라고 물을 수 있다. 하지만, 사실은 과제를 ‘해결’하는 것이 아니라 과제를 새롭게 ‘설정’하는 힘이 중요한 시대인거다.”

이게 무슨 얘기냐고요? 한가지 예를 들어보겠습니다. 서울 도심과 근교를 연결하는 전철·버스가 수용인원을 넘어 심각한 문제를 일으키고 있다고 생각해보죠. 통상적으로 이 과제를 ‘해결’하는 방법은 무엇일까요? 네, 철로나 도로를 늘리고 더 많은 교통편을 투입하는 겁니다. 2층 버스는 이미 나왔고, 이것도 안되면 2층 전철을 만들어 수용인원을 2배로 늘리면 어떨까요? 뭐 이런 식의 접근이 될 겁니다.
그러나 손태장 회장은 이런 식으로는 안된다고 말합니다. 대신에 과제를 새롭게 ‘설정’하라는 겁니다. 즉 만원 전철·버스로 사람들이 고통받는다면, 굳이 출근하지 않고도 쾌적하게 일할 방법을 찾으면 되지 않을까? 혹은 왜 꼭 같은 시간대에 모든 사람이 출퇴근해야 할까? 일하는 방식을 바꾸는게 더 좋지 않을까? 라는 식으로 과제를 새롭게 설정하는 능력이 21세기에는 절대적으로 필요하다는 것입니다. 즉 인공지능(AI)이 갈수록 진화하는 시대에 인간이 가치를 인정받고 살아남으려면 이렇게 새롭게 과제를 설정하는 능력을 반드시 가져야만 한다는 것입니다.

자, 그럼 이 글의 주제인 도요타와 테슬라가 ‘가격경쟁력’을 바라보는 결정적 차이에 대해 얘기해보죠. 손태장 회장이 말한대로, 21세기의 과제를 풀기 위해서는 전통적 방식의 해결이 아니라 과제의 새로운 ‘설정’ 능력이 중요하다는 것. 이것을 테슬라 사례를 통해 풀어 보겠습니다.

테슬라는 신생 자동차기업입니다. 테슬라가 지금부터 도요타생산방식을 열심히 배우고 따라가서 원가를 낮춰 전기차를 판다고 생각해보죠. 그래서 도요타를, 혹은 도요타가 앞으로 만들어낼 전기차를 가격으로 이길 수 있을까요? 일론 머스크는 생각했을 겁니다. ‘답이 안나오는걸?’이라고요.

일론 머스크 테슬라 CEO는 2분기 실적발표 이후의 컨퍼런스콜에서 "이미 판매된 테슬라 차량에 자율주행기능이 업데이트되고 규제문제만 해결되면, 차량의 가치가 최소 5배 상승할 수 있다"고 말했다. /AP 연합뉴스


◇테슬라, 구입가격 낮추는데 집중한 도요타와 달리 IT 기능 통한 차량 가치의 유지·상승에 초점

도요타는 자동차의 설계과 부품구매 단계부터 개당 단가를 1원이라도 낮춰, 최종 제품 경쟁력을 최고조로 높이는 신기(神技), 이 목표를 향해 전 구성원이 하나의 생물체처럼 움직이는 놀라운 능력을 갖고 있습니다. 어떻게 테슬라가, 일론 머스크가 똑같은 경쟁에서 도요타를 이기겠습니까?

물론 일론 머스크는 드리머(dreamer)인 동시에 사업가이므로, 파트너와의 가격 네고에서 냉혹한 면을 보여준다고 합니다. 당연히 그래야겠죠. 그렇다고 해도 도요타를 이길만큼은 어려울 수 있습니다. 도요타가 원가를 낮추는 방식은 매우 장기적이고 선행적이고 섬세하거든요.

그렇다면, 테슬라는 어떻게 도요타의 무시무시한 원가경쟁력을 이길 수 있을까요? 전통 방식의 해결로는 불가능합니다. 아예 과제를 새로 설정해서 도요타가 따라올 수 없는 경쟁력을 구축해야 합니다.
일론 머스크는 원가경쟁력에서 도요타를 이기기 위해 어떻게 과제를 새로 설정했을까요? 네, 머스크는 판매 단계에서 가성비가 가장 뛰어난 차를 제공하는 것이 아니라, 구입한 이후에 내가 보유한 차의 가치가 계속 올라가는 차량을 구상했습니다. 약간 어려운 말로 하면, ‘소유기간 내의 총 비용(TCO·Total Cost of Ownership)’이라는 관점에서 접근한 것이죠. 일반적인 차량은 구입후 시간이 지날수록 감가(減價)가 일어납니다. 도요타처럼 내구성이 좋고 사람들이 많이 찾는 차는 감가율이 상대적으로 낮지만, 그래도 사는 시점부터 차량 가치가 계속 떨어지는 것이 당연합니다.

머스크는 차량의 가격경쟁력, 원가경쟁력을 이처럼 TCO의 관점에서 봐라봤던 겁니다. 그리고 이것을 IT의 힘을 통해 어떻게 극복할 수 있을지 연구했겠죠. 일단 모델3처럼 일반인이 구매 가능한 수준까지 차값을 낮추는 노력도 게을리 하지 않았습니다만, 여기에 더해 차를 구입한 이후에도 가치가 좀처럼 떨어지지 않는 차를 제공하기로 한 겁니다. 그렇게 된다면 소비자는 초기에 차값이 조금 비싸더라도 테슬라 차를 구입해 주겠지요. 결국 나중에 되팔거나 할 때 다른 차보다 더 많은 돈을 받을 수 있고, 차를 오래 타더라도 가치가 유지된다는 만족감을 느낄테니까요.

이것은 현재 판매되는 모든 차 가운데 테슬라에서만 제대로 구현 가능한 차량 기능의 무선업데이트(OTP·Over The Air)를 통해 가능합니다. 차를 새로 구입하지 않아도 OTP를 통해 차량 기능이 개선되기 때문에 가치가 유지되는 것이지요. 특히 테슬라에 탑재된 주행보조장치는 업데이트를 통해 계속해서 성능이 더 좋아지고 있습니다. 탈 때마다 기능이 좋아지니까 차량 가치가 좀처럼 떨어지지 않습니다. 초기 차값을 도요타처럼 낮추기는 어렵더라도, 차를 사고나서도 가치가 유지되니까 결국엔 테슬라가 도요타를 이길 수 있다는 논리입니다.

◇머스크, 차 소유주가 안쓰는 대부분 시간 활용해 돈 버는 자율주행 플랫폼 착안

게다가 지난 7월22일(현지시각) 머스크는 테슬라 2분기 실적발표 이후 컨퍼런스콜에서 놀라운 이야기를 했습니다. “(테슬라의 주행보조기능이자, 향후 업데이트를 통해 자율주행까지 목표로 하고 있는) FSD(Full Self Driving)가 앞으로 계속 발전하고, 또 규제 문제만 해결된다면, 기존 테슬라 차량의 가치가 최소 5배 이상 상승할 수 있다”고 얘기한 겁니다.

네? 내가 이미 산 차의 가치가 최소 5배 오른다고요? 예를 들어 5000만원 주고 산 내 차가 자율주행기능 업데이트를 통해 최소 2억5000만원의 값어치를 하는 차가 될 수도 있다는 얘기입니다. 이 무슨 황당한 이야기일까요? 구입한 차의 가치가 떨어지는게 상식인데 오히려 크게 올라간다는 이 말을 어떻게 믿어야 할까요? 물론 머스크 특유의 과장 화법을 감안할 필요는 있겠지만, 아주 말이 안되는 것도 아닙니다.

지금은 규제나 기술적 한계로 운전자 개입이 필요 없는 자율주행이 불가능하지만, 머스크 말대로 이런 문제가 해결되어 내가 소유한 테슬라 차량이 업데이트를 통해 자율주행이 가능한 차로 바뀌었다고 생각해보죠. 현재 테슬라의 기술수준에 대해선 논란이 꽤 있지만, 일부 전문가들은 테슬라가 향후 구현해낼 가능성도 있다고 보는 편입니다.

그렇게 되면 어떤 일이 가능할까요? 내가 차를 쓰지 않는 시간대에 ‘무인(無人) 우버’처럼 다른 사람에게 내 차를 빌려주고 돈을 받을 수도 있게 되는 겁니다. 내가 차를 소유한다는 것의 의미를 다시한번 생각해봅니다. 내가 원할 때 차를 이용하기 위해 비싼 돈을 주고 차를 구입하고 주차장에 세워두죠. 하지만 하루 24시간 동안에 얼마나 차를 이용할까요? 하루 평균 2시간이나 이용할까요? 하루에 2시간을 달린다면, 나머지 22시간은 가동을 안하는 겁니다. 24시간 기준으로 가동률을 단순 계산하면, 가동률 8%에 불과하지요.

생산설비에 투자했다고 생각해보시면 어떨까요? 차를 구입한 것이나 생산설비에 투자한 것은 고정비에 속한다고 할 수 있을 겁니다. 생산설비비 즉 고정비를 많이 들였다면 가동률을 높여 투자비를 빨리 뽑아내야겠지요. 그래서 하루 2교대, 20시간 가까이 공장을 돌려서 설비능력을 최대한 뽑아내는 것이죠. 반면 내가 소유한 차량의 경우는 대부분 시간을 대기 상태로 있으면서 낭비되고 있다고 볼 수도 있습니다.

머스크는 내가 차를 소유하고 있다 해도 이렇게 낭비되는 대부분의 시간을, 차량 소유자에게 돈을 벌어주는 시간으로 바꿀 수 있다고 말하는 겁니다. 물론 이 과정에서 거간을 해주고 테슬라가 수수료를 챙길 수도 있겠지요. 하지만 결국엔 차량 소유자에게도 크게 득이 되는 일일 겁니다.

도요타와 테슬라의 가격경쟁력의 차이를 이런 관점으로 바라볼 수도 있을 겁니다. 도요타는 정말 잘해 왔습니다. 전통적 원가절감능력에서 도요타를 따를 자가 없습니다. 따라서 기존 경쟁자들이 도요타와 같은 방식으로 계속 경쟁한다면 변화는 크게 일어나기 어렵겠지요.

변화는 기존업계가 아닌 ‘굴러들어온 돌’에서 일어나고 있습니다. 최근에 도요타가 자동차업계 시총 1위 자리를 테슬라에 내준 사건도 이런 맥락에서 봐야 할 겁니다. 어떤 차를 구입했는데, 내가 안타는 시간에 스스로 돈을 벌어주는 차라면 어떻겠습니까? 이 차의 ‘가격 경쟁력’을 당해낼 차가 다른 곳에서 나오기 어려울 수도 있지요. 가격경쟁력을 바라보는 관점, 과제를 완전히 새롭게 설정함으로써 자동차산업 경쟁구도에 일대 변혁이 일어나고 있는 겁니다.



출처 : http://news.chosun.com/site/data/html_dir/2020/07/30/2020073002631.html